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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을 낳으려면 (마 1:23)

첨부 1


생명을 낳으려면 (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장 23절>

할렐루야!
평안하셨습니까? 추우세요? 겨울입니다.
겨울이니까 추워야 합니다. 
‘겨울이구나 ~’생각하시고 추위를 잘 견디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귀한 것인데, 
다른 사람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보물인데
어떤 사람이 보기엔 쓰레기와 같이 생각되는 것이 있습니다.

독일의 한 미술관에서 
접시 모양의 설치미술 작품을 전시 중이었습니다.
그 작품에는 ‘말라붙은 물 때 자국’이 
갈색으로 표현되어 있었는데
청소부가 그‘자국’을 밤새 열심히 지워버렸답니다.
그 청소부는 12억 원짜리 작품을 망가뜨린 것입니다.

서울 삼성동 포스코 센터 앞에
‘프랑크 스텔라(Frank Stella, 1936~ )’라는 작가의
공공미술작품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작품을 설치할 때 직원들이 밤늦게까지 작품을 조립하다 
다음 날 다시 와보니 작품 일부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답니다.
새벽에 고철장수가 <폐철인 줄 알고> 실어갔던 것입니다.
결국 경찰이 동원되어 찾았고
16억짜리 작품을 망칠 뻔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2011년 11월 18일. 조선일보 A 27면. 참조>

‘가치’라는 것은 이처럼 상대적입니다.
예술에서도 그렇고 …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술작품이 고철로 전락하기도 하고
반대로 쓰레기가 예술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똑같은 물건이 작품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단지 상품일 뿐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폐품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는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천대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사람이 입으로 시인하는 것, 
자기를 표현하는 것 대단히 중요합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따라합니다.“나는 천하보다 귀하다”
천하보다 귀한 사람임을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천하보다 귀히 여겨주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들을 낳을 것이요

한 산모가 진통을 겪으며 분만실에 누워있었습니다.
의사가 산모에게 
“조금만 더 힘을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조금 후면 아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산모는 마지막 힘을 주기 직전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그래도 힘든 순간은 다 넘긴 거지요?”
의사가 답했습니다.
“넘기긴요. 앞으로 20년이 더 고생입니다.”

자녀는 낳는 것도 어렵지만 … 기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간과 물질 … 관심과 사랑 …
부모는 자녀를 기르는 데 모든 것을 바칩니다.

과학적으로 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3억 대 1’의 확률을 뚫어야 한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생명의 잉태와 출산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이 땅에 태어난 존재인 것입니다.
<김창규, 『성령태교』 (서울: 두란노, 2010) p. 17. 참조>

하나님이 우리를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것을 믿지 않더라도
우리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그 정도는 알고 살아야 합니다.

인류역사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의 잉태 소식이 다 귀합니다.
모든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축복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축복의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받게 하시는 길이 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그 사랑
그 사랑, 예수님이 세상에 나심이 가장 중요한 소식입니다. 

고통과 소망

마리아와 그의 남편 요셉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소식을 전했습니다.(눅1:26-천사 가브리엘)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죄에서 구원할 자’ 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아멘.

“…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 10:9)

생명의 소망

믿음의 시작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생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창 2:7)
그리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는데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확신이 있으면
그는 하늘 백성이요, 구원 받은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 3:16)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구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다른 사람을 구원받은 사람이 하겠다는
영혼을 품는, 생명을 품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생명의 열매를 맺는 전도하는 삶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에 이루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삶, 믿음으로 새 생명을 낳는 신앙생활에는
반드시 해산의 수고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생명을 품은 어머니가 
10달 동안 겪어야 하는 불편과 제약 같은 것은
우리 신앙생활에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임산부는
- 먹는 것 조심합니다. 아무거나 안먹지요.
- 마시는 것 조심합니다. 아무거나 안마십니다.
- 하는 것 조심합니다. 아무거나 하지 않습니다.
- 가는 곳도 구별하지요. 아무데나 가지 않습니다.
- 말도 조심하고, 듣는 것도, 보는 것도 … 조심합니다.

복음을 전하며 빛 되고 소금되게 살아야 하는 성도들도
임산부처럼 범사에 조심하고 구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성도(聖徒:구별된 나누어진 삶을 사는 사람) 라고 말합니다.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사는 사람들, 
나누어진 삶을 사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거룩할 성(聖)은 영어로 ‘holy’입니다.
‘holy’는 divide(나누다 ~from) / separate(가르다 ~from)
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룩한 것(holy)’은 구별된 것, 나누어진 것, 다른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집을‘예배당’이라고 하며
일반적으로는‘성전’(聖殿)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었던 성전과는 개념이 다릅니다. 

그러나 왜 거룩한 집, 구별된 집이라고 말합니까?
이 집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holy는 불편한 것입니다.
어렵고, 무겁고,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별되게, 나누어지게 산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고,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느 성도님이 몹시도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현실을 견디고 있었지만 벅차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기도를 할 때마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너무 힘듭니다! 너무 힘이 듭니다!”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 힘듭니다.”
하루는 그 분이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편하게 가는 게 아니라
큰 십자가를 질질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꿈속에서 가는 도중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님 너무 힘듭니다. 주님은 목수이시지 않습니까? 
이 십자가를 좀 잘라주세요.”
예수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십자가를 잘라 주셨습니다. 

성도님은 한결 가볍고 편안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 보니 눈앞에 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뒤에 오던 사람들은 커다란 십자가를 강에 놓더니
십자가를 다리 삼아 하늘나라로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잘라진 십자가는 너무 작았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강가 앞에 주저앉아 울면서 잠에서 깨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지니라”(마 16:24)
<복음신문(Gospet Times), 2011년 4월 15일,「파워 부흥 칼럼」참조.>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원한 생명을 향해 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고난은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입니다.
기꺼이 지고 갈 십자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십자가를 벗어 던지려거나 십자가를 잘라 버려서는 안됩니다.

고난이 없으면 생명도 없습니다.
고난이 힘들어 십자가를 잘라달라고 했던 
어느 성도의 꿈 속의 그 모습이 
혹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 보아야 합니다.
어떻게든 편하게만 신앙생활 하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무엇을 시키면 절대로 못한다고, 난 그런 것 안한다고 말합니다.
예수 이름으로, 예수 믿기 때문에 지는 십자가가 있습니까?
예수 믿음으로 참는 것, 견딘 것, 당한 것, 
흘린 땀과 눈물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어떤 십자가를 지고 신앙생활 하고 계십니까?

저는 요즘 많은 목사님들을 만났습니다.
목사님들과 얘기하다보니 교회에 모이는 성도들의 수가 줄고
예산도 줄었다고 안타까워하는 목사님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는 매년 11월에 마감하고
12월부터 새롭게 시작합니다. 
그런데 금년에 하나님의 은혜로 조금 더 성장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계획했던 모든 일들도 다 할 수 있었습니다.
창립40주년 계획했던 일들을 다 했습니다.
아이티에 교회를 지어 봉헌했습니다.
아프리카 모잠비크에 교회 2개를 지어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모잠비크 모꾸바지역에 
선교사 센터를 짓고 있는 중입니다.
야간학교, 복지관, 어린이집 운영을 합니다.
아프리카의 500명이 넘는 어린이들을 계속 기르고 있습니다.
이름 없이 빛없이 수많은 일들을 했습니다.
은혜 가운데 잘 진행되었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일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교회 구석구석에서 이름 없이 빛없이 수고하며 땀 흘리신
많은 분들의 ‘고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믿음 지키기 위해 삶이 힘들었어도 …
교회 섬기기 위해 몸이 지쳤어도 …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적은 물질을 가지고 사느라 어려웠어도 …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돌아보면 감사한 분들이 한 두분이 아닙니다.
본이 되시려고 애쓰신 장로님들 … 감사합니다.
지역을 돌보신 지역장님들, 속회를 인도하신 분들, 심방자들 … 
교사로 수고하신 분들 … 모두 모두 감사드립니다.
선교회 회장과 임원으로 봉사하신 분들 …
주차안내, 방송, 인터넷 중계하는 모든 분들 …
주방에서 봉사하는 분들 … 모두 감사드립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사람을 섬기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싶었던 순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답답하여 남몰래 눈물 흘렸던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감당했던 그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음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 한 해 우리의 수고와 헌신이 
영적으로 … 새로운 생명을 낳는 밑거름이 되었다면
감사하며 위로와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힘들었다고, 힘들다고 … 아팠다고, 아프다고 …
무조건 싫어하면 안됩니다.
그만 두겠다고 하면 안됩니다.

우리 교인들 가운데 보면 
‘힘들다고 그만두겠다, 안 들어도 되는 소리 들었다’고 
그만두겠다고 합니다.
짜증나는 일 안하겠다고, 아픈 일 안하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힘들어야 합니다. 아파야 합니다.
힘들고 아픈 것 감사한 일입니다.

영국 런던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다섯 살짜리 여자 아이가 넘어져 손목이 부러졌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울지도 않으면서 엄마에게 
“엄마, 내 손목이 이상해. 구부러졌어”라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놀래서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를 끝내고 
참 이상한 일이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2년 후 아이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그 부모가 딸을 보니까 절뚝거리며 걷길래 병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진단 결과 넓적다리뼈에 금이 갔다는 판정이 났습니다. 
문제는 아이가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부모는 정상이 아님을 깨닫고 
큰 병원을 찾아 전문적인 진찰을 받았습니다. 

여자아이의 증상은 신경조직이 잘못되어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겡글리뉴로파씨(ganglineuropathy)’라는 병에 걸렸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병은 아직도 치료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2011년 12월 3일, 크리스천 투데이 
「김병삼 목사 설교」‘사데 교회에게’, 참조.>

아파야 하는데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 
고통을 느껴야 하는데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 
심각한 병에 걸린 것입니다.
아픔을 느낀다는 것은 오히려 고마운 일입니다. 
어려움이 있으십니까? 어렵다고 느끼는 것 고마운 일입니다.
살았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아픔을 느낄 수 없습니다.
아픈 것이 감사요, 힘이 든 것이 감사입니다.
어려운 것이 감사입니다. 살아있는 사람만이 고통을 느낄 수 있고
고통을 견뎌야만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해산의 수고가 있어야만 새 생명을 낳을 수 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가 잉태부터 해산까지
갈등과, 공포와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수고는, 그 갈등과 고통, 공포는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생명을 낳는 성도

금년에도 그랬듯이 
2012년도에도 우리는 변함없이 하나님과 동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과 일터와 학교에서 …
분명 하나님 뜻에 따라 하나님 계획에 순종하며 …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살려고 애써도
여러분에게 어렵고 힘든 순간들이 다가올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고난과 역경의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조차 감사의 조건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것에서도 승리해야 합니다.

새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도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모든 새로운 것은 반드시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견뎌야 할 어려움이라면
불평하지 말고 … 시험에 들지 말고 … 상처 받지 말고 …
견디는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불평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 것에서,
다른 사람이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 상처받고 시험에 듭니다.
내게 상처되는 말이 들리는 것조차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입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 예수님 믿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있습니까?
흘려야 할 눈물이 있다면 그것조차 감사할 일임을 깨달아야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아기를 낳은 수고, 
어머니들의 해산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듯이
전도하는 것, 봉사하는 것, 섬기는 것 … 
영혼구원을 위해 애쓰는 것 … 
때론 오해 받고, 따돌림 당하고, 미움 받아도 …
기꺼이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모를 수 있습니다.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게 되면 
그들이 얼마나 크게 잘못된 것인지 깨닫고 나면
오히려 내 수고를 부러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수고가 때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조롱거리가 된다 할지라도
천국에서는 해같이 빛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잘 모르는 사람을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한 꼬마가 
자기에게 곧 동생이 생길 거라고 
선생님에게, 친구들에게 줄곧 자랑을 했습니다. 
하루는 꼬마의 엄마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에게 
불룩한 배를 만져 동생의 태동을 느껴보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이후로 꼬마는
동생에 관해서 한마디도 말을 안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유치원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얘, 요즘에도 동생 잘 있니?” 
그러자 꼬마는 얼굴빛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이렇게 답했습니다.
“선생님, 아무래도 엄마가 동생을 먹어버린 것 같아요. 
동생이 엄마 뱃속에 들어 있어요.”

모르는 상태에서는 우리가 한심해 보일 수 있습니다.
상태가 심각해 보일 수 있습니다. 조롱거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면 그것이 아닌 걸 알게 될 것입니다.

가정과 일터에서 … 무엇보다 교회 안에서 …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로 인해 열매 맺은 새로운 생명들이 있다면
그것을 바라보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를 덮어 두지 않으십니다.
일한대로 갚아 주신다고 했습니다.(계22:12)

힘들었어도, 무서웠어도, 
약혼한 남자 조차도 이해 못하고 파혼하려고 했어도 
마리아의 그 고통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과정이었고
그 수고가 헛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예수 이름으로 참고, 견디는 그 삶이
영혼을 구원하는 과정이라면 기꺼이 참고 
빛 되고 수고하며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오신 것만을 기뻐하는 계절이 아니라
그 예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며 사는
복된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시고 
예수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늘 백성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것 기쁨과 감사로 견뎌내며
결국 승리하는 하늘 백성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거룩한 주일 예배의 자리에 앉았다가 
고개만 끄덕이며 돌아가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삶에 실천하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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