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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개하지 아니하는 도시 (마 1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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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지 아니하는 도시 (마 11:20-24)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잘못을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격려해주고 칭찬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잘못에 대하여 책망하시면서 회개를 촉구하셨고 회개하지 않는 개인이나, 국가에 대해서는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주님의 책망과 회개의 경고는 감사한일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 이유는 회개함으로 심판을 면하게 되고 구원과 축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죄악이 관영한 도시는 역사상에서 없어져 버린 것도 있고 존재하는 곳도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세 도시는 역사상에서 없어져버린 도시인데 이 3도시는 왜 이 땅에서 사라졌는가 하는 이유를 살펴봄으로 현대 도시의 종말과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며, 경성하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 이 세 도시가 왜 불쌍한 도시가 되었는가? 

1. 불신앙을 회개치 않은 도시였습니다.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때에 책망하시되 

여기 도시들은 예수님을 불신앙한 도시들이니 회개치 않는 것은 불신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회개하게 되고 회개하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회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회개가 없으면 사죄 받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좋은 것들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 도시들은 메시야의 직접 전도를 받고도 회개치 않았으니 더욱 불쌍한 도시였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구약성경에서도 우상숭배의 대표적인 도시로서 늘 책망을 받았습니다. (에스겔 26장에서 28장, 이사야 23장) 이 도시들도 재림의 날에 최후 심판을 면하지 못하는데 본문에 나오는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은 받을 심판이 더욱 엄하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말씀을 잘 알고 설교를 늘 듣고 은혜를 받은 사람일수록 더욱 바로 살고 주님 제일주의로 살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잘못했으면 즉시 회개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서야 합니다. 

회개는 구원의 과정이고 구원의 완성이 되는 것인데 그 회개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1) 회개는 죄를 자각하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깨닫고 슬퍼할 줄 알아야 합니다. 회개하다는 '나함'이라고 하는데 슬퍼하다, 애통하다라는 뜻입니다. 

욥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2) 죄를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과 가지고 있는 죄를 시인해야 합니다. 변명하거나 핑계를 대는 것은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3)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자기 죄를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마치 범인이 자술서를 쓰는 것처럼 숨김없이 고백해야 합니다. 

4)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고백만으로 끝나 버리면 안됩니다.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 아버지시여 내가 고백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5) 사죄를 믿어야 합니다. 

내가 죄를 고백하면 그리고 용서를 구하면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도처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6) 용서받은 죄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참 회개는 거기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회개하다 - '메타노에오'는 마음을 바꾸다. 마음의 변화를 말합니다.
회개하다 - '슈브'는 자신을 돌이키다는 뜻입니다.

탕자처럼 죄짓는 그 현장에서 떠나야하며, 죄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하며, 그 죄에서 완전히 발을 빼고, 손을 씻고 실제로 새로운 삶을 실행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7)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방향을 돌이켰으면 즉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주님께로 돌아온 사람은 주님을 영접하므로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안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주님이 내 안에 살아계시게 하는 것이고 나는 주님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은 그 안에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천국은 나는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은 내 안에 계시는 것이니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요 주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8) 회개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행2:38-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간은 귀소본능, 즉 되돌아가는 근성이 있습니다. 회개했노라고 하면서도 옛날 범죄하던 그 자리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많은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내가 성령을 충만히 받고 성령의 지시와 인도하심을 받으면 죄의 길로 되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내가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히면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 살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본문의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 도시의 사람들은 주님이 직접 전하시는 복음을 듣고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목격하면서도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들은 어떠하며 그 안에 몸담고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공주시 안에 교회를 모르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나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으며 또 복음을 듣고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회개를 모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가 없으면 그 다음은 멸망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믿지 않는 가족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2. 교만한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여기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다던 가버나움 도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말씀은 가버나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개인이나, 도시나, 국가도 교만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교만은 '가온'이라는 말인데 그 뚯은 "부풀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실체나 가진 것은 손톱만한 것인데 그것을 부풀려서 마치 세상 것을 다 가진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우쭐대다, 거만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리고 '투포'(TUPHO)라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은 천천히 타버리다, 꺼져가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일어서게 하십니다. 

잠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의 생명이니라" 

하나님 앞에 겸손하면 반드시 은총을 받지만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면 반드시 물리치시며 교만한 사람은 천천히 촛불이 꺼져가는 것 같이 천천히 타버리고 맙니다.

약4:6-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우리가 잘 알거니와 소돔과 고모라도 역시 교만과 음란과 부도덕과 가난한 자를 돕지 않는 거만한 도시들이었습니다. 이 불신의 도시는 유황불에 녹아 없어져 버렸습니다. 개인이나. 도시나, 나라도 교만하면 멸망을 받습니다. 특히 신앙생활에서는 교만이 더욱 금물입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왕은 교만하다가 쫒겨나서 7년간이나 짐승처럼 짐승과 함께 거하는 신세가 되었으며, 이스라엘의 사울왕도 교만하다가 왕위에서 쫓겨났습니다. 페르시야의 하만도 교만 때문에 자기가 만든 장대에 달려 죽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예) 영국의 신학자인 테일러는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태어나기 전에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해 보라. 그것은 무(無)였다. 그 후 여러 해 동안 당신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해 보라. 그것은 연약함이었다. 그 다음 당신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라. 그것은 큰 죄인이었다. 그리고 당신은 이웃과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가? 그것은 하나님과 부모와 이웃에게 빚진 자이다. 이러한 것들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한 분이시지만 교만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3. 하나님의 무서운 화를 받았기 때문에 불쌍한 도시였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으니 불쌍하지 않은가?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 도시들이 왜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졌는가? 

20하... 그때에 책망하시되(책망을 받았으며) 
21... 화가 있을진저, 화가 있을진저, (저주를 받았습니다) 
23...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고 하셨는데 이는 지옥에 간다는 아주 무서운 저주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교훈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땅도, 사람도, 도시도, 나라도, 하나님의 화를 받으면 설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하나님이 땅을 저주하시어 가시와 엉겅퀴가 나왔습니다. 창세기 9장에는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이 저주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9: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함)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바로 그 함의 자손들이 훗날 시돈, 그랄, 소돔, 고모라에 흩어져 살았고 흑인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저주의 반대는 축복입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은 저주는 필요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와 내 가족과 내 친척과 내 이웃과 이 도시와 우리나라가 축복을 받아야 하는데 그 축복도 여러 가지입니다. 

건강의 복, 재물의 복, 자녀의 복, 부부의 복, 명예의 복 등 가지가지 복이 있습니다. 그 모든 복을 받거나 소유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복을 꼭 받아야 되고 반드시 선택해야 되는데 그 복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믿음을 갖기 위하여는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믿음은 모든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복을 믿음을 통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믿음을 영원히 가지고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롬14: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하나님의 은혜가 어찌 크신지 말할 수 없습니다. 

불신은 저주의 원인이 됩니다. 불신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교만은 저주와 패망의 원인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주받아 죽어가는 내 가족, 내 친척, 내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해내는 삶을 살도록 하심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할 줄 모르고 불신으로 교만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내가 믿는 예수, 내가 만난 예수, 내가 사랑하는 예수를 증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언제 화를 받을지 모르는 가운데 살아가는 저들을 방치해두지 말고 건져내야 합니다. 때가 임박한 것을 알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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