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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공의와 찬송을 솟아나게 하시리라 (사 6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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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와 찬송을 솟아나게 하시리라 (사 61:1-11)


예수님께서 한 번은 당신이 자라나신 곳인 나사렛에서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성경을 읽으신 적이 있습니다(눅4:16). 그때 예수님께서 읽으시도록 받으신 성경책은 이사야서였습니다(눅4:17). 이사야서를 받아 펴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오늘 본문인 61장을 찾아 읽으셨습니다. 그 1절과 2절 상반절까지 읽으신 예수님께서는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셨습니다(눅4:18-20). 그리고는 회당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주목하여 보는 가운데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눅4:21). 무슨 뜻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읽으신 곳에는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셨다면 거기서 말하는 “나”는 누구겠습니까?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통해 이루시리라고 이사야서에서 예언된 것이 당신의 오심으로 인하여 성취되게 되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메시야에 관한 예언의 말씀의 하나로 이해되어온 것입니다. 

1절 제일 앞에 보면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님 위에 임하셨다는 복음서들의 증언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셨다.” 합니다(마3:17, 막1:11, 눅3:22). 

그 다음에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라고 합니다. 여기서 “기름부음”은 앞서 말한 “성령을 내리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메시야” 또는 헬라어로 “그리스도”는 바로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기름부음”은 일반적으로 왕과 대제사장만 받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명하시기를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신 적이 있긴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기름부음”의 모든 경우가 다 적용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고 온 인류의 대제사장이시며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모든 말씀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메시야 곧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말 자체가 그의 호칭이 된 것입니다. 

본문 1절 중간에 보면 “나를 보내사”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기름 부으신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이사야를 통해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보내심을 받은 메시야가 당신 자신이심을 밝히신 것입니다. 

본문 1-9절에는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셔서 이루실 일들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차례대로 보면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란 꼭 경제적 빈자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환난을 당한 자”, “낮아진 자”, “도움을 얻을 데가 없는 자”들을 가리키기도 하는 말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아름다운 소식” 즉 복된 소식을 전하려 메시야를 보내신 것입니다. 

또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것”입니다(본문 1-2절). “은혜의 해”는 개인적으로는 종들이 완전한 자유의 몸으로 돌아오는 희년을 의미하기도 하고, 바벨론 포로기를 살던 유대인들에게는 고국 땅으로 돌아가는 해방의 날을 가리키기도 하며, 모든 때에 죄와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 아래 사는 삶의 종식을 뜻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와 절망과 죽음 아래 있는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에 의한 구원의 은혜를 선포하고 상한 심령을 치유하시며 자유하게 하시는 메시야로 오신 것입니다. 

메시야의 오심은 또한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보복의 날” 즉 심판의 날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한 편으로는 의의 나라를 완성하시는 날이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악과 불의가 완전히 멸망할 대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메시야의 오심은 “모든 슬픈 자의 위로”가 될 것입니다(본문 2절). 

본문 3절을 봅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시온은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말로 쓰입니다. 예루살렘은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메시야의 오심은 슬픔에 잠긴 하나님의 백성에게 “화관”을 씌워 주리라는 것입니다. 

“화관”은 여자들이 머리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모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이사야를 통해 시온의 딸들에게서 화관을 제하시리라고 예언하신 바 있었습니다(사3:20) 그 예언대로 화관을 빼앗기고 대신 재를 뒤집어 쓴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화관을 쓰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재를 머리에 뿌리는 행위는 수치와 겸손과 통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수치를 벗겨주시며 평안을 주시리라는 말씀입니다. “기쁨의 기름”은 올리브 기름을 말합니다. 즐거운 일이 있을 때 올리브 기름을 머리에 바르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습니다.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한다는 것은 다시 슬픔을 잊고 기뻐하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의의 나무”는 보다 정확히는 “의의 상수리나무”입니다. 사1:29에 보면 “너희가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의 주민들을 기쁘게 하던 나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로 하여금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 온갖 죄악으로 말미암아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같이 될 것이라 예언하게 하신 바 있습니다(사1:21-30). 그렇게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같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잃었던 예루살렘이 다시 “의의 나무”같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자라고 일컬음을 받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으로서의 회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본문 4절은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로부터 유다 땅으로 돌아올 백성이 황폐해진 도성 예루살렘을 재건할 것을 예언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합니다. 이사야의 이 예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그러한 희망을 주시며 그들로 위로받게 하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예언은 그 시대를 넘어서서 파괴되고 버려진 예루살렘처럼 모든 시대에 심령이 황폐해지고 삶이 무너진 모든 이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로 인해 위로와 회복의 희망을 가질 수 있음을 선포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메시야의 도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림을 뜻하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서는 “외인은 서서 너희 양 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합니다. 메시야의 오심으로 열릴 새 시대에는 나라 밖 이방인들이 와서 유대인을 위해 일하는 양치기, 농부, 포도원지기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나라의 백성을 위해 종살이 하며 천대받던 시대가 지나고 그들로부터 존귀히 여김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이 차별 없이 한데 어울려 사는 평화의 시대가 될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 사이의 모든 막힌 담을 허시는 평화의 주로 오신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 가운데 살며 존귀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바로 섬기며 그의 제사장나라로서 바로 설 때입니다. 순종하는 믿음과 충성되고 신실한 섬김으로 온 천하에 하나님의 주권을 힘 있게 선포하며 그의 사랑과 구원의 능력을 힘껏 증언함으로써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때 모든 세상으로부터도 인정을 받게 될 것임을 본문 6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 

이 말씀은 유대인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중요한 말씀입니다. 옛 언약 아래서는 제사장이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고 백성의 죄와 요구를 하나님께 가져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열린 새 언약의 시대에는 사람들이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깨닫기를 힘쓰며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죄를 고하게 됨으로써 모두가 제사장같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들로 회개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사역자 또는 봉사자라 일컫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본문 7절을 봅니다: “너희가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 배를 받는다는 것은 기업을 상속받을 때 장자가 누리는 권리였습니다. 보상을 배나 받는다는 것은 불신앙과 교만과 불순종의 죄로 말미암아 수치와 능욕을 당하던 하나님의 백성이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회복되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으로서 복권됨을 의미합니다. 메시야의 오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영원히 인치심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갖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백성 사이의 관계 또한 정상화시켜 주심을 본문 8절에서는 말하기를 “무릇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 합니다. 정의와 공의를 세워주실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메시야의 오심만이 사람들 사이의 정의와 공의가 영속적으로 바로 서는 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고 그에게 충성되고 신실한 백성이 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바르게 회복시켜 주실 것이며,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복 받은 자손으로 뭇 나라 만민 가운데 알려지며 칭송을 받게 될 것임을 본문 9절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의 자손을 뭇 나라 가운데에, 그들의 후손을 만민 가운데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메시야의 오심이 이루어주는 일입니다. 

본문 10절에서는 메시야의 기쁨과 즐거움을 언급합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메시야에게 구원을 이루고 공의를 실현할 이로서의 완전한 권위와 권능을 입혀주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신다”는 것은 혼인예식에 임하는 신랑신부가 그 단장을 완벽하게 함같이 당신의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기름 부은 이를 완벽하게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메시야의 만족과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본문 11절을 봅니다: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공의와 찬송을 모든 나라 앞에 솟아나게 하시리라.” 이 11절은 기름부음을 받은 이의 기쁨과 즐거움의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공의의 겉옷을 더하시며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심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그렇게 하심으로 이루시는 일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일이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의 나라에서 공의와 찬송이 솟아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충성과 신실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에게서 공의가 자리 잡게 하시며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울려 퍼지게 하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일은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이루어지게 하실 것이며 그것을 모든 나라가 보는 앞에서 이루어지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그 백성 또한 영광을 누릴 수 있게 하시리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슬픔도 절망도 불의도 수치도 능욕도 다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상한 심령으로 무너진 삶을 끌어안고 탄식하는 모든 이에게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날마다 목격하며 탄식하는 어둡고 혼탁한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의 현실도 다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대림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안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그를 우리의 유일하시고 참되신 구원자요 치유자요 자유하게 하시는 주로 온전히 모시며, 희망을 잃은 모든 이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증언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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