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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의 범위를 확대하라 (딤전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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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범위를 확대하라 (딤전 2:4)

예수님을 믿으시면 “아멘”합시다. 아멘 하신 분들에게 묻겠습니다. 아멘 하신 여러분들은 구원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앞으로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까? 요 5:24에 해답이 나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미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이미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문제는 영적인 생명을 얻은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구원 외에 더 많은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리고 더 많은 구원이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더 많은 구원을 누리지 못합니다.
   
뷔페식당에 가면 많은 음식이 차려져 있습니다. 뷔페식당의 묘미는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것입니다. 제가 10월 달에 전주 집회에 가서 전주에서 제일 큰 뷔페식당에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곳에는 200가지 넘는 음식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다양한 음식을 맛보았습니다.
   
제 조카는 저와 좀 다릅니다. 그 아이는 오직 한 가지만 먹습니다. 그 아이와 뷔페식당에서 2번을 함께 식사를 했는데 오직 연어만 먹더군요. 아무리 맛있는 것이 있어도 연어 외에는 손을 데지 않았습니다.
   
구원에 관해서도 이와 비슷합니다. 어떤 사람은 뷔페식당의 다양한 음식을 맛보듯이 다양한 구원을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다양한 음식 중에서 오로지 한 가지 음식만 먹듯이 다양한 구원이 있는데 그 중에서 한 가지만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뷔페식당에서 연어만 많이 먹는 것은 그리 큰 손해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른 음식에 비해서 비싼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원을 오직 한 가지만 누리는 것은 큰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좋은 것을 놓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는 저와 여러분이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구원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구원의 범위와 구원의 방법에 대해서 나누겠습니다. 본문에 보면 주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설교를 잘 들으시고 영혼의 구원을 받으시고 구원의 범위가 더욱 확대 되어서 범사에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구원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1. 구원의 범위 
   
오늘 설교 제목은 “구원의 범위를 확대하라”입니다. 이런 설교 제목을 정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범위를 영혼 구원에 국한 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영혼의 구원을 받은 것처럼 다른 다양한 부분에도 구원을 받아 누리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1) 영적죽음으로부터 구원 
  
벧전 1:9에 보면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드리면 영혼의 구원을 받습니다.
   
영혼의 구원이 가장 기본적인 구원이면서 가장 중요한 구원입니다. 다른 모든 것을 받아 누려도 영혼의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게 됩니다. 다른 모든 것을 받지 못했어도 영혼의 구원을 받았다면 그 사람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영혼구원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가톨릭 신자의 장례식에 갔다가 가슴을 쳤답니다. 팔십 평생 성당에 다녔던 사람의 장례식인데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의 영혼을 긍휼히 여기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성모 마리아여, 비나이다. ○○○의 영혼을 받으소서.”라고 기도했답니다. 어떻게 팔십 년이나 믿은 사람의 영혼을 받아달라고 기도합니까? 그 이유는 이신득의의 신학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혼의 구원은 기본으로 받는 것입니다. 주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이 거짓이 아니라면 그 사람은 이미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2) 질병으로부터 구원 
   
성경 마 9:20-22에 보면 12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을 만짐으로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주님이 그 여인을 보시면서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떨어지자 여자가 그 즉시 12해를 앓던 혈루증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 약 5:15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병으로부터의 구원이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질병을 가지신 분이 계시다면 오늘 말씀이 믿어지고 질병으로부터 구원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3) 인간관계의 고통으로부터 구원 
   
딤후 4장에 보면 바울이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를 비롯한 바울의 핍박자들의 핍박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리고 8절에서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인간관계의 고통으로부터 주님이 건져주시는 구원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 중에 인간관계의 고통이 가장 클 수도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인간관계의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혹 지금 고통 중에 있다면 주의 구원을 경험하기를 축원합니다. 
 
4) 어려운 상황으로부터 구원 
   
성경에서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내용이 자주 나옵니다.
   
시 107:23-30에 보면 바다에 배를 띄우고 큰 사업을 하는 사람이 광풍을 만나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고통에서 구원해 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18만 5천의 군대가 공격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주셔서 어려운 상황에서 구원을 해 주셨습니다. 천사가 하룻밤 사이에 18만 5천이나 되는 산헤립의 군대를 죽이므로 위경에서 구원해주었던 것입니다. 
 
5) 물질적인 고통으로부터 구원 
   
성경에는 물질적인 어려움 중에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수넵 여인은 마지막 남은 가루로 떡을 만들어 먹고 죽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만남으로 물질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주님은 물질적인 어려움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성경 고후 8:9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부요하신 주님이 가난하게 되신 은혜를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부터 구원을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 
 
6) 악한 영의 속박으로부터의 구원 
   
눅 13장에 보면 십 팔년 동안 사단에게 속박을 받아서 허리를 펴지 못하는 여자가 나옵니다. 그 여자는 주님을 만나고 악한 영의 속박으로부터 구원을 받아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막 5장에 보면 거라사에 사는 남자 한 사람이 귀신이 들려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동네에 살지 못하고 무덤 사이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벌거벗고, 돌로 제 몸을 상하게 하고, 사람들과 관계가 단절된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님을 만난 후 악한 영의 속박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악한 영의 속박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자유하기를 축원합니다. 
 

2.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앞에서 구원의 범위 6가지를 살펴봤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럼,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입니다. 
 
1)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성경 고전 1:21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구원의 첫 번째 방법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데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어야 한다.
   
두 사람이 해변에서부터 500Km 떨어진 대양 한 가운데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올림픽 수영선수였고, 다른 한 사람은 수영을 전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곁을 지나가는 배도, 그들 머리 위로 날아가는 비행기도 없습니다. 

그런데 둘 중에 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두 명 모두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무리 훌륭한 수영선수라도 500Km를 헤엄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올림픽 수영선수는 자신의 수영실력으로 어느 정도의 거리까지는 갈 수는 있겠지만, 결국 수영을 전혀 못하는 사람처럼 물속에 가라앉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구명 헬리콥터가 그들 위에 나타나 생명줄을 내려뜨렸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누가 구조됩니까? 생명줄을 잡는 바로 그 사람이 안전하게 구조될 것입니다.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우리 모두는 해안에서 500Km이나 떨어진 장소에 있는 것처럼, 잃어버린바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하게 행동한다고 할지라도 완벽하게 선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멸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길을 잃었으며 구세주를 필요로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구원의 줄, 생명의 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는 사람만이 구원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넓이만큼 구원의 범위는 결정되는 것입니다. 믿음대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내가 구원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믿느냐에 따라서 구원의 범위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영혼은 구원을 받지만 질병이나, 환경으로부터의 구원은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영혼의 구원은 받아서 내세에 천국생활을 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현세에서 질병으로부터 구원이나 환경으로부터의 구원은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마 9장에 보면 두 명의 소경이 주님을 만나서 주님에게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 지릅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하시자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믿었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대로 눈이 밝아진 것입니다. 그들이 믿지 않았다면 그들의 불신앙대로 그들의 눈은 밝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순복음교인들 가운데 신유가 많이 나타나고, 큰 축복을 받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오중복음과 삼박자 구원이라는 가르침 때문입니다. 순복음교인들이 말씀이 부족한 것처럼 인식되어 있지만 사실 그들은 오중복음과 삼박자구원으로 무장되어 있습니다. 오중복음은 중생의 복음, 성령충만의 복음, 축복의 복음, 신유의 복음, 재림의 복음입니다. 그들은 오중복음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대로 오중의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삼박자 구원은 무엇입니까? 영혼이 잘되는 복, 범사에 잘되는 복, 강건하게 되는 복(건강)입니다. 그들은 그 믿음이 확고합니다. 그 결과 3중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오중복음과 삼박자축복은 지극히 성경적입니다. 이 신앙으로 무장되면 광범위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믿고 그 믿음이 자신에게 실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 성도들이 장로교 적인 신학을 갖지만 순복음적인 신앙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으로 완전히 무장되고 그 믿음대로 오중복음과 삼박자 축복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구원받은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 히 11:1에서 말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바라본다는 것은 상상한 다는 것이고,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하고 기대하는 것이 우리에게 실제가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물론 성경 안에서라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 밖에서라면 우리가 상상하고 기대하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믿음은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상상력을 잘 사용해야 한다. 몸이 병든 사람이 건강해지기를 바란다면 건강한 모습을 상상해야 하는 것이다. 몸이 점점 약해져서 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더 약해져서 죽어가는 것을 상상하면 안 된다. 건강해져서 뛰는 모습,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상상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어머니는 1981년, 몇 주 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피골이 상접하고 얼굴이 노랗게 되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지만 큰 소리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집에 돌아와 젊고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을 방안에도, 화장실에도, 부엌에도, 거실에 붙여놓고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선포하였더니 선하신 하나님이 병을 씻은 듯이 치유하여 주셨다고 간증했습니다.
   
경제적인 고통 속에서 구원 받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을 부요하게 하기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주님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부요하게 되어 넉넉한 생활을 하는 것,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 주의 일에 재정을 사용하는 모습 등을 상상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2) 회개하므로 구원을 받는다. 
   
성경 고후 7:10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회개의 결과는 구원입니다.
   
회개란 잘못된 것을 버리고 올바른 길로 돌이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 약 1:21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아담이 하나님이 주신 복을 잃어버리고 저주를 받게 된 이유는 선악과를 따먹은 죄악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고통 중에 있다면 그 고통이 찾아오게 만든 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죄를 처리하면 그 죄로 인하여 찾아온 고통의 뿌리를 차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나무의 뿌리가 잘리면 그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상근 목사님은 성경주석을 쓰신 유명한 목사님입니다. 이분이 젊을 때부터 늘 발뒤꿈치가 아파서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늙어서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봤더니 짧은 철사가 박혀있었습니다. 그걸 모르고 몇 십년동안 철사를 몸속에 지니고 다녔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는가? 목사님이 천사를 제거하니 수십 년 동안 괴롭혔던 발뒤꿈치의 고통이 사라졌습니다. 그걸 빼고 나니 얼마나 시원하겠는가?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통은 분명한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을 발견하여 처리하는 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그러니 “회개하라”는 말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인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은 기분 나쁜 말이 아니라 기분 좋은 말인 것입니다. 
 
3)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받는다. 
   
성경 롬 10:10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자기를 복되게 하느냐 저주스럽게 하느가는 말에 달렸습니다. 잠 10:11입니다.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의인은 말을 잘해서 자신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것입니다. 악인은 독을 머금었기 때문에 말로서 다른 사람을 죽이고 자기도 죽는 것입니다.
   
어느 책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같은 지역, 같은 빌딩에서 구두를 닦는 두 소년이 있었습니다. 한 소년은 구두를 늘 몇 켤레밖에 구해오지 못하는데, 다른 한 소년은 가득 가득 받아왔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 소년은 “구두 안 닦으십니까?”하고 물으니 사람들이 “안 닦아.”라고 했고, 다른 한 소년은 “구두 닦으시지요?”하고 물으니 사람들이 “닦아.” 라고 했기 때문이랍니다. 두 소년의 차이는 말의 차이였습니다.
   
한 대뇌 학자의 말에 의하면 우리 뇌의 98퍼센트가 말의 지배를 받는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약사 에밀 큐가 임상 실험을 했는데, 환자들에게 약을 지어주면서 “약을 먹을 때 그냥 먹지 말고 ‘나는 날마다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라고 말하며 먹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말하고 약을 먹는 사람들의 치료 효과는 급속도로 빨라졌습니다. 말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려면 말을 잘해야 합니다.
   
믿음의 말을 하십시오. 긍정적인 말, 선한 말, 좋은 말을 하십시오. 말은 예언입니다. 
 
4) 겸손하므로 구원을 받는다. 
   
성경 시 149:4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낮은 자존감하고는 다른 것입니다. 낮은 자존감은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은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주 안에서 평가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주님 안에서 보배롭고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이지만 주님이 없이는 멸망 받아야 할 존재로 알고 주님만 의지하는 마음이 겸손인 것입니다.
   
겸손한 생활이란 무엇입니까? 모든 결정권을 주님에게 넘겨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어리석은 사람이고 주님만이 언제나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산교회 김경용 장로님이라는 90이 넘으신 분이 계셨습니다. 어느 젊은 목사님이 20여 년 전에 그 교회에 부흥회를 하러 가셨습니다. 90이 넘으신 분이 젊은 목사님 앞에 무릎을 꿇고 계셔서 그 목사님이 민망했서 “장로님, 편히 앉으세요.”, “아닙니다, 목사님. 저는 하나님의 종인 목사님과 전도사님 앞에서는 절대로 편하게 앉지 않습니다.”, “장로님, 그래도 지금은 편히 앉으세요.”, “목사님, 저는 하나님의 종 앞에서는 무릎을 펴고 앉지 않습니다.” 장로님이 총각 같은 어린 목사 앞에서도 무릎을 꿇고 앉아 계셔서 그 목사님도 무릎을 꿇고 차를 마시며 장로님과 대화를 했습니다.
   
목사님과 장로님의 대화중에 나온 내용입니다. 장로님께서 청년 시절에 교회에 다니면서도 천국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계신 것 같기도 하고 안 계신 것 같기도 해서 긴가민가했답니다. 그런데 하루는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경험하게 되었답니다. 목사님께서 팔복에 대해 설교하실 때, 그 순간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한 나병환자의 상처가 없어지고 피부가 새로워졌답니다. 나병환자가 깨끗하게 되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본 장로님이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구나!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구나!’하고 그 때부터 정성을 다해 주님을 섬겼답니다. 그래서 서른이 조금 넘은 나이에 장로님으로 피택 받았는데, 그때 그분이 고민을 했답니다. 이웃 교회의 장로님들 중 몇 분이 장로님이 된 후에 “나는 교회의 어른인데…….” 하다가 망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장로가 되어서 망하면 안 되지. 겸손한 장로가 되어야지.’하며 ‘하나님, 어떻게 하면 겸손하게 봉사를 할 수 있을까요?’하고 기도하는 중에 종 치는 일이 생각나더랍니다. ‘아! 하나님의 인도구나.’라고 생각한 장로님이 새벽마다, 주일 낮마다, 주일 밤마다, 삼일마다 종 줄을 잡고 종을 친 것이 60년이 지났답니다. 90이 넘은 그 때까지도 종을 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목사님, 제가 종 줄을 잡았더니 하나님께서 제 가족들의 건강의 줄을 잡아주셔서 한평생 병원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안이 이렇게 복을 받았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겸손하게 60년이 넘도록 종을 치며 충성하신 장로님을 하나님께서 복 주신 것입니다.
   
유명한 어거스틴이 하루는 제자들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훌륭한 크리스찬이 되는 길이 무엇입니까? 잘 믿는 비결을 가르쳐 주십시오”,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은 겸손이다”, “그러면 두 번째로는 무엇입니까?”, “둘째도 겸손이다”, “셋째는 무엇입니까?”, “셋째도 겸손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천사가 마귀가 된 것은 교만 때문이고, 사람이 천사가 될 수 있는 길은 겸손하면 되느니라” 천사가 교만해 가지고 결국 마귀가 되었습니다. 교만하면 아무리 천사라도 마귀가 됩니다. 그러나 겸손하면 사람이라도 천사처럼 됩니다.
   
잠 18:12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겸손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광범위하게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5) 기도하므로 구원을 받는다. 
   
성경 약 5:15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시 107편을 읽어보면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고통 중에 부르짖으니 고통에서 구원하셨다는 말이 4번 나옵니다. 그 중에 시 107:13,14만 보겠습니다.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14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통 중에 있습니까?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얽어매고 있는 고통의 줄을 끊으시고 여러분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기도에 관한 간증입니다. 거창 고등학교 고 전영창 교장선생님의 간증입니다. 전영창 선생님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부채가 많아 쓰러져 가는 거창 고등학교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무리 학교 부채를 갚으려고 노력해도 도저히 그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1958년 4월 학교는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과 찬송 그리고 담요 하나를 가지고 거창읍에서 40리 떨어진 웅안현 어떤 산마루 언덕에 있는 굴속에 들어가서 자리를 펴고 일주일 금식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미국 유학을 갔다 와서 이 나라에 새로운 고등학교 교육을 해 보려고 하는데, 이렇게 학교 하나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선생님은 사흘 동안 주야로 매달려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도 아무런 응답도 없자, 그는 너무 가슴이 답답해서 사흘째 밤에는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무리 기도해도 마음이 답답합니다. 응답의 확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면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제가 일주일 금식 기도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가서 동아일보에다가 하나님은 안 계시다고 광고를 내겠습니다.” 그는 어찌되었건 그렇게 담대하게 기도하고 나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같이 가슴이 시원해져서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일주일 금식기도를 마치고 산에서 내려와 보니, 학교 서무과로 편지 한 통이 와 있었습니다. 조우 복이라는 미국 크리스천 성도가 수표 하나를 보낸 것이었는데, 그 수표에는 놀랍게도 2,050불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2,050불이라는 돈은 그 당시 부채를 정확하게 갚을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그 후 전영창 선생은 1971년 학교 강당을 위해서 다시 한 번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그 때도 기적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수정교회 로버트 슐러 목사님을 통해서 거창고등학교로 거액이 송금되어 그렇게도 짓고 싶어 하던 강당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 가운데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기도의 무기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돌 벽과 쇠문도 거미줄처럼 약하나,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거미줄도 철문보다 강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로마의 기독교 박해 시절에 노라 팰릭스라는 교회 지도자가 한 말입니다.
   
관원들이 그를 체포하려 하자 그는 산 속에로 들어가 어느 굴속에 숨었습니다. 관원들은 그를 뒤좇아 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굴속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내 생명을 받아주옵소서. 주님의 손에 의탁합니다.” 그리고 그는 체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굴 앞에 당도한 수색대원들이 왔다 갔다만 하고 굴 안으로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조금 후에 그들이 다 철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해서 자세히 살펴보니까 그가 있던 굴 입구에 거미줄이 쳐져있었습니다. 그가 기도할 때에 거미 몇 마리가 쏜살같이 그 굴 입구에 거미줄을 쳐놓았던 것입니다. 수색대원들은 거미줄이 쳐져 있는 것을 보고 이 굴속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돌아간 것입니다. 그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돌 벽과 쇠문도 거미줄처럼 약하나,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거미줄도 철문보다 강하다”
   
사랑하는 여러분! 반드시 영혼의 구원을 받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영혼의 구원만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구원의 범위를 확대하십시오. 영과 혼과 몸뿐만 아니라 생활의 구원까지도 누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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