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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하며 사십니까? (시 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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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며 사십니까? (시 30:1-12)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전쟁 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이 짧은 시 속에 시인의 살아온 생애가 풍자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골에서 자라 어릴 적에는 감꽃 떨어지는 것을 세다가, 좀 더 나이가 들었을 때에는 전쟁으로 인해서 죽은 병사의 시체를, 현재는 자리를 잡아 번 돈을 세고 있는데 앞으로 자신은 무엇을 세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은 이 한 해를 살아오시면서 무엇을 세셨습니까? 이 질문은 곧 ‘무엇을 하고 살아가십니까’ 라는 의미와 ‘한 해를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라는 의미도 됩니다. 

이제 돌아오는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 주일은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감사하고 사는 사람인가를 한번 점검해 본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뜻이 있는 절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감사지수가 얼마나 높은 사람인가 하는 것을 한번 살펴보는 것입니다. 감사지수는 높을수록 좋습니다. 감사지수가 낮은 사람일수록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고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신앙생활은 배움에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잘하려면 기도를 연습하고 배워야 합니다. 은혜 받았다고 기도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좀더 깊이 알려고 한다면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도 배우고 연습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믿음 좋은 주변 형제들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눈여겨보면서 배우고 연습해 보십시오. 그러면 드디어 나에게도 감사가 체질화되고 생활화되며 나아가 습관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배워서 습득한 사람은 훨씬 더 감사가 풍성하고, 깊이 있는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함께 본 본문은 ‘다윗의 감사 생활’에 대해 잘 증거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윗의 신앙을 가리켜 훌륭하다고 평가하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감사 신앙’입니다. 성경에서 다윗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는 고난이 참 많았던 인물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집안에서 막내였지만 귀염둥이가 아니라 천덕꾸러기로 양떼를 돌보며 고단한 삶을 살았습니다. 사무엘을 통해 기름부음을 받고, 차기 왕에 예비 되었지만 왕이 되는 과정에서 근 20년에 가까운 긴 시간을 핍박과 시련으로 겪어야했습니다. 그리고 왕이 된 이후에도 때때로 어려운 고난을 겪었습니다. 

무엇보다 말년에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모든 것을 잃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도망자의 삶을 사는 가련한 인생의 깊은 터널 속에 빠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떤 감사가 일어 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굳세게 지켰고, 특별히 감사하는 신앙을 잃지 않았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에 신앙이 약화되고 감사치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일생 전체를 두고 볼 때, 그는 분명 감사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고난의 때에나 형통의 때에나 그는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대게는 고난의 때에는 낙심하거나 원망하기 쉽고, 형통의 때에는 교만하거나 방자하기 쉽습니다. 이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다윗도 처음에는 이게 잘 안됐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신앙의 수련을 통해 환경이나 조건을 초월해서 항상 감사하는 신앙을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도 처음부터 늘 감사했던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처음에는 다른 이들처럼 환경 조건에 따라 휘둘리고, 그의 마음이 흐렸다 갰다 했습니다. 고난의 때에는 낙심했습니다. 그리고 형통할 때는 교만했습니다. 그러다가 신앙을 수련하고 연단의 과정을 거치면서 늘 감사하는 신앙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본문은 다윗의 시편인데 그런 과정을 잘 표현해 줍니다. 그는 형통할 때에 자기가 잘 나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좀 교만했죠. 그러다가 고난을 당했고,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다윗은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감사하는 신앙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여기 6절을 보면, 그는 과거 형통할 때에 영원히 그 인생이 요동치 않을 것으로 착각하고 장담했습니다. 6절에 보면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그러나 사실 자신이 그만큼 축복 받고 형통한 삶을 살았던 그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한 동안 잘나가니까, 좀 잘되니까 모든 것이 자기 힘으로 잘되는 줄을 알고 자신만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금세 넘어집니다. 고난을 당하면서 그런 사실을 다윗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여기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웠다”는 것은 약속에 있어서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도우심으로 다윗의 인생이 정상까지 오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순간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셨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다윗은 인생의 최고의 자리에서 인생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을 쳤습니다. 한순간에 지위와 가정을 다 잃고 유랑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심지어 죽음의 자리까지 이르는 절망이 그의 삶을 덮어왔습니다. 
  
어느 평범한 주부의 간증문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평소 단조롭고 분주한 일상으로 마음에 불만 불평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에서 깼는데 허리를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통증이 있고, 화장실도 못 갈 정도가 됐습니다. 결국은 대소변을 받아내는 신세가 되었고, 119를 불러 들 것에 실려 병원으로 갔습니다. 각종 검사를 받으면서 두려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살다 가나?''이러다 그냥 죽는 건 아닌가?' 점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걷게만 해 주세요. 아니, 아이들에게 밥해 줄 수 있게만 해 주세요. 아니, 일상생활만이라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더 바라지 않습니다.'그분의 병명은 '급성요추부염좌'였습니다. 다행히 한 달만에 퇴원합니다. 그 때 그분은 감격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걷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숨 쉴 수 있게 해 주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생각이 문제입니다. 생각이 바뀌니까 그토록 불만스러웠던 일상이 감사 제목이 된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뭐, 우리 역시 크게 이 자매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평안하고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수 있다고 생각할 때는 잘 몰랐지만, 우리가 어려움에 빠진 후에야 비로서 깨닫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그 동안 내가 믿는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랑이요 자기 과시였다는 깨달음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상태에서 죽으면 그 죽음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뭐, 다윗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 역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이제 죽음이 그를 덮어왔지만, 그 속에 잠자고 있던 신앙이 꿈틀거린 것입니다. 
  
8-10절을 보세요.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까지 자신이 누렸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비로서 깨달았는데, 자신은 죽어가고 있어요. 그러니 더 고통스럽지 않습니까? 후회가 엄습해옵니다. 죽음의 그늘이 덮을 때, 인간은 누구나 다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죽으면 하나님께 어떻게 영광을 올려드릴 수가 있겠냐는 것이 아닙니까? 이제 그는 겸손하게 주의 은혜를 붙잡습니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처절한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제부터는 내 힘으로 이 세상을 살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다윗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마침내 ‘감사 신앙’을 배웠습니다. 4절에 보세요.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이제 다윗은 고난의 때에도 형통할 때에도 영원히 감사하리라고 결단합니다. 12절을 보세요.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결국 그의 입술에는 감사가 넘치게 됨을 보여줍니다. 
  
어느 성도의 고백처럼 "나는 장미를 들고는 수백 번 감사를 했지만 가시를 가지고 감사한 일은 한번도 없었습니다."라는 말은 솔직한 고백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감사는 온전한 감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장미를 놓고 감사해야 되지만, 가시를 놓고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가시의 가치를 가르쳐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서 가시를 가지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눈물이 무지개로 바뀌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길 원한다면 장미와 가시를 동시에 놓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평생 장미만 들고 인생을 화려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가시 때문에 찔리고 고통 하는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고난도 약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시119:67, 71절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그는 고난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고, 감사하는 신앙으로 변화되는 ‘신앙의 전환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고난의 과정을 겪으면서 다윗도 그의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는 5-6절에서 말합니다.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우리가 이 구절을 쉽게 변역 한다면 "진노는 잠간이요, 은총은 영원하니, 저녁에는 눈물을 흘려도, 아침이면 기쁨이 오리라." 아-멘.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고통과 슬픔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저녁에 슬픔가운데 눈물을 흘리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총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요즘, 우리 모두가 힘든 기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위기가 우리 사회에 찬바람으로 불어오더니, 이제 곧 유럽에서 시작된 또 하나의 경제태풍이 우리 사회에 몰려올 기세입니다. 우리나라 경제사정은 점점 더 악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과연 이 터널 속에 갇힐 것인가? 아니면 빠져나오긴 하겠지만, 어떤 것들이 우리를 기다릴까하는 두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로 인해 염려가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요즘처럼 불경기에 이력서를 수십 통 써 가지고 다니면서 취직을 해보려고 하지만 회사에서 면접 한번 하지 못하고 연거푸 퇴짜를 맞는 젊은이의 입에서 과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말이 나올까요? 우리 사회의 동력이자 미래인 20·30대가 시름에 빠져 있습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뎌 한창 꿈을 찾아야 할 20대는 취업의 벽 앞에서 번번이 좌절하며 출발부터 버거워합니다. 이제 막 가정을 꾸려 독립된 삶을 시작하려는 30대는 집을 사거나 얻기 위해 잔뜩 빚을 지고, 그 빚의 검은 그림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서울 시장 선거에서 드러난 것처럼 20,30대의 분노에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누가 우리를 굴복시키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주저앉히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약하게 만들겠습니까?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그 하나님은 내 인생 한 가운데 계셔서 나를 붙잡고 모든 것을 넉넉하게 이기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닥쳐오는 불행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만약 우리가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과 그 섭리를 믿을 수가 있다면, 그리고 내 삶의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심을 믿을 수만 있다면,내 삶의 죄악의 상황 속에서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나를 지키신다는 이 믿음, 이 승리의 확신을 가질 수만 있다면 우리 인생 가운데 다가오셔서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아-멘! 
  
여러분, 오프라 윈프리를 아시죠? 그녀는 미국 최고의 토크쇼 진행자입니다. 그녀가 진행하는 오프라 윈프리 쇼는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방영될 정도로 대단한 프로입니다. 그녀는 『타임』지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가운데 뽑혔고, 기부를 많이 하기로 유명합니다. 얼마 전엔 남아공에 무려 4천만 달러를 들여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여자고등학교(오프라 리더십 아카데미)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계속 확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라이프 스토리를 알면 더욱 놀라게 됩니다. 그녀는 사생아입니다. 할머니에게 맡겨져 학대 속에 자랍니다. 아홉 살 때 성폭행을 당했고, 열네 살 때 사생아를 낳습니다. 마약도 했습니다. 그러다 다행히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매일 기도하는 가운데 인생이 변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감사일기 쓰기”입니다. 어려서부터 하루 동안 일어났던 일들 주에 감사한 일 다섯 가지를 찾아서 감사 일기를 꾸준히 써왔습니다. 지금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 감사일기 쓰기라고 합니다. 
  
이분이 쓴 감사일기 가운데 하나가 이런 것입니다. "오늘도 거뜬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유난히 눈부시고 파란 하늘을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점심 때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얄미운 짓을 한 동료에게 화내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써 준 작가에게 감사합니다." 그녀는 감사 일기를 통해서 두 가지를 배웠다고 합니다. “하나는 인생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또 하나는 삶의 초점을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  그렇습니다. 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요? 그리고 지금 내 삶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나온 2011년을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주일입니다. 기쁜 일도 있고,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오늘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영광 돌리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이날엔 감사의 예물을 들고 나오십시오. 헌금 봉투에 5가지의 감사 제목을 꼭 한 주간 기도하면서 쓰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교회는 가장 기쁜 날에 무엇보다 두 분의 장로를 장립하고 7분의 안수 집사, 그리고 10분의 권사를 세우는 투표를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교회에 사람을 세우심을 감사하고 투표에 참석을 해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시기를 바랍니다. 

18세기 영국의 시인 조지 허버트가 이런 아름다운 기도시를 남겼습니다."하나님! 당신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이제 한 가지만 더 주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을!" 이 은혜가 여러분 위에 항상 넘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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