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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나게 신나게 (신 16: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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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신나게 (신 16:13-17)


먼저 “고질병과 고칠병”이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가끔씩 웃음 & 유머치료 교실에 오시는 80대 할머니가 계시는데 언제나 환한 얼굴로 싱글벙글이다. 부럽기도 하고 또 그 비결이 궁금해서 말을 붙였다. 
“할머니 요즘 건강하시죠?” 
그러자 할머니 씩씩하게 대답하신다. 
“응. 아주 아주 건강해……. 말기위암 빼고는 다 좋아.” 
그 대답에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백만 볼트 전기로 감전되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할머니는 너무 너무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아무것도 없이 태어나서 집도 있고, 남편도 있고 자식들도 5명이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암이 몸에 들어와서 예정된 시간에 태어난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니 얼마나 즐겁고 행복 하느냐는 것이다. 언제 이 세상을 떠나게 될지 알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 할머니를 만나면서 삶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마음의 평안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행복은 끝없이 몰아치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에 달려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암에 걸렸을지라도 고질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암치유율은 38%에 그치지만, 점하나 붙여서 고칠병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암의 치유율은 70%까지 올라간다는 통계가 있다. 
똑같은 암이지만 죽을병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암을 통해서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는 분들도 많다 

암을 죽음으로 연결하느냐, 암을 삶으로 해석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의 긍정적인 태도에 달려 있다.
미국의 17대 대통령인 앤드류 존슨은 이러한 긍정의 힘을 발휘했던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세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몹시 가난하여 학교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열 살에 양복점을 들어가 성실하게 일했고 돈을 벌고 결혼한 후에야 
읽고 쓰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후에 존슨은 정치에 뛰어들어 주지사, 상원의원이 된 후에 16대 미 대통령인 링컨을 보좌하는 부통령이 된다.   

그리고 링컨 대통령이 암살된 후 미국 17대 대통령 후보에 출마하지만 상대편으로 부터 맹렬한 비판을 당한다.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이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하다니 말이 됩니까?”
그러자 존슨은 언제나 침착하게 대답한다. 그리고 이 한마디에 상황을 역전시켜버린다.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초등학교를 다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행복은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틀이다. 긍정적인 생각 없이 우리는 어느 한순간도 행복해질 수 없다. 사람들은 언제나 행복을 원한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서는, 밝음을 선택하지 않고서는 결코 행복해지거나 웃을 수 없다는 것이다. 
“힘들다”라는 말이 있다. “힘이 들어 죽겠다”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힘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힘이 몸 안에 들어오니 당연히 몸이 잠시 피곤하고 무거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짜증난다”라는 말도 “짜증이 나간다”라고 해석하면 행복프로가 된다.
“세상 어디에도 행복은 없지만, 누구의 가슴에도 행복은 있다”라는 말이 있다.
결국 마음의 행복을 끄집어내는 데는 긍정적인 해석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좋게 생각하자. 
그것이 사실은 자신을 즐겁게 바라보며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는 유머의 힘이다. 
그리고 웃자. 하하하…….

먼저 생각할 것은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벗어나와 광야 길을 가는 동안 그들은 날마다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주시는 만나를 먹으며 살았습니다. 그 동안 그들의 머무는 곳은 초막 또는 장막이라고 불리는 이동식 천막이었습니다. 드디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뒤 그들은 나무나 돌 또는 흙벽돌로 지은 집에서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나는 소산물을 먹게 되는데 그것은 가을에 시작되는 우기에 맞추어 파종해서 봄에 거두는 밀과 보리가 대표적인 곡식이 되겠고 여름부터 가을까지 열매 맺는 과일들로서 포도, 무화과, 살구, 올리브, 대추야자 등이 있습니다. 한 해의 모든 농사를 마치고 모든 열매를 다 창고에 들이고 난 다음 지키게 되는 절기가 바로 초막절입니다. 그들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 늘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동일한 은혜로 한 해 동안 지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들은 지붕 위에나 마당에 초막을 지어놓고 한 주간 그 초막에서 생활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추수감사절을 초막절 또는 장막절이라고도 하고 모든 열매를 다 거두어들인 후에 지키는 절기라 해서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비단 많이 거두어들여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둘 것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기 전에 지금까지 함께 하신 그 은혜만으로도 감사한 것입니다. 물론 밭을 가꾸고 준비하며 씨를 뿌리고 잘 자라도록 퇴비도 해주고 물이 부족하다 싶으면 물을 대주고 물이 많다 싶으면 빼주기도 하며 병충해 예방을 위해서 지력도 돋우어주고 오리를 키우기도 합니다. 잡초 제거는 당연한 것이고 봄부터 가을까지 흘리는 그 땀방울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수고하여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수고가 다 헛될 뿐입니다. 봄에 이상 기온으로 제대로 꽃이 피지 않아도 문제고 꽃 매미와 같은 해충이 싹이고 꽃을 다 먹어치워도 결국 열매를 얻을 수 없게 되고 맙니다. 한참 거둘 때 비가 주룩주룩 내리면 당도가 하나도 없어 상품 가치가 떨어져 버립니다. 그나마 태풍이나 돌풍이라도 불게 되면 그나마 열매들이 우수수 가을 낙엽 떨어지듯 다 떨어져버리고 맙니다. 한참 열매 익을 때 구름이나 늘 끼게 되면 햇살을 받지 못해 열매가 제대로 익지를 못하죠.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물론 우리들이 모든 수고도 중요합니다. 반드시 땀을 흘리는 수고가 필요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건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이 하루하루가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도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날마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듭니다. 하루라도 차가 없이 살 수 없는 우리들입니다. 주위에 흔한 것이 차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차라고 하는 것이 차도로만 다녀야 되는데 어떤 때는 인도로도 뛰어들고 가게나 집으로 뛰어들지를 않나 다리 위에서 다이빙을 하지 않나 박치기를 하지 않나 하여튼 요지경 속입니다. 

그뿐입니까? 지난 여름에는 쏟아지는 폭우 속에 난데없이 산이 무너져 내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흔히 쓰는 전기나 가스는 쉽게 이야기하면 시한폭탄과도 같습니다. 언제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또 어떻습니까? 그저 몸에 좋다고 하니까 먹기도 하고 그냥 습관을 따라 먹지만 우리가 그거 진짜인지 가까인지 구별하기도 쉽지 않고 그것이 내 몸에 좋은지 나쁜지 조차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뭐 중국산이 어쩌고저쩌고 하지만 그럼 국내산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나요? 그래 결국 무슨 독을 마실 지라도 해를 당하지 아니하며 라고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나를 날마다 지켜주시지 않고서는 온전히 살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감사하며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며 즐거워하되 너 혼자서가 아니라 함께 즐거워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고 하십니다.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라”
여기 내가 함께 즐거워해야 될 대상을 말씀하는데 그 대상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같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어찌 보면 즐거워할 일을 찾아보기 힘든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자녀들은 철저히 부모의 돌봄이 필요합니다. 노비는 주인의 배려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은 생업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그 생업이 되십니다. 

그래서 돌아가면서 성전의 맡겨진 일을 감당합니다. 그렇기에 성중의 백성들이 레위인들의 삶을 책임지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우상에 빠진 사람들은 레위인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힘든 자리입니다. 나그네는 언제나 외롭습니다. 고아 당연히 돌봄이 필요하고 과부 역시 주위에 도움의 손길이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입니다. 하나같이 아픔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문제투성이입니다. 부족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당연히 고통과 괴로움만으로 가득하니 무슨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겠습니까? 한 때 잘 나갔다고 해서 항상 잘 나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믿음을 지켜보려고 몸부림을 쳐도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하던 욥이 나중에는 뭐라고 합니까?
“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어다오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바라노라 나를 고발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고소장을 쓰게 하라”

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어달라고 합니다. 비난만 하지 말고 내 사정도 좀 들어봐 주라는 것입니다. 너 그거 틀렸다고만 하지 말고 그 하소연에도 귀 좀 기울여주고 좀 위로도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 나쁜 놈이라고 네가 죽일 놈이라고만 하고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냐고 하니 정말 죽도록 힘들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네 모습이 그렇지 않습니까?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를 않습니다. 아니 내 스스로가 자꾸 위축이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왜 내가만 하면 이상해집니까? 아니 꼭 뭐가 망가지는 것도 어떻게 내가 만질 때만 그러냔 말입니다. 유독 그런 사람들이 있지를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바로 나란 말입니다. 차를 타고 가도 왜 내가 가는 길만 그렇게 막힙니까? 그래서 머피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징크스입니다. 그런데 그게 왜 그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거기 대고 뭐라고 하면 저도 그런 실수를 잘 합니다만 듣는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다 필요를 따라 지으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니까 쓸 데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건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 앞에 존귀한 존재입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어주실 정도로 귀한 존재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그 자긍심을 꺾지 말고 세워줌으로 함께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일을 해도 서로 잘 하려다 보니까 그것이 오히려 부딪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속상해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만큼 열심히 수고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부도 늘 싸운다고요? 싸운다는 것은 그만큼 정이 깊다는 뜻도 됩니다. 안 맞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 서로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나 죽겠다는 것을 나 힘들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요 그렇게 푸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즐기십시오. 싸우더라도 상처 주지 말고 싸우십시오. 그리고 상처가 되겠다 싶으면 슬그머니 피하십시오. 그리고 한쪽이 슬그머니 피하거들랑 거기서 멈추십시오. 그리고 피식 웃어버리면 됩니다.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하십시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을 만들어 놓은 것도 다 그런 이유입니다. 이 날만이라도 다 내려놓고 마음껏 함께 웃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추수감사 때만이라도 함께 즐거워하라고 하는 것은 일부러라도 감사거리를 만들고 함께 즐길 일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함께 즐기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편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결코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즐기기만 하라는 것도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물질로는 못 돕는다 해도 함께 수고할 수 있으면 함께 수고하도록 만들어줄 필요도 있습니다. 그래 봤자 말썽만 된다고 하지 마시고 작은 것 하나라도 함께 협력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하다못해 박수라도 치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무언가 긍지를 가지도록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또 하나 함께 즐거워한다는 것은 그들의 부족한 부분을 내가 채워준다는 뜻도 됩니다. 그들에게 물론 생활에 필요한 것들도 있겠지만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 하나하나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알게 만들어주어야 하고 나부터 상대방을 그런 귀한 존재로 대우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대접받아야 할 대상 가운데는 당연히 나도 포함이 됩니다. 나는 안 된다고만 하지 마시고 그런 나를 위해 주님이 죽으실 정도로 내가 귀한 존재이고 너도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항상 되새기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함께 먹고 마시고 즐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온전히 즐거워해야 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라고 하십니다. 그것도 너와 네 자녀와 함께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명절 때 가족들이 함께 모입니다. 고향으로 모이고 아니면 그게 힘이 드니까 자식 있는 곳으로 모이고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들이 온 가족이 함께 모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절기입니다. 

서양에서는 이 날 가족들이 다 함께 모입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전통을 따라 음식을 준비하여 함께 먹으며 즐깁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 함께 감사절 예배를 드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심지어는 교회에 나가지 않던 자녀라 해도 이 날만은 온 가족 다 함께 기쁨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성경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로 가득한 욥기를 보면 온통 서로에 대한 축복과 배려로 가득합니다. 엘리멜렉이 흉년이 들어 살기가 힘들어져 모압 지방으로 이민을 갑니다. 그곳에서 잘 사나 싶었는데 그만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하나씩 하나씩 세상을 떠납니다. 결국 시어머니 나오미와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만이 남게 됩니다. 나오미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타국에서 살기보다는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합니다. 

그때 나오미는 이방 여인들인 며느리들을 배려해서 고향 땅에 남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룻은 그런 어머니를 배려해서 끝까지 어머니를 따르며 어머니의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겠다고 합니다. 그래 돌아온 베들레헴에서 만나게 된 보아스는 또 어떠합니까? 추수 마당에서 수고하는 일꾼들을 보아스가 축복하고 일꾼들은 또 보아스를 축복합니다. 거기서 만나게 된 룻을 보고 보아스가 먹을 것과 거둘 것을 넉넉하게 주도록 배려하며 축복합니다. 거기에 대해 룻은 또 감사하며 축복합니다. 그 모든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오미가 또 보아스를 축복합니다. 결국 이런 축복과 배려 속에 보아스와 룻이 새 가정을 꾸리게 되고 그들이 다윗 왕의 조상이 되고 메시야의 족보상 조상이 되지를 않습니까? 그래서 축복하고 배려하라는 것이요 함께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이유가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소출과 우리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해도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이 바로 함께 즐거워하고 온전히 즐거워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심은 그대로 거두리라” 
봄에 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이 바로 이런 마음입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풍성한 추수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여기서도 동일한 말씀을 주시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닌 것 같아도 믿음의 눈으로 미래에 이루어질 것을 지금 현실로 끌어다 놓으라는 것입니다. 일종의 약속어음이요 보증 수표입니다. 세상에서는 부도가 나기도 하지만 하나님 앞에는 부도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두말할 것도 없는 보증수표가 됩니다. 

하나님은 한번도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온전히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이미 받은 것으로 여기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예물을 가지고 나올 때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리라고 합니다. 힘대로 드리라는 것은 자원해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분량껏 네 스스로 자원하여 드리라고 하십니다. 억지로 하거나 헤아리지 말고 드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따라 자원해서 드리라는 것은 이미 내게 있는 것을 가지고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자원하는 것이라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감사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억지로 한다는 것은 불만이라는 뜻이요 불만은 감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어리석게 불평하며 헤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풍성한 하나님이신데 하나님 앞에 쩨쩨하게 굴면 하나님의 복도 쩨쩨하게 임하고 말 것입니다. 그런다고 해서 하나님이 손해보시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원래는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나에게 맡겨주셨을 뿐이요 그것이 내게 있던 하나님께 드리던 그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한다면 그 헤아리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며 쩨쩨하게 구는 것이 또한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안타깝겠습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그러니까 먹고 사는 문제 돈 그까짓 것은 적은 일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에 충성할 때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맡기심으로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기쁨으로 내게 물질도 맡겨주시도록 그렇게 먼저 하나님 앞에 자원하는 예물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사용하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데 그 첫째가 하나님 앞에 자원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드림 자체가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도 온전한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부담스럽지는 않습니까? 왜 부담스럽습니까?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시금 기억할 것은 내게 있는 그 어떤 것도 내 것은 없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네게 있는 재능도 물질도 시간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사용해야 할 것이요 거기에 온 마음을 다 들여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 온전히 감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함께 즐거워하고 온전히 즐거워하는 것은 만남을 전제로 합니다. 그 만남을 소중한 만남으로 만들고 소중한 만남을 이어갈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중하게 느껴지는 만남”이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서로 호감을 느꼈는데 자꾸 만나 교류하다 보면 왠지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았는데 오래 시간을 접하며 지내다 보면 진국인 사람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좋은 이미지로 보였는데 언제 봐도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대부분 소박하고 자상하며 진실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소리도 없는데 있어야 할 자리에 소리 없이 있어주는 그런 사람, 차가운 얼음 밑을 흐르는 물은 소리는 나지 않지만  분명 얼음 밑에서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실체는 늘 변함이 없는 듯한 그런 모습을 닮은 사람을 우리는 대체적으로 그러한 사람을 좋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우리에게 그런 만남을 가져다준 인연이 무척 고맙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람보다 소중한 존재는 없습니다. 괜찮은 사람을 만나려 애쓰기보다는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된다면 그도 내게로 다가와 좋은 사람이 되여 줄 것입니다.
만남이란 참으로 소중합니다. 누구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받으니까요. 
그러한 인연은 지혜롭게 그 만남을 잘 이어 가야 할 것입니다.
혼자서만이 아닌 서로가 행복할 수 있고……. 진정 좋은 사람으로 늘 기억될 수 있도록 
이런 만남의 사람으로서, 함께 즐거워하며 온전히 즐거워하는 삶을 항상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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