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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의 쉼을 얻으려면 (마 11: 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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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쉼을 얻으려면 (마 11: 28-30)
  
도스토엡스키는 "이제 죄인에게는 산다는 것 자체가 수고로운 짐"이라고 했습니다. 현대인들을 짓누르고 있는 가장 크고 무거운 짐은 무엇일까요?  스트레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쓰는 사람들로 쉽게 지치게 하고 피곤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스트레쓰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소한 일에 짜증스런 반응이 나오도록 만듭니다.  스트레쓰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질병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심장병, 위장병, 불면증, 각종 암을 유발시키는 발병원인이 되는 수가 많습니다.  스트레쓰는 기억력을 둔화시키며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도 하고 우리로 불안하고 두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의 행복을 송두리채 앗아가는 정신적으로 나쁜 바이러스같은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이런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레져활동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문화활동을 통해 스트레쓰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여행이나 인터넷 등으로 스트레쓰를 푸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 것들은 유익함이 많이 있고 스트레쓰 해소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만으로 스트레스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병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의사나 병원이 스트레쓰로부터 온전히 자유하도록 어느 정도나 도울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가지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어 진정한 안식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길은 정말 있는 것일까요? 진정한 행복의 처방은 있습니까? 오늘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있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은 스트레쓰로 인하여 눌리고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확신을 가지고 말슴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참된 안식을 주고 지치고 병든 너희를 온전히 치유하겠다."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무언가에 시달리고 지쳐 있지 않습니까? 무거운 짐에 눌려 신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쉼이 여러분에게도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까?  모든 스트레쓰로부터 해방되고 평안을 누리며 더 건강하게 되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까?  무언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여러분의 어깨를 누르고 있는 그 무엇으로부터 해방되어 행복해지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으로 부터 마음의 쉼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예수께 나아가면 쉼을 얻습니다. (28)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고 약속하셨습니다.  단순히 [오라]고 말슴하십니다.

(사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예수님은 단순히 오라고 말슴하십니다.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시려고 오라고 하십니다.  목마르고 주린 자들의 갈증과 주림을 해소해 주시려고 오라고 부르십니다.  영생을 주시고 사랑해 주시려고 오라고 하십니다.  특히 어둠의 권세에 눌리고 얽매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며 불행한 사람들을 풀어주시고 자유케 해 주시려고 예수님께서는 오라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예수 앞에 나오려고 하지 않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예수 믿는 것이  내 인생에 짐을 하나 더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종교를 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실입니다. 종교가 짐일 수 있습니다.  

오늘 종교를 갖고 사는 사람들중에는 자유를 얻기는 커녕 오히려 더 무거운 짐을 지고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면서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예수님을 체험하지 못하고 신앙 생활하면 ...하지 마라와 ...하라는 명령에 둘러쌓여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교회 생활이  짐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사람,  예수님을 체험한 사람에게 교회 생활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스트레쓰가 아니고 안식이며 동시에 기쁨입니다.  

종교를 짐으로 생각해서  믿고 따르던 신앙을 버리고  떠나갔다가 인생의 긴 방황 끝에 돌아와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깨달은 진리를 가지고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소설을 쓴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입니다.  

톨스토이는 어렸을 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소년 시절에 신앙을 떠나 갔습니다. 그의  나이 55세가 되었을 때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나의 지나간 55년간 살아  오는 동안  내 인생의 최초의  15년간의  소년기를 제외하고는 나는  안식을  경험하지 못했다. 안식을 알지  못하고 살아 왔다. 내가 18세 되던 나이 내 친구는 나에게 찾아와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나는 나를 설득했다. 나는 그 말이 진리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의 종교, 가족의 종교인 기독교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는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 자유를 얻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심지어 종교는 속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나이 55세, 이제 나는 내가 버린 어머니의 품과 같은 신앙의 품으로 돌아온다. 나는  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 왔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나는 다시 참된 안식을  발견했다.'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은 만나셨습니까?  그리고 진정한 안식을 누리고 사십니까?  만일 여러분중에 아직도 방황하는 사람이 있다면 진심으로 권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말씀하시는 그 예수님 앞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2. 예수께 배우면 쉼을 얻습니다. (29)
  
예수님은 당신에게 오라는 말씀과 함께 당신께 배우라고 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29)  
  
어떤 사람들은 배우라는 말만  들어도 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 못한 사람들에게는  배우라는 말은 큰 스트레쓰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성경공부하자고 해도 "아유 그 지겨운 공부를 교회와서 또 하란 말이야?" 하고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듭니다. 
  
배우는 것은 쉼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라고 말슴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예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어떤 마음을 배워야 합니까?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마음을 품고 사셨습니다.  온유가 무엇입니까?  부드러운 성품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입니다. 죄없이 십자가 위에 피 흘려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지만 분을 품거나 화내지 않으시고 욕 한마디 안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함의 모본입니다. 

이사야서에 있는 대로 털 깎는 자 앞의 양과 같으셨습니다.  양 목장을 하는 사람은 양을 길러 털을 깍아 팔아서 먹고 삽니다. 그래서 털 깍기 대회를 합니다. 단 몇 분이면 그 큰 양도 깨끗하게 털을 깍습니다. 털 깍는 것을 보니까  양의 다리를 잡아 뒤집어 눕히고 다리 사이에 끼고는 털을 깍는데 털을 다 깍도록 가만히 있습니다. 큰 양이 안 깍이려고 몸부림치면 어떻게 깎습니까?  

그런데 온전히 목동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고 맘대로 하라고 가만히 있는겁니다.  가위 가지고 깎다 보면  살을 찝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런데 한번도 '왜 그랬냐?'고 달려들지도 않습니다. 다른 짐승 같으면 가만히 있겠어요? 어림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도록 자신을 내어 맡기셨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보면 온유함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힘으로 밀어 붙이는 모습밖에 볼 수 없습니다.  아무나 머리에 붉은 띠 두르고 고함치고 힘을 보여주겠다고 으르렁거립니다. 살벌해졌습니다. 강퍅해졌습니다. 포악해졌습니다. 온유하면 손해본다고 여기고 사납게 발톱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러나 힘을 과시하면 결국 망합니다. 부드러워야 삽니다. 혀는 부드럽습니다.  이빨은 강합니다.  그래서 늘 혀는 이빨에 당합니다. 음식을 씹다가 혀가 깨물리면 얼마나 아픕니까? 상처가 나고 피가 납니다. 그러나 강한 이빨이 다 빠져도 부드러운 혀는 끝까지 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온유함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온유한 성품을 품어야 행복합니다. 참 안식이 찾아 옵니다.  반면에 늘 화를 내고 분노를 품으면 마음에 안식이 사라집니다. 두려워도, 섭섭해도, 손해보는 것 같아도 다 맡기고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주님께 온유한 마음을 배운 슬기로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또한 우리는 겸손함을 배워야 합니다. 겸손이 무엇입니까? 힘이 없어서 가만히 있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힘이 있는데 그 힘을 마구 휘두르지 않는 것입니다.  힘이 있다고 마구 뽐내어서는 안됩니다. 과시하고 자랑해서도 안됩니다. 힘없는 사람을 배려하고 그의 입장을 존중해주는 것이 겸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보좌의 주인이었습니다. 이 세상 뿐 아니라 지하세계와 천상의 천국을 다스리는 막강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낮아지셨습니다. 사람의 형체를 입고 죄인들의 친구가 되고 종의 자리에 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얼마나 답답하셨겠습니까?  힘이 있는데도 휘두르지 않고 참으시며 아는 것이 많은데도 아무것도 모르며 까부는 무리들을 상대하시려니... 겸손하시기 때문에 가능하셨습니다. 
   
힘이 있어도 없는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돈이 많아도 없는 사람을 존중할 줄 알고 지식이 많아도 없는 사람앞에서 우쭐거리지 않는 것이 겸손입니다.  지위가 높아도 낮은 사람과 친구할 수 있고  여기 저기서 오라는데가 많아도 잘난척 하지 않는 것이 겸손입니다. 겸손을 모르면 같지 않은 것들이 몰라준다고 속이 상합니다. 겸손한 마음을 품지 않으니 나를 무시한다고 화가 나고 스트레스가 그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면 마음에 쉼이 찾아옵니다. 
 

3. 예수의 멍에를 메면 쉼을 얻습니다.(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지금 지고 있는 짐이 무거워 쉴려고 하는 데 예수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짐을 더 지기 싫다고 도망가는 분도 있습니다. 교회를 멀리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예수님께서 맡겨 주시는 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예수님의 멍에를 메면 안식을 누릴 수 있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멍에가 쉽다는 말이 멍에가 잘  맞는다는 말입니다.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에도 농사가 있고 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멍에를 만듭니다. 소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일을 할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은  멍에를 얼마나  잘 만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소의 사이즈를 측량합니다. 그 다음에 소의 사이즈에 따라서 멍에를 만들어요.   팔레스타인에서는 두 마리의 소가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하나의 멍에에 구멍을 두 개 뚫어서 한 멍에 안에 두 개의 소를 함께 연결시킵니다.  

소가 두 마리가 함께 일하게 될 때 참 중요한 것은 한 마리의 다른 소가 빨리 리더를 결정한다고 해요.  그리고 한 마리는  따라 갑니다.   두 마리의 소가 일할 때 편안한 멍에를 걸머지고 또한 방향을 정확하게 아는 소를 따라 함께 일하는 모습을 연상해 보십시오.  편안한 멍에를 지고 힘센 소에 이끌려 밭을 갈며 일하는 소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마치  하늘을 나르고 있는 새들이 날개를 부담스러운 짐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에게 딱 맞는 예수님이 주신 멍에를 예수님과 함께 메고 일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힘들고 어려울 것 같아도 마음의 쉼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가만히 있는 것이 큰 스트레쓰입니다. 오히려 여러분의 영혼이 진정한 쉼을 얻는 길은 여러분에게 맞는 일, 예수님이 주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힘들게 일하는 것 같아도 정말 힘들고 어려운 것은 예수님이 다 담당하십니다.  여러분은 주님이 이끄는대로 따라다니기만 하면 영광이 따라옵니다.  칭찬과 상급이 따라옵니다. 은혜와 기븜이 따라옵니다. 주님과 함께 쉽고 가벼운 멍에를 메고 일함으로 참된 마음의 안식을 누기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중에 고통의 짐 진분 계십니까? 슬픔의 짐 진분 계십니까? 실패의 짐 진분 계십니까? 고민의 짐을 지고 계십니까? 고독의  짐을 지고 외로워하시는 분  계십니까? 염려와 근심의 짐 지고 애타하시는 분 계십니까? 질병의 짐을 지신 분 계십니까? 예수님께로 오세요. 지금 곧 나오세요. 그리고 이제부터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여러분을 품에 안으시고 여러분에게 마음의 쉼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다 예수님이 주시는 참된 쉼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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