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아름다운 믿음(2) (히 11:27-29)

첨부 1


아름다운 믿음(2) (히 11:27-29)

지난 주간에 동지방 목회자 수양회로 3박 4일간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제주도를 10여 차례 다녀왔습니다. 어떤 때는 한라산을 등정할 목적으로만 갔었고, 또 어떤 때는 그냥 관광으로, 또 어떤 때는 몸이 아파서 요양하러...  또 어떤 때는 성지순례로 다녀왔습니다. 

금번에는 지방 목회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질 것을 목적으로 다녀왔습니다. 그래도 의미있는 여행이 되기 위해 제가 건의해서 우리나라 국토 최남단에 있는 마라도 교회, 제주도에 최초로 복음을 전한 순교자 이기풍 목사님 유적, 제주도 출신 1호 목회자이며 순교자인 이도종 목사님 유적지인 대정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 외에도 카톨릭의 성 이시돌 목장 옆의 성 클라라 수도원에 딸려 있는 ‘비아 돌로로사(십자가의 길)’도 돌아보고 왔습니다. 

그 중에 순교자인 이기풍 목사님과 이도종 목사님의 실화는 우리에게 은혜를 끼침. 장로교 최초의 일곱 목사님 중의 한 명인 이기풍 목사님은 평양 출신으로 개인사숙에서 한학을 공부했던 분입니다. 원래 괄괄한 성격으로 싸움과 술을 좋아했고, 젊은 날에 서양선교사들을 박해했습니다. 1890년 마펫 선교사님을 돌로 쳐서 크게 다치게 한 것은 한국 교회사에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마펫 선교사님에게 용서를 구하고,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가 신학교에 들어가서 길선주 목사님 등과 함께 목사 안수를 받은 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선교사로 제주도에 파송됩니다. 당시 제주도는 많은 사람들이 뱀을 숭배하는 것을 비롯하여 온갖 우상을 섬기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1899년에 있었던 ‘신축교난’이라는 민란이 있었고 이때에 천주교와의 얽힌 문제로 제주도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 갖은 편견을 갖고 있었기에 이기풍 목사님은 수차례의 주민들에게서 위협을 받았고, 또 엄청난 굶주림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에 전심전력을 다했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제주도에 10여개 이상의 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그 이기풍 목사님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정면으로 맞서서 반대를 한 것 때문에 일경의 심한 취조와 고문으로 결국 순교하게 됩니다. 이기풍 목사님의 믿음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지난 주에 이어서 히브리서에 있는 모세에 대한 말씀을 봅니다.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노예로 혹사당하던 애굽 땅에서 떠나자고 설득하여 애굽을 떠납니다. 

오늘 본문은 애굽을 떠나는 과정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보여 준 믿음의 정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은 참된 믿음이요 아름다운 믿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출애굽의 과정에서 보여준 모세와 이스라엘의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그들이 보여 준 아름다운 믿음, 참된 믿음은 어떤 것일까요? 

1. 참된 믿음은 애굽을 온전히 떠나는 것입니다(성별). 

애굽을 떠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입니까? 그것은 자유와 새로운 삶과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7절)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가 애굽을 떠난 것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을 떠났습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는 2번 애굽을 떠납니다.  

1) 애굽 사람 죽인 것이 탄로 나자 바로를 두려워하여 미디안으로 도망갑니다.  
2)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떠납니다(출13~14장). 

성서학자 중에는 본문의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이 구절이 첫 번째일까? 두 번째일까? 평생 고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두 번째입니다. 왜냐하면 28절에 유월절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유월절과 관련해서는 두 번째 떠나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기 전에 모세와 바로는 팽팽한 대결을 벌입니다. 

출애굽기 7장부터 모세와 바로의 대결로 인한 10가지 재앙이 나옵니다. ① 피, ② 개구리, ③ 이, ④ 파리, ⑤ 악질, ⑥ 독종, ⑦ 우박, ⑧ 메뚜기, ⑨ 흑암, ⑩ 장자의 죽음. 

바로의 이야기를 봅니다. (출8:25) ‘...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거기에 대한 모세의 단호한 선언(8:26~27)이 있었고, 계속해서 바로가 말합니다. (출8:28) ‘...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  (10:11) ‘남자 어른만 가라’, (10:24) ‘양과 소는 놔두고 가라’, 

이에 대한 모세의 대답입니다. (10:26) ‘모두 우리와 함께 가야 한다’,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하려 할 때 자꾸만 붙들어 두려는 계략이 있습니다. 그것이 마귀의 계략입니다. 

진정한 신앙이란 애굽을 온전히 떠나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우리가 앞의 푯대를 향해 전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의 성숙과 전진을 방해하는 사탄의 역사가 내 속에 엄습하여 올 때 우리는 모든 삶을 주께 맡기겠다고 단호히 맞서야 합니다. 

배는 밧줄을 끌러주지 않으면 망망대해를 향해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를 붙들고 있는 밧줄은 무엇입니까? 그 밧줄을 끊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 밧줄을 잘라버리지 않으면 우리 신앙의 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깊은 바다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참된 신앙, 아름다운 믿음은 애굽을 온전히 떠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 믿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27절) “왕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모세는 본래 용기와 뱃장을 타고 난 사람이 아닙니다. 

(출2:14)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출2:15)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모세가 처음 애굽을 떠난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두려움은 언제나 도피를 가져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이나 난관에 부딪히면 마음이 괴롭고 무거워집니다. 그때 우리는 도피하고 싶어합니다. 이 모세가 40년 후 두 번째 애굽을 떠나게 되는데, 그때는 도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바로와 당당히 맞서게 됩니다. 두려움은 도피를 낳지만, 믿음은 어떤 상황에라도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기도하고 싶을 때 기도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기도 별로 안 하다가 문제가 생기기만 하면 기도원에 뛰어가는 사람은 얕은 사람입니다. 

기도는 평상시에 많이 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상황에 직면하여 대결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바로의 진노를 두려워 아니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도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홍해바다 앞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보면 두려움에 떱니다. “여기서 죽으면 어떻게 하나?”, “모세여,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에 파묻으려 하느냐?” 

그들의 얼굴은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고, 혼잡과 혼미 속에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 두려워 떠는 군중들 속에서 모세가 외칩니다. 
(출14:13)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모세는 그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시56: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히13:6)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롬8:31)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사12: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두려움을 극복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영원하신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이 믿음을 통해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 직면할 용기를 얻습니다. 결국 믿음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모세가 온갖 고통과 역경을 견딜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27절)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모세의 시선은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시각화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그 집에서는 식사 때 식탁에 있는 의자가운데 하나는 늘 비워둡니다. 이 빈 의자는 예수님의 의자라는 것입니다. 집안의 형제들이 싸우다가 ‘야! 조용히 해라 예수님이 들으신다’, 우스워 보일지 모르지만 부모가 아이들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유명한 부흥강사 중 이성봉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늘 오른손을 꼭 쥐고 다녔다고 합니다. 누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왜 그렇게 하십니까?”, “나 예수님 손잡고 다니지!” 

여러분이 실망과 좌절 속에 빠져 있다면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마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참된 믿음, 아름다운 믿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3.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방편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28절)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 땅을 떠나려는 때, 바로의 변심이 또 발생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최후의 재앙으로 애굽 땅에서 처음 난 것들을 모조리 죽이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이것이 10번째 재앙입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어서 내린 저주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 믿는 자들을 위한 구원의 방편을 제시하셨는데 그것이 유월절의 ‘피 뿌림’입니다. 그 예식은 흠 없는 양을 잡아서 그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피를 보고 죽음의 사자가 넘어갑니다(유월). 

당시 이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이 내리던 애굽 땅을 생각해 봅니다. 

① 첫 번째 집에서 이런 대화가 들려옵니다. ‘아버지, 양 잡아서 피를 발랐나요?’, ‘얘야 그까짓 피를 바른다고 하나님이 죽일 사람 살리고 안 바른다고 해서 살 사람을 죽이겠느냐? 그런 맹목적인 샤머니즘을 믿지 말아라’ 

이 아들은 잘난 아버지를 굳게 믿고 잤습니다. 그 이튿날 초상이 났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구원의 방법보다 휴머니즘이나 인간의 지성이 탁월하다고 믿은 착각이 가져온 비극입니다. 

② 두 번째 집입니다. ‘아버지, 우리 집 문설주에 피 발랐나요?’, ‘그럼, 발랐지’, ‘정말 발랐는지 확인하고 싶어요’, 그날 밤 죽음의 천사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불안합니다. 그래서 뜬눈으로 밤을 지샙니다. 

③ 세 번째 집입니다. 신앙이 좋은 아버지와 아들이 있습니다. 피를 바르고 온 식구가 찬양을 드리고 그 재앙의 밤에도 평안히 잠을 이루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찬란한 태양이 이 집을 비추었고 그 가족들은 주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무어라 하든지 성경은 구원의 길은 하나밖에 없다고 가르칩니다. 

(행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어린양을 준비시켰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 전부터 우리를 위해서 예비 된 거룩하고 흠 없는 어린양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고 말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 예수님이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이 되어서 희생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으십니까?  참된 믿음은 우리의 방법과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의 방편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 오래 다녔어도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분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양심껏 행동하면 천국에 가겠지요”, 평생을 교회에 다닌 분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내가 양심껏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오직 내 죄 때문에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을 때에만 구원받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피흘림’과 ‘피뿌림’의 개념이 서로 다릅니다. - ‘피흘림’이란 속죄의 근거입니다. 애굽 땅에 하나님의 재앙이 내리던 날 밤, 어린 양 하나가 그 집안사람을 살리기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이 피로 구원받는 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흘려진 피를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뿌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피뿌림’이 우리를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피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을 아는 것으로 효험이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설주에 그리스도의 피를 뿌려야(받아들이고 믿음) 합니다.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인이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생각해 봅니다. 그 피뿌림의 순간, 하나님의 능력 안에 보호됩니다. 그리고 광야를 향해 영광스런 전진을 합니다. 그때부터 참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시작입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시작이 아닙니다. 어떤 체험을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그 순간부터가 참 신앙생활의 시작입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방편을 성경말씀대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제주도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모슬포 항구에서 가까운 ‘대정’이라는 곳에 ‘대정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에는 순교기념비가 있습니다. 1948년 제주도에 4.3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교회에는 ‘이도종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17세 때 이기풍 목사님을 만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고, 이 목사님의 권유로 평양으로 가서 숭실학교를 마치고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후, 제주 출신으로는 1호 목사가 되어서 제주도에 와서 몇 개 교회를 개척하였고, 제주도 전역을 다니며 열심히 순회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 해 6월 자전거를 타고 화순교회에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가던 중, 산속에서 ‘공산 폭도’들을 만나서 붙잡혔습니다. 그들은 ‘양놈의 사상을 전파하는 예수쟁이’ 라고 하고, 또 “미 제국주의의 스파이‘라는 혐의를 씌우고 끌고가 구타를 하고, 크게 파 놓은 구덩이에 생매장을 당하였습니다. 

이 목사님은 생매장을 당하는 순간에도 계속 찬송을 불렀다고 하며 마지막 기도로, ”주여, 저들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하고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 이도종 목사님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시라는 신앙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세례 예식을 거행하는데 이 세례예식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모신다는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 아름다운 믿음은 하나님의 거룩한 구원의 방편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오늘 그러한 믿음을 소유하고, 성별된 삶을 살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보고 살기로 다짐하는 여러분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