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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마음 담긴 감사 (출 23: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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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담긴 감사 (출 23:14-17)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해 동안 우리와 함께 해주셔서 올해도 풍년이 되었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한 해의 마지막 감사절기인 이 추수감사주일에 더욱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감사는 신앙인에게 있어서 절대 조건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감사할 일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하늘에 감사할 일입니다. 농산물을 비롯하여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들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비도 주셨고 햇빛도 주셨고 바람도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농부들에게 감사할일입니다. 농부들이 땀 흘려서 일하였기에 우리가 지금 편안히 음식을 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땅에도 감사할 일입니다. 땅은 씨를 심으면 열매로 우리에게 돌려줍니다. 그것도 하나를 심으면 백을 주고 천을 줍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이것이 땅이 주는 고마움 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감사주일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본문은 감사의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출애굽 행진이 가나안 입구까지 다다랐습니다. 이제 곧 가나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면 살아갈 강령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셔서 가나안에서 살아갈 삶의 강령을 주셨습니다. 그 내용이 출애굽기 20장부터 기록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을 보면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또한 제물 드리는 법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21장부터 23장 중반까지 섬김의 법과 도덕의 법과 안식일을 지키는 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23장 후반부에 세 가지 절기를 지키는 법을 주셨습니다. 그 세 가지 절기는 이렇습니다. 하나는 무교절입니다. 무교절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로 지난날 고난의 때를 기억하기 위해 무교병을 먹는 절기입니다. 무교병을 먹으면서 과거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다음은 맥추절입니다. 이 맥추절은 여름 추수를 한 후에 드리는 감사절입니다. 

이는 현재에도 계속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제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수장절입니다. 수장절은 가을 추수를 마친 후에 드리는 감사절입니다. 이는 영원히 계속될 하나님의 섭리를 확신하며 드리는 감사절기입니다. 이렇게 세 절기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계속되어질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드려지는 절기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경 말미에서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이 절기를 꼭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골로새서 3장을 보면 이 감사의 정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감사에도 정신이 있습니다. 

마음 담음

모든 감사에는 마음이 실려야 합니다. 마음이 실리지 않으면 형식이 됩니다. 성경에 보면 감사하라는 말씀이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라는 말이 180여회 나오고 있습니다. 왜 명령형으로 감사하라고 하셨는가 하면 신앙인에게 감사는 삶의 이유이고 풍성한 삶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윤기 있는 삶의 내용이고 운명을 바꾸는 정신이고 또 실제로 감사는 우리의 운명을 바꾸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를 강조하신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엄마”라는 말입니다. 

다음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입니다. 이 감사의 단어와 언어 속에는 무한한 힘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데보라 노빌이라는 분이 쓴 “감사의 힘”이라는 책에서 그는 “언어만 바꿔도 인생의 운명을 99% 바꿀 수 있다”고 장담하였습니다. 감사에는 이런 힘이 들어 있습니다.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파월이 청년 때 빈민가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미래가 불투명하고 비전이 없어 보였지만 그는 언제나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서 일하던 흑인은 날마다 불평불만이었습니다. 주어진 환경과 자신의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했습니다. 어느 덧 수년이 흘러 파월은 미국 국무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옆에서 항상 불평하던 흑인은 그날도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언어 하나 생각 하나 의식 하나가 인생의 환경과 모습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일본에서 제일가는 다마고 보로 과자점에서는 직원들이 만나기만 하면 “감사합니다.” 라는 인사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루 24시간동안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녹음한 테이프를 틀게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과자하나가 제품으로 만들어져 시장에 나오게 될 때까지 그 과자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100만 번 이상을 듣고 세상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일본에서 제일가는 과자가 바로 다마고 보로 과자라고 합니다. 

또한 “감사하기”라는 시를 보면 다음과 같이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지금 세금 낼 걱정을 한다는 것은 내게 직장이 있다는 말이다. 옷이 몸에 꼭 낀다는 것은 내가 지금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말이다. 주차장 맨 끝에 자리에 자리 하나가 있다는 것은 내가 걸을 수 있다는 말이고 내게 차가 있다는 말이다. 교회 예배 때 맨 뒷자리에서 아줌마가 엉터리로 찬송을 부르는 것을 듣는 것은 내게 들을 귀가 있다는 말이다. 이른 새벽에 자명종소리에 깨어 일어나는 것은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말이다” 때로 우리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것들에 악센트를 두고 살아야 지혜로운 삶인데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만일 우리들이 그 보이지 않는 부분에 악센트를 두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조금만 바꾸어도 그 삶에도 엄청난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감사를 명령형으로 “너희는 감사하라”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귀한 것으로

감사에는 정신과 마음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제일 귀한 것으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감사의 대상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제일 귀한 것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원래 중요한 분에게 선물을 할 때에는 꼭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선물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물의 의미나 정신이 퇴색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제일 귀한 것이라면 먼저 값을 따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값을 중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 안에 담긴 마음과 뜻을 중시하십니다. 그렇기에 제일 귀한 것은 마음이 담긴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마음과 뜻이 담긴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일까요? 성경은 그것을 “첫 열매”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해방되었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거쳐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풍요로움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 가서 농사를 지어 첫 열매를 거둡니다. 그 얼마나 소중한 첫 열매입니까.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도록 백성에게 가르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첫 열매는 그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첫 월급은 내가 태어나 처음 번 돈입니다. 그만큼 의미가 있습니다. 그 돈으로 술 마시고 탕진할 수 없습니다. 첫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첫 자식을 얻을 때는 천하를 다 얻은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처음 것은 의미가 있고 마음이 있기에 귀한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가 하루의 첫 시간을 새벽예배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한 주간의 첫날인 주일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마음으로 우리가 우리의 소득 중 첫 부분을 십일조로 드리는 것이고 그런 마음으로 한 달의 첫날을 월삭예배로 드리고 한해의 시작을 송구영신예배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감사에는 마음과 뜻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첫 열매와 첫 자식은 내 것”이라고 하시며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은혜를 알라 

또한 감사하라는 말씀은 은혜를 알라는 뜻입니다. 은혜를 알지 못하면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첫 열매를 드리라”는 말씀도 은혜를 알라는 말입니다. 첫 열매가 어떻게 얻어지는지를 알게 되면 은혜를 알게 되고 그렇게 되면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첫 열매를 얻었습니까. 그것은 100% 은혜로 얻은 것입니다. 그 은혜를 실감하려면 농사를 지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지어보면 하늘의 고마움과 자연의 고마움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농사는 하늘의 도우심이 절대적입니다. 때를 따라 비가오고 해가 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늘의 소관일 뿐입니다. 그래서 농부는 하늘을 무서워합니다. 그리고 경거망동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도우심이 어떤 것인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농촌 출신이라 농사가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는지 잘 압니다. 쌀 한 톨이 어떻게 얻어지는지도 잘 압니다. 그 한 톨을 얻기 위해 얼마나 농부가 땀을 흘리는지 얼마나 가슴을 졸이는지 잘 압니다. 이렇게 농사에 대해 알게 되면 쌀 한 톨도 쉽게 버리지 않습니다. 농사가 얼마나 어려운지 또한 그 쌀이 어떻게 주어졌는지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농사에서 절대 기준은 하늘의 도움입니다. 하늘이 철따라 비를 주고 햇빛을 주어야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농부들은 가뭄에는 기우제를 지내며 하늘만 바라봅니다. 절대 자만하지 않고 허튼 수작을 부리지도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하늘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지도자를 선택하실 때 시골 출신을 택하셨습니다. 다윗, 아브라함, 엘리사, 노아 모두 시골 출신입니다. 모두 자연 속에서 하늘의 위대함을 알고 교만하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성공하였습니다. 특히 다윗은 양치기였습니다. 양 한 마리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맹수가 달려와도 양 한 마리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밤에는 잠을 자지 않고 양떼를 도적으로 지켜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된 후에도 그 마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 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사랑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생활과 무관했던 사울, 솔로몬, 르호보암은 실패하였습니다. 이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감사의 기본은 먹고 마심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음식 한 그릇을 앞에 놓고 감사할 수 있는데서 감사의 뜻이 시작됩니다. 미국에서 “나는 무신론자”, “나는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어느 날 청교도 한분을 식사에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그 청교도는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앞에 놓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립시다.”하며 정중하게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건 18세기 사람이나 하는 낡은 유물이 아닌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청교도가 “우리 집에도 당신 같은 식구가 하나 있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게 누구입니까, 대학 다니는 아들입니까?”하고 반색하며 물었습니다. 그때 청교도가 대답하기를 “아니요, 우리 집 돼지요”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기본은 “음식 한 그릇을 놓고 감사”하는 데 있습니다. 작은 것 하나에 감사하지 못하면 그 어떤 것에도 감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늘에 감사하고 농부에 감사하고 먹을 수 있음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장에서는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땅을 잘 가꾸라 

또한 감사하라는 말씀은 땅을 잘 가꾸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첫 열매로” 감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첫 열매, 좋은 열매는 좋은 땅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이라는 땅을 주셨습니다.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너무나 풍요롭고 좋은 땅입니다. 이 좋은 것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좋은 것을 좋은 줄 모르면 잃어버리게 됩니다. 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장자권이 그렇게 좋은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팥죽 한 그릇에 그 좋은 장자권을 팔아버렸습니다. 아담도 자신에게 주어진 에덴이라는 삶이 귀한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죄를 저지르고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 값을 모르면 버리고 잃고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천지 창조 후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충만하라, 정복하라(창 1:28).”고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은 이 세상에 왕성하게 자손이 넘쳐나게 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충만하라는 말은 이 세상에 하나님 뜻을 이루어 충만한 삶을 살라는 뜻일 것입니다. 문제는 “정복하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이 말을 잘못 해석해서 오류를 범한 것입니다. 그 말은 마구 개발하고 빼앗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정복하라”는 말은 히브리어 “카바쉬”라는 말인데 “잘 보호하고 관리하라”는 뜻입니다. 

즉 “자연자원을 유용하게 보호하고 활용하라는 문화 명령”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잘 관리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문화명령을 무시하고 세상을 잘못 관리했습니다. 그 결과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최악의 세상을 만들게 되었고 결국에는 물로 심판받게 된 것입니다. 

소돔에서도 마찬가지로 최악의 환경을 만들어 결국 불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도 이 세상이 마구 파헤쳐지고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쓰레기와 오물로 극심하게 오염되었습니다. 그래서 땅이 병들고 공기가 병들고 물이 병들고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오염된 물과 공기와 땅은 역으로 인류에게 무서운 재앙을 안겨주어 많은 사람들이 정체모를 질병으로 아파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두가 문화명령을 어긴 결과입니다. 

이 땅은 어머니의 몸과 같습니다. 어머니의 몸은 씨를 받으면 잉태합니다. 그리고 몸속에서 싹을 틔우고 생명을 키워 결국 세상에 생명을 태어나게 하십니다. 그것도 한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생명을 몸속에서 키워 울긋불긋한 자연의 열매들처럼 새 생명을 세상에 낳아 놓습니다. 이것은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땅도 어머니의 몸과 같이 씨를 받으면 싹을 냅니다. 그리고 그 싹을 키워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것도 수차례씩 말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땅은 온유해서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무슨 씨앗이든지 떨어지면 모두 받아들여 싹을 냅니다. 그리고 땅은 씨를 받으면 껍데기를 벗기고 분해시킵니다. 심지어 그것이 시체라 할지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여 분해시키고 썩게 하여 또 다른 생명체를 위하여 영양분으로 공급합니다. 그래서 땅은 싹을 내고 마침내 어머니가 여러 형제들을 낳아 놓는 것처럼 울긋불긋한 열매들을 맺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땅을 만드셨고 그것을 건강하게 잘 관리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는 이 때, 우리는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감사의 정신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첫 열매로 감사하라는 말은 감사의 정신을 회복하라는 뜻입니다. 첫 열매를 맺게 하는 좋은 땅을 잘 가꾸고 관리하라는 뜻에도 우리는 경청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일찍이 명령하신 문화명령이며 그로 인해 감사의 정신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신앙인의 삶이고 내용이고 고백이고 의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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