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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강요된 감사 (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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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감사 (살전 5:16-18) 
 
 
❚강요가 필요할 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헌법 1조 2항은 이렇게 명시합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고, 이렇게 대한민국은 분명히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입니다. 민주주의(民主主義)란 말 그대로 백성이 주인 된다는 것입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으며 국민에 의해 정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민주주의는 참 좋은 것입니다. 전제주의처럼 왕 한 사람이 나라와 백성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나라도 아니고, 더욱이 공산주의 국가처럼 1당 독재를 휘두르는 나라도 아닌 백성들이 나라의 주인이고, 국민을 위해 정치가 이루어지는 나라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솔직히 저는 이 민주주의에 대해 약간의 회의를 느끼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게 뭡니까? “무조건 국민이 주인이니 국민 마음대로 하겠다?”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최소한의 질서와 원칙은 지켜지는 가운데 국민이 주인이 되는 것이지 “내가 나라의 주인이니까 내 맘대로 하겠다”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또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너무 넘어서는 안 되는 선까지 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시위를 해도 질서를 지키며 하면 뭐가 문제겠습니까? 민주주의에서 내 의견을 남들에게 자유롭게 말하고, 필요하다면 거리에 나가서 표현할 수도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가 법과 질서를 파괴하고, 폭력과 무질서가 난무하는 자유라면 이미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은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 중에도 경찰관이 있습니다만 지구대(옛 파출소)에 매일 취객이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말리는 경찰관을 폭행하는 일까지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게 민주주의요 자유는 아니지 않습니까? 학생들에게도 인권이 있다, 인권을 지켜주자 하니까 야단치는 선생님을 두들겨 패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데 이게 진정한 민주주의요 자유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국민이 법과 질서를 지켜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자유는 무조건 내 맘대로 하겠다는 방종(放縱)과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지킬 것은 지키고, 책임질 것은 책임 질 때 참된 자유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에도 때로는 강요가 필요한 것입니다. 자유에도 때로는 강제와 명령이 필요한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바로 ‘강요’ 혹은 ‘명령’이라지요. 민주주의 사회인데, 자유인데 왜 강요하냐, 나는 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강요도 때로는 꼭 해야 합니다. 아무리 민주사회라도 법과 질서는 강제로 지키도록 강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지켜질 때만이 모든 사람이 편안하고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한 사람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모두의 행복을 깰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강요가 필요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부모라고 해서 자녀에게 무조건 강요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부모도 자녀를 인정해주고 자녀의 의견을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부모가 자녀에게 강요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게 진짜 좋은 일인데, 꼭 이 길을 가야 하는데 철모르는 아이가 내 맘대로 하겠다고 해서 존중하면 큰일 납니다. 자녀들 눈치 보지 말고 분명히 이야기하세요. “이 길이 옳다, 이 길을 가라,” “이 일이 맞다, 이걸 해라.” 하고 말입니다. 그 길을 가야 바른 길을 가는 것이고, 그 일을 해야 복 받으면 강요해야지요. “한 번 해볼래? 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고 눈치 봐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 길만이 자녀가 복 받는 길인 줄 알면 부모가 강요를 해야지 권유하면 안 됩니다. 그건 부모의 책임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강요다

새가족 한 분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목사님, 저는 교회에 오면 참 좋은데 한 가지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습니다.” “뭐가요?” “왜 교회에 오면 헌금하라는 말을 자꾸 합니까? 헌금강요 아닙니까? 헌금은 기뻐서 하는 일이지 왜 강요합니까?”

여러분, 이 분 말이 맞나요? 예, 맞습니다. 성경은 헌금이나 헌물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헌금을 강요한다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설문조사를 해보면 교회에서 제일 거부감 느낄 때 1위가 바로 “헌금을 강요할 때”입니다. 그런데 그날 저는 그 새가족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헌금강요요? 맞습니다. 헌금 강요하는 것 맞습니다.” 그 분이 제 대답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평상시 제 성격을 볼 때 “헌금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게 맞습니다” 하고 대답할 줄 아셨나봅니다. 그런데 제가 헌금 강요하는 것 맞다고 대답하니까 놀라신 게지요.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목사가 헌금 강요 해야지요. 그게 맞는데, 그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게다가 복 받는 일인데 왜 강요 안 합니까? 오히려 복 받는 일 강요 안 하면 그건 제가 목사로서 직무를 유기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복 받는 길로 인도하지 않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좀 심한 표현을 쓰자면, 우리 하나님은 거지가 아닙니다. 우리가 보태주어야만 살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주 부자십니다. 세상 천지만물이 다 하나님 것인데 하나님이 얼마나 부자겠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헌금을 하라고 하십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가난해서, 돈이 없어서, 우리가 안 드리면 못 사셔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지 보시려고 말입니다. 그래서 부자가 거들먹거리며 큰 액수의 헌금을 해도 하나님은 기뻐 받지 않으십니다. 헌금을 수억을 하고 수십억을 한들 그게 하나님께 큰 액수인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그 헌금을 내는 마음이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 받으시는 것입니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의 작은 액수를 헌금해도 하나님은 그를 세상에서 가장 많이 헌금한 사람으로 보십니다(막 12:42). 그 마음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을 소중히 여길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더 큰 은혜와 감사를 선물로 주십니다. 큰 복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제가,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가르쳐야 하는 목사가 헌금을 강요해야지 않겠습니까? 복 받는 길을 가도록 강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그 새가족에게 “헌금 강요 맞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복 받는 방법을 여러분에게 강요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똑같은 원리로 감사도 강요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보세요.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뭐라고 했습니까? “항상 기뻐하라!” 명령형입니다. 강요입니다. “항상 기뻐해 보시겠습니까?”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면 좋겠네요, 아니면 말고요.”가 아니란 말입니다. “항상 기뻐해라! 항상 기뻐해야 한다!” 분명히 강요요 명령입니다. 또 뭐라고 했습니까? “쉬지 말고 기도하라!” 이것도 강요요 명령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 보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뭐라고 강요합니까?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凡事)란 ‘모든 일’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일에 언제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감사를 강요합니다. 감사를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감사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리고 맨 그 뒤에 이렇게 세 가지를 명령하고 강요하는 까닭이 나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렇습니다. 이 세 가지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반드시 순종하고, 반드시 그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명령에 항상, 그리고 무조건 순종하기 바랍니다. 왜요? 그래야 복 받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우주만물,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누구 것입니까? 하나님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복 주시마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나, 아무 때나 복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에게만 복 주십니다. 그래서 이 말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 세 가지 명령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잘 지키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복 주신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감사를 낳는다

성경이 말씀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가 이것입니다. “감사하는 자가 복을 받는다!” 그렇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감사의 원칙은 이것입니다. “감사는 감사를 낳는다!” 반대로 “불평은 불행을 낳습니다.” 갈라디아서 6:7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평을 심으면 불행을 거두게 되어있고, 감사를 심으면 또 다른 감사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감사는 더 큰 감사를 낳습니다. 감사는 불행을 멈추고 기적을 만드는 은혜의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더 생깁니다. 한 번 증거를 대볼까요?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나병을 고침 받은 열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눅 17:11-19)

보세요. 열 명의 나병환자가 나음을 받았는데 그 중 단 한 사람, 천한 사마리아 사람만 돌아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랬더니 주님이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하십니까? 19절에 보면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지 않습니까? 이 사마리아인 나병환자는 육신의 병만 고침 받은 것이 아니라 감사를 표현했더니 영혼의 병까지 낳고 영혼구원까지 받습니다. 감사하니 감사할 일이 생깁니다. 감사가 더 큰 감사를 낳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저는 담임목사로서 여러분에게 강요하려고 합니다. 감사하세요. 권고가 아닙니다. 명령이요 강요입니다. 반드시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면 복을 받고,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더 생기는 줄 알기 때문에 저는 여러분에게 강요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이 일이 내 자녀가 복 받는 일인 줄 알면 강요해야 하듯, 그게 부모의 도리이듯 저는 여러분을 강요합니다. 감사는 강요입니다. 그래서 저는 누구 눈치도 안 보고 강요합니다. 헌금도 하세요. 감사도 하세요. 헌신과 충성도 하세요. 여러분도 누구 눈치도 보지 말고 그렇게 하세요. 이것이 복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27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정치범으로 몰려 온갖 혹독한 고문과 학대를 당하고, 27년 동안 혼자 독방에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독방에는 만델라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람이 갇혀 지내는 것도 고통이지만 독방은 몇 배의 고통을 줍니다. 외로움 말입니다. 말 한 마디 나눌 사람도 없이 방안에는 쥐와 벼룩, 바퀴벌레만 득실거리고, 어두컴컴한 독방에서 햇빛도 볼 수 없었고 운동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만델라가 27년 만에 출감할 때 들것에 실려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건강한 모습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 까닭을 만델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감옥에서도 하나님께 늘 감사했습니다. 하늘과 땅을 보고도 감사하고, 물을 마시면서도 감사하고, 음식을 먹으면서도 감사하고, 강제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나를 감옥에 보낸 사람들에게도 늘 감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마음에 불평불만을 심으면 불행을 거두게 되고 미움을 품으면 건강한 사람도 병에 걸리고 쓰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감사를 품으면 감사할 일만 생깁니다. 감사를 심으니 건강도 주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 세상을 이길 능력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우리는 이 추수감사절 귀한 절기에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아니, 대체 뭐가 그렇게 감사하단 말입니까? 먹고 살기도 힘들고 온통 힘든 일, 어려운 일 투성인데...” 아니요. 아닙니다. 보세요.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 만물, 하늘과 땅,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중한 가족을 주시고 또 생명과 건강을 주시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풍성한 결실의 계절에 감사할 것이 이렇게 많은데 감사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면 감사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다 감사할 것뿐입니다. “󰁠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 제아무리 보잘 것 없는 초막이라도 감사하는 사람이 사는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감사하기 바랍니다. 여러분께 강요합니다. 감사하세요.

예, 그렇습니다.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감사는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마음의 부요함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의 통로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서 어떻게 제가 여러분을 복 받는 길로 가도록 강요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사람들 눈치 보느라 그렇게 안 한다면 나중에 주님 앞에 섰을 때 “이 목사야, 너는 사람들 눈치 보느라, 성도들 마음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내가 말한 복 받는 길을 가르쳐주지 않았구나” 하고 분명히 책망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가족에게, 자녀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확실히 강요하세요. 명령하세요. “감사해야 돼!” 감사하라고, 감사만이 살 길이고, 감사만이 복 받는 길이고, 감사가 감사를 낳고 감사가 기적을 일으킨다고 말입니다. 아무쪼록 이 결실의 계절 가을에, 이 추수감사주일에 감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감사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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