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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소중한 것 (요 4: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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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중한 것 (요 4:23-24)


오늘 하나님께 예배드리고자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들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불생무명지초(地不生無名之草)라는 말이 있습니다. 땅은 이름 없는 풀을 내지 않는 다는 뜻으로 모든 만물은 존재의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강단의 마이크도 존재의 목적이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특징은 그 사물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위해 존재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마이크는 마이크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성도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시계는 시계 자체를 위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먹고 마시며 세상 연락을 즐기다가 때가 되면 죽는 것이 목적이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우주만물의 창조자 하나님을 고경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전도서 12장 13절에“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하셨습니다. 본분의 사전적 의미는“마땅히 지켜야 할 직분”이라고 했습니다. 

인간 존재의 의미가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간의 삶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 말씀하시기를“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 4:23~24) 하셨습니다. 

一. 예배는 인간을 지으신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이에 대해 이사야 43장 21절 말씀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5~6에는“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로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인간 존재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해 예배를 받으시고자 인간을 창조 하셨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처럼 드리는 이 예배는 삶의 한 방편이 아니라 목적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예배를 드리므로 위로 받고, 은혜를 받고, 새 힘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예배가 삶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二.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의 목적이 예배를 위함입니다.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피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회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 갈수 있고, 예배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죄를 지은 사람이 자기가 범한 죄 대신에 짐승을 잡아 그 피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속죄제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9장 14절에“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홈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축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 하겠느뇨.”라고 하셨습니다.“섬긴다.”는 말은“예배”(Service. Worship)라는 말과 뜻이 같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인간이 창조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천사들의 경배를 받으셨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하여 경배와 찬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천사들의 경배보다 자녀들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기를 더 원하시는 것입니다. 

三. 예배는 영원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끝이 있습니다. 세상 종말에 모두가 불타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는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할 일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 9절~11절에“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5장 12절~13절에는“천사들이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 하도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 찌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모두가 영원토록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나타낸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신 것은 우리 자신만을 즐겁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 경배하며 예배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43장 21절 말씀처럼“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 4:23~24) 하셨습니다. 

四. 참된 예배는 삶의 성공으로 이어집니다.

430년간 애굽에서 노에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어 광야를 지날 때 언제나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진을 쳤습니다. 성막이란 하나님을 만나는 처소로서 오늘날 교회를 가리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막을 중심한 삶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언제나 교회중심, 예배중심의 삶을 살아가야 함을 가리키는 교훈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지 항상 먼저 재단을 쌓았습니다. 그 재단이 곧 예배입니다. 아브라함은 예배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던지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제단에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을 때에도, 자기 생명보다 소중한 외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중심을 보시고 산양을 준비하셨다가 그것으로 제사를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창세기 22장 16절~17절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곳 이름을“여호와 이례”라고 했습니다.“여호와 이례”란 “하나님이 준비 하셨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 예배를 잘 드리면 다른 모든 것은 하나님이 다 준비해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1절~33절에“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하셨습니다. 

몽골에서 선교하는 이용규 선교사는 그의 저서 <내려놓음>에서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나타난 경험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유학 생활과 몽골 선교를 통해, 내려놓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것을 받는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체험했다. 2005년 봄, 몽골 이레교회에서 개척한 베르흐 지역의 예배 처소를 방문해서 예배드리던 중에 있었던 일이다. 벌러르라는 자매가 예배 시간에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교회에 들어왔다. 

그녀는 몇 달 전 우리 팀의 기도를 통해, 듣지 못하던 귀가 열린 자매였다. 예배 몇 시간 전에 소를 잃어버려서 소를 찾으러 뛰어다니다가 예배 시간이 임박한 것을 알고, 소를 버려두고 말씀을 들으려고 들판을 가로질러 달려왔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하나님께 그녀가 소가 아닌 예배를 택한 그 믿음의 결단을 부끄럽게 하지 말아달라고, 그 자매가 소를 다시 찾을 수 있게 해달 라고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자기 힘을 의지하다가 안 되면 자신의 실패지만. 하나님께 의지하다가 실패한다면 하나님의 명예에 먹칠하는 것이라고 선포하고 기도했다. 예배를 마치자마자 밖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잃었던 소가 집이 아닌 예배 처소를 먼저 찾아온 것이다. 소가 아닌 예배의 기쁨을 선택한 소녀는 예배와 소, 두 가지를 함께 얻었다. 먼저 믿은 우리 중에는 소 대신 예배를 택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묻고 싶다.” 

반면 예배에 실패하면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의 장남 가인의 경우에서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되 정성이 결여된 제물을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지 아니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창세기 4장 4절~5절에“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고 하셨습니다. 

동생 아벨은 정성을 다해 양의 첫 새끼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형식적인 제물은 드렸습니다. 사람의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 일로 인해 가인은 동생 아벨을 미워한 나머지 동생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자손손 저주를 받게 됩니다. 이러한 내영이 창세기 4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처럼 예배의 성공은 삶의 성공이며, 예배의 실패는 곧 삶의 실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예배드리는 것과 드리지 않는 것의 차이입니다. 참 신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 소홀히 여기는 것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축복을 받는 자와 받지 못하는 자의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예배의 차이입니다. 이에 대해 다윗 왕의 경우와 다른 왕의 경우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다윗 신앙의 특징은 성전 사랑과 예배중심의 삶을 살아간 것입니다. 그 결과 다윗의 심령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서 하나님을 정성껏 섬겼습니다. 이러한 다윗을 보신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사도행전 13:22)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양치기 목동 출신 다윗은 구약성경 가운데 가장 축복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종교적 엘리트 들이 바쁘다는 것 때문에 예배드리는 것을 소홀히 한다면 그는 도덕적으로 진흙탕에 빠지게 된다.”라고 경고 했습니다. 예배에 대해 내 신앙의 위치가 어디인지 한번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五.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본문인 요한복음 4장 23절~24절에“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하셨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는 말씀은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예배에 있어서 장소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드리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깨닫고 이에 감사하며 감격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러한 예배는 성령의 임재 하에서만 가능합니다. 인간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만나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는 예배는 진정한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진정한 찬송이나 기도를 드릴 수 없고, 더욱 성령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는 말씀을 바로 전할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예배하라.”는 말씀은 성경 말씀의 진리를 토대로 예배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곧“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 중심의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예수님을 높이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깊이 깨닫고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또한 주님의 뜻을 따라 살려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되 별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배의 요소에 대해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1. 예배에는 정성된 마음의 찬송이 있어야 합니다.

찬송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표현입니다. 장차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계속할 것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찬양은 입술의 열매를 드리는 제사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에“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하셨습니다. 

2. 예배에는 진실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온 한주간의 생활을 뒤돌아보며 참회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하기에 누구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 없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참회하는 사람입니다. 시편 34장 18절에“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요한일서 1장 9절에“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예배에 성령님께서 깊은 깨달음을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은혜가 없이는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설교자의 영력을 위해, 말씀을 받는 자신의 심령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 할지라도 길가 밭이나 돌밭처럼 단단하고 강퍅해진 마음에는 결코 은혜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예배에는 정성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시편 50편 23절에“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하셨습니다. 예배를 드리되 감사의 행위를 옳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 우리가 드리는 헌금입니다. 헌금 드리는 자의 자세에 대해 고린도후서 9장 7절에 말씀하시기를“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하셨습니다. 

구약의 말라기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되 눈먼 것, 저는 것, 병든 것, 상품가치가 없는 찌꺼기를 드렸습니다. 이를 보신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것을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말라기 1:8)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정성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즐거움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특히 헌금 중에 가장 먼저 드릴 헌금은 온전한 십일조입니다. 10분의 1은 하나님이“내 것”이라 했고 이것을 드리지 않으면 도적질 한다고 했습니다. 

이 예물을 드리는 사람에게 축복을 약속하시기를“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라기 3:10~12)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고귀한 약속입니까?

4.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뿐만 아니라 영의 양식인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말씀을 받는 성도들의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에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세에 대해 말씀하시기를“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사도가 전하는 설교를 들을 때 단순한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주의 종들로 하여금 기록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을 때 우리의 심령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능력에 대해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말씀하시기를“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의 삶의 길을 밝혀 주십니다. 시편 119편 105절 말씀에“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시편 119편 98절~100절 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지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2차 대전 중 뉴턴 베이커 미 국방장관이 프랑스의 야전병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두 다리와 두 팔을 다 잃어 마치 축구공처럼 보이는 병사가 시체처럼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장관은 자기가 서명한 성경을 그의 가슴에 놓고 떠났습니다. 너무나 불쌍해서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종전 후 베이커 씨는 명문인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이사장으로 있었습니다. 어느 졸업식 때 그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축구공 같았던 바로 그 병사가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곁에는 결혼한 부인까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감격의 재회를 하였습니다. 팔다리 없는 박사가 말했습니다.“그때 저에게 주신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참 생명이시고 빛이심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저에게 새로운 인생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능력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본문인 요한복음 4장 23절~24절에“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하셨습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질문을 한다면 어떤 분은 전도, 어떤 분은 구제, 또 어떤 분은 사랑의 교제, 어떤 분은 봉사, 등의 여러 가지 대답을 할 것입니다. 이 모두가 교회에서 꼭 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이에 앞서 가장 소중히 여겨야할 것의 1순위는 예배입니다. 예배가 교회의 최우선의 사명입니다. 예배다운 예배가 있을 때에 나타나는 결과가 전도요, 봉사요, 구제요, 친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목적입니다. 

예배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시요, 절대적 권위자이신 하나님께 대하여 존경과 복종과 경외와 숭배를 표현하는 인간 최고의 도덕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예배의 차이입니다.
참 신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는 예배의 차이입니다.
복을 받아 누리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가 예배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온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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