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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은혜는 감사입니다 (골 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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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는 감사입니다 (골 3:15-17)


오늘은 추수감사절주일이고 '은혜 위에 은혜'라는 대주제를 놓고 생각하는 은혜씨리즈 그 다섯번째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우리 함께 "은혜는 감사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생각하겠습니다.  

아무리 조건이 좋고 형편이 좋아도 감사가 없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보잘 것 없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감사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감사가 없는 사람은 늘 불평과 원망이 있고, 감사가 있는 사람은 감동과 눈물과 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의 있고 없음은 곧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은혜가 없으면 감사는 사라지고 원망과 불평이 차고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원망, 불평, 탄식하면 모든 것이 다 흔들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 될 때 흔들리던 것이 하나하나 굳건하게 자리를 잡게 되고 요동하지 않는게 됩니다.  무엇을 할 때도 나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감사하면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감사는 은혜의 내용이기도 하고 은혜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감사는 은혜의 바로미터입니다. 감사함이 은혜받은 증거이며 감사의 크기는 곧 은혜의 크기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감사의 수준의 곧 은혜의 수준입니다. 좋은 은혜는 좋은 감사를 하게 됩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 많이 감사하는 것이고 크게 은혜를 받은 사람은 크게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감사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바로키터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돌보심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감사를 하게 됩니다. 환경에 지배 당하지 말고 어려울 때 감사 찬송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믿음이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혹시 흔들림이 있을지라도 그 흔들림 때문에 믿음을 잃게 되지는 않습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도 감사는 없고 불평과 불만과 원망과 염려와 걱정에 붙잡혀 있다면 그것은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은혜받았다고 착각할 뿐이지 그것은 진짜 은혜받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은혜 자체가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중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에서 '감사함'이란 말이 헬라어로 "카리스"입니다. 카리스란 말 많이 들었지요? 카리스라는 말의 뜻이 무엇이라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카리스'는 곧 '은혜'라는 말이며 '감사'라는 말입니다. 롬 6:17, 고전 10:30, 15:57, 고후 2:14, 8:16절의 감사란 말이 모두 카리스입니다. 은혜라는 말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본문에 감사라는 말이 두 번 더 나오는데, 15절의 감사는 '유카리스토', 17절에 나오는 감사는 '유카리스토스' 역시 카리스가 핵심 어근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곧 "감사"입니다.

성서적으로, 복음적으로, 영적으로 은혜받았다는 말을 정의하면,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온몸으로 감사의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은혜받은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말은 감사함을 깨달았다는 뜻이며 은혜받은 사람이라는 것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은혜와 감사는 언제나 공생관계에 있지 따로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은혜가 있으면 감사가 있고 감사가 있으면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오스카 햄머스타인의 시 가운데 이런 시가 있습니다. 
종은 누가 그것을 울리기 전에는 종이 아니다.
노래는 누가 부르기 전에는 노래가 아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도 한쪽으로 치워 놓아서는 안 된다.
사랑은 주기 전에는 사랑이 아니니까. 

은혜도 그렇습니다. 감사하기 전에는 은혜가 아닙니다. 받은 것을 감사하면서 은혜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은혜를 은혜 되게 합니다. 감사는 은혜를 더욱 넘치게 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고도 감사하지 않으면 은혜는 곧 바로 소멸되어버립니다. 은혜를 허사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기에 은혜받고도 감사하지 않는 것은 죄악입니다. 이 땅을 황폐하게 만들고 사막이 되게 하는 범죄행위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은혜에 대한 배신행위입니다. 

인생은 은혜를 받고 은혜를 깨닫는 날부터 모든 상황이 바뀌게 됩니다. 은혜받기 전에 장벽이라고 생각되던 것이 오히려 감사의 조건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세번이나 간절히 기도하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전에는 육체의 가시가 늘 문제였습니다. 장애물이었습니다. 옮겨야 할 문제꺼리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로 바뀐 것입니다. 장애물이 아니라 함께 가지고가야 할 선물이 된 것입니다.  
은혜를 받아야 삽니다. 은혜의 사람이 되어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존 밀러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가는 그의 감사에 달려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골로새서 2장 6절로 7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했습니다

모든 상황을 뛰어넘게 하고 모든 상황을 극복하게 하는 힘이 바로 은혜요 감사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성도들이 은혜받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 속에 감사가 솟아오릅니다. 모든 것이 다 은혜니까 감사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와 감사라는 말은 같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감사는 은혜를 더욱 넘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친다고 했습니다(고후 4:15). 그렇습니다. 감사는 은혜를 더욱 넘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일본의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감사는 은혜를 받는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이 감사의 그릇이 클수록 은혜가 크게 임하고 감사하는 그릇이 많을수록 은혜도 많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함은 하나님의 은혜가 담기는 그릇입니다." 
가뭄에 내리는 단비를 아무리 귀히 여겨도 대바구니에는 담을 수 없습니다. 터진 항아리에 물을 담을 수 없습니다. 터진 웅덩이에 물이 고일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감사함이 없는 영혼과 마음에 아무리 많은 것이 부어진데도 은혜인줄 모르고 헛되이 은혜를 받고 헛되이 은혜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꼐서 우리에게 배푸신 은혜입니다. 왜 이런 은혜를 주셨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기록합니다(고후 8:9). 우리들이 주께로부터 받은 은혜에 감사할 때 삶의 풍요로움도 더하게 됩니다. 감사는 성도의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감사를 심을 때 거기에서 풍성함을 거두게 됩니다. 감사는 축복을 낳습니다. 여러분, 무슨 일을 만나도 감사하십시오. 일단 감사해놓고 보십시오.

감사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감사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딤전4:4)했습니다. 감사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은혜받고 감사로 살면 그 인생은 버릴 것이 없습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만듭니다. 
감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인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많은 사람의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고후 4:15). 바울의 생애는 고난과 핍박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감사했습니다. 이러한 감사는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었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8)고 강조합니다. 이처럼 은혜받은 사람은 감사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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