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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맡기신 일에 충성하는 사람들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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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기신 일에 충성하는 사람들 (마 25:14-30)
   
미국 하버드대학의 경영학교수이며,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신 ‘로버트 K. 머튼 박사’는 마25:29절의 말씀인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라는 본문 말씀을 가지고 ‘마태복음 효과’(Matthew effect)라는 이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이 ‘마태복음 효과’는 ‘누적 이득의 효과’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게 되고, 적게 가진 자는 점점 더 적게 가질 수밖에 없는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효과는 경제뿐만 아니라, 국민소득의 양극화 현상과 빈곤의 악순환, 지식과 교육의 격차, 정보의 격차, 학과목의 실력 격차, 선점기업의 시장 독점, 마케팅의 선점 위치, 선진국과 후진국의 소득 격차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스웨덴의 대중가수로 혼성 그룹인 유명한 아바(Abba)가 불러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켰으며, 뮤지컬 맘마미아에서 불려진 ‘The Winner takes it All’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노래 제목을 번역하면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라는 말입니다. 

노래 중에 “The winner takes it all/ The loser standing small /Beside the victory That's her destiny”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가사를 직역하면 “승자가 다 갖는 겁니다. 패자는 초라하게 승리 옆에 서 있을 뿐이지요, 그게 운명입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효과를 잘 설명해주는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효과라는 말은 어떤 개인이나 집단, 그리고 지역에서 어떤 분야에서 성공하고 앞서 나가면 그의 장점과 강점이 점점 더 쌓여지면서 더 크게 성공하고 발전할 수 있고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성공은 더 큰 성공을 낳는다는 주장입니다. 

말콤 글래드웰이란 사람은 베스트셀러 작가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사상가 10인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는데, 우리 시대의 최고의 언론인-저널리스트라고 합니다.   그의 책이 나오면 무조건 사봐야 할 정도로 최고의 언론인입니다. 그가 지은 유명한 책으로 “아웃라이어”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웃라이어라는 말은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말인데, 보통 사람의 수준을 뛰어넘는 특출한 사람을 ‘아웃라이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각계각층의 여러 분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 한 분야의 정상에 서 있는 사람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출한 사람들은 과연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를 말하는 책입니다. 

이 책에 제1장의 제목이 ‘마태복음 효과’입니다. 로버트 K. 머튼 이 주장한 마태복음 효과를 설명하면서 캐나다의 하키 선수들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1-3월에 태어난 선수가 40%, 4-6월에 태어난 선수가 30%, 7-9월에 태어난 선수가 20%, 10-12월 태어난 선수가 10%가 된다고 합니다. 같은 연령의 선수를 뽑는데, 1-3월 태어난 선수가 운동도 잘하고 늦게 태어난 사람들보다 능력이 많다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이 정설입니다. 

우리 속담에 “오뉴월 하루 볕도 무섭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라도 일찍 나선 사람이 더 잘 한다는 말입니다. 한 해에 태어났지만 1-3월에 태어난 아이는 10-12월에 태어난 아이보다는 능력 면에서 우수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수한 프로 선수들은 일찍 태어난 사람들 중에서 나온다는 말이 됩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효과라고 합니다. ‘아웃라이어’를 쓴 ‘말콤 글래드웰’은 그 책에서 마태복음 효과란 ‘누적적 이득의 치명적 효과’라고 설명합니다. 우리 사회의 성공한 상위 1%에 속하는 아웃라이어는 마태복음 효과의 수혜자들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성경의 어떤 본문을 연구할 때는 전후 문맥을 가지고 비교하면서 이런 본문의 사건을 기록할 때에 배경이 될 수 있는 상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24장에서는 우리 주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4-36)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24:42)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회의 초대교회는 다시 오시는 주님, 재림하시는 주님에 대한 생생한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마라나타”를 고백하였습니다. 이 말은 고전16:22 하반절에 나오는데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계 22:20에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말씀이 있는데,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말씀입니다. “마라나타”라는 말을 완료형으로 번역하면 “우리 주께서 오셨다”라고 하여, 이미 이루어진 사건을 말하는 것이며, 명령문이나 기원문으로 번역하면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뜻으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사건에 대한 소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그들의 고백 속에 주님은 이미 오셨다는 확신과 함께 다시 오시는 소망 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다시 오시는 주님, 재림하시는 주님, 영광 중에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면서 우리에게는 큰 사명이 주어져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긴박한 재림만 강조하는 이들이 되지 말고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맡기신 사명에 충실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무위도식하지 말고,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뜻입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살고 있고, 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의 친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충성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역사적인 종말, 지구의 종말, 우리 주님이 영광 중에 다시 오시는 역사적인 종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개인적인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매일 매 순간이 종말의 가능성에 속하는 시간입니다. 하루가 지나갑니다. 한 달이 지나갑니다. 일 년이 지나갑니다. 청소년기가 지나갔습니다. 청년기가 지나갑니다. 이제는 장년이 되고, 중년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노년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성목사가 노인입니까?” 저는 당연히 노인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니, 환갑이 넘었으면 노인이지요, 아니라고 한다고 무엇이 젊어집니까?”라고 하실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세요. “성목사님은 할아버지예요”라고 합니다. “아니, 이렇게 건강한데 왜 나보고 노인이라고 합니까? 그냥 중년으로 봐주세요.” 그러나 노인이 되어간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생이 숨 한번 쉬는 사이에 다 지나갔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다 지나갑니다. 아, 이렇게 빨리 오는 줄 몰랐다고 하실 것입니다. 오늘 내일 사이에 우리의 삶을 마치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야만 합니다. 

우리 하나님 앞에 서실 때에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뉘게 됩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은 사람들입니다. 21절의 말씀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라고 하셨습니다. 5달란트 받은 자와 2달란트 받은 사람은 똑같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심판과 책망을 받았습니다. 26절입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30절입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나오는 한 부자는 오늘의 재벌가입니다. 엄청난 부를 가진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타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에 여행을 떠나면서 자기의 종들을 불러서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기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라고 하니, 큰 차이가 나는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이것은 각자의 달란트에 차이가 있다는 것 보다는 재능이 다르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달란트는 재능을 말합니다. 우리들 중에는 재능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재능을 주셨습니다. 은사를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벧전4:10에서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을 혹 있을지 모르지만, 재능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다른 재능,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5달란트 , 2달란트, 1달란트라고 하니 차별한 것 같고, 차이가 나 보이고 상대적으로 적어보이지만 1달란트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당시에 거부의 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1달란트가 로마의 화폐로 6000데나리온입니다. 1데나리온이 장정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으니, 한 사람이 6000일을 일하고 받을 수 있는 돈이라고 하면, 일 년에 안식일을 제외하고 300일 정도 일한다고 하면 한 사람이 무려 20년 동안 일해야 모을 수 있는 돈입니다. 하루에 품삯을 10만원이라고 하면 1달란트라고 하여도 6억 원이라는 거금을 받은 사람입니다. 말이 6억이지만 평생 만져볼 수 없는 거금이었습니다. 

주인은 타국에 가면서 종들에게 자기의 전 재산을 맡겼습니다. 물론 맡긴 것이지 완전히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돈을 맡긴다고 하셨습니다. 맡겼다는 말은 관리하다, 위탁하다는 뜻입니다. 맡은 자는 소유권은 없지만, 관리권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은사에 대한 관리권, 청지기직분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이 딤전1:12에서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직분을 맡기실 때에 충성을 보셨습니다. 충성되이 보시고, 또 알아주시고 충성된 사람으로 여기시고 직분을 맡겨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충성해줄 것으로 믿으시면서 직분을 맡겨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주인은 종들을 신뢰하였습니다. 거금을 맡겨놓고 여행을 다녀와도 그들이라면 충분히 잘 해낼 것이라고 신뢰하고 믿어주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직분을 맡기시는 것은 우리를 믿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어주신 것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신하지 않고 믿어주셨습니다. 

고전4:2에서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을 첫째도 충성이요, 마지막도 충성입니다. 오직 충성뿐입니다. 충성되이 보시고 직분을 맡겨주셨고, 맡은 자의 구할 것은 또 충성입니다. 

5달란트와 2달란트를 맡은 종은 즉시 나가서 장사하여 이익을 남겼습니다. 이 두 사람은 주인에게 받은 즉시 바로 가서 장사하여 배를 남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나가서 일하기만 하면 배를 남기고 절대 밑지는 법이 없습니다. 세상의 일은 원금까지 까먹고 밑질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일은 충성하기만 하면 배나 남기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얼마나 남겼느냐 밑졌느냐 하는 것을 보시지 않고 충성하였느냐 불충하였느냐 하는 것만 보십니다. 이익을 남겼느냐 하는 것은 다음 문제이고, 마음을 기울이고 열정적으로 그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느냐 하는 것을 보십니다. 

한 달란트를 남긴 사람은 악하고 게으른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게으름을 악하게 보셨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 악과 게으름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보시고 있습니다. 1달란트 받은 종이 책망을 받게 되었는데, 이 사람의 잘못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 달란트를 떼어먹은 것도 아닙니다. 원금을 다 까먹은 것도 아닙니다. 

이 사람은 맡기신 이의 뜻을 왜곡하고 불신하고 있습니다. 왜 나에게는 한 달란트냐고 언짢게 생각하였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다보니 그런 불편한 마음을 추스르고 달래다보니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주의 일인데 미적거리고 있습니다. 시작할 때에는 우선 앞뒤를 재지 말고 시작해야 하는데, 주인이 한 달란트를 준 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고, 내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하여 마음이 상하여 있다 보니 주인이 인색하고 철저한 면만 보게 되었습니다. 

1달란트라는 돈도 평생에 만져볼 수 없는 거금이요, 충분히 거창한 회사를 차려볼 수 있는 거액인데 능력이 고갈 된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능력을 사장시키고 있습니다. 모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의 일은 나가서 열정적으로 장사하기만 하면 이익을 남긴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다고 주인이 돌아오니 가지고 나왔습니다. 

주인이 오랜 후에 돌아왔다는 말씀을 가지고 우리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지만, 긴박한 재림만 고대하고 무위도식하는 이들에게 경계하려고 이 말씀을 주셨다는 신학적인 견해도 가지게 합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결산하게 되었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다시 다섯 달란트를 남겨 가지고 열 달란트를 주인 앞에 내어놓았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도합 네 달란트를 내어놓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온갖 변명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24-25) 이 사람은 주인을 악평합니다. 자기에게 한 달란트를 맡겨주신 인심 후한 주인을 가리켜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이라”고 평가절하 합니다. 왜 주인을 몰인정한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것입니까? 참으로 한심한 사람입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하드필드(J.A. Hardfield) 박사는 ‘힘의 심리’라는 책에서 “난 할 수 있어! 난 뭐든지 해 낼 거야!”라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은 자기 능력의 500%를 발휘하지만 “난 할 수 없어, 난 별 볼일 없는 불량품이야!”라고 생각하며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자기 능력의 30%도 발휘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500%를 발취하겠느냐, 30%도 발휘하지 못하느냐. 그것은 여러분의 생각과 꿈과 말과 믿음에 따라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적극적인 사람은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무슨 일을 해도 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 하나님 나라의 사업은 손해 보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해도 기대 이상으로 됩니다. 그런데 소극적인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두려워하고 손해 볼 것만 생각하니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땅에 묻어두지 말고 은행이나 취리하는 사람들에게 맡겨놓았다고 하면 이자라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주인을 아주 나쁜 사람으로 악평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주인에게 매 맞을 일을 자청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이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에게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29)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마태복음효과라는 이론을 찾아내었습니다. 

 이 한 달란트를 받은 종,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30)고 하셨습니다. 이를 가는 것은 탄식하는 것이요, 후회하라는 것입니다. 그 때 좀 더 열심을 낼 것인데, 내가 스스로 자승자박하였다, 자업자득하였다고 후회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다 같이 앉아서 예배드리고 기뻐하지만 갈라지는 날이 반드시 다가오고 있습니다. 충성되고 신실한 일꾼들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나 악하고 게으른 종들은 슬피 울어야 하고, 바깥 어두운 데서 이를 갈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과연 잘했다고 하시면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은 사람인가? 아니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실까 하는 것을 진솔하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부지런한 사람이 되셔야 합니다. 잠22:13에 보면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잠26:15에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아이고 어떻게 내가 떠먹어야 하는가? 손을 올리기도 피곤하구나.. 그런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우리의 충성은 한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목사에게 충성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에게 충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충성된 사람들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분명히 하나님의 일을 맡으셨습니다.   이것이 성목사 개인의 일이라고 하면 제가 손을 빌고 다니면서 제발 서 주세요라고 하면서 다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사역이요,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입니다. 그러니 자진하여 들어가서 서야 합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가서 무엇이라고 하실 것입니까? 

우리는 선한 청지기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았습니다. 나의 생명도 잠시 맡은 것뿐입니다. 맡은 자들은 충성해야 합니다. 내가 기분 좋아서만 하나요, 억지지만 하다보면 하나님이 힘도 주시고 보람도 주십니다. 하나님이 감싸주십니다. 충성된 사람에게 더 채워주시고 심지어 빼앗아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사랑하시는 여러분, 착하고 충성된 종, 적은 일에 충성하시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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