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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른 언어의 시작 (행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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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언어의 시작 (행 2:1-4)

시작이 나쁘면 끝도 나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일의 최초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잘못된 시작은 잘못된 결말에 도달합니다. 잘못된 인생은 잘못된 말에서 시작됩니다. 다른 언어를 시작하면 다른 인생을 만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미련한 사람의 입은 자기를 망하게 만들고, 그 입술은 올무가 되어 자신을 옭아맨다”(잠18:7)
  
말의 힘은 위대합니다. 죽은 사람을 무덤에서 불러내기도 하고 산 사람을 죽여 무덤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말이 소인을 거인으로 만들고, 말로 거인을 두들겨 패 죽게 할 수도 있습니다. 
  
“...보십시오, 아주 작은 불이 굉장히 큰 숲을 태웁니다. 그런데 혀는 불이요, 혀는 불의의 세계입니다. 혀가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지르고 결국에는 혀도 지옥 불에 타버립니다.”(약3:5,6) 
  
여러분의 인생을 바꿔보고 싶지 않으세요? 그게 가능 하겠느냐구요? 가능합니다. 말을 바꾸면 됩니다. 말을 바꾸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 무익한 언어

무익한 종이 있듯이 무익한 말이 있습니다. 무익하다는 말은 이익이 안된다 도움이 안된다는 말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안타깝게 말합니다.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렘7:8) 거짓말쟁이의 목표는 단순히 속이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속는 것을 보고 기뻐합니다. 거짓말을 의존하면 그 말과 함께 무너집니다. 
  
거짓말처럼 비열하고 가련하고 경멸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루터는 하나의 거짓말을 참말처럼 하기 위해서는 일곱 번의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괴담의 나라라고 합니다. 괴담이라는 말은 사전에서 찾아보니 “괴상하고 이상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바람에 날리는 겨 같은 사람의 말입니다.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을 유발한다느니, 한미 FTA가 시행되면 우리나라는 미국의 식민지가 된다.” 이런 이야기들입니다.
  
20대부터 40대까지 500명을 대상으로 휴대폰으로 여론을 조사한 결과 49%가 FTA가 협정되면 우리나라가 경제 식민지가 된다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천안함은 북한 어뢰에 맞아 폭침 된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침몰했다.”는 말은 60.8%가 믿고, “한미 FTA로 인해 물값이 크게 올라 수돗물 대신 빗물을 받아쓰게 된다.”는 말을 믿는 것이 68.9%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20대부터 40대는 고등교육 이상의 지성인들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말에는 불가의한 힘이 있습니다. 말을 들으면 그 말의 힘이 말 한대로 믿게 합니다. 말도 안되는 말도 “그렇대” “나도 들었는데 안 믿어지지? 그렇다니까? 하긴 그래~” 하면서 받아들입니다. 험담은 아주 재미가 있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괴담을 만들어 국정을 혼란케 합니다. 헐뜯는 말은 더더욱 잘 먹혀듭니다. 
  
“헐뜯기를 잘하는 사람의 말은 맛있는 음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간다”(잠18:8,공동번역)고 했습니다. 험담은 해치기 위한 말입니다. 산 사람을 죽이는 살인행위입니다. 생각 없이 그냥 하는 말은 오발탄과 같습니다. 애매하게 사람을 죽입니다. 잘해야 할 일 중에 가장 잘할 일이 “말”입니다. 사색하고 기도하는 영혼은 영감의 원천입니다. 
  
예수님은 말을 책임 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심코 내뱉은 사소한 말이라도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12:36-37)
  
괴담, 험담, 거짓말은 무익한 말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실 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라는 말은 자주하셨습니다. 참된 말로 참된 인생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 마음의 언어

프랑스 속담에 마음은 거짓말을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은 지성보다 지혜롭습니다. 특히 여자의 마음은 맑고 깊습니다. 열길 물 속보다 깊은 깊이가 있습니다.  
  
사람의 차이는 마음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실 때 외모를 보지 않고 마음을 보십니다. 갈렙의 마음이 다른 정탐꾼과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 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민14:24)
  
가나안땅을 정탐했던 열 사람의 마음과 갈렙의 마음이 달랐습니다. 열 사람들은 “가나안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거기서 아낙자손을 보았다. 그들의 신장은 장대하다.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았다.”고 했습니다. 
  
갈렙은 다르게 말합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13:30)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있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민14:7-9)
  
마음의 차이, 언어의 다름이 축복과 저주를 갈라놓습니다.l 마음이 같은 사람끼리 모이기 마련입니다. 갈렙과 같은 사람은 여호수아뿐입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한 줄에 섰습니다. 그는 가나안 정복자로 약속의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군중들이 모여서 갈렙이 하는 말과 다른 열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누가 하는 말이 옳은가? 누구 말을 믿고 따라야 하나? 한 몸 가지고 여기도 있고 저기도 갈 수는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다수의 말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악평하니 한 사람과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습니다”(민14:36,37) 원망하고 악평하는 사람들이 똑똑해 보일 때가 있지만 그들은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의 상황만 보는 사람들입니다. 비판과 반대 에만 능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온 소리입니다. 어머니의 말씀은 어머니의 마음의 소리입니다. 마음의 언어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 성령의 언어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4절)
  
성령이 말하게 하심에 따라 시작된 말은 방언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알아듣는 소통의 언어였습니다. 말이 갈라지면 공동체가 갈라집니다.
  
사람들이 시날 평지에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언어가 하나, 말이 하나였습니다. 그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름을 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을 중지시키는 방법은 언어의 혼란입니다.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습니다. 서로 못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소통이 안되고 불통하다보니 그들은 흩어지고 말았습니다(창11:1-9). 
  
하나되지 못한 고린도 교회에게 주신 말씀은 같은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1:10)  
  
성령의 충만하심은 인간의 영혼 속에 창조자의 영이 가득 거하심을 말합니다. 성령께서 영혼을 움직여 말하게 하는 말이 성령이 말하게 하는 말입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여 하는 말이란 지금까지 배운 일도 들어본 일도 없이 성령이 말하게 하셔서 하는 언어입니다. 그 언어는 신비한 능력이었습니다. 특정한 어느 나라말이 아닌데도 의사 소통이 되게 했습니다. 그 말은 꿈을 꾸게 하고 비전을 갖게 하고 서로 다른 문화적인 차이도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들으면서 답답한 말이 있습니다. 들으면 시원한 말이 있습니다. 유쾌한 말이 있고 불쾌한 말이 있습니다. 힘 빠지는 말이 있고 에너지가 되는 말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자유를 얻고 용기를 얻고 소망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 분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요6:63,64)
  
좋은 말은 살리는 말입니다. 살리는 말은 생명의 말입니다. 하나되게 하는 말이 있고 하나를 둘로 셋으로 나누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보며 안타까운 것은 소통이 안 되는 것입니다. “먹통”이 “불통”입니다. 그래서 분쟁하고 고통합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마11:17)  
 
언어를 바꿔야합니다. 무익한 언어를 바꿔야 합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 감과 같다”(딤후2:16,17) 독한 창질은 “암”을 뜻합니다. 병주는 말을 버리고 고쳐주는 말이 다른 언어입니다.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니라”(딤후2:14) 내 말을 듣고 망하게 하면 안됩니다. 내 말을 듣고 잘 되어야 합니다. 
  
“다른 언어”는 헛된 말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진실한 언어입니다. 너희가 말을 하려거든 하나님의 말씀을 하시는 것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벧전4:11).
  
예수님은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보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있으면 먼저 돌로 치라!” 하셨습니다. 아무도 돌로 치지 못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말, 죽은 자를 살리는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언어”는 성령과 지혜로 하는 말입니다. 조화를 이루고 연합을 이루는 언어를 구사하시기 바랍니다. 관음(觀音)이란 말은 소리를 본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말소리가 그 실체를 나타내어 말의 수확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 말은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않는다 내 뜻을 이룬 뒤에야, 내가 하라고 보낸 일을 다한 뒤에야 내게로 돌아온다”(사55:11. 쉬운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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