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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합니다 (골 3: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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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골 3:15-17) 

우리의 지난 삶을 돌아보면 참 여유 없이 지내왔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바쁘게 살았는지, 정말 정신없이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게 어느덧 2011년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농경사회에서 추수감사절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겠지만 오늘날과 같이 도시화되고 현대화된 시대에 추수감사절의 의미는 어쩌면 예전과는 같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은 단순히 한해 농산물의 수확을 거두는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전반적인 것에 대한 감사를 돌아보게 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원하기는 이 시간을 통해 우리를 더욱 풍요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실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행복하기 위해선 두 가지의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 하나는 ‘미안하다’ 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고맙다’ 는 말입니다.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그동안 잘못해서 미안합니다.” 
“그동안 잘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그 가운데 고맙다는 말, 감사하다는 말은 가장 천국에 어울리는 언어이며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가장 먼저 가져야 할 것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만족스럽지 못하고 자신의 인생이 불행한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돌아보면 그래도 감사한 것이 월등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같은 환경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늘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늘 원망과 불평에 다른 사람 탓을 합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우리가 어떤 심령을 가지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복이 좌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느 성문 곁에 지혜로운 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한 청년이 와서 묻습니다. 
“어르신 이곳이 살기 좋습니까? 한번 정착해 볼까 해서 와 봤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묻습니다. 
“자네는 전에 살던 곳이 살기 괜찮았는가?” 

그러자 청년은 “네. 괜찮았습니다.” 

그 말을 듣고 노인이 말합니다. 
“이곳도 역시 살기 괜찮은 곳이네.” 

얼마 후에 다른 청년이 와서 동일하게 묻습니다.
“어르신 이곳이 살기 좋습니까?” 

노인이 역시 동일하게 묻습니다. 
“자네가 전에 살던 곳은 어땠는가? 살기가 괜찮았는가?”

그러자 그 청년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네 아주 지옥 같은 곳이었습니다.”

노인은 이 청년의 말을 들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도 아주 지옥 같은 곳이네.”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혹은 아무리 나쁘다 하더라도 천국과 지옥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1990년2월11일 남아프리카의 로벤 아일랜드라고 하는 형무소에서 26년의 장기 복역을 하고 풀려 나온 73세의 넬슨 만델라를 맞이하기 위하여 많은 이들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철문이 열리고 형무소에서 나온 만델라는 26년의 형무소 생활을 한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은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단 몇일만 갇혀 있어도 사람의 표정이 다르고 건강이 다른 것인데 그는 건강했고 얼굴은 밝았으며 오히려 유모어까지 하였습니다. 

놀란 사람들이 그 건강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나는 시종 감사했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했고 땅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노동할 때도 감사했고 철창에 갇혀 있을 때도 감사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갈립니다. 
같은 환경에서 어떤 사람은 행복하지만 어떤 사람은 불행을 느낍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행복은 환경이 결정하지 않고 감사하는 태도가 결정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4가지를 함께 상고하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감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선 그리스도의 평강이 넘쳐야 합니다. 

15절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면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평강이 넘쳐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함께하신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면 됩니다. 
비록 내가 연약해도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를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의 심령에는 평강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일단 마음에 평강이 넘치면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이 바로 ‘말과 표정’ 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말이 나오고 감사하는 표정이 생기게 됩니다. 

여러분 말과 얼굴에 감사가 가득 담기도록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의 축복이 그 가운데 넘치게 될 것입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주변에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을 장관으로 천거하였고 링컨이 면접을 보았는데 맘에 들지 않아서 그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링컨에게 묻습니다. 
“아니 왜 그 사람을 채용하지 않습니까? 분명 유능한 사람인데요.”

링컨은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사실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다시 
“얼굴은 태어날 때부터 원래 그런 걸 어떻게 합니까?”

이 때에 링컨이 유명한 말을 하였는데 
“아닙니다. 사람이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합니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에 반드시 책임질 수 있는 얼굴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람들이 마음에 평강을 잃어버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조급함 때문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단기간에 얻지 못하면 금방 실망합니다. 
한두 번 해 보다 안되면 금방 포기해 버립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잘 기다려 주시는데 정작 우리는 기다리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조급함을 내려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마음에 평강이 찾아오고 그리할 때에 진정한 감사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감사하는 삶을 위해 우리는 늘 예배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16절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 말씀을 보면 말씀이 있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언제 가장 극적으로 이루어집니까?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입니다. 할렐루야!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감사 표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육신의 부모에게 제일 큰 효도는 무엇입니까? 
선물 드리고, 용돈 드리고, 식사를 사 드리고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가장 소중한 효도는 자주 찾아 뵙고, 같이 있어 드리고, 그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일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우리의 몸이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세상의 다른 어떤 것을 드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그 자체를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예배할 때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지며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되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마 이곳에 계신 분들 가운데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내가 왜 이런 가정에 시집을 오게 되었나?’
혹은 ‘내가 왜 이런 사람하고 같이 살게 되었나?’ 혹은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게 되었고 이런 곳에 있게 되었나?’

그러나 하나님께서 뜻이 계셔서 저와 여러분을 각자의 곳에 보내시고 각자의 만남을 허락하시고 또한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요셉을 보면 자신의 고난에 대해 나중에 형제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구하려고 나를 이곳에 보내셨습니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한 요셉의 모습처럼 우리가 예배를 통해 이와 같은 것을 깨닫게 되고 이를 통해 모든 것에 감사하는 신앙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원하기는 예배를 통해 늘 감사를 깨닫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세 번째로는 감사하는 삶을 위해서 항상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17절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항상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왜 많은 사람들이 감사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갑니까?
그 이유는 바로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교하기 시작하면 무엇에도 만족하거나 감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비교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 중심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인생의 불행은 비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내뱉는 말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 없어서 죽겠다’ 는 말입니다.
그 말대로라면 제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이 나에게 없다고 기죽을 필요도 없고, 섭섭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에게 없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는 것만 가지고도 우리는 얼마든지 축복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인슈타인은 공부를 너무 못해서 수학을 빼고는 다 낙제였습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은 그를 공장으로 보내라고 하였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이를 믿고 아인슈타인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얘야 네가 잘 하는 것을 해 보렴.” 결국 그는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든지 다 잘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요즘은 한가지만 잘해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들도 축구선수는 축구만 잘하면 됩니다. 야구선수는 야구만 잘하면 됩니다.
수영선수는 수영만 잘하면 됩니다.

그런데 자신이 잘하는 것은 두고 자신이 못하는 것만을 탓한다면 그 사람은 절대 감사할 수 없습니다.

다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지 같으면 가치가 크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적인 조건이 아닌 최상의 가치를 늘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최상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고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최상의 가치일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위인들도 보면 모두가 대부분 무언가 세상적으로는 한가지씩 부족함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에 최상의 가치를 부여하였기 때문에 후세에까지 그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 흑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마틴 루터 킹’ 이고, 또 한 사람은 ‘말콤 엑스’ 입니다. 

말콤 엑스는 어렸을 때 흑인으로 태어난 것이 너무 싫어서 그의 소원은 백인같이 되는 것이었다고합니다.
그래서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그는 별별 행동을 다 했는데 비누로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문질렀는가 하면 흰 로숀을 마구 칠하기도 하였으며 머리도 물들여 보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안되니까 후에는 백인을 증오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생각을 바꾸고 ‘나는 백인이 될 수 없다. 나는 흑인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결국 흑인의 아름다움을 되찾기 운동을 벌이면서 캠페인을 벌였는데 ‘Black is beautiful’ 이였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부심을 찾으니까 그의 인생이 소중한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나름대로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 각자의 것으로 우리의 인생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탁월한 사람도 쓰임 받지만 저와 여러분들도 충분히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께서는 모두를 공평하게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가치의 소중함을 바로 알고 깨달아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대로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환경을 초월하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감사하는 삶을 위해 사랑과 희생과 헌신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후회 없이 사는 방법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사랑 받을 때 거기에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며 살면 다 사랑스럽게 보이고 감사가 나오지만 마음에 증오와 미움이 있으면 행동 하나 하나가 다 밉게 보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며 희생과 헌신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감사하는 삶을 위해 필수적인 것입니다. 
 

영국의 한 마음에 구두 수선을 하는 ‘윌리엄 캐리’ 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주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25세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792년 31살의 나이에 그는 인도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인도에 도착한 후 그는 감격 속에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불행한 일이 연속적으로 찾아왔습니다. 
인도에 도착한지 1년만에 그는 너무나 사랑하였던 5살짜리 아들을 잃었습니다. 아내는 그 충격으로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다가 그녀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7년 동안 한 사람도 제자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인도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끊임없이 부어 주셨습니다. 

1812년 인도에 온지 20년 만에 그는 인도 사람을 위한 벵갈어 성경번역을 마쳤습니다. 
선교부에서 종이와 잉크와 인쇄기를 보내 주어 성경인쇄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찍는 인쇄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그는 감격하였지만 인쇄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그 시간에 그는 전도를 위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인쇄공의 실수로 화재가 나서 번역한 원본과 그가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었던 벵갈어 문법책과 사전이 다 타버렸습니다. 그가 20년 동안 수고한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처음에 그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아득하였지만 조용히 잿더미 위로 걸어가 무릎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저의 20년 수고를 거두어 가셨군요. 그래도 제가 다시 할 수 있는 믿음은 거두어가지 않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용기를 잃지 맙시다. 이 일은 우리를 전진시키는 한 과정이 될 것입니다.” 라면서 격려하였습니다.
놀랍게도 그 뒤 윌리엄 캐리는 예전보다 더 훌륭한 벵갈어 성경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역사는 언제나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 편에 섰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면 우리의 걸림돌은 반드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희생과 헌신은 반드시 열매 맺는 날이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분명 맞는 말이지만 그리스도인은 한 차원 더 나가야 합니다.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헌신에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즉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살고자 할 때에 우리는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인간의 불행과 고통을 행복과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한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하면 행복하고 감사하면 축복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토머스 에디슨은 평생 2,000여개의 발명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연구실적으로 에디슨은 지금까지 발명왕으로 통합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어렸을 때 저능아 취급을 받아서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하였으며 설상가상으로 그는 젊어서 듣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환경으로 보면 최악의 악조건이지만 그는 말년의 생을 회상하면서 이것을 늘 감사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연구실에 들어가면 잡음이 들리지 않아 연구에 몰두할 수 있어서 오히려 이것이 더 많은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디슨은 자신의 귀를 들리지 않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그에 비해 오늘 우리들은 너무나 많은 것이 주어져서 오히려 감사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추수 감사주일을 맞이하며 나에게는 과연 어떠한 감사가 있습니까?
원하기는 감사하는 삶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다시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진정한 감사를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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