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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예수 그리스도-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 (마 1: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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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 (마 1:18-20)

기독교에서는 성탄절 전 4주간을 대림절로 지킵니다. 이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하면서 성탄절을 기다리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사건이므로 믿는 자들이 성탄절을 맞이하기 전에 이를 묵상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기적적으로 출생한 사람들이 여러 명 소개되고 있습니다. 구약의 믿음의 조상인 이삭, 위대한 이스라엘의 사사인 삼손이나 사무엘은 비슷한 출생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 부모가 오랫동안 자녀를 낳지 못해 고민하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인물들입니다. 신약의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 요한의 부모는 다 늙어 자녀를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세례 요한을 주셨고,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위대한 선지자의 일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몇몇 기적적으로 태어난 인물들이 있지만 초자연적인 출생의 절정은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예수님이 자연법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의 몸을 통해 태어나셨다는 사실입니다. 

처녀의 몸으로 나셨다는 것은 성령께서 처녀인 마리아의 태에 통상적인 잉태가 아닌 '초자연적 잉태'가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보통 사람들처럼 어떤 '육체적인 결합'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신적 기적'에 기인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7백여 년 전 이미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예언된 사실입니다. 이것이 마리아를 통해 성취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예수 그리스도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빌립이 예수님께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요 14:9절에서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영적존재이시므로 우리가 영화되기 전에는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공기나 라디오 전파를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주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요 1:18절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했고, 요 12:45절에는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 10:30절에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하셨으며, 요 14:11절에서는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평범한 아기로 태어나 성장하면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거나, 스스로 수양을 통하여 신적인 능력을 가지게 되었거나, 수많은 제자들이 따르고 사람들이 신격화해서 신적인 존재가 되신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근본 자체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본체이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 2:6절에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리라”고 했습니다. 즉 잉태되시는 그 순간부터, 아니 영원 전부터 ‘성자의 신성’을 보유하신 하나님이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동정녀 탄생은 예수님의 근본적인 본성이 어디까지나 참 ‘신이 되심’을 명백히 선포해 주는 가장 중요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이라고 기록한 본문이 없습니다. 

마 1: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는 말을 시작으로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부터 이어진 예수님의 족보 안에 4명의 여자 이름이 등장합니다. 3절에 보시면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5절에는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6절 중간에 가면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기록합니다. 

이처럼 여자가 나올 때는 누가 어떤 여자를 통해서 누구를 낳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6절에 가면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고 했습니다. 원래대로 하면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며, 요셉은 마리아에게서 예수를 낳았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출생을 말할 때는 위에서 기록해 내려오던 방법과는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고 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에 요셉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족보는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이 되셨음을 증거합니다. 이런 특성을 가리켜 ‘신인양성’이라 부릅니다.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참 하나님인 동시에 참 인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처음 사람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 어떤 모습이셨습니까? 우리가 얼마든지 가까이 가서 그분의 옷자락을 잡고, 그분의 눈에 눈동자를 맞추면서 얼마든지 친구처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평범하고도 평화로운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대중 앞에 나타나셨을 때 가난한 자들, 고통당하는 자들, 세상에서 소외당하는 자들에게 제일 먼저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들을 일일이 찾아가 가까이 하며 함께 식사하고, 그들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내가 울 때 내 곁에서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하나님, 내가 좌절하고 앉아서 일어나지를 못할 때 내 곁에 와서 내 손을 붙들고 일으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이런 하나님을 감히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예수님 때문에 “아, 하나님이 이런 분이구나!” 하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다는 사실을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꼭 묻고 넘어가야 될 중요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버클리 대학에서 미국 교회를 대상으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했습니다. 놀랍게도 가장 복음적이라고 하는 침례교회 성도들 가운데 31%가 동정녀 탄생을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장로교는 43%, 감리교는 66%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했습니다. 이는 평균적으로 성도들의 50%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또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이성이나 과학으로도 절대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것을 풀 수 있는 열쇠는 바로 믿음입니다. 

구약성경 시작인 창 1: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어떻게 과학적 논리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잉태를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면 신앙의 치명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이 동정녀 탄생을 통해서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을 부인하면,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인 예수님의 무죄설을 믿을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구속의 사건도 믿을 수 없게 됩니다.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그 아기에게 지어 주게 될 ‘예수’란 이름은 사실 유대 사회에서 특별한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이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시다’라는 것인데, 우리가 잘 알다시피 ‘여호수아’나 ‘예수아’ 등 이미 구약에서 아주 흔히 등장하는 이름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름의 뜻이 예수님에게 적용될 때에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가 되실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보통 구약에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신 사건들은 왕이나 사사 등 정치적 지도자를 통하여 적군의 침략으로부터 육신의 생명을 구원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정치적 속박보다도 훨씬 더 심각하고 무거운 인생의 굴레인 죄로부터 자기 백성을 구원해 주실 분으로 오셨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다윗 왕가에서 태어난 그 어떤 왕도 행하지 못한 것으로서 오직 예수님만이 베풀어 주신 아주 특별한 구원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예수님은 필연적으로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셨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죄인을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는 흠 없는 완벽한 희생제물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혈통과 육정으로 난 사람은 누구나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타락한 아담의 피를 물려받지 않으시고,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깨끗하고 죄 없는 몸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 4:15절에 보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죄인을 구원하는 구세주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나 다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동정녀 탄생을 통하여 죄 없는 분으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면서 완전한 사람입니다. 사람이시면서도 죄가 없습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이야기하는 중심 교리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하고 믿을 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탄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메시지입니다. 평화의 메시지입니다. 그것은 곧 생명의 메시지입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온 세계는 지금 희망에 굶주려 있습니다. 희망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은 가장 큰 최고의 빅뉴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심은 큰 기쁨 그 자체이며, 가장 신나는 희망 뉴스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오셨다!”는 천국 메시지를 듣기를 원합니다.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약 80%의 질병은 스트레스성 질병입니다. 곧 마음의 병입니다. 건강 염려증으로 고민하고 불면증으로 괴로워하고, 우울증으로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의 마음속에 천국 메시지가 전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속에 평안을 주시고, 기쁨을 주셔야 문제가 풀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오시면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이 숨어있는 죄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죄사함을 받고 죄로부터 해방이 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오시면 우리 가운데 깊이 참여하셔서, 우리들의 문제를 간섭해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내 마음에 천국 메시지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내 가정에 천국 메시지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직장과 사회에 천국 메시지를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죽음이 있는 곳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 대림절 기간에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기쁨의 소식을 통하여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인생의 모든 고통과 어려움이 사라지고 해결되는 축복의 기간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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