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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예수 그리스도 - 인류의 구원자 (마 1:21, 요 3: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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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 인류의 구원자 (마 1:21, 요 3:16-17)

요즘 우리 주변에 자기의 이름을 바꾸거나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살다보니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특이한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아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바꾸려고 하는 것입니다. ‘치국’이라는 이름은 좋은 이름입니다. 다스릴 치(治)에 나라 국(國), 나라를 다스리는 재상이 되라고 지어주신 좋은 이름인데 성이 김씨입니다. 이름을 부르면 김칫국이 되어 버립니다. 

‘강도범’ ‘현상범’ ‘나죽자’ ‘구억원’ ‘조철판’ ‘박쌍연’ ‘한시만’ ‘송충희’ ‘문어진’ ‘백정아’ ‘최심심’ 그러나 이렇게 특이하고 웃기는 이름이라도 살펴보면 나름대로 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의미 없는 이름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세상의 많은 이름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이름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본문 21절 말씀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이름입니다. 이 이름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이 이름 안에 기독교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라는 이름과 함께 하는 신앙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당시에는 매우 평범한 이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유명한 지도자였던 여호수아의 이름을 헬라어로 부른 것입니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사용하던 평범한 이름 ‘예수’는 단지 ‘구원’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정혼한 처녀로 있을 때, 천사 가브리엘이 찾아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하면서 아기로 태어나신 그리스도에게 붙여지면서 ‘예수’라는 이름은 전혀 다른 존귀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라는 이 이름은 자기 백성들을 죄의 권세로부터 건져 내실 이름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이름이었던 예수란 이름은 이제 도움 받을 길 없는 병자들에게 치유를 가져오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이름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약자들에게 위로와 평강을 가져오는 사랑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이름은 마귀와 귀신들에게는 멸망을 안겨주는 능력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름은 죽은 자에게 부활을 약속하는 생명의 이름이 되었으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원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의 최대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경제문제가 최대의 문제라고 합니다. 특히 한국은 교육이 문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교육비 문제는 심각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자연환경이 문제라고 합니다. 갈수록 이상기온과 천재지변이 심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생기는 에너지 자원의 문제도 심각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 인간의 삶에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문제도, 교육문제도, 자연환경문제도 아닙니다. 우리 인류 최대의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불순종한 이후 하나님을 향하여 끊임없이 반항하고 불순종하는 죄가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바로 이 죄입니다. 

우리가 읽는 성경에서 진리, 진실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성경 전체에 307번이 나옵니다. 사랑이란 단어는 517번, 믿음이란 단어는 536번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인 복이란 단어는 1036번이 나옵니다. 그러면 죄라는 단어는 얼마나 되겠습니까? 무려 1208번이나 나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의 삶에 진리, 진실, 사랑, 믿음, 모두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죄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싶다면 우리가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인지 오늘 말씀에 보면 메시아 되시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이 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이 세상이 오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오늘 봉독한 다른 본문인 요 3:16-17절 말씀을 보세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에 빠진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인권운동가인 존 그리핀은 백인이지만 흑인들이 피부색깔 때문에 차별을 받는 것을 보고 흑인들의 권리회복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흑인들은 “당신 같은 백인은 우리같이 까만색의 흑인을 이해할 수 없다.”며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존 그리핀은 “내가 흑인들을 이해하기 위해 나도 흑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래서 하루 15시간씩 햇볕에 선택을 하였고, 온갖 염색약과 방사선을 이용해서 자기의 얼굴과 몸의 피부를 검게 만들었습니다. 머리카락도 흑인들처럼 짧게 하고 흑인들 거주 지역에서 살면서 흑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결국 흑인들은 그의 이런 노력에 감동을 받습니다. 지도자로 받아들입니다. 우리 위해 백인이 흑인이 되었다는 것, 이 하나만으로도 당신이 우리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존 그리핀은 1980년 60세의 나이에 흑인의 피부를 만들기 위해 사용했던 약품 때문에 피부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백인이었지만 진정 흑인들을 사랑한 백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존 그리핀이 백인에서 흑인 된 것보다 더 큰 일입니다. 예수님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죄 없는 하나님이시지만 죄를 없애기 위한 속죄제물이 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으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신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죄의 고통을 다 받으신 것도 우리를 향한 사랑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구원받게 되었다는 것을 믿고 감사와 감격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면 이 죄가 얼마나 심각하기에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이 되어서 이 땅에 오셔야만 하셨습니까? 이 죄가 얼마나 심각하기에 살인강도나 흉악한 자만 달리는 십자가의 형을 받으면서 참혹하게 죽으셔야 했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죄의 심각성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복을 막아 버립니다. 

렘 5:25절에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복 받은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창조하실 때 얼마나 좋아하셨습니까? 그리고 그들에게 최고의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에덴동산이 얼마나 좋습니까? 행복의 상징이 아닙니까? 번성하고 충만하도록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아름다운 파라다이스에서 추방을 당하였습니다. 에덴의 축복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죄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죄는 인간의 모든 행복을 빼앗아 가는 심각한 원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출애굽 세대들은 그 약속의 땅, 축복의 땅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들이 축복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하나님 앞에 불순종 한 죄 때문이었습니다. 죄가 이렇게 심각한 것입니다. 

이처럼 죄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온갖 축복을 막아 버립니다. 죄는 심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죄는 우리에게 상상할 수 없는 큰 고통과 재앙을 안겨다 줍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실과를 따먹었습니다. 불순종의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거역한 죄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살기 좋은 에덴동산에서 추방을 당하였습니다. 땅도 저주를 받고, 인간은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먹을 수가 있게 되었고,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는 저주의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인류가 저주 아래 놓이게 된 것은 바로 이 죄 때문입니다. 죄는 이렇듯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복을 빼앗아 가고 큰 고통과 재앙을 가져다줍니다. 

다윗은 암몬을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전쟁에 나가지 않고 왕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저녁때에 다윗이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자신의 부하인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음욕을 품고 간음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숨기기 위해 계략을 꾸며 전쟁터에서 우리야를 죽게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범죄한 다윗에게 심판하실 내용을 전하게 하십니다. 그 내용이 삼하 12:7-15절까지입니다. 칼이 다윗의 집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신 앞에서 아내를 빼앗아 이웃에게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이 모든 것이 다윗에게 다 이루어졌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엄청난 고통과 슬픔을 당하였습니다. 밧세바를 통해 주신 아들이 병으로 죽었습니다. 압살롬이 반역하였습니다. 자신의 후궁들이 자식에 의해 백주대낮에 신하들 앞에서 범하는 수치를 당했습니다. 죄는 이렇게 무섭습니다. 

또한 죄는 사람을 영원한 멸망인 지옥으로 끌고 갑니다. 

롬 1:29-31절을 보면 지옥에 들어갈 사람들의 죄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이런 자들은 다 사형에 해당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롬 6: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죄는 결국 영원한 멸망, 곧 지옥으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롬 3:23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못 갑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죄인은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죄에 붙잡힌 노예로 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하고, 고통을 당하고, 재난을 당하고, 고생하고 수고하고 땀을 흘리는 것과 인생의 고독과 외로움을 당하는 것, 그리고도 최후에는 멸망당해야 하는 근본 이유는 바로 이 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심각성, 긴급성, 시급성을 요구하는 문제는 다른 것이 아닌 죄의 문제를 해결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방법도 죄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여러 종교가 있는데 다 똑 같은 길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꼭 교회 나와야 하고 꼭 예수만 믿어야 구원받습니까? 석가모니나 마호메트는 안 됩니까? 공자나 맹자는 안 됩니까?” 그러나 예수님만이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자이시고, 다른 사람들은 구원의 길을 뚫어보려고 처절하게 노력했던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했으며 구원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인으로서 죄인을 구원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인간에게 자력으로 구원을 얻을 만한 능력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전적 타락과 전적 무능을 말씀합니다. 이에 대하여 롬 3:10-12절에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팔만대장경의 나마다 경에 석가모니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언젠가 예수 오시면 나의 깨달은 도는 기름 없는 등과 같다” 이 말은 부처도 노년에 인간의 무능을 알았고, 오직 예수라는 구원자가 와야 한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행 4: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오직 예수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확신을 표명합니다. 즉 예수 아닌 다른 어떠한 성인군자의 이름으로도 인간은 죄에서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타종교로부터 기독교가 독선적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기독교는 이 확신을 결코 양보할 수 없습니다. 

유명한 설교가 이신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의 설교가운데 ‘인생대학’이라는 유명한 설교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다. 그러나 이 인생대학을 졸업하려면 필수과목에 학점을 따야 되는데, 그 필수과목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 것이다. 예수 믿고 구원받지 못하면 인생대학에 있는 모든 학생들은 인생의 낙제생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는 놀라운 메시지를 남겨 주셨습니다. 

대림절 둘째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사모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여기며, 예수님의 이름을 전파하며 살아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다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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