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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떻게 행할까 (엡 5: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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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행할까 (엡 5:15-21)


‘하나님을 기쁘게, 사람을 기쁘게’ 라는 기업이념을 가진 주식회사 ‘알로에마임’의 홍혜실 대표의 경영 원칙은 명쾌합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가장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섬김을 통해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기업은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여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94년 11월 남편 유영섭 회장과 함께 자연을 원료로 한 화장품과 건강보조식품을 만드는 알로에마임으로 출범한 회사는 2003년 노동부에서 수여하는 남녀고용평등우수기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매년 국내 건강보조식품업계 브랜드파워 1위, 화장품 업계 10위권 기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홍혜실 대표는 알로에마임의 직원들이 지켜야 할 한 가지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는데 다름 아닌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알로에마임 직원들은 누구나 매년 일정시간 이상의 사회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내규화되어 있습니다. 자폐아들과 고아들이 살고 있는 경기도 가평 등대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지 7년이 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년 사랑의 집짓기운동에 재정적인 후원과 더불어 전 임직원이 자발적으로 휴가를 반납하고 참가하여 땀 흘려 봉사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가진 사회적 책임을 묵묵히 실천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소아암 어린이를 위해서 인천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도 하고, 동방 사회복지회와 함께 입양부모를 위한 자선행사를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매월 1일, 반드시 ‘하나님을 기쁘게’ 라는 예배를 드립니다. 전국 각지의 알로에마임 사원들이 연수원에 모여 찬양과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을 먼저 예배하고 기쁘시게 하는 것이 개인과 기업의 첫 번째 사명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기업을 처음 시작할 때 홍대표 부부는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훈을 ‘하나님을 기쁘게 사람을 기쁘게’로 정하고 매주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기업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로인해 회사 안에는 섬김의 문화가 곳곳에 배어 있었습니다. 직원들은 섬김의 태도와 마인드를 배워 가정과 삶에 적용하여 예수의 향기를 풍겼습니다. 

그녀는 고백합니다. “성경에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몇 십 년 후의 비전도 중요하지만 오늘 만나는 사람한테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사랑과 실천이 중요합니다.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잘하면 잘하는 대로 자기가 갖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실력을 보이면서 누구나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서신을 보내면서 지혜로운 자처럼 행하라고 말합니다. 본문 15절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여기의 ‘지혜 없는 자’란 어리석은 자요 미련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자는 지혜로운 자요, 자기중심으로 사는 자가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자가 되어 어떻게 행할 지 자세히 주의하라고 바울은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해야 합니까? 
 
첫째로 찬송하는 마음으로

허드슨 테일러(James H. Taylor) 중국 선교사가 청년시절 신앙에 대해 고민하다가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원’이라는 책자를 읽게 됩니다. 그는 그때의 감격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갑자기 나의 구원에 대해서, 내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받아드리고, 찬양할 것 밖에 없음을 알았다.” 구속받은 감격 속에서 언제나 찬송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른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는 마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19절입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초대 교회 시절 성도들의 교제 방식은 바로 찬송이었습니다. 찬송하는 마음으로 서로 모일 때 육체와 마음의 병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가득해 질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로 채워지고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아닙니다. 예언하는 능력도 아닙니다. 천사의 말 같은 방언도 아닙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부르스(Frederick F. Bruce)는 시의 초점을 감사로, 찬송의 초점을 고백으로, 신령한 노래의 초점을 간증으로 보았습니다. 즉 찬송이 그리스도인의 감사요, 고백이요, 간증이라는 뜻입니다. 

초대교회는 환난과 핍박 중에도 모이면 찬송하고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그 마음에 힘을 얻었습니다. 모름지기 구원받은 자들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카타콤에서도 주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구속함을 입은 사람은 당연히 찬송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행해야 합니다. 
 
둘째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여 감사합니다’ 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는 오늘 버스 안에서 금발머리의 아름다운 소녀를 보았다. 그 소녀는 매우 명랑해 보였다. 내가 만일 그 소녀처럼 예뻐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면서 나는 그 소녀를 부러워하였다. 소녀가 버스에서 내리려고 일어나 섰을 때 나는 그녀가 다리를 심히 절면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소녀는 한쪽 다리밖에 없어 목발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녀는 웃음을 잃지 않고 걸어갔다. 

오 주여, 부질없는 생각을 했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에게는 튼튼한 두 다리가 있사오니 주여 감사합니다. 그 후에 과자를 파는 소년을 보았다. 그 소년은 무척 귀여워 보였다. 나는 소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소년은 이런 말을 하였다. ‘선생님은 무엇이든지 다 볼 수 있지요? 저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장님입니다.’ 오 주여, 부질없는 행동을 했던 저를 용서해 주옵소서. 저에게 볼 수 있는 두 눈이 있사오니 주여, 감사합니다. 

또 나는 파란 눈동자의 어린 아이를 만났다. 그는 우두커니 혼자 서서 다른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마치 운동할 줄 모르는 아이처럼 보였다. 잠시 동안 지켜보았던 나는 이렇게 물었다. ‘얘! 너는 왜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지 않니?’ 그러나 소년은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냥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그 애가 귀머거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 주여, 부질없이 행동했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에게는 들을 수 있는 두 귀가 있사오니 주여 감사합니다. 오 주여, 이 몸은 복 받은 자이오니 주여 감사합니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합니까? 두 다리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감사해 본 적이 있습니까? 건강한 몸으로 앉아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음에 감사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십니까?

본문 20절입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항상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성숙된 성도의 증거입니다. 범사는 사건이고 항상은 시기입니다. 사건과 시기를 초월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은혜에 익숙해지면 안 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무디어지기 때문입니다. 모름지기 감사에 민감해야 합니다. 감사에 민감할 때 범사에 감사하게 되며 항상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할 때 거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만족이 있습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바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감사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뜻대로 될 줄로 믿는 사람이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믿는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기적을 불러옵니다. 부디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에 행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복종하는 마음으로

영국의 신문기자 헨리 스텐리(Henry M. Stanley)는 무신론자였습니다. 1871년 선교사 리빙스턴 (D. Livingstone)이 수년간 본국과 연락이 두절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스탠리는 특종기사를 쓸 목적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리빙스턴을 찾아 밀림으로 나섰습니다. 수소문 끝에 리빙스턴을 찾은 그는 리빙스턴으로부터 무언가 얻기 위하여 그와 함께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때 스탠리는 리빙스턴이 흑인들에게 생명을 전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회고하였습니다. “당시 나는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무신론자에 버금가는 편견을 갖고 아프리카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리빙스턴과 열 달을 지내면서 상당 기간 나 자신을 향한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이 고독한 노인을 만나게 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분은 여기에 와서 저 고생을 하고 계신가? 정신이 나간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무엇 때문인가? 무엇이 그를 저렇게 감동시키고 있는가?’ 우리가 만난 지 몇 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그 분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생활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 는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점차로 타인에 대한 그의 동정의 마음이 나에게도 조금씩 전이되었고, 내 안에도 같은 동정의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경건한 자세와 온유함, 열정과 성실, 그리고 그가 자기 일을 얼마나 열심히 감당하는지 지켜보던 나는 결국 그 때문에 회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회개하라고 말하거나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후에 스텐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회심시킨 것은 리빙스턴의 설교가 아닌 삶이었습니다.” 

본문 21절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여기의 복종이란 단어는 ‘휘포탓소’ 인데 ‘아래에 두다’ 라는 뜻입니다. 복종하려면 상대방의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현대적 단어로 바꾼다면 예의 바른 존경을 의미합니다. 복종이란 다른 사람을 인정할 줄 알고 이해할 줄 알며 세워주기를 좋아하는 태도와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반항을 미덕으로 가르칩니다. 반항이 스타일이 되면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섬기는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삶의 주인이 그리스도임을 고백한다면 복종을 배워야 합니다. 피차를 향한 복종이야말로 섬김의 공동체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모든 일에 복종하는 마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록펠러(John D. Rockefeller)는 돈을 버는데 목적을 두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데 목적을 두고 살았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예배를 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기에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되었습니다. 그가 세운 교회만 4,928개였으며 시카고 대학을 비롯해서 24개의 대학도 세웠습니다. 하나님께 목적을 두고 산 록펠러이기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는 오래 살려고 몸부림치지 않았으나 98세까지 살았습니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부디 하나님 앞에서 행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기대하고 꿈꾸는 것보다 더 값진 인생으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혹시 후회하는 삶을 살아 온 것은 아닙니까? 어리석은 행동이 많았던 것은 아닙니까?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찬송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복종하는 마음으로 행하여 서로 편안하게 만들어 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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