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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기적을 부르는 감사 (단 6:10, 요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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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부르는 감사 (단 6:10, 요 11:41)

아라비안나이트에 소개되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알리바바라는 사람이 주인공인데 매우 가난한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어느날 우연한 기회에 도둑들이 보물창고를 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주문을 외웠더니 보물창고가 열리는데 거기에 보화가 가득찬 것입니다. 

주문이 열려라 참께야 입니다. 열려라 참께야 하니 보물창고가 떡하니 열리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엄청난 보화들이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알리바바는 거기에 들어가서 그 도둑들이 훔쳐놓은 그 재물들을 가져다 써서 아주 부자가 되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열려라 참깨는 우리가 주문이라고 Magic Word 라고 부릅니다.어떤 문을 여는 축복의 말이다. 

저는 우리 인생에 축복의 문을 여는 세가지 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안녕하세요라는 말입니다. 교회에 오셔서 몇분과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셨습니까. 안녕하세요 인사를 잘해야지 인기있습니다. 이것이 인간관계를 기름지게 하는 것입니다. 인사를 잘하는 사람은 어디서든지 환영을 받습니다. 교회에 오시면 20명 내지 30명과 이렇게 인사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축복을 여는 두 번째 말은 미안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잘못하면 우길거 없이 미안합니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숙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격이 있는 사람들은 우기지 않습니다. 변명하지 않고 미안합니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세 번째가 감사합니다입니다. 이 말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우리는 감사할 줄 모릅니다. 하나님께나 사람에게나 감사하는 사람에게 축복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많은 인생의 경험을 가진분들도 그런 얘기들을 자주 인용합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인사잘하고 Excuse me 미안합니다. Thank you 감사합니다. 그 말이면 다 통하고 인간관계가 열리고 축복의 문이 열리더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제목을 기적을 부르는 감사라고 정했습니다. 기적을 부르는 감사 감사라는 것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 언어인가. 감사란 얼마나 아름다운 능력있는 표현인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서 두가지를 강조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감사는 먼저 전천후 감사여야 한다. 전천후라는 것은 모든 상황에 모든 경우에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좋은 일이 생길때만 아들이 학교에 입학할 때만 아니면 직장에 취직이 될 때만 이럴때만 감사하는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감사하는 것, 전천후 감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잘아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라는 것은 모든 경우에 슬픔이 있든지 기쁨이 있든지 모든  경우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전천후 감사다라는 것입니다. 

또한 저는 여러분에게 감사에는 기적이 따른다는 것을 강조할 것입니다. 우리의 감사는 전천후 감사가 되고 또 그 감사를 통해서 기적과 축복이 내게 찾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전천후 감사의 예를 몇가지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위협속에서도 감사를 잊지 않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다니엘 6장 10절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감사하는 사람이였습니다. 사실 이 상황은 다니엘이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니엘은 어린 소년일 때 유대 소년인데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왕들의 총애를 받습니다. 궁중에서 생활을 합니다. 처음에 끌려올 때 왕은 느브갓네살왕이였는데 그 다음에는 벨사살왕을 거치고 그 다음에는 다리오왕때 국무총리까지 지냅니다. 외국인이 와서 우리나라에 국무총리까지 지내면 본토인들은 어떠합니까. 시기심이 생깁니다. 

저 유대인이 와서 바벨론의 국무총리를 해 저놈을 그냥두면 안돼. 시기심과 질투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굴러온돌이 박힌돌을 빼낸다. 시기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다니엘의 흠을 잡으려고 청문회도 해보고 검사도 많이 해 봤습니다. 그런데 다 뒤져봐도 흠이 없는 것입니다. 통장을 확인해봐도 뒷조사를 다 해봐도 부동산 거래도 없습니다. 그러니 잡을게 없습니다. 

그런데 딱 한가지 걸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다니엘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함정을 팠습니다. 다리오 왕에게 가서 왕이여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왕이 더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왕 외에 누구에게든지 기도하거나 간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자굴에 집어 넣읍시다. 왕이 멋도모르고 내용도 모르고 허락을 했습니다. 왕의 조서에 어인이 찍힌것을 다니엘은 알았습니다. 

그는 알고도 늘상 하던대로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하나님앞에 하루세번씩 기도하며 그는 감사했더라는 것입니다. 감사할 수 없는 위협적인 상황입니다. 이제 고꾸라질 수밖에 없는 위협적인 상황이지만 그는 그 상황속에서도 여전히 감사했더라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습니까. 밀고한 자들은 망원렌즈를 가지고 다니엘이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는 것을 찍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증거를 왕에게 제시하니까 꼼짝없이 왕도 허락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속에 던져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사자들의 입을 다 봉하셨습니다. 다니엘은 하룻밤동안 색다른 곳에서 색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사자들과 하룻밤을 같이 보냈습니다. 

다리오 왕은 후회했습니다. 아침일찍 사자굴을 열어봤더니 다니엘은 살아 있습니다. 그를 들어 올립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밀고한 자들을 사자굴에 집어 넣었더니 뼈도 못추렸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이 한 입에 다 삼켜 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위협속에서 감사했더니 그것이 하나님의 보호의 결과가 된 줄 믿습니다. 위협속에서도 감사하면 위협속에서도 보호하신다. 감사는 이렇듯 놀라운 것입니다. 왜 성경은 그런 상황속에서도 다니엘이 원망하지 않고 감사했다고 기록을 남겼을까. 그는 전천후 감사의 사람이였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상황은 부족한 상황속에서도 감사할 때 기적을 체험합니다. 요한복음 6장 11절입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오늘 이 상황은 예수님께서 광야의 5천명의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들이 저녁이 되어서 돌아갈 시간인데 그들이 너무 굶주려 있고 기진맥진해 있습니다. 저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가 없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했더니 제자들이 여기저기 찾더니 순종잘하는 안드레가 오병이어를 가져 왔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한 가난한 소년의 점심 도시락입니다. 예수님은 그 점심 도시락을 드시고 하늘을 향해 축사하셨다. 축사란 말은 유컬리스트라는 말인데 원어로 감사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향해 도시락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하시고 그것을 나눠주었더니 5천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을 줄 믿습니다. 부족함 가운데 감사했습니다. 궁핍한 가운데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공급하심을 끌어 들인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란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부족함속에서도 감사하면 풍성함을 주신다. 물질이 부족하십니까. 건강이 부족하십니까.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풍성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경우는 죽음앞에서도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41절입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요한복음 11장은 나사로의 부활기적이 있는 본문입니다. 예수님과 너무나 친밀하게 지내던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죽은지 나흘이 되어서 무덤에 묻혔는데 이미 그 시신이 썩어서 냄새가 나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르다와 마리아가 너무나 비통히 슬피우시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비통히 여기시고 얘들아 우리 무덤에 가보자, 무덤에 가셔서 어찌하실려고요.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것이다. 그리고는 무덤앞에 가셔서 돌문을 치워라고 하셨습니다. 무덤돌문을 치워라. 순종해서 치웠더니 역겨운 냄새가 쏟아져 나옵니다.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것을 감사하나이다. 지금까지 내 기도에 들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금도 내 기도에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그 얘기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앞에서 무덤앞에서 감사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선포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그럴 때 죽었던 나사로가 생기를 회복하고 베를 동인채로 걸어나온 줄 믿습니다. 죽음앞에서 예수님이 감사했는데 죽은자가 살아나서 걸어나왔다는 것입니다. 죽음앞에서도 감사하면 생명의 역사로 이끌어거신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의 의미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절망적인 상황, 1%의 가능성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생명의 역사로 이끌어가신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앞에서도 감사하셨습니다. 그것이 놀라운 나사로의 기적이라는 것을 가져왔습니다. 사실 예수님도 마지막 만찬을 제자들과 나누면서 감사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네 번째로 우리는 고난가운데 감사한 사람들의 기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오늘 이 상황은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성에가서 복음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한 귀신들린 여자가 점을 치는데 아주 용합니다. 주인은 그 여인이 점을 치면 그거 가지고 먹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바울을 보는 순간 하나님의 사람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여하면서 소리치고 다니니까 바울이 불편합니다. 전도할 수가 없어서 그 여인에게서 악한 귀신을 내어 쫓아 주었습니다. 악한 귀신을 예수의 이름으로. 그래서 귀신이 나갔습니다. 이 여인이 제정신이 돌아오니까 더 이상 점을 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더 이상 돈벌이가 안되니까 화가나서 바울과 실라를 법정에 고소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정말 억울하게 끌려가서 모진 매를 맞는데 로마의 법에 의하면 40에 하나를 감한 매, 39대의 아주 심한 매질을 당한 것입니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어디 아피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하창고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아픈몸을 이끌고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는 일어났습니다. 억울한 고난이였습니다. 좋은 일하고 뺨맞은 것이였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는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 밤에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앞에 기도하고 찬양하였더라. 옛날성경에 보면 기도하고 찬미했다. 찬양, 찬미는 어떤 것입니까. 감사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모진 매를 맞고도 하나님앞에 찬양하며 감사했더라는 것입니다. 그 감사의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지진이 나서 옥문이 흔들립니다. 그리고 옥문이 열려버립니다. 착고가 풀려버리고 쇠사슬이 다 풀어져 버립니다. 간수가 졸다보니 옥문이 열려있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죄수들이 나간지 알았습니다. 그러면 자신은 사형입니다. 스스로 자결하려 했더니 여보시오 우리가 여기 있으니 죽지마시오. 간수가 감동을 받고 선생님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간수는 감동해서 바울과 실라를 자기집에 모시고 갔습니다. 상처를 다 싸매주고 기름으로 치료해줍니다. 그리고 식사를 잘 대접합니다. 말씀을 듣고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갔기 때문에 간수장의 가족이 다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문열렸다고 도망가지 않고 다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 법관이 와서 당신들은 죄가 없으니까 석방시킨다고 내보내 주었습니다. 

결국 고난속에서도 감사했더니 합력해서 선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고난속에서도 감사하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이것이 내가 당하는 억울한 고난이고 억울한 고통이지만 감사했더니 오히려 그 고난이 내게 유익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그런 결과적인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감사는 위대한 능력의 언어입니다. 감사하는 신앙인이 가장 위대한 신앙인이요 가장 성숙한 신앙의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감사하면서 사시겠습니까. 불평하면서 사시겠습니까. 당연히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불평하면 누가 기뻐합니까. 사탄 마귀가 기뻐합니다. 마귀를 기쁘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습니까. 서두에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주신 말씀은 항상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너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뜻이니라. 

그런데 마귀는 다르게 말합니다. 뭐라고 합니까. 항상 낙심하라, 쉬지말고 원망할, 범사에 불평하라, 이는 사탄안에서 너희를 향한 뜻이니라. 사탄의 뜻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는 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할것이냐 불평할것이냐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입니다. 똑같은 환경이지만 감사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삶은 풍요롭고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환경이지만 불평하기로 작정한 사람에게는 그 인생이 피곤하고 불행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는 감사하고 찬양하는 인생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이 그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불행할 때 감사하면 불행이 끝나고 형통할 때 감사하면 형통이 연장된다. 불행이 와도 고난이 와도 감사하면 그 상황이 종결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통할 때 감사하면 형통이 더 지속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학계에서는 땡큐 떼라피라고 해서 감사요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환자들을 상담할 때 당신의 주어진 삶에 감사하라고 암이 찾아와도 감사하라고 고혈압이라도 감사하라고 그럴 때 그의 병은 조속히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왜 내게 이런 병을 줬냐고 누구때문이냐고 우리 부모의 유전자가 잘못돼 그렇다고 인생을 비관하면 그는 더 깊은 질병의 나락속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제이 데니스라는 분이 감사 치유법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는 거기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당신이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안정된 직장과 사업장이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몸무게가 늘어서 옷이 맞지 않는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먹을 것이 넉넉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세탁할 옷이 여기저기 집안 구석에 있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는 적어도 갈아입을 여분의 옷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불평할 대통령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기에 하나를 추가했습니다. 전도하라는 목사의 설교가 부담이 되거든 감사하십시오. 적어도 당신은 전도받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도해야 될 자리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하라는 말이 때로는 부담이 되지만 전도 받아야 되는 사람이 아니라 전도해야되는 자리에 있는 것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데브라노빌이라는 사람이 감사의 힘이라는 책을 썼는데 책에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윌 톰슨이라는 가난뱅이 건달이 있었습니다. 젊은 청년인데 직장도 없고 직업도 없습니다. 어느날 길을 지나는데 누가 오토바이를 타고 부르릉하고 지나가는데 그 오토바이가 얼마나 삐까뻔쩍한지 나도 오토바이 한번 타봤으면 좋겠다 이게 소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레스토랑을 보니까 종업원을 구한다는 광고가 있습니다. 그래서 월급받아 오토바이를 사려고 종업원으로 취직을 했습니다. 그런데 웨이터일도 쉬운게 아닙니다. 손님들이 얼마나 짜증을 많이 내고 불평을 하고 음식이 맛이 있다 없다 그러는데 견디기 힘듭니다. 그래서 그만둬버릴까 생각하는데 어느날 지배인이 종업원들을 다 모으더니 이렇게 교육을 했습니다. 우리는 고객들에게 무조건 감사해야 합니다. 고객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무조건 고객에게 감사하십시오. 이렇게 인사하십시오. 저희 식당을 잊지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음식을 주문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맛있게 드시니 감사합니다. 감사교육을 시켰습니다. 

여러분이 감사하는 사람이 되면 여러분의 인생에 행복과 성공이 찾아 올 것입니다. 그런데 윌 톰슨은 이 말을 너무나 감명깊게 들었습니다. 자기는 감사해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손님들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희식당에 찾아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렇게 맛있게 드셔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인사했습니다. 손님들이 너무나 좋아합니다. 팁도 두배로 줍니다. 1불줄껄 2불을 주는 겁니다. 그리고 한달후에 가장 친절한 종업원을 뽑는데 윌톰슨이 가장 친절한 종업원으로 뽑혔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눈에 들게 되고 얼마후에 부지배인으로 승격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월급도 많이 받습니다. 오토바이정도는 살 수 있을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또 다른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제는 건달의 삶은 안돼, 내 인생을 바꿔야지. 그는 야간대학을 진학해서 경영학을 공부합니다. 그리고 중소기업을 시작하고 마지막에는 큰 회사의 사장이 됩니다. 그는 이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자가용비행기를 타고다니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0.3초의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고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할 때 그는 놀라운 결과가 왔다고 자술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이와같은 것입니다. 

저도 어떤 식당에 가보면 주인이 인사를 안합니다. 그냥 쳐다봅니다. 하나 팔아주려고 또한 명이 왔네, 쳐다보고 물한잔 갖다줘라 이러지 주인이 인사하는 것 못봤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와서 저희 식당을 찾아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어떤 음식을 주문해 드릴까요 그렇게 친절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맛있게 드셨습니까. 이렇게 맛있게 드시니 남기지도 않고 드시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러면 또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감사를 잃어 버리고 살아갑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 감사해야 될 가장 큰 조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 2절부터 4절까지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우리의 가장 큰 감사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우리죄가 용서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파멸에서 건져주신 것입니다. 생명을 건져주신 것, 그리고 우리가 예수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그리고 나를 질병에서 재난에서 환난에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 그것이 우리의 감사의 제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앞에 사람앞에 가족앞에 너무 감사할 게 많습니다. 기적을 부르는 감사, 주님은 오늘 우리가 이런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감사는 전천후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박국의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위협속에서도 부족함속에서도 죽음앞에서도 고난속에서도 감사할 때 하나님은 그 영혼을 축복하시고 그의 인생에 행복과 은혜를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교우들이 늘 입술에 감사를 생활화하고 감사를 실천함으로써 기적을 부르는 감사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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