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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미가서 서론 (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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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서 서론 (미 1:1)

1 유다 열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 

미가 선지자가 예언한 시대는 B.C. 8세기입니다. 그 당시에 네 명의 유명한 예언자들이 예언하고 있었는데 북왕국 이스라엘에서는 호세아, 아모스가 활동했고 남왕국 유다에서는 이사야, 미가가 활동했습니다. 

이사야는 이사야 1장을 보면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때에 활동했다고 나와 있고 미가는 웃시야를 뺀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때에 활동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먼저 활동을 시작했고 조금 뒤에 미가가 등장해서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때 함께 활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가는 워낙 대선지자인 이사야에게 가려져서 별로 유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백 년 뒤에 나온 예레미야 선지자가 미가를 칭찬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시온은 밭 같이 경작함을 당하며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며 이 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들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렘 26:18). 

히스기야 왕이 미가의 예언을 듣고도 미가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회개하여 앗수르의 침공으로부터 구원받은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동일한 예언을 하는데 왜 자신을 죽이려 하느냐고 예레미야 26장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미가의 예언을 통해 히스기야 왕이 회개의 기도를 하고 나라가 구원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Ⅰ. 미가는 누구인가? 

미가라는 이름은 구약에서 흔히 나오는 이름입니다. 구약성경에 미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14명 나옵니다. 그렇다면 미가서를 기록한 미가는 어떤 미가인가? 고향이 모레셋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한 미가가 바로 미가서의 저자인 것입니다. B.C. 740년에 활동을 시작해서 B.C. 687년까지 무려 53년에 걸쳐서 활동했습니다. 미가는 미가야라고도 불리는데 “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냐?”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통해 미가의 아버지가 신앙심이 훌륭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가는 자신의 이름을 예언에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미 7:18). 
 
미가 선지자가 예언했던 대상은 주로 유다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가가 예언을 시작한 것은 B.C. 740년으로 아직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가 멸망하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를 향해서도 예언했습니다.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 (미 1:1).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를 대상으로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사람만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닙니다.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땅과 거기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거하시되 곧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미 1:2). 땅 위에 거하는 모든 백성이 들으라는 것입니다. 미가가 예언한 대상은 일차적으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이지만 더 나아가 땅 위에 거하는 모든 시대, 모든 백성을 향해서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바쁜 시간에 미가의 예언을 왜 들어야 되느냐? 그 이유는 미가의 예언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말씀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미가의 고향은 모레셋이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가면 지중해가 나오는데 모레셋은 그 중간 지점에 있습니다. 모레셋은 예루살렘에서 서남쪽으로 40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형적인 농업마을입니다. 그런데 부패하고 타락한 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모레셋으로 와 농부들로부터 땅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도 부당한 방법으로 착취하고 빼앗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부패한 부자들로 인해 피해를 본 모레셋이라는 동네에서 미가 선지자를 부르신 것입니다. 미가가 보호하고자 한 사람들은 농부, 목자, 작은 농토를 소유하고 농사짓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선지자의 예언을 거부하고 우상숭배하는 자들에게 착취를 당했습니다. 미가는 이렇게 가난한 자를 착취하고 학대하는 강포한 자들에 대해서 항변하고 경고했던 것입니다. 


Ⅱ. 미가가 살던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미가가 살던 시대는 두 가지 큰 위기가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첫째, 밖에서 오는 외적인 위기와 둘째, 안에 있는 내적인 위기입니다. 외적인 위기는 북동쪽에 있던 앗수르라는 나라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앗수르의 수도는 니느웨인데 이곳은 미가보다 한 세대 앞선 요나라는 선지자가 가서 예언한 곳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사십일 후에 니느웨성이 망할 것이라고 예언했더니 그 당시 앗수르의 왕부터 시작해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모두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앗수르를 살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앗수르는 잠깐 악에서 돌이켰다가 다시 악하게 변하였습니다. 앗수르는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국가를 유지했는데 앗수르 군대는 상비군과 용병으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상비군은 앗수르 국민들로 이루어진 군대이고 용병은 외국에서 돈을 주고 사서 군대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앗수르의 군대 규모는 매우 컸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비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주변 약소국가들을 침공하여 거기서 조공을 받아 군대를 유지하였습니다. 만약 조공을 거부하는 나라가 있으면 쳐들어가서 무자비하게 응징하고 징벌했습니다. 
 
미가 선지자가 예언을 시작한 B.C. 740년으로부터 19년 뒤인 B.C. 721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에게 망해버립니다. 북왕국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가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다가 애굽과 동맹을 맺고 조공 바치는 것을 거절하자 살만에셀이 군대를 이끌고 삼 년 동안 사마리아를 포위했습니다. 그러자 사마리아 성에 먹을 것이 바닥나서 결국 3년 만에 멸망당한 것입니다. 

이런 내용들이 열왕기하 17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앗수르는 북왕국 사마리아를 멸망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남왕국 유다까지 침공했습니다. 그 당시 유다의 왕은 히스기야였습니다. 1차 침공 때, 유다의 은금을 다 거두어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바치자 그것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2차 침공 때는 군대장관 랍사게가 와서 히스기야를 조롱하고 하나님을 모독하였습니다. 그리고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편지까지 써서 조롱하자 히스기야 왕이 그 편지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도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천사 하나를 보내주셔서 앗수르 군대 십팔만 오천을 하룻밤에 모두 죽인 것입니다. 이처럼 천사와 인간은 싸움이 안 됩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과 싸우는 자는 얼마나 어리석은 자입니까? 
 
앗수르는 북왕국이나 남왕국 모두에게 굉장히 위협적인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외적인 위기보다 더 큰 위기는 내적으로 부패했던 것입니다. 도덕적・신앙적으로 부패하였고 영적으로 타락하였습니다. 가정이 망하고 나라가 망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부패해져서 그렇습니다. 국민들의 도덕적인 수준이 떨어지면 나라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이 경제 10대국에 든다고 해도 도덕수준이 형편없고 가정이 파괴되고 국민들 사이에 신뢰가 깨지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미가가 살던 시대는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결과로 사회적인 악과 부패가 만연했습니다. 미가는 이런 사회적인 악에 대항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변호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실 미가의 관심은 하류층이 아니라 중산층에 있었습니다. 중산층이 자꾸 집과 땅을 빼앗기고 하류층으로 전락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정치에 대해서 제가 잘 모르지만 나라가 잘되려면 대기업도 중요하고 가난한 사람들도 중요한데 무엇보다 중산층을 보호하는 정책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미가 시대에 부자들의 탐심으로 중산층들이 집과 땅을 빼앗긴 것입니다.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취하니 그들이 사람과 그 집 사람과 그 산업을 학대하도다” (미 2:2). 
 
미가가 살던 시대에는 사람들끼리 상호불신하고 대적함으로 인해서 사회가 파괴되고 가정이 파괴되었습니다. “악인의 집에 오히려 불의한 재물이 있느냐 축소시킨 가증한 에바가 있느냐 내가 만일 부정한 저울을 썼거나 주머니에 거짓 저울추를 두었으면 깨끗하겠느냐” (미 6:10-11). 

미가서 7장 5-6절은 실로 비극적인 현상입니다.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미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로다” (미 7:5-6). 품에 누운 여인이 누구입니까? 아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내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고 딸이 어미를 대적하고 며느리가 시어미를 대적합니다. 집안 식구가 다 원수인 것입니다. 
 
사회 지도층도 부패하였습니다.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두령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들아 청컨대 들으라 공의는 너희의 알 것이 아니냐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미 3:1-2). 이렇게 사회 지도층들이 백성을 착취하는 것입니다. 또 사회 여론을 이끌고 가는 지도자들이 자기의 입에 무엇인가를 주면 가만있고 주지 않으면 공격해서 뜯어내는 짓을 하는 것입니다.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이런 선지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미 3:5). 
 
또한 예루살렘 사회에서 가장 착한 사람들까지도 가시가 돋쳐서 자기를 건드리기만 해봐라 찔러버리겠다고 합니다.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의 파수꾼들의 날 곧 그들의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 (미 7:4).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도 미가가 예언하던 시대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외적인 위협이 얼마나 큽니까? 북한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계속해서 핵으로 위협합니다. 또 삼성과 같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로 나아가서 휴대전화를 팔려고 그러면 이런 저런 이유로 팔지 못하게 합니다. 또 내적인 위기도 있습니다. 사회 지도층이 점점 좌경화되고, 청년들이 대학원을 졸업해도 취직 못 하고 백수로 살아갑니다. 또한 영적인 지도자들이 도덕적으로 부패하는 내적인 위기가 우리에게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가 선지자가 증거하고 있는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도 들어야 할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Ⅲ. 미가가 체험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미가는 세 가지로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첫째, 능동적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 (미 1:1). 

이 말씀이 우리말 성경에서는 하반절에 있지만 히브리어 성경을 보면 전반절에 있습니다. 미가가 증거하는 말씀은 신적인 기원이 있는 말씀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미가가 연구하거나 공부한 것도 아니고, 묵상하거나 생각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동적으로 이 말씀을 미가에게 계시하셨고 미가는 수동적인 위치에서 말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묵시라는 것은 청각적인 요소보다 시각적인 요소가 이 계시에 더 많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미가가 눈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미가가 증거하는 메시지가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계시라고 하는 전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직접 주셨다면 오류가 없고 권위가 있으며 인간이 듣고 순종해야 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의 계시를 귀로 듣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눈으로 본 것보다 더 확실한 기록된 문서를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성경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원하십니까? 성경을 읽으십시오. 어떤 분은 성경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귀신이 장난치는 것입니다. 엉뚱한 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믿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기록된 문서계시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줄로 믿으시고 말씀을 읽고 듣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경고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죄악에 대해서 심판과 멸망이 온다는 것을 경고하십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사마리아가 수도이고 열두지파 중 열지파가 속해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상 숭배의 역사이고 배교의 역사이며 악의 박람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미가가 보더니 망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사마리아로 들의 무더기 같게 하고 포도 심을 동산 같게 하며 또 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 내리고 그 지대를 드러내며” (미 1:6). 

무더기란 말은 폐허 더미라는 말입니다. 사마리아가 폐허 더미가 될 것이라는 미가의 경고는 예언한지 19년 만에 이루어졌습니다. B.C. 721년에 사마리아는 완전히 폐허 더미로 변해버렸습니다. 미가는 사마리아의 멸망을 거울로 삼아 남왕국 유다를 향해서도 엄중한 경고를 하였습니다. “이는 다 야곱의 허물을 인함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죄를 인함이라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뇨 사마리아가 아니뇨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뇨 예루살렘이 아니뇨” (미 1:5). 

사마리아를 멸망시킨 것처럼 그 죄악이 너희도 멸망시킬 것이므로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불로 온 세상을 망하게 하시겠다고 경고하십니다. 옛날 노아시대에 물로 세상을 망하게 하겠다고 경고했는데도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노아와 그 가족들만 그 경고를 듣고 배를 만들어 배 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불로 세상이 망할 것이라는 경고를 우리가 듣고 있는 것입니다. 불로 망할 때는 배나 집으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만이 불심판에서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는 길입니다. 
 
셋째, 구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미가서가 작은 책 같아도 유명한 구절이 세 개나 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8).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의롭게 살아라. 둘째,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라. 셋째, 겸손히 네 하나님과 동행해라. 

그런데 우리는 의롭지 못하고 불의하며,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합니다. 허물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미 7:18). 하나님은 죄악을 용서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죄악을 용서하시느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미 5:2). 미가서가 B.C. 740년에 기록되었는데 그로부터 정확히 740년 뒤에 베들레헴에서 우리 구주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에서 탄생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가가 증거한 복음입니다. 말씀하시고 경고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한 복음인 것입니다. 안팎으로 위기가 있을지라도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기에서 건져주시는 구세주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 

죄에서 건져주시고 지옥에서 건져주시고 멸망에서 건져주시는 구원자는 예수님입니다. 대한민국을 불바다에서 건져주실 구원자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막아주시고 건져주십니다. 미가는 이 복음을 애통한 마음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 같이 애곡하고 타조 같이 애통하리니” (미 1:8). 미가가 벌거벗은 몸으로 들개 같이 애곡하고 타조 같이 애통한다고 합니다. 들개 같이 애곡하고 타조 같이 애통한다는 것이 어떤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가는 울면서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구세군이란 교파를 창시한 사람은 윌리엄 부스라는 목사입니다. 사람들이 윌리엄 부스에게 어떻게 그런 훌륭한 일을 생각하고 이룰 수 있었느냐고 물어보자 윌리엄 부스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 마음에 있는 두 단어 때문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두 단어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윌리엄 부스는 하나는 울음이고 하나는 눈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울음과 눈물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위기를 만나 사업도 망하고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그런 상황이 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럴 때는 울어보십시오. 죽을병에 걸렸더라도 울어보십시오. 

 저는 유행가를 잘 알지 못하고 오다가다 듣는 수준인데, 1980년대 중반에 대한민국에 천재적인 가수가 한 명 있었습니다. 이름이 장덕인데 이 가수가 '님 떠난 후'라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가사가 이렇습니다. “나 혼자면 어때요 난 아직 어린 걸 슬퍼지면 어때요 울어버리면 되지” 님이 떠나서 슬픈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 울어버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오늘부터 시작한 말씀이 무엇이냐? 미가서. 다른 것 다 잊어버려도 내가 어려울 때는 어떻게 하면 되느냐? 하나님 앞에서 울어보아라. 이 말씀 기억하시고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 아버지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도와달라고 기도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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