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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창 5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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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창 50:24)


요셉이란 인물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고부터가 아니라 그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을 때부터였습니다.
요셉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더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요셉은 라헬의 첫 번째 아들이자 야곱의 열 한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성품이 온유하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통해 얻은 아들이어서 아버지의 총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요셉은 해와 달과 별들이 자기에게 절하고 열 한 단의 곡식 단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공개하고부터 형들의 미움과 시기가 날로 더해갔습니다(창 37:3-11). 

그 형들이 도단에서 양을 칠 때에 아버지의 명령을 받아 그들의 안부를 알기 위해 형들의 목장을 찾아갔습니다. 이때에 형들이 의논하여 요셉을 죽이기로 결의하였으나 르우벤의 제의에 따라 죽이지 않고 구덩이에 던져 넣게 되었습니다. 다시 유다의 제의로 미디안 상고들에게 은 20을 받고 팔았습니다.
그 형들은 부친 야곱에게는 요셉의 옷에 짐승의 피를 묻혀다가 악한 짐승에게 찢겨 먹힌 것으로 거짓 보고를 했습니다. 이 때 야곱은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아들을 위해 애통했습니다. 그러나 미디안 상고들에게 팔린 요셉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서 요셉은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총무로 삼고 자기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했습니다. 그 후에 보디발의 아내가 동침하기를 유혹하였으나 단호하게 거절하자 적반하장(賊反荷杖)격으로 도리어 요셉이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옥에 있는 중에 함께 갇혀있는 바로의 두 관원의 꿈을 해석해 주었고 2년 후 바로의 꿈을 해석해 줌으로 석방되어 일약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과 결혼하여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낳았습니다(창 41:50-52).

바로의 꿈은 요셉의 해석대로 7년간 풍년과 7년간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미 요셉은 애굽에 7년 풍년이 들 때 식량을 비축해 놓았습니다. 흉년 때 가나안에 살던 요셉의 배다른 형들도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왔다가 요셉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요셉은 가나안 땅에 사는 부친 야곱을 모시고 오게 하여 자기 가족을 애굽 고센 땅에 이주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애굽에서 17년을 산 야곱은 그 곳에서 죽었습니다. 요셉은 자기 아버지의 장례식을 애굽의 국장에 버금가도록 치뤘고 부친의 유언대로 선영에 안장했습니다. 
야곱이 죽은 후에 애굽에서 반세기 이상을 더 살았던 요셉도 110세에 세상을 떠났으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그 유골을 들고 나와 세겜에 안장하였습니다(수 24:32; 출 13:19).

야곱이 죽으므로 이스라엘의 족장사는 모두 끝났습니다.
요셉은 야곱과는 달리 가나안에 장사되지 않고 임시로 애굽에 묻혔습니다. 
요셉은 그 형제들에게 『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이라 』고 했습니다.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고 했습니다. 
『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라는 말은, 

Ⅰ. 부친 이스라엘과 동질의 계대적인 신앙 사상에서 한 말입니다.

본문 50장 24절에 『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라고 했습니다. 
여기 『 권고(眷顧-돌봐 줌) 』라는 말인 파카드( )는 "방문하다(a visit)", "지켜주다"라는 뜻입니다.
요셉은 비록 자신이 죽어도 하나님이 여전히 살아계셔서 마치 자신이 그렇게 한 것 같이 하나님께서 일일이 형제들을 찾아 돌보아 주시고 보살펴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 신앙은 아버지 야곱에게 있었던 동질의 신앙입니다.
부친 야곱은 창세기 48장 21절에 『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허락하신 축복을 다 한 후에 아들 요셉에게 『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신앙을 한 마디로 대변하는 불변의 언어(言語)입니다. 
일찍이 야곱은 창세기 28장 15절에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고 한 언약의 성취를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이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 약속은 창세기 15장 12-21절에 기록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 땅을 차지하도록 하시리라는 것입니다. 
그 약속은 자신이 죽어도 반드시 성취되고야 만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확인한 하나님의 언약을 그의 후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창 46:3-4).
『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는 것이 이스라엘과 요셉의 신앙 사상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스라엘의 3대 족장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이들과 맺은 언약을 믿고 그 언약에 따라 살았습니다. 
출애굽기 32장 13절에 『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들과 맺은 언약에 의해서 그들을 보호하고 함께했습니다.
레위기 26장 42절에 『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고 그 땅을 권고하리라 』고 했습니다. 
신명기 9장 5절에 『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2절에 『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라고 했습니다. 
여기 『 요셉은 임종시에 』라는 말은 그는 임종시에도 신앙이 떨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붙잡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계시의존사색입니다. 인간은 계시의존적 피조물입니다.
『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라는 말은,

Ⅱ.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구체화시키는 신행일치 사상에서 한 말입니다.

본문 50장 25절에 『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여기도 『 권고 』라는 말이 나옵니다. 『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 』라는 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될 것을 생각하니 자기 죽음은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죽고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그곳 애굽을 떠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요셉의 마음은 온통 하나님의 약속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그의 생의 기반이며 그의 모든 것에 모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에스겔 12장 28절에 『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말이 하나도 다시 더디지 않을찌니 나의 한 말이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메시야적 약속입니다.
요셉이 『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라고 한 말은 그에게 있어서 죽음까지도 이기는 신앙고백적인 표현입니다.

둘째, 『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라는 말은 요셉의 자기중심적 삶이 아닌 하나님 중심적 삶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자신은 죽어도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자신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살펴 주시고 함께 해주신다는 확신에서 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성취는 하나님만이 가능하다는 하나님 절대주권 사상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9장 16절에 『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 『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9절에 『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 

요셉이 야곱처럼 자신이 죽자 바로 가나안 땅에 안장하라고 지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먼 훗날 출애굽 시에 자신의 후손들이 자신의 유골을 가나안 땅으로 이장하도록 당부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구체화시키는 사건입니다. 
창세기 15장 13-16절에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이 약속을 굳게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은 가만히 그냥 있는 운명론(運命論)이나 숙명론(宿命論-모든 자연 현상이나 사람의 일은 미리 결정되어 있어 인간의 노력으로도 변경할 수 없다고 믿는 이론)자들이 아닙니다. 약속을 믿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신행일치 신앙을 가능케 합니다. 
『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라는 말은,

Ⅲ. 요셉의 해골을 메고 올라간다는 말의 의의입니다.

1) 종된 애굽에서 완전한 분리를 상징하는 행위입니다.
출애굽기 13장 19절에 『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요셉의 예언적 유언을 계승하는 신앙적 행위입니다.

2) 예언 성취를 굳게 믿는 신앙적 행위입니다.
여호수아 24장 32절에 『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이끌어 낸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세겜의 아비 하몰의 자손에게 금 일백개를 주고 산 땅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고 했습니다. 
요셉의 믿음대로 그가 죽은 지 415년 후에 그의 유해는 그리던 약속의 땅에 안치되었습니다. 

3) 해골을 메고 올라간다는 말의 현대적 의미입니다.
(1) 자기 십자가를 지고 신앙생활을 하라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8절에 『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고 했습니다. 

(2)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라는 말입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에 『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경륜(經綸-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청지기의 사명)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 일을 위해 우리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고 했습니다(골 1:24-29).

(3) 거룩한 신앙전통을 계승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신학과 신앙의 노선은 개혁주의입니다. 개혁주의 신앙이라고 할 때 하나님 절대주권사상과 성경 절대주의를 말합니다. 곧 하나님 제일주의 사상과 성경 제일주의 사상입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개혁주의는 절대 성경주의 신학사상입니다. 그렇다고 성경만 고수하면 개혁주의가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개혁주의는 성경을 해석하는 신학의 원리가 중요합니다. 즉 바른 교리에 의해서 성경이 해석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개혁주의는 어떤 신학의 원리에서 성경이 해석되고 어떤 신앙의 전통을 가지느냐에 따라 개혁주의와 비개혁주의가 구분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은 위대한 신앙전통을 계승했습니다. 
요셉의 신앙전통은 하나님의 말씀(언약, 성경) 제일주의 사상입니다.
곧 하나님의 언약 중심의 사상입니다.
앞서간 신앙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언약이 그들의 삶에 전부였습니다. 
그 언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장차 성취될 약속을 믿고 살았습니다.
신약의 사람들은 이미 성취된 약속을 믿고 삽니다. 

요한복음 8장 56절에 『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3절에 『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 9장 8절에 『 그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니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 』라고 했습니다. 

역대상 17장 23절에 『 여호와여 이제 주의 종과 그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견고케 하시며 말씀하신대로 행하사 』라고 했습니다. 
열왕기상 8장 56절에 『 여호와를 찬송할찌로다 저가 무릇 허하신대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빙자하여 무릇 허하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7장 25절에 『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6절에 『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고 했습니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권고하신다는 이 위대한 고백적 언어가 평소에 우리 가운데 생활화되고 의식화 될 때가 언제나 올는지…….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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