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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풍랑 속의 성찬식 (행 27:3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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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 속의 성찬식 (행 27:33-37)

청교도들이 처음으로 정착한 곳인 Plymouth 항에는 그들이 타고 왔던 메이플라워호를 본떠서 만든 배가 있어 관광객들의 시선을 끕니다. 그 동네를 갈 때마다 인상적으로 생각되는 것은 청교도들이 처음 살았던 집과 그 언덕 편에 돌로 지어져 아직도 예배를 보고 있는 교회입니다. 자기들은 허름한 움막집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교회는 양지바른 전망 좋은 언덕에 지었습니다. 

1628년에 John Harvard는 자기 재산을 털어 보스턴에 Harvard University를 세워 신학교육의 터전을 마련하였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신앙과 후세에 바른 신앙교육을 위하여 대학을 세우려 했던 청교도들의 모습을 보며 오늘날 미국 땅에서 이민 1세대인 우리들이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며 우리의 후손들에게 무엇을 남겨주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미국 땅의 첫 이민자들은 추위, 배고픔, 죽음의 위협, 질병과 싸우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부지런히 감사의 씨앗을 뿌렸기에 미국은 하나님이 베푸신 복을 많이 받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감사절은 영어로 Thanksgiving day라 하는데 이는 thanks 와 giving을 합친 단어입니다.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주변의 이웃에게 감사를 표시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세속화의 물결에 따라 감사의 의미는 점차로 약해지고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homecoming day나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shopping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 되어가고 있기에 믿는 자들이 먼저 감사의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감사하다'가 히브리말로 Hodah이네 '고백하다, 인정하다, 찬양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인정하고 그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이 히브리 사람들이 생각하는 감사입니다. 설교 후에 성찬식을 거행하는데 성찬식을 Eucharist라고도 부릅니다. 이는 '은혜에 기쁨을 느낀다, 감사한다'는 의미를 가진 eucharisteo라는 헬라어 동사에서 왔습니다. 즉 성찬식도 감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세례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예식이라면,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으심 때문에 구원받은 성도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거룩한 의식입니다. 세례는 믿지 않는 자가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예식이라면 성찬은 성도들의 믿음을 북돋아주며 은혜를 더하게 하는 예식입니다. 성찬에 사용되는 떡과 피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가리킵니다. 성찬은 주의 몸 된 교회의 각 성도들이 함께 떡을 먹고 잔을 나눔으로써 그리스도의 한 몸에 속하였다는 것을 기념합니다. 

고린도 전서 10장과 11장을 보면 성찬과 관련된 세 동사가 나오는데 "기념하라, 선포하라, 참여하라"입니다. 성찬이라는 의식을 통하여 과거를 돌아보며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고, 현재에 자기의 부족한 모습을 살펴보고 회개하며 신앙생활의 바른 자세를 회복하고, 미래에 오실 주님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주님이 원하시는 사명을 감당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성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은 예루살렘에 있던 다락방에서 열렸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니 풍랑 이는 바다 위에 있던 배 위에서 성찬식이 벌어집니다. 그 성찬식 후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어떤 성찬식이었기에 그랬는지 살펴보면서 우리도 의미 있는 성찬식을 갖고자 합니다.
 
벳새다 광야에서 벌어진 오병이어 사건은 사복음서에 다 나오는 유명한 이적입니다. 저녁이 되었을 때 예수님은 굶주린 무리들을 먹이시려고 먼저 잔디 위에 앉히셨습니다. 그리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들을 무리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손에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시며 감사기도를 드리시는 예수님. 이것이 바로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의 출발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신 것과 같이 예수님은 무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보여준 모습은 불평과 원망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불신앙의 표현이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오병이어 이적은 감사함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과 연결이 됩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시기 전 예수님께서 빵을 가져 축사하시고 떼어서 주시는 모습은 최후의 만찬에서도 반복됩니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막 14:22)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둔 자리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자신의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벌어질 종말론적인 잔치를 바라보셨기에 담대하실 수 있었습니다. 또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빵을 '자신의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이적은 그의 몸으로 우리를 살리시는 십자가 사건의 예표가 됩니다.  


풍랑 이는 선상에서 성찬식이 거행됩니다.

지금 풍랑 이는 배위에서 벌어지는 장면도 성찬식을 연상하게 합니다. 사도행전 27장은 일인칭 복수인 “우리”로 시작됩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끌려가는 바울의 마지막 여행에 동행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가 이 여행의 증인이었기에 모든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하였습니다. 호송책임자는 왕실 근위대에 소속된 백부장 Julius입니다. 바울 일행은 가이사랴에서 Adramyttium호를 타고 떠났다가 Myra성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알렉산드리아호로 바꾸어 탔습니다. 그 배는 로마와 알렉산드리아를 오가는 곡물 운반선이었습니다. 그들이 로마로 갈 때는 금식하는 절기인‘욤 키푸르’가 지났을 때였습니다. 

요즈음 달력으로 하면 10월 중순 경에 항해를 시작하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울은 지중해를 겨울에 항해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면서 겨울 동안 미항에 머물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선장과 선주는 미항이 겨울을 지내기에 작고 불편하니까 서쪽에 위치한 크레테 섬의 큰 항구인 피닉스로 가서 겨울을 보내자고 주장합니다.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의견을 따라 미항을 떠나 계속 항해할 것을 결정합니다.

피닉스로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북동풍이라는 뜻을 가진 Euroclydon이라는 광풍을 만납니다. 배가 바람에 휩쓸려 더 나아가지 못하고 표류하기 시작합니다. 배에 탄 사람들이 풍랑에 시달려 먹지 못하고 자지도 못하였습니다. 그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위로하고 소망을 주는 말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지난밤에 주께로부터 들은 말을 전합니다.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3-25). 다시 말하면 우리는 죽지 않는다고 하며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었습니다. 

표류한지 보름이 되는 날 아침 바울은 무리에게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리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탈진한 사람들은 바울을 그저 멀거니 바라볼 뿐입니다. 그러자 바울이 빵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합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듭습니다. 바울이  빵을 떼어 나누어 주니 그제야 받아먹습니다. 물론 배 안에 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성찬을 베풀겠다고 하며 나누어 준 것은 아닙니다. 포도주가 그 식사에 포함되었다는 언급도 없습니다. 

그러나 '축사하고, 떼고, 나누어 주고' 등의 표현은 성찬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바울은 풍랑 속에 표류하던 절망의 한 복판에서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바울과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먹은 것은 단지 굶주린 배를 불리는 빵이 아니라 절망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희망과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였습니다. 같이 음식을 먹은 후에 얼마 안 있어 배가 좌초됩니다. 배 앞부분이 박히니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배의 뒷부분이 큰 물결에 깨어져 갑니다. 호송하던 군인들은 죄수들이 도망칠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죽이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백부장이 막습니다. 죄수들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상륙하도록 합니다. 헤엄을 칠 줄 아는 사람들은 물에 뛰어 들어 헤엄을 치고, 헤엄을 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널빤지나 물에 뜰 수 있는 것들을 붙잡고 물가로 나옵니다. 배와 화물은 잃었지만 배에 탄 사람은 하나님의 계시대로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드린 성찬식은 고난과 절망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 속에서도 바울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감사가 담겨진 성찬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1) 감사는 기적을 낳습니다

심한 풍랑을 만나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무서워 벌벌 떠는데 하나님을 의지하는 바울은 도리어 담대합니다. 그 배에서 실질적으로 항해를 이끄는 사람은 선주나 뱃사람이나 백부장이 아니라 죄수의 몸으로 끌려가는 바울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바울은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줍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풍랑 속에서도 감사하는 바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배는 파선하였으나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배에 탄 모든 사람이 살아난 것을 볼 때 그들 속에 있는 믿는 사람 하나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줍니다. 누가는 그때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276명이었다고 보고합니다. 그들 중에 상당수는 아마 나중에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2) 성도는 감사하는 자입니다. 

바울은 빵을 들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감사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 되셔서 성도의 삶을 다스린다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감사와 기도를 같은 뜻으로 이해한 바울이었기에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감사할 것을 요구합니다.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염려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바울은 '모든 일에' 기도하고 간구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는 길은 모든 일에 기도하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바울은 감사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지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모든 지각에 뛰어나다'는 것은 사람들이 염려를 없애보려고 애쓰고 힘쓰는 노력보다 하나님의 평강이 더 뛰어나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자에게 임할 것입니다. 

3)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야 합니다.

지난 주 예수님께서 베푸신 성찬을 살펴보았습니다. 금주에는 바울이 베푼 성찬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처한 상황, 바울이 처한 상황 다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찬을 통하여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였더니 위기를 극복하였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많은 위기의 순간들을 접합니다. 이런 위기가 닥칠 때 많은 사람들이 절망합니다. 이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려고 무리한 행동이나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누가 이런 상황 가운데서 진정한 지도력을 발휘합니까?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는 도전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배에 탄 사람들을 자기에게 맡기셨다는 믿음 아래 그들을 위한 영적 지도력을 끝까지 수행하였습니다. 힘들다고, 소망이 없다고 그만둘 생각, 떠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이 느껴진다면 주님께서 내게 그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항해 길에서 하나님이 그 주도권을 쥐고 계십니다. 그를 선포하는 것은 믿는 자들이 세상 속에서의 영적 지도력과 책임을 수행하며 살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때 세상 사람들은 믿는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보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부른 이유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수혜자요 하나님의 복의 전달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믿는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베푸시는 복을 받습니다. 다른 형제나 자매를 시기하거나 불평하거나 원망을 늘어놓는 대신에 복을 비는 말, 위로하는 말, 격려하는 말을 하게 되면 우리가 한 말이 씨가 되어 하나님의 복, 위로, 격려가 우리가 받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주게 됩니다. 

배 안에 탄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 감사의 사람 바울 때문에 생명을 건진 것처럼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바울과 같이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 감사의 사람들이 되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위로하고 복을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팔로마한인교회라는 믿음의 공동체에서 선장되시는 주님과 함께 달려보시지 않겠습니까?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8절에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권면이 있습니다.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give thanks 다음에 "for“란 전치사를 붙이면 이유가 됩니다. 무엇 때문에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 하면서 이유를 의미하는 “for”를 사용하지 않고 “in” 이라는 전치사를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I give thanks for bankruptcy. 말이 됩니까? 파산한 것을 인하여 감사할 수는 없습니다. 믿는 자들이 사업을 하다가 파산하는 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라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비록 사업에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금년에 함께 신앙생활 하던 몇 분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분들이 떠난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망 중에 그들을 주 안에서 볼 것을 바라보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교우들 중에 아픈 분들이 있습니다. 병에 걸린 것 때문에 감사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음을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에는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소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자세입니다. 지금 인생의 가장 어려운 고비를 지난다 할지라도 우리의 가족, 교회, 사업 이웃을 둘러보면서 부지런히 감사의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감사하는 마음이 항상 지속되기를 구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for this is God's will for you in Christ Jesus.  감사는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되는 option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것이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기 원하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바른 감사생활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바른 감사 생활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 삶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돌보신다는 신앙의 표현이며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불신앙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탄은 "항상 낙심하라 쉬지 말고 원망하라 범사에 불평하라 이것이 너희를 향한 사탄의 뜻이니라"고 말합니다. 누구의 뜻을 따라 살겠습니까?  

주일마다 예물을 드리는 것은 한 주일 동안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요, 감사절에 특별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은 한 해 동안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불확실하고,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십니다. 사람은 변하고 친구는 혹시 내 곁을 떠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구체적인 이유들을 우리의 삶에서 찾아보고 우리의 입술로 고백하여 봅시다. 그리고 각자의 믿음이 담겨진 아름다운 감사의 예물을 드리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토지소산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듯이 우리도 가지고 누리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 온 것임을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풍성하게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원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들을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의 시간, 재능,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식 속에 하나님의 것을 맡아 관리한다는 청지기 의식이 필요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감사의 씨를 뿌려야 합니다. 주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살아있는 예배, 향기 나는 헌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즐거이 하나님과 이웃에게 감사를 드리는 동안에 더 많은 감사의 열매를 삶 속에서 거두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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