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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의 미래는 보장되었습니다 (계 7: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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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래는 보장되었습니다 (계 7:9-12)
  

< 절망을 버리십시오 > 

어느 날, 한 러시아인이 냉동차 안에서 일할 때 안에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누군가가 냉동차의 문을 닫았습니다. 안에서는 도저히 그 문을 열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고 죽는 순간까지의 과정을 냉장고 벽에 기록했습니다. “10시 15분-냉장고에 갇혔다. 10시 30분-손발이 얼고 있다. 10시 45분-몸이 굳어진다. 11시 30분-이제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다.” 기록은 거기서 끝났습니다. 

다음 날, 사람들은 냉동차 안에서 죽은 그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냉동차의 전원 연결 코드가 빠져 있었습니다. 그를 죽인 것은 추위가 아니라 “나는 곧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절망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처럼 생각이 중요합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와 기쁨을 잃지 않겠다! 지금은 힘들어도 축복의 때는 반드시 온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대로 됩니다. 그러므로 생각 단계부터 승리하고 이왕이면 크게 생각하십시오. 

왜 경제학자들 중에 큰 부자가 없습니까? 경제학이 돈 버는 방법에 대한 학문이 아닌 이유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는 경제학자들의 생각이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자원은 한계가 있다는 사고에서 경제학을 펼치니까 그런 제한적인 사고가 큰 부자가 되는 길을 막습니다. 돈도 결국 생각대로 모입니다. 세상에 할일은 많고 돈 벌 방법도 많다는 긍정적인 배포를 가진 사람들이 큰 부자가 됩니다.

삶은 생각대로 되고 믿음대로 됩니다. 믿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자주 “네 믿음대로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크게 믿으면 크게 받고, 작게 믿으면 작게 받고, 안 믿으면 못 받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주시려는데 현 상황에서 안주하면 약속된 축복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축복은 믿음으로 발 벗고 나서서 발바닥으로 흔적을 남겨야 얻습니다. 

요한복음 14-16장에 있는 예수님의 고별설교에서 예수님은 기도응답과 성령을 보내주시는 축복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설교 말미에는 장차 올 박해도 언급하지만 결국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비록 환난이 있어도 성도에게는 최종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이미 이겨 놓고 싸우는 존재입니다.


< 복된 삶을 위한 3가지 확신 >

요한계시록을 보면 말세에 관한 두려운 환상이 많지만 동시에 간간이 찬란한 천국 환상도 보여줌으로 그 두려움을 이겨내게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1장의 서론 후에 2-3장에서는 소아시아의 7교회로 보내는 주님의 메시지를 통해 바른 신앙을 교훈합니다. 그리고 6장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말세의 두려운 환상을 보여주시기 전에 먼저 구원과 승리의 확신을 통해 담대한 마음을 가지도록 4-5장에서 천국 환상을 보여줍니다. 

그 천국 환상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말세의 비밀이 담긴 일곱 인으로 인봉된 책을 봤습니다(계 5:1). 그 비밀을 알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 인봉된 책을 개봉할 수 없어서 사도 요한은 서럽게 큰 소리를 내며 울었습니다(계 5:4). 그때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있던 24장로 중의 한 명이 사도 요한에게 말했습니다. “울지 말라! 어린양 예수님이 그 책과 일곱 인을 개봉할 것이다(계 5:5).”

그 순간 하나님의 보좌 옆에 서신 어린양 예수님이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그 책을 취하자 네 생물과 24장로와 거대한 무리의 천사와 모든 천지만물이 어린양 예수님 앞에 엎드려 찬송과 영광을 돌렸습니다(계 5:8-14).

그런 천국 환상으로 강력한 천국소망과 구원의 확신을 주신 후 요한계시록 6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일곱 인이 하나씩 개봉되면서 말세에 관한 무서운 환상들이 파노라마처럼 나타납니다. 요한계시록 6장 1-11절까지는 첫째 인부터 다섯째 인까지 개봉될 때에 각각 나타난 말세의 환상이 간단히 묘사되어 있고, 6장 12절부터는 여섯째 인이 개봉될 때의 환상이 비교적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섯째 인이 개봉될 때 묘사된 첫째 환상은 대지진과 대전쟁의 환상이고(계 6:12-14), 둘째 환상은 권세자들이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불안에 떠는 환상이고(계 6:15-17), 셋째 환상은 땅 사방의 바람을 붙잡은 네 천사의 환상이고(계 7:1), 넷째 환상은 이마에 인친 144000명의 수가 찰 때까지 네 천사에게 재앙을 유보해달라고 말하는 다른 천사의 환상입니다(계 7:2-8). 그리고 다섯째 환상이 바로 본문에 나오는 환상입니다.  

본문의 환상은 요한계시록 5장의 천국 환상과 유사합니다. 인봉된 책을 6번 개봉하는 과정에서 무서운 재앙들이 계속 환상 중에 보임으로 사도 요한과 계시록을 읽는 성도들이 깊은 절망에 빠지지 않게 하나님은 믿음의 격려와 소망을 주시려고 또 천국 환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천국 환상에서 구원받은 144000명이 흰 옷을 입고 종려가지를 들고 큰소리로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님을 찬양했습니다(9-10절). 

그 찬양을 듣고 무수한 천사가 그 찬양에 화답해 같이 경배했습니다(12절). 얼마나 장엄한 장면입니까? 아무리 말세에 무서운 재앙이 내려도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최종 승리가 주어집니다. 이 장면을 보면 복된 삶을 위해 특별히 3가지 확신이 필요함을 잘 말해줍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구원에 대한 확신  

말세에 대 전쟁과 대지진과 대재앙이 있어도 믿음을 가지고 죽으면 천국에 가게 되고, 살아서 종말을 맞이하면 휴거를 통해 환난에서 면제받거나 잠시의 시련을 통해 더 큰 축복의 장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는 구원을 잃지 않습니다. 성도에게는 재앙조차 구원의 은혜를 빛내려는 조치입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를 통해 무서운 환상을 봐도 결코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서운 환상 중에도 천국의 구원받은 무리들이 보이고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한 제일 주제가 바로 ‘구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왜 구원의 확신이 중요합니까? 구원의 확신을 가지면 어떤 문제와 고통도 능히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문제와 불안은 더 커집니다. 그러나 아무리 문제가 커도 미래만 보장되었다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말세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1절에서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이 땅에서 천국 삶을 살고 종국에 천국에 가려면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쉽게 생기지는 않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의 얘기를 보면 죽은 자가 부활해서 전도하고 천사가 설교해도 믿지 못할 사람은 믿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복된 선물입니다. 그 믿음을 구하십시오.   

지금 믿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돈은 한 순간에 사라집니다. 명예와 권세도 얻을 때는 좋지만 그것을 얻는 순간부터 잃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시작됩니다. 건강과 젊음도 믿지 못하고 한때 가슴을 뜨겁게 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열정도 얼마 후에는 다 식습니다. 이번 일본의 대지진을 보십시오. 땅이 흔들리면 땅 위에 세운 모든 것들은 다 쓰러집니다. 얼마나 허망한 일입니까? 그래서 더욱 천국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인생은 사명을 따라 사랑하며 살라는 하나님의 숙제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자리에서 그냥 안주하며 살지 마십시오. 더욱 복된 삶과 천국 삶이 앞에 있는데 그저 땅에서 끝나버리는 삶에 안주하며 사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때로 시련이 와도 더 나은 내일과 천국에 대한 소망을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죽음도 내 생명을 삼킬 수 없다는 구원의 확신이 있다면 어떤 시련과 실패에도 흔들리지 않고 결국 찬란한 내일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2. 승리에 대한 확신 

본문 9절을 보면 구원받은 큰 무리들이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하나님과 어린양을 찬양합니다. 이 모습은 성도의 궁극적인 승리를 상징합니다. 그처럼 성도의 승리가 보장되었다는 것이 요한계시록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사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수많은 환상을 잘 해석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결론적인 승리의 메시지만은 결코 잊지 마십시오. 성도에게 어려움은 축복과 승리와 영적 승진의 기회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 후 예루살렘에서 붙잡혔을 때 그날 밤 주님이 그에게 나타나 말씀했습니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행 23:11).” 그 말씀은 하나님이 더 큰 비전을 위해 바울이 체포되어 로마에 가도록 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예루살렘’에서 붙잡힌 모습이라도 마음은 ‘로마’로 향하십시오. 가끔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 어려움이 생겨도 결코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미십시오. 그 어려운 과정을 통과해야 더욱 선한 열매를 얻습니다. 영화를 보면 대부분 주인공이 극심한 어려움을 겪지만 최후에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때로 주인공이 비극적으로 죽어도 어떤 소중한 메시지는 남습니다. 결국 그것도 승리한 것입니다.
  
선은 반드시 이기고 악은 반드시 패합니다. 의인도 때로는 7번도 넘어지지만 반드시 일어나 결국 승리합니다. 바울은 붙잡혔지만 그때 주님은 오히려 “이제 로마를 볼 것이다!”란 찬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처럼 주님 안에 있으면 고난도 승리의 전주곡이 됩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밤이 어두울수록 빛은 더 환하게 빛납니다. 그러므로 “이제 끝났다. 가망이 없다”라고 생각도 하지 말고 말도 하지 마십시오. 배는 풍랑으로 더 빨리 가고 연은 바람으로 더 높이 날아오르듯이 어려움을 내일의 찬란한 축복을 향해 더 높이 들림 받는 ‘영적 휴거의 계기’로 승화시키십시오. 그래도 두려움이 밀려오면 지난날 절망적인 순간에 체험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리십시오.

그때의 절망적인 순간에 주님이 등불과 피난처가 되어주셔서 그 힘든 문제들을 다 극복하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가끔 너무 힘든 문제에 직면하면 앞이 캄캄하지만 그때 약간의 거리를 두고 그 문제를 바라보십시오. 문제를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때로는 손가락 하나만 가지고도 눈이 다 가려져 눈앞이 캄캄해집니다. 그러나 조금 떨어져서 그 문제를 보면 그 문제가 그렇게 큰 난제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살면서 힘든 문제를 만나면 이렇게 외치십시오. “이 문제보다 하나님이 크다. 이 문제보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내가 더 크다.” 두려움을 키우는 것은 자신의 마음입니다. 문제와 맞서기도 전에 문제에 짓눌리지 말고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기억하십시오. 성도는 아무리 나가떨어져도 하나님의 은총 밖으로는 나가떨어지지 않습니다. 문제가 크면 그때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은 더욱 생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최후 승리에 대한 확신을 잃지 마십시오. 
  

3. 하나님에 대한 확신  

요한계시록은 극심한 환난과 재앙 속에서도 간간이 찬양의 기운이 흐르는 것을 봅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보면 구원받은 백성들이 “아멘!”의 고백을 하고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음을 찬양하고 또 다시 “아멘!”을 합니다. 그처럼 찬송과 감사가 넘치는 아멘의 삶을 추구하십시오. 모든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은 찬양과 감사의 삶을 체질화시킨 사람들이었습니다 

중국선교에 신화를 남긴 허드슨 테일러는 청년시절에 신앙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리스도가 완성한 구원’이란 소책자를 보고 구원의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때 저는 구원을 위해 제가 한 일도 없고 할 일도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 드릴 것은 오직 찬양밖에 없음을 알았습니다. 저의 진짜 신앙생활은 그때 시작되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께 드릴 것은 찬양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찬양을 잃지 마십시오. 무섭고 두려운 상황이 다가와도 찬양을 잃지 않으면 그 상황을 거뜬히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미래는 보장되었습니다. 그 확신을 가지고 언제나 자신감 있게 사십시오.

사람들은 현실이 고통스러우면 대개 고통의 이유를 찾습니다. 그러나 자기성찰은 하되 고통에 대한 정확한 철학적인 이유와 변증은 찾지 마십시오. 고통의 이유를 잘 찾고 생각과 이성이 납득하도록 모든 것이 설명되어야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설명되지 않는 미스터리가 많습니다. 성도의 고난도 미스터리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도 오직 하나님의 위대성만 바라보고 찬양하십시오.

왜 하나님이 고통과 시련을 줍니까? 그 이유는 몰라도 한 가지 분명이 아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통의 밤 저편에는 우리를 기다리는 찬란한 새벽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처럼 이유를 알 수 없는 시련에도 우리를 유익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목적과 섭리가 있음을 믿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십시오. 그때 고난을 이기는 엄청난 능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처럼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행복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축복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역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행복과 축복이 없습니다. 최고의 재산은 하나님이고 최고의 유산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현재 필요한 것을 가장 적절하게 채워주시고 우리의 미래까지 다 책임지십니다. 가끔 까칠한 현실이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흔들지만 정신을 차리고 감사와 찬양을 회복하면 어느새 위기는 기회로 반전될 것입니다.
  

< 성령 충만의 은혜 >   

어떻게 고난 중에도 찬양과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힘든 현실 중에서 믿음의 말을 할 수 있고, 마음에 안 들고 해를 끼치는 사람을 위해 매일 간절히 기도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판단의 눈’을 ‘사랑의 눈’으로 바꾸고 ‘입술의 큰소리’를 ‘영혼의 큰소리’로 만들어 큰소리를 내지 않고도 점차 영향력을 넓혀갈 수 있습니까? 그것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생각과 묵상도 중요하지만 긍정적인 생각과 묵상만으로는 인생의 무거운 짐을 벗지 못합니다. 긍정적인 생각과 묵상 이상이 필요합니다. 인생의 짐이 무거우면 그때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때 오히려 시간을 내어 교회를 위해 봉사의 손길을 펼쳐보십시오. 그러면 신기하게 자기 안에서 어떤 신비한 힘이 물밀 듯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바로 그 힘이 인생의 무거운 짐을 이겨내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면서도 그 삶을 운명처럼 여기고 깊은 상심과 큰 상처를 안고도 시간이 약인 줄 알고 그 짐을 혼자 떠맡고 지냅니다. 그런 운명론적인 태도로는 인생의 짐이 가벼워지지 않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그때 주어지는 성령 충만의 은혜가 있어야 인생의 짐도 가벼워지고 사랑하는 마음도 생기고 불신과 불안과 불편을 이기게 하는 내적인 평안도 생깁니다. 그 내적인 평안이 어떤 외적인 압력도 이겨내게 만듭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제일 큰 거대한 핵잠수함도 바다에서 수심 700미터 이하로 내려가면 엄청난 수압 때문에 찌그러집니다. 그런데 몇 천 미터 이하의 심해에도 지상에 알려진 종보다 훨씬 더 많은 종의 심해생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 심해생물들이 어떻게 핵잠수함도 찌그러지는 곳에서 살 수 있습니까? 그 이유는 심해의 거대한 수압보다 심해생물 속의 내적인 압력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도 거대한 외부의 압력과 스트레스를 이겨내려면 자신 안에 성령 충만을 통한 강한 압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처럼 성령 충만을 통해 내적인 압력이 강해지면 고통과 상처의 압력이 그를 무섭게 짓눌러도 얼마든지 그 압력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고난 중에 승리한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원래부터 위대한 존재였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 충만을 통해 그들 안에 믿음과 평안의 강한 압력이 있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구원의 확신과 승리의 확신과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내적인 압력을 키우십시오. 그러면 자신을 짓누르는 인생의 무거운 짐을 극복하고 매일의 삶을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그때 이런 고백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때문에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고 감사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살다 보면 수시로 고난과 시련과 기도제목이 생기지만 그때마다 교회에 나와 예배하며 주님의 십자가 앞에 엎드리고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그 십자가를 통해 신비한 치료의 은혜를 체험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상처로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신비한 치료제입니다. 그 십자가를 붙잡고 구원과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나감으로 마침내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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