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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칭찬에 목말라 합니까? (고후10: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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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에 목말라 합니까? (고후10:17-18)


미국의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인간에게는 다섯 단계의 욕구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첫 단계가 ‘생리적 욕구’입니다. 먹고 자고 하는 기본적 욕구를 말합니다. 이 욕구가 충족되면 두 번째 단계는 위험에서 보호받고 안전하기를 바라는 ‘안전의 욕구’가 생기고, 이것이 충족되면 세 번째가 ‘사회적인 욕구’가 있고 네 번째 단계로 ‘존경의 욕구’가 있고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에서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욕구가 반드시 이렇게 단계적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누구나가 다 본능적으로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존경받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성공이냐 실패냐를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고 존경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기준을 두고 판단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입니다. 

연예인들 보세요. 청중들의 박수와 인기에 목숨을 걸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인기를 먹고 삽니다. 그 인기가 뭡니까? 알아주고 박수쳐주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공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존경의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가 사단이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에덴동산의 하와 할머니가 넘어진 이유가 뭡니까? 
먹는 문제만이 아닙니다. 먹는 문제도 있으나 “네가 이것을 먹으면 하나님 같아진다.”는 이 말에 넘어간 것입니다. 

또 40일 금식기도하고 계시는 예수님께 사단이 시험한 것이 무엇입니까? 먹는 문제로 시험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단순히 먹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으려면 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사탄의 무기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시험 드는 여러 경우 중에 가장 많은 경우는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시당하고 천대 받는다는 느낌 때문에 시험에 듭니다.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교회뿐만 아닙니다. 정치인들 보세요. 연예인들 보세요. 하잘 것 없는 이름 석 자를 나타내고 싶어서 안달이 납니다. 그래서 명예가 주어지고 자리가 주어지면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직분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하다가 떠납니다.   

죄송하고 부끄럽지만 목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직함이 주어지면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직함이 없어지면 나갑니다. 
여전도회도 그렇고 모든 기관들이 움직이는 것 보면 임원들이 열심이고 직분이 없으면 책임감도 소속감도 없어집니다. 

누구나가 다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지만 칭찬받고 싶어 하고, 존경받고 싶어 하는 욕망은 실존합니다. 그런데 그 욕망이 겉으로는 잘 들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리고는 말로는 주님을 위한다 합니다. 말로는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혹시,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사람의 칭찬에 목말라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조심하셔야 합니다. 사람의 인정과 칭찬은 헛되고 헛된 것일 수 있습니다. 오죽하면 눅6:26절에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했습니다. 
왜죠? 속아서, 또는 몰라서 하는 칭찬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진짜로 훌륭해서 하는 칭찬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화가 있다 할까요? 그 결과가 무섭기 때문입니다. 칭찬의 결과가 교만으로 갈 염려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합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주님이 주시는 칭찬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칭찬이 진짜라는 것입니다. 그 칭찬은 비록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고, 그 칭찬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칭찬일지라도 그 칭찬이 최고임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 칭찬을 받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 자기가 자기를 칭찬해서는 안 됩니다. 

잠언27장 2절에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했습니다. 

내 입술을 나를 자랑하는 그것이 자기가 자기를 칭찬하는 부끄러운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기에 남들이 칭찬할지언정 자기 입으로는 말라는 것입니다.   

또 고린도 후서 10장 12~13절을 보세요. 
12 우리는 자기를 칭찬하는 어떤 자와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로써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13 그러나 우리는 분수 이상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그 범위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무슨 말입니까? 자기가 자기를 칭찬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란 말입니다. 
자랑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칭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짓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고 하시나요? 17절을 보세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따라서 합시다.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할지니라/ 
그렇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 사도바울이 왜 사도냐? 하며 사도직에 대해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것 개의치 않겠다 합니다. 그리고는 자기를 자랑하며 자기를 칭찬하는 그런 사람같이 행동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랑은 주안에서 해야 한다” “진짜 칭찬을 받으려면 주께서 칭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사람에게 칭찬받기 보다는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은 “명예욕”과 “권세욕”을 극히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그것, 그리고 자기가 대단하다는 것을 들어내는 것, 이것은 우리를 교만하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창세기 11장에 나타나는 바벨탑 사건을 보세요. 
인간들이 하나님을 반역하는 바벨탑을 높이 쌓으며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합니다. 

“우리 이름”을 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라 하셨는데 인간은 하나님 앞에 그렇게 안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끼리 잘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결국 이 바벨탑은 하나님을 분노케 합니다. 
그래서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는 그들의 뜻에 정반대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오셔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습니다. 그래서 서로 다투게 했고 결국 온 지면으로 흩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뭡니까?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영화롭게 하고 싶어 하고 자기를 만족시키는 것”을 제일의 목적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해도, 자기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나타내는 일에 야망과 욕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결코 행복하지 않는 것이 인간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의 칭찬에 목말라 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개인적으로 자랑할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랑거리들이 예수님을 만나보니 다 헛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 믿기 전에 유익하게 여겼던 것들이 오히려 해로운 것이고 배설물처럼 여기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자랑이 헛된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봉독한 말씀은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주님이 주신 은혜를 자랑하고” “나를 자랑하지 말고 주님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겸손이고 그것이 지혜로운 자의 자세란 말입니다. 아멘? 

저와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저 구원받은 것을 누리며 우리끼리 재미있게 함께 살자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주안에서 자랑하라는 것은 주님이 주신 은혜, 주님이 주신 구원의 복을 아직도 모르는 백성들에게 찾아가서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은혜는 전하지 않고 칭찬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것에만 온통 신경을 쓰고 있단 말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자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십자가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오늘 우리가 존재합니다. 
  

2. 칭찬 받지 못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주님은 칭찬을 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아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주님으로부터 칭찬받으려고 했던 사람들인데 칭찬은커녕 책망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일까요?   

1)외식하는 사람들입니다.

마태6장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했습니다. 

여기 “外飾하는 자”란 겉을 꾸미는 사람으로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자의 모습을 말합니다. 겉으로는 아주 훌륭합니다. 그런데 속은 썩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사람을 회칠한 무덤 같은 사람이라 합니다. 특별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책망이 무섭습니다. 
“화 있을진저! 하시며 저주를 퍼부으십니다. 그럴 정도로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속 다르고 겉 다른 신앙 생활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대로 진실하고 정직하게 주를 섬겨야 합니다.  


2) 맡은 일에 충성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마25:26-28에 주님은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에게 책망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합니다. 

악한 자도 문제고 게으른 것도 문제입니다. 
주님은 충성하라 할 때 죽도록 충성하라 하십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악했고 게을렀습니다. 그러기에 주인은 그 종의 있는 것까지 빼앗아 버렸고 그를 바깥 어두운데 내어 쫓아버렸습니다.   

여기 달란트가 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달란트는 재능도 되지만 직분도 됩니다. 자기가 맡은 책임도 됩니다. 그것을 다 감당 못하면 책망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달란트가 5개냐 2개냐 1개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맡은 일을 소중히 여기고 충성하면 주님은 칭찬하시고 놀라운 상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분인 것입니다. 
  

3)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 모습이 보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성도간의 파당문제, 우상제사 문제, 결혼 문제, 성적타락 문제, 심지어 은사문제까지 골치 아픈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해결치 못하고 서로 고소하고 상처를 주었던 것입니다. 

원인이 뭐지요? 어리석어 그렇습니다.   

기본적 욕구 문제인 칭찬도 받고 싶고 존경도 받고 싶은데 이것이 잘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입으로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들어냅니다. 그리고는 남을 비난하고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알아줄 것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자기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써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다고 책망합니다. 

그러면서 ‘분수 이상을 자랑하지 않아야 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주신 그 범위와 한계를 따라 자랑하라’고 하십니다. 
이 선을 넘어가면 교만이고 어리석은 짓이며 이선을 넘어서면 헛된 자랑이 되는 것이란 말입니다. 
  

3. 칭찬을 받는 자들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들은 진실로 주님을 믿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았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그 모습을 닮아 가려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 몇 사람을 실례로 살펴봅니다.   

1) 선행하는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행10:4절에 보면 천사가 고넬료에게 찾아와 말씀하십니다. 
“네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하나님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고넬료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정복자로서 식민지 백성들을 사랑하여 구제하기를 힘쓴 사람입니다. 선행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구제를 많이 해도 예수 복음을 듣지 못하면 그야말로 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에게 복음 전달 할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리고는 베드로에게도 환상을 통해 미리 암시를 줍니다. 결국 베드로가 그 집에 보내져 복음을 전하게 되고 그가 듣고 믿어 구원을 받도록 역사하십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아무리 선행을 많이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아무리 기도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복음을 듣고 믿어야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선행도 복이 되고 기도도 복이 되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베드로가 그 집에 들어가자 고넬료가 그 발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마음이 열린 사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그 마음 문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결국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 가족이 다 구원을 받습니다. 할렐루야.   

명심할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행은 복음전파입니다. 그를 통한 영혼 구원입니다. 아무리 구제하고 아무리 도와주어도 지옥가면 아무 송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최고의 선행인 복음전도, 이것이 주님의 칭찬을 받는 최고의 도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환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칭찬합니다. 

구약성경에 욥이란 인물이 있습니다. 욥은 순전하여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고 동방에서 가장 큰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그를 시험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허락 하에 그를 시험했습니다. 어떤 시험입니까?     

욥이 당한 시험은 5가지였습니다.

1)재산을 잃습니다. 많은 재산을 일시에 잃어버립니다. 

2)자녀들이 일시에 죽습니다. 그것도 자녀들이 잔치를 하던 중에 큰 바람이 불어 집이 무너지면서 열 남매가 한꺼번에 몰살당했습니다.

3)육체에 무서운 질병이 생깁니다. 욥의 몸에 심한 악창이 나서 가렵고 괴로워서 조각으로 긁을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이정도면 분명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악을 쓰며 대들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끄떡도 안합니다. 

그러자 4)부인에게 저주를 당합니다. 아내가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남편을 위로하기는커녕 저주를 퍼부은 것입니다. 

그리고 5)친구들에게 매도당합니다. 욥의 세 친구 위로한답시고 그를 찾아와서는 도리어 불행한 형편을 보고 죄의 결과라고 욥을 책망합니다. 

“모든 것이 네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니 네 죄를 회개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최악의 조건입니다. 더 이상 나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욥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가져가실 분도 하나님이시며 세상에 올 때 빈손으로 왔은 즉 갈 때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하면서 그는 찬송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 옳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그리고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어제 안산에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우리 교인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후원하는 선교사님의 모친이신데 혼자 계십니다. 허리를 다쳐 수술을 받고 퇴원을 했는데 집에 혼자 계십니다. 큰아들은 저 전라도 완도에서 일합니다. 작은 아들은 선교사로 나가있습니다. 그러니 누가 도울 자가 없는 것입니다. 선교사님이 마음이 괴로우니까 제게 메일로 부탁을 합니다. 심방해서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가보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습니까? 그것이 선교사입니다.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선교지를 지키고 있으나 마음은 어머님께 가있는 것입니다. 


3) 끝까지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 다윗입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한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세울 때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하셨습니다.

왜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일까요? 다른 것이 많지만 가장 주님이 좋아하신 것은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울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골리앗도 다윗의 돌멩이 하나에 넘어지게 했습니다. 왜 그들이 하나님 앞에 버림받았을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교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잘될수록 겸손해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더 주십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문제점은 교만입니다. 그래서 남들을 시기질투하고 헛된 것을 자랑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을 칭찬하지 못하고 시기하게 되면 그 속에 사탄이 틈을 타게 됩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배 아프게 합니다. 
다른 것은 다 견디는데 시기 질투는 못 견디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탄의 공격 대상입니다. 사울 왕이 버림받은 결정적인 원인이 이것입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요” 하는 노랫소리에 심히 불쾌했습니다. 결국 그 속에 사탄이 들어가 견디지 못할 정도의 시기심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잠18:12절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했고 
잠29:23절에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그러나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이 그러셨듯이 우리도 늘 주님 앞에 겸손하시고 낮아지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주님은 칭찬에 목말라하는 우리를 어떻게 보실까요? 
세상의 칭찬, 사람들의 칭찬, 목사의 칭찬,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보다 더 주님의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제발 자기를 칭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도 자기를 칭찬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어찌 자기 입으로 자기를 칭찬하겠습니까?   

그러려면 우리는 주안에서 자랑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주께서 옳다 칭찬하는 것을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것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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