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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에 붙들려 있는 죄수 (행 28:23-31) -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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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붙들려 있는 죄수 (행 28:23-31)

요즘 뉴스를 들어보면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닌 것 아보입니다. 정말 미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국회의사당에서 체류탄을 터트린 국회위원이 있어 세계적인 망신을 당했습니다. 또 엊그제는 어머니를 죽어 놓고 8개월을 집안에 숨겨둔 학생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다 들었을 것입니다. 정말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명예욕에 미친 사람이 있고 권세욕에 미쳐 다른 사람이야 죽든 말든 자기 권세만 유지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향락에 미친 사람, 노름에 미친 사람, 그리고 취미라 하지만 낚시에 미친 사람, 골프에 미친 사람 등 참으로 미친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에 미쳐 있나요? 여러분은 괜찮은가요? 

실은 오늘 우리도 미친 사람들입니다. 미치긴 미쳤는데 성령에 미쳤고 복음에 미친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미쳤다합니다. 그들 눈에는 정말 완전히 미쳤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미쳤다기 보다는 붙들려 있다 고 해야 합니다. 성령에 붙들린 것이고 복음에 “붙들린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과 복음에 붙들리게 하신 이유가 뭘까요? 붙들리지 않고는 사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뭘까요? 사명이 뭘까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명령이 무엇인가요? 

막16:15~16절을 보세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복음을 온 세계에 전하라는 것, 이것이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어찌되었나요? 이 명령을 하신지 200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나요? 아직도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곳이 수없이 많습니다.   

최근에 선교용어중에 “미접촉 종족”이란 단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미전도 종족이란 복음이 2% 미만일 경우 미전도 종족이라 하는 한 번도 복음을 받은 적이 없는 종족을 “미접촉 종족”이라 표현합니다. 

아직 한 번도 복음을 접촉해보지 못한 종족, 선교사가 한 번도 가보지 않고, 성경번역, 라디오 선교 등이 한 번도 전해지지 않은 종족을 의미합니다. 이 “미접촉 종족”의 수가 약 1,140여 종족으로 추정된다합니다. 

이 숫자를 인구수로 환산하면 5억 4천 만명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놀라지도 않지요? 벌써 200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5억이 넘으니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가 먼저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실 날이 멀지 않았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아직도 한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인구가 5억 4천만이나 되는 되는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을 보세요. 

사도바울이 1,2,3차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갑니다. 거기서 유대인들에게 폭행을 당하다가 체포됩니다. 그래서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다가 로마로 끌려가게 됩니다. 로마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상소하게 되어 죄수의 몸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거기 가서 2년 동안 복음을 마음껏 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정말 기가 막힌 일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붙들려가지 전에 그는 복음에 붙들린 사람이기에 하나님이 그를 통해 일하신 것입니다.   

그를 통해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보여줍니다. 
우리 하나님은 복음에 붙들린 사람에게 어떤 일을 하시나요? 


1. 거룩한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평상시 소원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21절을 보세요.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사도 바울은 마음속에 늘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로마를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소원을 갖고 계시나요? 하나님이 네 소원이 뭐냐 하고 물으신다면 뭐라 하실 것인가요?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라면 하나님은 그 소원을 결국 이루어 주시는 분입니다.   

바울에 예루살렘에서 분쟁이 일어나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때 밤에 주께서 바울에게 나타납니다.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23:11절입니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소원을 주님이 아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로마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바울이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는데 주변 사람들이 말립니다. 
그런데도 무시하고 갑니다. 그런데 거기서 유대인들이 그를 고발하고 재판을 받게 되었고 결국 로마로 가는 길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인도하심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백부장의 호위를 받고 갑니다. 겉으로 보면 바울은 죄수이고 백부장은 감시군인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백부장은 경호병이고 주인공은 바울은 배삯을 내지 않고 공짜로 승선하고 갑니다. 

그러다가 풍랑을 만나면서 상황이 바뀝니다. 바울이 그 배에 승선했을 때는 죄수였습니다. 그런데 배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바울은 겉으로는 죄수지만 실상은 그 배의 지도자가 되어 로마에 도착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소원을 이루려는 사람에게는 기막힌 방법으로 도우십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결국은 바울의 소원은 이루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님을 향한 거룩한 소원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은 그 소원을 이루게 만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할렐루야.
  

2. 복음 전할 환경을 만들어 주십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면 죄수로 끌려갔으니 도착하자마자 당연히 감옥으로 직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16절에 보면 백부장이 자기를 지키는 군인 한명을 붙여서 따로 지내게 자유를 줍니다. 아마도 백부장이 바울과 함께 배를 타고 오다가 바울이 행한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는 악한 죄인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가 주어진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왜 로마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전합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머물고 있는 집에 찾아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씀을 듣게 됩니다. 

23절을 보세요. 

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자세히 보세요. 바울이 전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증언합니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 즉 구약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에 대하여 전합니다. 

그가 어떤 일을 합니까? 자신의 석방을 위해 노력할 수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재판을 받게 된 일이 억울한 일이라고 호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의 관심사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가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23절을 다시 자세히 보세요. 여기에 나오는 문구를 잘 살펴보세요. 

“강론하여” “증언하고” “권하더라”. 

“강론했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선포했다는 말입니다. 
“증언했다”는 말은 입증했다 증명했다는 말입니다. 
“권했다”는 말은 설득했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얼마나 열심히 복음을 전했는가를 볼 수가 있습니다.   

얼마동안 그렇게 했나요? 30절에 보세요.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2년 동안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 약속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에 붙들려 있는 사람에게는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로마에 가서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바울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죽으러 가는 줄 알았던 그 길에 마음껏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결국 바울이 죽은 후 약 250년 후, 그 로마제국이 AD 314년경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섭리는 오묘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마음속에 거룩한 꿈과 비전을 품고 있으면 하나님은 그 일을 하게 만드시고 그 길을 열어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사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사도행전20:24절에 바을 사도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러니 그 열정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이때의 바울의 인생은 시한부 인생과 같았습니다. 언제 법정에 가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복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불살랐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사명의 가치를 그는 알았습니다. 

그에게 부여된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 사명이 자기 생명보다도 더 귀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더 귀합니까? 사명과 생명, 이 두 가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무엇을 주신 것일까요? 생명을 위해 사명을 주신 것일까요? 사명을 위해 생명을 주신 것일까요? 답은 분명합니다. 사명을 위해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도바울을 부르신 목적이 뭐지요? 사도행전 9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나니아를 사울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9:15절을 보세요.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이름을 전하기 위한 택한 그릇입니다. 그런데 전하는 대상이 누굽니까?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사명이고 이것 때문에 하나님은 바울을 불러내신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이루어집니다. 할렐루야! 
  

4.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명령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몇가지 명령하십니다. 

A) 어디로 가서 전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땅 끝”을 가라 하십니다. 
행1:8절을 아시지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당시 세계 수도인 로마를 땅 끝으로 마음에 품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그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로마시민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태어날 때부터 주신 특권입니다. 그의 부모가 ‘다소’라는 곳에서 살다가 바울을 낳았습니다. 그러기에 노력한 것도 없이 유대인이면서 로마 시민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아마도 그러기에 로마를 마음에 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디를 품겠습니까? 우리는 대한민국 시민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여권을 가지면 갈수 있는 나라가 170여개 국가입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에게 중국에 가셔서 가르쳐 달랬더니 미안하다며 사양합니다. 알고 보니 미국 시민권자입니다. 그래서 중국 비자 내기가 어렵답니다. 비용도 우리보다 비싸고 기간도 많이 걸린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 좋은 나라입니다.   

굳이 멀리가기 어려우면 주변을 살펴보세요. 아직도 예수를 믿지 않고 멸망으로 달려가는 영혼이 얼마나 많은지요. 친척, 가족, 직장 동료, 수없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누가 갈 것입니까? 바로 여러분입니다.   

우리 수원노회에 사명의 교회를 개척하고 30년 동안 사역하신 한광수 목사님은 다음 달에 은퇴를 하십니다. 나이가 올해 60세입니다. 그런데 은퇴하십니다. 
왜요? 선교사로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그 교회 안수집사 한사람도 65세 되셨는데 직장에서 은퇴하고 아프리카 탄자니아로 선교사로 나갑니다. 

여러분은 어디를 갈 것입니까? 여러분이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생각하고 그곳을 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B) 주님께 맡기고 순종하라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형편이 안된답니다. 그리고 능력이 없다고 핑계를 댑니다. 

그런데 깊이 생각해 보세요. 보내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형편을 나보다 더 잘 아십니다. 그리고 능력은 그분이 주시는 것입니다. 

특히 성령의 권능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니 믿고 순종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이 뭡니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자는 쓰시고 거역하는 자는 안 쓰십니다. 

노아를 보세요. 그가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능력입니다. 그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니 동물들이 스스로 찾아나온 것입니다. 그러니 노아 가족 8명은 살아난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순종의 사람입니다. 그의 마지막 시험은 순종시험입니다. 
모세도 40년간 훈련한 것이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단 마귀의 속삭임입니다. “너는 안돼” “너는 못해” “너나 잘 믿어라” 합니다. 속지 마세요. 주님은 순종하라 하십니다.   

사도행전도 보세요. 하나님이 누굴 쓰십니까? 

8장에서 빌립집사 순종을 통해 에디오피아 내시를 구원합니다. 
9장에서 아나니아 순종을 통해 사울을 구원합니다. 
10장에서 베드로의 순종을 통해 고넬료를 구원합니다. 

8장에서는 흑인종, 9장에서는 황인종, 10장에서는 백인종을 구원하십니다. 

8장에서는 집사 빌립, 9장에서는 평신도 아나니아, 10장에서는 사도 베드로를 들어 쓰십니다. 

공통점은 전부 순종하는 사람을 쓰신다는 것입니다. 

순종이 제일 어려웠던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그래서 환상을 세 번씩이나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제일 말 잘 듣는 것은 집사 빌립니다.ㅎㅎㅎ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우리의 환경은 바울보다 얼마나 좋습니까? 시간이 없다고요? 능력이 없다구요? 그런 핑계대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전해도 안받아 들인다고요? 

오늘 본문 24절을 보세요.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사도 바울이 전해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으나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책임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단지 순종하고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구원해야 할 영혼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가 가야 할까요? 


C) 사도행전 29장을 써 나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 28장은 사도행전 마지막장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끝을 냅니다. 뭔가 이상 하지 않습니까? 31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이것이 끝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끝을 맺었을까요? 사도행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도행전은 여러분에 의해 써내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사도행전은 어디까지 써 내려가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말씀 전파와 상관없는 직업이라고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갖고 계신 그 직업은 어떤 형태로든 말씀 전파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단순히 먹고 살라고 그 직업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라고 주신 것입니다. 

장사하는 분은 그 일을 통해 수익을 얻어 복음 사업에 동참하라는 것입니다. 또 그 장사를 통해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회사를 다니시는 분은 그 직장에 파송된 선교사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 믿지 않는 집에 어쩔 수 없이 시집가신 분은 그 집안을 구원하러 보내신 선교사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선교는 반드시 가는 사람만이 선교사가 아닙니다. 보내는 사람도 선교사입니다. 우리 교회가 신학교를 중국과 인도에서 일꾼을 기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선교후원사역에 동참하는 모든 분들이 선교사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의 사업체를 통해, 그리고 가정을 통해 선교후원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곧 선교입니다. 
여러분 각자에게 사도행전 29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여러분도 복음에 붙잡힌 죄수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 하루하루는 사도행전 29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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