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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갈 길을 보이시니 (시 3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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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을 보이시니 (시 32:5-11)


워십 음악의 탁월한 리더이며 찬양 사역자 돈 모엔 (Don Moen)이 어느 늦은 밤, 장모로부터 처제 부부가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차에는 그들과 네 명의 조카가 타고 있었는데, 9살 제레미는 현장에서 즉사했고 세 아이는 중상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현장에 도착한 모엔은 부부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특히 동서 크렉(Craig)에게 어떠한 종교적 위로의 말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교회학교 교사이었고 말씀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다른 도시로 떠나야 했던 돈 모엔은 비행기 안에서 이사야서 43장을 읽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읽다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광야에 길을 만드시고, 사막에 강을 만들어 가시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기초로 노랫말을 썼는데, 슬픔 중에 있던 크렉에게 말하고 싶었던 내용이었습니다. 

“나의 가는 길 주님 인도하시네” (God Will Make A Way)라는 찬양입니다. “나의 가는 길 주님 인도하시네. 그는 보이지 않아도 날 위해 일하시네. 주 나의 인도자 항상 함께 하시네. 사랑과 힘 베푸시며 인도하시네. 인도하시네. 나의 가는 길 주님 인도하시네. 그는 보이지 않아도 날 위해 일하시네. 주 나의 인도자 항상 함께 하시네. 사랑과 힘 베푸시며 인도하시네, 인도하시네. 광야에 길을 만드시고 날 인도해. 사막에 강 만드신 것 보라. 하늘과 땅 변해도 주의 말씀 영원히 내 삶 속에 새 일을 행하리. 오 나의 가는 길 주님 인도하시네 그는 보이지 않아도 날 위해 일하시네. 주 나의 인도자 항상 함께 하시네. 사랑과 힘 베푸시며 인도하시네, 인도하시네.“ 

사람들은 견딜 수 없는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이 자신을 잊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손바닥에 새겨놓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놀랍게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줄기를 내시는 분이십니다. 불가능한 곳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일하십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일하시며 갈 길을 보여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었습니다. 시편 23편 2절에서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가장 완전한 곳으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해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갈 길을 보여주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입니다.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하나님께서 갈 길을 가르쳐주신다는 시편기자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을 사랑하시기에 갈 길을 보여주시기 원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갈 길이 보여집니까?
 
첫째로 회개할지라 

비엔나 박물관에 가면 로마 황제가 성당에 들어가려는데 주교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서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있습니다. 당시에 주교가 천하를 호령하는 황제 앞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그림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그려진 그림이기에 더욱 흥미를 끌고 있습니다. 주후 390년 데살로니가에서 로마에 항거하는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Theodosius)는 부하가 살해당하자 잔혹한 보복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황제는 보복명령을 즉시 철회하였지만 이미 1,500명이나 되는 주민들이 학살당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교회는 황제의 이런 끔찍한 대량학살을 엄히 정죄하였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밀라노에 갔다가 성당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당시 성당의 주교는 암브로시우스(Ambrosius)였습니다. 그는 황제의 끔찍한 학살을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성당의 문을 가로막고 황제가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저지른 죄를 참회하지 않고는 성당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황제는 암브로시우스 주교 앞에서 땅바닥에 엎드려 참회를 합니다. 그리고 그해 성탄절 때 다시 성찬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문 5절입니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원인은 죄악 때문입니다. 죄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친밀했던 사람들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보았고, 하나님과 대화했으며, 하나님과 교제했습니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가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죄악이 하나님의 인도를 방해한 것입니다. 따라서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과는 오직 회개를 통해서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갈 길을 인도받으려면 하나님과 사이에 죄악이 사라져야 합니다. 

죄와 허물을 사함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회개함으로 사죄의 은총을 통해 재앙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고백하지 않은 죄가 있다면 즉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자복함으로 갈 길이 보이는 은혜를 입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기도할지라 

남북전쟁은 4년여에 걸친 노예해방 전쟁으로 전사자의 수가 무려 6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처참한 전쟁 앞에 남군이나 북군이나 할 것 없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남부 대통령은 제퍼슨 데이비스 (Jefferson Davis)였으며, 북부 대통령은 아브라함 링컨 (Abraham Lincoln)이었습니다. 데이비스는 남부의 백성들에게 기도의 날을 선포했습니다. “기도야말로 전능하시며 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다. 기도는 적과의 싸움에서 남부 연합에 가담한 남군들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방패가 되리라.” 

이 소식을 들은 링컨은 흑인들을 노예처럼 부리면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남부 연합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보았습니다. 링컨의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에서 이익을 차릴 욕심으로 감히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한다는 건 이상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남과 북이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상대방을 이기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양쪽의 기도가 모두 받아들여질 수 없다. 어느 쪽도 소원하는 바를 완전히 이룰 수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만이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 링컨은 국가의 위기 앞에서 자신의 의를 과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내편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 편에 바르게 서있는가 물어야한다고 말합니다. 

이어 링컨은 고백합니다. “수없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말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대통령으로서, 지도자로서, 사령관으로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 내가 설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링컨은 기도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편에 서있는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지도자였습니다. 

본문 6절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라는 말은 기도할 기회를 만들라는 뜻입니다. 기도하는 좋은 기회에 기도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기도할 기회를 만들어 기도하는 신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다의 히스기야는 앗수르 대군 18만5천명이 포위하고 하나님을 비방했을 때 성전에 올라가 기도했으며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앗수르 대군을 전멸 시키셨습니다. 기도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셋째로 신뢰할지라 

1967년도 이스라엘과 아랍연합군의 6일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당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모든 언론은 이스라엘이 패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아랍연합의 군사력이나 경제력과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6일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은 최신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 무기 때문에 전쟁에 반드시 이기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승리를 거둔 후 그 비밀 병기를 밝혔습니다. 

바로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이스라엘 국민들은 극도로 불안해했습니다. 그러나 하바드의 랍비 쉬니어슨(Menahem M. Swinieoseun)의 연설로 용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키고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시켜 주실 것이다.” 이스라엘의 일간신문 예디옷 아하로놋은 하바드 랍비의 말을 인용하여 기사를 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한 땅을 지켜보고 계신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가까이 왔다.” 국영방송 콜이스로엘도 “하나님께서 이번 전쟁에 함께 하실 것이고, 우리에게 큰 승리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라고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놀라운 것은 매스컴의 보도를 이스라엘 국민들이 철저하게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시고 지키시며 함께 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 결과 전쟁이 발발한지 6일 만에 이스라엘은 아랍연합을 당당하게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들을 책임져주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만이 갈 길을 인도함 받을 수 있습니다. 

본문 10절입니다.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여기에 악인과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각각 다른 삶을 산다고 증거합니다. 악인은 많은 슬픔 가운데 살지만, 여호와를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로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갈 길을 보여 주십니다. 

인디언들이 아들을 훈련하는 독특한 방법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숲 속에서 맹수들과 함께 밤을 지내게 하면서 아들의 담력을 키웠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강조합니다. “무섭거든 아버지라고만 불러라” 시험을 받는 날 밤에 아들은 얼마나 두려움을 느꼈겠습니까? 그러나 날이 밝아오면서 아들은 아버지가 가까운 나무 뒤에서 화살을 당긴 채 지키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위험이 닥치지 않도록 밤새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아도 항상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갈 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부디 죄를 고백함으로 하나님과의 간격이 좁혀지기 바랍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갈 길이 보이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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