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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충성,무조건 되는일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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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 무조건 되는 일’. com

오늘 본문의 달란트비유는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내용입니다. 아마 여러번 설교를 들으셨을 것입니다. 오늘 달란트비유의 결론은 29절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X2) 이 결론의 말씀을 가지고 본문을 좀 다른 눈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말씀이 선포 될 때에 큰 은혜가 있으시기를 원합니다.

성경의 어떤 본문을 연구할 때는 전후 문맥을 가지고 비교하면서 배경이 될 수 있는 상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앞장인 24장에서는 우리 주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4-36)  주님은 계속해서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24:42)라고 말씀하십니다. 
 
초대교회는 다시 오시는 주님, 재림하시는 주님에 대한 생생한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마라나타”를 고백하였습니다. “마라나타” 라는 말을 완료형으로 번역하면 “우리 주께서 오셨다” 하여, 이미 이루어진 사건을 말하는 것이며, 명령문이나 기원문으로 번역하면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라는 뜻으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사건에 대한 소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그들의 “마라나타” 고백 속에 주님은 이미 오셨다는 확신과 함께 다시 오신다는 소망 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25장에서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다시 오시는 주님, 재림하시는 주님을 기다리면서 우리에게 큰 사명(使命)이 주어져 있음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재림만 기다리는 사람이 되지 말고,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받은 사명을 현실(現實)속에서 충실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재산을 다 바치고 재림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은 이단이 하는 것입니다.  세상 인연 다 끊고 기도원에서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성도가 할 행동이 아닙니다.  ‘재림은 반드시 온다.’ 라고 믿고서 나에게 주어진 일을, 현실의 사명에 충실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성도여러분, 2달란트, 5달란트 받은 사람들처럼 충성을 다하면서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는 비록 세상에 있지만,  마음속은 이미 하나님 나라를 품고 있고,  영원한 천국을 기다리면서 이 땅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면서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충성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역사적인 종말, 지구의 종말이 있지요.  

그러나 매일 매 순간이 종말의 시간입니다. 하루가 지나갑니다. 한 달이 지나갑니다. 일 년이 지나갑니다. 청소년기가 지나갔습니다. 청년기가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장년이 되고, 중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년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일생이 숨 한번 쉬는 사이에 다 지나갑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다 지나갑니다.  내일 모래면 우리의 삶을 마치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야만 합니다. 아, 이렇게 빨리 오는 줄 몰랐다고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뉘게 됩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하는 사람과,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마태복음 효과’(Matthew effect)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경영학교수이며,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K. 머튼 박사’가 오늘 본문의 결론인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29절) 말씀으로 ‘마태복음 효과’(Matthew effect) 라는 이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즉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게 되고, 적게 가진 자는 점점 더 적게 가질 수밖에 없는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 현상을 말합니다. 

이 ‘마태복음 효과’ 는 경제뿐만 아니라, 국민소득의 양극화 현상과 빈곤의 악순환, 지식과 교육의 격차, 정보의 격차, 학과목의 실력 격차, 선점기업의 시장 독점, 마케팅의 위치 선점, 선진국과 후진국의 소득 격차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사실 보통 서민들에게는 너무나 듣기 싫은 말이기도 합니다.  많이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지게 되고, 적게 가진 자는 점점 더 적게 가질 수밖에 없는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 현상은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진 것 없는 서민들은 절대로 서민층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모가 부자면 그 자녀는 자동적으로 부자가 됩니다. 그러나 부모가 가난하면 그 자녀는 계속 가난하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마태복음 효과’ 는 ‘누적 이득의 효과’ 라는 말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어떤 분야에서 성공하고 앞서 나가면 그의 장점과 강점이 점점 더 쌓여지면서 더 크게 성공하고 발전할 수 있고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는 것, 즉 ‘성공은 더 큰 성공을 낳는다 는 주장’입니다. 
 
스웨덴의 혼성 그룹인 유명한 아바(Abba)가 불러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켰으며, 뮤지컬 맘마미아 에서 불려진 ‘The Winner takes it All’ 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노래 제목을 번역하면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라는 말입니다. 노래 중에 “The winner takes it all / The loser standing small / Beside the victory That's her destiny”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가사를 직역하면 “승자가 다 갖는 겁니다. 패자는 초라하게 승자 옆에 서 있을 뿐이지요, 그게 운명입니다.” 이 노래가 마태복음 효과를 잘 설명해주는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웃라이어” (말콤 글래드웰) 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웃라이어라는 말은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말인데, ‘보통 사람의 수준을 뛰어넘는 특출한 사람’ 을 ‘아웃라이어’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책은 각계각층의 여러 분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 한 분야의 정상에 서 있는 사람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출한 사람들은 과연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를 연구하는 책입니다.  이 책에 제1장의 제목이 ‘마태복음 효과’ 입니다. 캐나다의 하키 선수들을 예로 들고 있는데, 1-3월에 태어난 선수가 40%, 4-6월에 태어난 선수가 30%, 7-9월에 태어난 선수가 20%, 10-12월 태어난 사람이 선수가 10%가 된다고 합니다. 같은 연령의 선수를 뽑는데, 1-3월 태어난 선수가 운동도 잘하고 늦게 태어난 사람들보다 능력이 더 많다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이 정설입니다.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1-3월에 태어난 아이는 10-12월에 태어난 아이보다는 능력이 더 우수하다는 말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오뉴월 하루 볕이 무섭다” 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하루라도 일찍 나선 사람이 더 잘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사회의 성공한 상위 1%에 속하는 아웃라이어는 마태복음 효과의 수혜자들이라고 합니다. ‘누적적 이득의 치명적 효과’를 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아웃라이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달란트를 받아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어떤 사람들 보다 더 많은 혜택을 이미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받은 우리들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상위 1%의 축복을 이미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도여러분, 이제 ‘마태복음효과’ 라는 눈으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달란트는 재능을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재능을, 은사를 주셨습니다. 벧전4:10에서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혹 있을지 모르지만, 재능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 5달란트 , 2달란트, 1달란트라고 하니 차별한 것 같고, 차이가 나 보이고 상대적으로 적어보이지만 1달란트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당시에 거부의 한 사람입니다.  1달란트가  6000데나리온입니다. 1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으니, 한 사람이 6000일, 무려 20년 동안 일해야 모을 수 있는 돈입니다. 평생 만져볼 수 없는 거금이요, 거부(巨富)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것을 주인은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특혜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밑천’ 즉 ‘종자돈’의 중요성을 압니다. 빈손으로 사회생활 시작하는 것과 로또 복권 1등 당첨으로 받은 돈으로 시작하는 것은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미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러므로 재림을 기다리면서, 충성할 달란트를 받은 우리가 알아야 할 첫째 교훈은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믿는다’ 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믿음을 낳습니다. 주인은 타국에 가면서 종들에게 자기의 전 재산을 맡겼지요? 맡겼다는 말은 관리하다, 위탁하다는 뜻입니다. 맡은 자는 소유권(所有權)은 없지만, 관리권(管理權)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은사에 대한 관리권, 청지기직분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딤전1:12에서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직분을 맡깁니까? 충성을 보셨습니다. 충성되다고 보시고, 충성된 사람으로 여기시고 직분을 맡겨주셨습니다.  주인은 종들을 신뢰합니다. 거금을 맡겨놓고 여행을 다녀와도 그들이라면 충분히 잘 해낼 것이라고 신뢰하고 믿어줍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직분을 맡기시는 것은 우리를 믿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어주신 것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신하지 않고 믿어주셨습니다. 

재림을 기다리면서, 충성할 달란트를 받은 우리가 알아야 할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의 일은 무조건 성공한다’ 는 것입니다.  5달란트와 2달란트를 맡은 종은 즉시 나가서 장사하여 이익을 남겼습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결산하게 되었을 때,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겨 가지고 열 달란트를 주인 앞에 내어놓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도합 네 달란트를 내어 놓습니다. 성도여러분, 세상의 사업이나 장사는 무조건 성공하지 않습니다.  장사를 하면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성공하는 것이 열에 하나, 둘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실패한 사람이 없습니다.  왜 이렇게 기록을 하시느냐? 희망만을 기록한 동화책이라서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게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사업은 손해 보는 법이 없습니다.  충성하면 하는 대로 남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에 부지런한 사람이 되십시오. 

잠22:13에 보면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잠26:15에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충성은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고, 목사에게 충성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에게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충성에는 낭비가 없고, 실패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일에 충성한 것을 잊어버리실까요? 아니면 다 기억하고 계실까요?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충성하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 분명히 하나님의 일을 맡으셨습니다. 열심히 하십시다. 하나님의 사역이요,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입니다. 부지런 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다 칭찬 들으시기를 원합니다. 
 
재림을 기다리면서, 충성할 달란트를 받은 우리가 알아야 할 세 번째 교훈은 ‘비교하지 않는 것’ 입니다.  한 달란트를 남긴 사람을  ‘악하고 게으른 사람’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게으름을 악으로 보십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 악과 게으름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보십니다. 게으르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악하고 게으른 한 달란트 받은 종의 잘못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 달란트를 떼어먹은 것도 아닙니다.  원금을 까먹은 것도 아닙니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과 비교(比較)하다 보니 마음이 상한 것입니다. 

주인이 다른 사람과는 달리 자기에게는 한 달란트를 준 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고, ‘내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하여 마음이 상하여 있다 보니 주인을 인색하고 지독한 분으로만 보게 되었습니다.  한 달란트라는 돈도 평생에 만져볼 수 없는 거금이요, 충분히 거창한 회사를 차려볼 수 있는 거액인데 비교하다보니 있는 능력을 사장(死藏)시키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쳐다보고서 비교를 하기 때문이지요. 달란트를 주신 하나님은 쳐다보지 않고 있습니다. 
 
비교하는 사람은 변명합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이 사람은 자기에게 한 달란트라는 거액을 믿고 맡겨주신 주인을 가리켜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이라”고 주인을 몰인정한 사람으로 몰아붙입니다. 자기와 남을 비교했기 때문에 주인마저 악한 분으로 몰아붙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10억을 공짜로 받았는데, 옆의 사람이 20억을 받았습니다. 너무 너무 기분이 나빠하면서 ‘나 이돈 싫어. 나에게 10억 밖에 안 준 당신은 나쁜 사람이야. 나 일안 해.’ 한다면 여러분은 그런 사람에게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악한 사람 아닙니까?  저와 여러분이 이런 사람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주인은 이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에게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29)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마태복음효과’ 라는 이론이 나온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는 열 달란트가 되고, 또 열 한 달란트가 됩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는 내 손에서 없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같이 앉아서 예배드리지만 갈라지는 날이 반드시 다가옵니다. 충성되고 신실한 일꾼들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나 악하고 게으른 종들은 슬피 울어야 하고, 바깥 어두운 데서 이를 갈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과연 잘했다고 하시면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은 사람일가? 아니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실까? 진솔하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선한 청지기들입니다. 달란트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 효과의 주인공입니다.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일하라고 해도 하나님께 충성할 기회를 받은 우리가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불러만 주셔도 영광스러운 자리가 하나님의 일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주인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1달란트, 2달란트, 5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거액을 주시고 ‘내가 올 때까지 열심히 해라’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마태복음효과의 주인공이 맞습니다. 이래도 충성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쫒겨나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믿고 큰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은 무조건 성공합니다.  충성하는 대로 남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시고 내 재능을 다 발휘하시면 됩니다.  충성하면 할수록 부익부(富益富)가 되고, 게으르면 게으를수록 빈익빈(貧益貧) 이 됩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나중에는 소유권(所有權)도 주십니다. 주인은 다시 달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다 거두어서 내 곳간에 넣어라’ 하지 않으십니다. 처음 받은 것과, 충성해서 남은 것이 다 자기 것이 됩니다. 관리권이 소유권으로 바뀝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도 우리가 충성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성도여러분, 세상일은 헛고생이 있지만... 하나님 일에 충성하는 것은 절대로 헛고생이 없습니다.   아멘?   ‘충성, 무조건 되는 일’ 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다 ‘누적적 이득의 치명적 효과’ 의 주인공으로 사시기를 원합니다. 기회를 잘 붙잡는 축복의 주인공이 다 되시기를 원합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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