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전도] 강권은혜 (눅 14:23)

첨부 1


강권은혜 (눅 14:23)

군대 형무소에 사형 판결을 받은 죄수가 형집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옥문이 열리고 그는 사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마지막 임종 예식이 진행됩니다. 군목이 예식서를 읽으며 마지막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했습니다. 사형수는 목사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천당과 지옥이 있다고 믿습니까? 나는 믿지 않는다. 내가 만약 천국과 지옥이 있는다고 믿는다면 유리조각으로 덮여진 길이라도 맨발로 뛰고 뛰다가 자빠지면 팔뒤꿈치로 포복을 하면서라도 지옥 갈 사람을 건져  내겠다!”고 했습니다. 말로해서 안 믿으면 강권해서라도 어떠한 댓가를 치러서라도 믿게 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원망이 들어 있습니다. 믿게 하기 위한 강권은 은혜입니다.

  
󰊱 사랑의 강권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은 것이라”(고후5:14)
  
그리스도의 사랑은 말과 혀로만 하는 추상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몸으로 하는 사랑, 실제적인 사랑입니다. 그의 사랑은 죽기까지 하신 사랑입니다. 죄인을 사랑하사 죽으심으로  그의 죽음이 우리를 강권하십니다.  
  
아무리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판단을 강요하거나 양심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획득되는 승리는 실패만도 못합니다. 그 사람의 지성을 존중하고 양심을 존중해야 합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설득하지만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은 상대에게 넘겨야 합니다. 
  
이솝의 우화 중에 신사의 옷을 벗기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태양과 바람이 길을 가는 신사의 옷을 누가 벗기는지 내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바람이 “입김으로 저 남자의 오버를 당장 벗기겠다”며 바람을 세게 불어 오버를 벗기고자 했으나 신사는 벗겨 질까봐 단추를 채우고 몸을 웅크렸습니다. 바람은 옷을 벗기는데 실패했습니다. 
  
태양이 나섰습니다. 태양은 밝게 웃으며 신사를 바라봅니다. 뜨거운 햇빛을 투사하니 신사는 더워서 견딜 수 없어 오버를 벗었습니다. 사랑의 강권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사랑은 강제적인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돌이키게 합니다. 
강권은 강요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을 아랑곳하지 않고 간청하지만 사랑의 강권은 사랑으로 설득하고 사랑으로 감동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녹였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밥 안 먹는 나를 밥 먹이느라 얼마나 애를 쓰는지 모릅니다. “아~” 해보랍니다. “아~” 하면 입에 밥을 퍼 넣었습니다. 나를 데리고 밥 잘 먹는 애들의 집으로 갑니다. “애들아! 우리 아들 밥 먹는 것 좀 봐라!” 그러면 내가 입을 벌립니다. 왜 그렇게 맛이 없었는지 도무지 먹기가 싫어요. 밥이 땅기질 않는 겁니다. 늘 듣던 말이 있습니다. “먹어라! 먹어라! 먹어야 산다. 안 먹으면 죽어!”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의 강권이었습니다.
 
  
󰊲 선물의 강권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창33:11)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은혜를 베푸셨다고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은혜는 받은 사람만이 베풀 수 있습니다.   
  
에서는 내게 있는 것도 족하다면서 거절했습니다. 에서가 하는 말은 “나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야곱은 “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것은 생명이 결여된 물질만 가지고 있습니다. 
  
야곱이 가진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셔서 받은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나만 갖고 살 것이 아니라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의 강권으로 나는 믿게 되었습니다. 신학 공부를 하고 목회자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내가 받은 은혜 예수 믿는 일을 내가 한다. 내가 사람들을 믿게 한다는 뜻을 품고 이 길에 발을 내밀었습니다. 
  
성경은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주는 자가 되려면 받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없는 자는 줄 수 없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에 들어가면서 앉은뱅이가 무엇을 얻을까하여 구걸하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벌떡 얼어나 걸었습니다. 
  
내가 주는 것이 받는 사람에게 생명이 되고 도움이 된다면 이보다 더 큰 보람이 어디 있겠는가? 
  
야곱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만복의 하나님을 모시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 강권하여 주는 예물이 기적의 재료가 되었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서로 끌어안았습니다. 예물을 받고 동생을 용서하는 가슴으로 끌어안았습니다.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 잘못을 용서받고 싶은 동생의 가슴이 형의 가슴과 마주 닿았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강권할 수 있습니다.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강권하매 받으니라” 야곱이 예물을 강권한 것은 싫다는 것을 억지로 밀어 넣은 것입니다. 안 받겠다는 것을 받으라고 강요한 것입니다. 그 강권의 은혜가 원한을 녹여 낼 수 있었습니다.  
  
록펠러는 53세에 1년 후 죽을 것이라는 사망선고를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모으는데 만 힘쓰며 살아온 그였습니다. 1년 후에 죽을 것을 생각하며 쥐고 있는 재물을 교육, 의학, 시민단체에 기부했습니다. 그 후 44년을 더 살았습니다. 주는 자가 된 것입니다. 교회는 주는 공동체가 될 때 살아남습니다.  

 
󰊳 복음의 강권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 내 집을 채우라”(눅14:23)
  
여기서 말하는 강권은 강요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게 하는 것입니다. 강제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초청하시는 것을 보면 세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단순히 “오라” 하십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 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하나님 앞에 가는데 무슨 준비가 필요 없습니다. 그냥 가면 됩니다. 아무 걱정말고 지금 있는 대로 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데리고 오라” 하십니다. 자기 스스로 올 수 없는 사람은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간질병으로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아들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고쳐 달라고 데려갔으나 고치지 못하였다고 하자, 예수님은 아이를 내게로 데려 오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귀신을 꾸짖으셨습니다. 귀신이 떠나고 아이는 나았습니다(마17:17-18). 아버지가 데려온 아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중풍병자를 예수께 데리고 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을 데리고간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막2:5). 
  
세 번째는 강권하여 데려오라는 명령입니다. 강권하는데는 간절한 호소가 들어 있습니다. 간청하는 것입니다. 거부할 수 없게 강요하는 것입니다.  
  
지그 지글러는 “뛴 만큼 버는 세일즈맨”이라는 책에서 “당신이 영업을 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온갖 수모와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가족들마저도 당신을 보고 제 정신이 아니라고 비웃을 것이라” 세일즈맨은 가만히 앉아서 봉급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농땡이를 쳐도 되는 직업이 아닙니다. 발로 뛰고 손으로 뛰고 머리로 뛰어야 살아 남는 세계입니다. 세일즈맨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은 한마디로 낯두껍고 배짱 두둑하고 뻔뻔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어떤 사람이 고객 한 사람을 65회 찾아갔습니다. 65번째 방문했을 때 그 고객이 하는 말이 “당신에게 두 손들었다 이제부터 당신과 거래하겠다.”
이것이 배짱이고, 뻔뻔한 것이고, 이것이 강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권하십니다. 그 사랑의 강권으로 우리는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도 강권에는 약하십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말씀드립니다.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소돔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의인 50명부터 시작했습니다. 50명에서 5명이 부족해도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40명이라도 30명이라도 20명만 있어도 나중에는 10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강권하는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강권은 은혜입니다. 좋은 것입니다. 사랑입니다. 구원입니다. 축복입니다.   

예수님도 부스러기라도 떨어뜨려 달라는 가나안 여인의 간청을 거절하지 못하셨습니다.   물건을 파는데도 강매라는 것이 있습니다. 복음을 강매하는 장사꾼이 되십시다. 권고하고, 권면 하고, 강권하십니다. 교회 가자고 졸라댑시다.  
  
교회 나오라고 초청합시다. 
강권하여 데려 오십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