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은혜의 결말 (미 6:6~8)

첨부 1


은혜의 결말 (미 6:6~8) 
 
 
은혜받았았다는 사람이 성질을 부리면 곧 비판과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은혜 받으면 뭐하나? 성질을 고쳐야지!"하는 것과 같은 비판과 공격입니다.  

사람의 성품을 말하는데 있어서 성격과 성질은 비슷한 말입니다. 그러나 같은 말은 아닙니다. 성품을 말하는 것이긴 하지만, 성격이라 하면 좀 고상한 말입니다. 성격이라는 용어는 누구에게 어느때나 사용해도 실례가 되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성질이란 단어는 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성질이란 용어는 앞이나 뒤에 부정적인 수식어가 곧잘 붙습니다. 못된 성질이라든지, 성질 좀 죽여라, 성질 부리지 마라는 말 등이 그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성깔이란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성질보다 한단계 더 악하게 업그레이드된 성품입니다. 성깔이란 함부로 써서는 안되는 용어이며, 주로 욕을 할 때 쓰입니다. 성깔이란 말 뒤에는 으레 더럽다는 냄새나는 수식어가 따라붙습니다. 좋다든지 괜찮다고 하는 향내나는 수식어는 결코 붙질 않습니다.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싸가지 꼬라지 지랄과 같은 표현들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성질, 성깔, 싸가지, 꼬라지, 지랄과 같은 그런 말이 붙지 않게 우리가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위기에 빠졌다는 말을 귀가 아프게 듣고 있습니다. 왜 위기에 빠진 한국교회가 되었습니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은혜"에 관련되어 있는 문제도 있다고 생각되어 오늘 우리가 함께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로 우리에게 제공된 이 놀랍고도 값비싼 은혜가 말만 잘하면 그냥 가져갈 수 있는 그런 떨이 물건이나 값싼  물건으로 전략해버린 것 때문입니다. 너무 커서 값을 지불할 수 없기 때문에 거져주신 것을 내가 지불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해서 싸구려 취급을 한 그 원죄가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위기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값싼 은혜는 싸구려 은혜를 말합니다. 헐값의 용서, 헐값의 위로, 헐값의 십자가, 헐값의 성만찬은 값싼 은혜입니다. 값싼 은혜를 가르치는 교훈이 한국교회 강단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고 거기에 성도들이 너무 깊이 심취하여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값을 올리려고하면 외면하기 일수이고 얼굴을 찌프리기 일수입니다.   

TV 영상을 통해서
독수리떼가 가끔 오염된 먹이를 먹고 죽어가는 모습이 방영되곤 합니다. 태양이라도 집어삼킬만한 기세로 하늘을 날아올라야 할 독수리가 오염된 먹이를 잘못 먹은 것 때문에 머리를 땅에 처박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오염된 먹이를 먹고 죽어가는 독수리떼처럼 우리 민족교회와 민족기독교가 "싸구려 은혜"라는 시체 주위에 모여, 그 시체의 독(毒)을 받아마신다면 그 결과는 예수를 본받는 삶이 우리에게서 사리지고 말것입니다. 결국은 시민들에게 외면당하게 될 것이고 이 사회에서 그런 기독교는 질타를 당할 수 밖에 없게 될것입니다. 

사람들이 겪는 질병 가운데 유전으로 생기는 질병은 5% 내외라고 합니다. 그리고 90%는 자신이 먹는 대로 생기는 질병이랍니다. 이런 견해는 '의사들의 의사'로 불리는 미 코넬대 조엘 펄먼(57·사진)박사의 의견입니다. 펄먼 박사는 비만·당뇨·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겪는 미국인 수만명을 음식만으로 치료한 의사로 유명입니다. 
음식뿐이겠습니까? 교훈도 그렇습니다.값싼 은혜의 교훈으로 배부르면 당연히 값싼 행실을 나타낼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값싼 은혜와 값비 싼은혜의 차이,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의 결말은 행동의 변화에 있습니다. 
값싼 은혜는 은혜를 받았지만 삶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죄짓는 자가 여전히 죄짓고, 성질머리 나쁜 사람은 여전히 성질머리 나쁩니다. 게으른 사람은 여전히 게으르고 허영과 사치에 빠져 있는 사람은 여전히 그렇게 삽니다. 그러나 값비싼은혜는 은혜를 받는 순간 성품의 변화가 일어나고 삶의 변화가 강력히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난 10월 중에 한 인터넷신문에 이샘물이라는 기자가 쓴 기사 중에  "주일엔 장로님, 평일엔 밤손님"이라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읽어보았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K사립대 재단 이사장 집에서 금품을 훔치려 한 혐의(절도미수)로 구속된 전모 씨(60)가 평소엔 교회 장로로 활동하는 등 '이중생활'을 해온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전 씨의 부인과 이웃들은 그를 '착하고 마음 여린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20일 성북경찰서에 따르면 전 씨는 경찰 조사에서 성북동과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저지른 9건의 절도 범행에 대해 시인했다. 경찰은 최근 이 일대에서 비 오는 날 발생한 침입절도 사건 18건의 주력 용의자로 전 씨를 지목하고 수사해왔다. 창문을 열고 들어가 금품을 훔친 뒤 수건으로 족적을 지우는 범행수법이 전 씨와 일치했기 때문. 집 안에서 사람과 마주쳤을 땐 "나야 나"라고 말하는 수법도 같았다. 하지만 전 씨는 폐쇄회로(CC)TV에 찍힌 범행만 시인했다. 재단 이사장 자택 절도미수 혐의에 대해서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재단 이사장과 몸싸움을 벌였기 때문에 강도죄가 추가로 적용될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착하고 신앙심 깊은 남편이라 믿고 살아온 전 씨 아내는 경찰조사에서 "남편이 일주일에 이틀씩은 새벽녘에 귀가하곤 했다"며 "얼마 전에는 갑자기 진주목걸이를 선물로 주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목걸이를 압수하고 여죄를 추궁하고 있다. 전 씨는 경찰 조사 과정 내내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값싼 은혜는 값싼 결말을 가져오게 되고 값비싼 은혜는 값비싼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값싼 은혜는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오늘 우리의 싸움은 값싼 은혜를 물리치고 값비싼 은혜를 얻기 위한 싸움입니다.  
은혜받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이 아니라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삶인 것입니다. 
썬데이 크리스챤이 아니라 에브리데이 크리스챤입니다. 

아프카니스탄에서 이슬람교도였다가 예수를 믿고 기독교인이 되어서 사형직전까지 갔던 압둘 라흐만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프카니스탄이 인구가 2500만인데 99%가 무슬림입니다. 태어나면 무조건 다 무슬림이에요. 이슬람교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압둘 라흐만도 하루에 다섯 번씩 그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향해 절을 하고 1년에 한 달 동안 라마단 기간동안에는 해가 떠있을 때 금식하던 그러한 아주 철저한 이슬람교도 무슬림이었는데, 그가 파키스탄에 내려가서 아프카니스탄의 난민들을 돕는 그러한 기독교의료 단체에서 봉사를 하다가 감동을 받았어요. 4년여 동안 그들과 함께 난민들을 치료해주고 돕다가 예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어요. 그런데 이슬람교인이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생명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에서는 그런 사람을 사형에 처하고 맙니다. 그래서 그가 독일로 가서 거하다가 자기 딸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아프카니스탄에 들어왔는데, 큰딸이 14살 그 아래 딸이 13살인데, 라흐만의 부모님이 기독교인으로 개종했다고 만나주질 않아요. 애들을 못 만나게 해요. 그리고 경찰에 신고했어요. 그래서 이슬람교를 져버리고 기독교인이 됐다고 하는 죄목에 의해서 그가 법정에 끌려가게 됩니다. 이슬람법인 샤리아에 의하면 무슬림이 이슬람을 버리고 다른 교로 가는 것은 중죄에 해당해서 사형으로 다스립니다. 기독교를 포기하지 않으면 그는 법원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이제 사형장에서 죽음을 당할 수 밖에 없게 되었어요.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이교도도 아니고 도망자도 아니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그들이 나를 처형하기 원한다면 이를 받아들이겠다. 내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죽어야 한다면 죽겠다."

이 소식이 매스컴을 타고 전 세계에 퍼져나갔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영국 각 나라에서 아프카니스탄에 이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많은 크리스찬들이 그를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적인 그러한 이슈가 되고 여론이 불리해지니까 아프카니스탄법원은 사형으로 기소했던 그 모든 죄목을 기각해버리고 외국에 추방해버렸어요. 이탈리아로 이제 망명하게 되었는데 결국 부인과 두 딸은 영영히 만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결국 가족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은혜는 삶으로 완성됩니다. 
은혜의 시작은 예배 중에 기도하는 중에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중에 오지만 은혜의 완성은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은혜를 받았다 해도이것이 전부일수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메마른 감정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정서가 기름져야 하고 심미적으로 촉촉하고 부드러워야 합니다. 
이처럼 은혜의 시작은 심미적이고 정서적이고 감성적으로 오지만 은혜의 완성은 영광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합니다. 은혜의 종결은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인 변화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고전 15:10절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은혜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그 은혜를 갈무리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값싼것으로 여기지 말고 값비싼 것으로 여기고 그 은혜를 헛되지 않게 다른 모든 성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주시는 본문 말씀을 한 번 더 읽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미 6:6~8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