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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꿈을 준 사람 (창 11: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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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꿈을 준 사람 (창 11:27-32)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겠다고 다짐을 하고는 신약의 첫 책인 마태복음을 폅니다. 그러나 1장 첫 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낳고, 낳고가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지루한 이름이 나열 되어 있으니 대충 읽고 넘어갑니다. 이 족보는 예수님의 족보인데 족보 안에는 유대인들에게는 파격적인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족보에 여자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복에는 다섯 명의 여성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유대인의 역사 가운데 자랑스러운 여성이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천한 신분의 여성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가 의도적으로 넣은 것입니다. 마태는 이 족보에 천한 여성들의 이름을 넣음으로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대상은 신분, 인종, 성별 등 어떤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원하신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도 족보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안에는 10번에 걸쳐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구조로 볼 때 그 족보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은 셈의 족보 내용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교훈을 찾아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본문의 족보에 담긴 교훈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앞에 나오는 내용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창세기 6장에서 10장까지는 노아 홍수 사건이 나옵니다. 노아가 살던 시대는 사람들이 심각하게 타락을 했습니다. 얼마나 타락 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실 만큼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을 홍수로 멸하시기로 결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신실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는 노아를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을 구원하셔서 그들을 통해 다시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 가시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홍수로 인류를 멸망시킬 계획을 말씀해 주시고 홍수를 대비해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노아는 가족들과 함께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120년간에 걸쳐 배를 만들었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40일간 비는 쉬지 않고 내렸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물에 잠겼습니다. 200일 이상의 시간이 지난 후에 물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다 빠지고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가족들과 함께 가장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노아는 가족들과 함께 포도농사를 지었습니다. 한 해의 농사가 잘 되어 많은 수확을 했습니다. 노아는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벌거벗은 상태로 장막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노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들 중에 둘째인 함이 장막에 들어갔다가 아버지가 벌거벗고 자는 수치스런 모습을 보았습니다. 함은 셈과 야벳 두 형제에게 조롱 섞인 말로 아버지의 추한 모습을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기 위해 뒷걸음으로 장막에 들어가 자신들의 겉옷으로 아버지의 수치스런 모습을 덮어 드렸습니다. 술에서 깨어난 노아가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아는 세 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셈과 야벳을 위해서는 축복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수치스런 모습을 비웃고 조롱한 함에게는 저주를 했습니다. 창세기 10장에는 노아가 죽은 이후에 그의 세 아들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눈 여겨 봐야 하는 것은 10장 6-20절에 나오는 함의 족보입니다. 함의 자손이 나열 되어 있는데 그의 자녀들의 이름을 보면서 우리는 놀라게 됩니다. 함의 아들 가운데 가나안이라는 아들이 있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역사적으로 끝까지 적대 관계를 맺고 사는 가나안 족속의 시조입니다. 

가나안의 후손 가운데 시돈 족속, 아모리 족속, 여부스 족속, 블레셋 족속 등이 나옵니다. 함의 후손들이 이스라엘의 대적이 됩니다. 특히 그들이 시날 땅의 바벨에 거하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이 됩니다. 함이 하나님을 거역하며 인류를 타락시키는 쓴 뿌리가 됩니다. 

바벨탑은 하나님을 거역하며 대적하는 인류의 교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내용입니다. 함의 후손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은 시날 평야에 바벨탑을 쌓으며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고 말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인간의 힘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자는 말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며 하나님 나라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천사가 저주를 받아 땅으로 추방된 존재입니다. 그 사단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 한 말이 너희들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죄의 뿌리는 높아지고자 하는 교만입니다. 함의 자손을 중심으로 인류가 시날 평야에 바벨탑을 쌍은 것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했던 인간의 교만의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인간의 언어를 흩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12장에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인간의 교만이 싹튼 풍요한 물질의 세계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향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인류를 심판하실 때 노아를 선택하셔서 구원의 길을 다시 여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바벨탑 사건 이후에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구원의 길을 다시 여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시는 이유가 그것이고 창세기 12장이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해 말하기 전에 그에게 꿈을 심어준 사람인 그의 아버지 데라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에 대해 성경에 나오는 내용이 별로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족보를 보면 그가 노아의 첫째 아들인 셈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셈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데라는 조상들로부터 하나님께서 자신의 조상인 노아에게 대홍수 때에 베풀어 주셨던 은혜에 대해 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서 24장 2절에 보면 데라가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훌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라고 말합니다. 즉 데라는 바벨탑을 쌓던 혼탁한 시대에 휩쓸려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우상을 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세상을 쫓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가운데  31절에 보면 데라에 삶의 자리에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그의 가족을 데리고 자신이 살고 있었던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했다고 말합니다. 갈대아 우르라는 땅은 티르기스강과 유브라데스강을 끼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비옥한 곳입니다. 물질의 풍요와 인간의 향락이 꽃을 피웠던 곳입니다. 

고대문명의 중심지로서 인간의 교만이 하늘을 찌르며 바벨탑을 쌓았던 곳이고, 우상 숭배의 집결지였습니다. 갈대아 우르라는 곳은  아브라함의 시대에 인간의 문명으로 보면 최고 절정의 시기였습니다. 데라는 그곳에서 우상을 섬기면서 그 풍요의 문화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런 데라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삶의 터전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했습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거칠고 살기 어려운 곳에서 풍요롭고 세상의 즐거운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데라는 풍요함을 상징하는 지역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거칠고 황량한 가나안 땅으로 향했습니다. 데라가 그런 결단을 하게 된 데이는 아마 그의 삶에 충격적인 어떤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충격적인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아들 하란이 죽은 사건도 한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런 충격적인 사건들을 통해 데라는 자신의 인생과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을 것입니다. 물질 만능주의 세상에 대한 염증과 쾌락을 중심으로 추구하는 인간의 행복에 회의를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 세계를 떠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계를 추구하고자 하는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 결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의 정신이 살아있고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가나안 땅으로 이동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보면 가나안 땅은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입니다. 데라는 하나님 안에서 품게 된 거룩한 꿈을 이루기 위해 가족들을 데리고 자신의 삶의 전부였던 갈대아 우르를 떠나 새로운 세상인 가나안으로 향했습니다. 

31-32절에 보면 데라는 가족들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하던 중에 하란이라는 곳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는 그곳에서 잠시 머물렀습니다. 데라는 가족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향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는 가운데 나이가 들고 쇠약해져서 하란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데라는 인간의 욕망으로 가득찬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의 정신과 가치가 살아 있는 가나안에 이르기를 원했지만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창세기 12장에는 데라의 아들인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고,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에 따라 복의 근원이 됩니다. 저는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는 과정에서 그의 아버지 데라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어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향하는 것은 아브라함, 그가 품은 꿈이기 전에 아버지 데라가 품었던 꿈이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합니다. 가나안은 아브라함의 꿈이기 전에 아버지 데라의 꿈이었습니다. 데라가 품은 가나안을 향한 꿈은 자신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일어설 만큼 그에게는 강력했습니다. 하지만 데라는 자신이 하나님 안에서 꾸었던 ‘가나안에 이르는 꿈’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에 하란에 머물다가 생을 마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데라가 강력하게 품었던 가나안을 향한 꿈은 그의 아들 아브라함이 대를 이어 꾸는 꿈이 되었습니다.  데라는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일어서는 의지와 용기를 아들인 아브라함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 꿈을 자녀에게 심어준 사람입니다.  제가 볼 때 그것만으로도 데라는 성공적인 삶을 산 사람입니다. 

제가 대림절 둘째 주간을 보내면서 지난 한 주간 동안 묵상하면서 은혜를 받은 주제는 ‘꿈 너머의 꿈’이었습니다. 혼자 많은 것을 생각했고, 기도하며,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제 자신의 삶을 생각해 보며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품는 꿈을 다 이루지 못할지 모르지만 자식에게 그 꿈을 전해 줄 수 있고 훗날 저의 아이들이 제가 꾸었던 하나님 안에서의 꿈을 위해 일어설 수 있다면 아마 저는 행복한 아버지가 될 것입니다. 거룩한 꿈을 꾸고 그 꿈을 자녀와 후대와 함께 공유하게 할 수 있는 꿈의 아버지, 꿈의 부모, 꿈의 가정, 꿈의 교회, 꿈의 어른, 꿈의 사회와 나라가 될 수 있다면 그 꿈을 다 이루지 못해도 그것은 행복한 삶이고 성공적인 삶입니다. 

제가 말씀 안에서 묵상했던 ‘꿈 너머의 꿈’이 어떤 세계인지를 앞으로 두 주에 걸쳐 말씀을 나눌 생각입니다. 오늘은 거룩한 꿈을 꾸며 그 꿈을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 거룩한 꿈을 아들 아브라함에게 꿀 수 있도록 인도한 데라의 아름다운 삶이 우리들의 삶이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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