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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세의 가장 강력한 힘 (롬 8: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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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의 가장 강력한 힘 (롬 8:31-39)

여러분, 세상에서 사람에게 가장 강력한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사랑’입니다. 우리 사회에 예로부터 회자되어 오는 말 중에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모성본능’이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사랑을 일컫는 말입니다.

2003년 12월 26일 새벽 이란 남동부 케르만 주(州) 소재 문화유적 도시인 밤(Bam) 시를 강타한 지진으로 2만 명 이상이 숨진 재앙이 일어났습니다. 29일자 일간지에는 ‘숨진 엄마 품속 6개월 된 아기 생존, 이란 지진 참사 현장에서 37시간 만에 극적 구조’라는 제목의 기사가 났습니다. 기사 서두에는 ‘한 도시를 순식간에 거대한 묘지로 만들어 버린 지진도 아기를 지키려는 어머니의 모성애는 막지 못했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지진이 도시를 강타한 시간은 모든 사람이 깊이 잠든 새벽 5시 30분경이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나면서 집이 무너지는 순간 아기를 보호하려고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아기를 껴안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37시간 만에 건물 더미에 깔려 죽은 어머니의 품속에 있던 ‘나심’이라는 6개월 된 여자아기가 구조대원들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되었습니다. 

아가서 8:6절에는 “너는 나를 도장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투기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길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죽음을 초월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랑의 탁월성에 대하여는 세상의 어느 누구도 반박하지 않을 만큼 모두가 인정합니다. 사랑의 힘은 동물이든 식물이든 가리지 않고 작용합니다. 얼마 전에 방영된 sbs 동물농장에서 ‘동물 커뮤니케이터’인 ‘하이디’여사가 보여준 동물들과의 교감으로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동물도 사람의 사랑을 느끼고 감동하고 교감한다는 것입니다.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을 키우는 곳에도 음악을 틀어주고 사랑을 쏟는다고 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치료하는 ‘묘약’임에 틀림없습니다. 

미국 앨라배마주 터스컴비아 에서 태어난 ‘헬렌 켈러’ 여사는 두 살 때의 열병으로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삼중 장애를 얻게 되었습니다. 일곱 살 때에 자신의 생애를 바꿀 헌신적인 가정교사 ‘앤 설리반’ 선생을 만났습니다. 88세에 생을 마칠 때까지 ‘빛의 천사’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담은 저술 활동과 복음증거, 복지사업으로 세계를 감동시켰습니다. 헬렌 켈러 여사는 평생 두고 잊을 수 없는 스승인 ‘설리반’선생님에 대하여,

“내가 만일 눈을 뜬다면 제일 먼저 설리반 선생님을 보고 싶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그 분은 나를 한 인간으로 세우셨습니다. 그것은 과학의 힘도, 철학의 힘도 아닙니다. 신념을 위해 자기 생명을 맡긴 사랑이 기적을 만든 것입니다. 맡긴다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동물도, 식물도, 생명 있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감동시키는 최고의 능력입니다. 이 사랑의 원조가 우리가 섬기고 의지하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났으며, 성자 예수님께서 성육신 날로 기념하는 성탄절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놀라운 사랑의 감동을 새롭게 하는 절기인 대강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대강절 두 번째 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사는 말세의 가장 강력한 힘인 사랑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려 합니다.

본문말씀 뿐만 아니라 성경말씀은 모두가 사람의 생명을 위한 말씀입니다. 그 중에서도 그리스도인에게 용기를 주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본문말씀은 말세의 혼란함 속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절대적인 확신을 주시는 탁월한 말씀입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강력한 근거로 제시하면서 삶의 승리를 확신케 하고 있습니다. 

※ 먼저, 본문말씀의 배경과 내용을 살펴봅시다.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로마에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생겨난 것은 아마도 오순절에 복음을 접한 ‘로마에서 온 사람들’에 의한 것이리라 추측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오순절에 있었던 성령강림 사건과 성령강림으로 인한 15개 국어로‘방언’의 표적이 나타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오순절을 지키려고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모여들었는데, 그들은 이 방언의 표적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의 말로 복음을 듣게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중에는 ‘로마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10절에서,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복음을 듣고 돌아가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생겨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활동하기 시작한 초기의 로마에는 신앙을 가르치고 지도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기독교가 출발한 초기였으며, 로마는 이방 세력이 강력한 도시였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기초부터 튼튼하게 세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율법과 복음의 차이에 대한 이해도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에는 율법과 복음에 대한 설명이 많으며,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게 된 과정까지도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를 더 한다면, 곧 다가오게 될 혹독한 박해와 핍박을 견딜 수 있도록 믿음의 담력과 용기를 심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상황을 감안하셔서 본문말씀처럼 확신의 차원을 지나서 너무나도 강력한 믿음의 담력을 불어넣고 계십니다. 이렇게 강력한 믿음의 담력과 확신은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 사랑의 확신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랑은 태초부터 어느 시대에나 있었으며,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과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나 특별히 환난의 때나 말세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필요한 강력한 능력입니다. 

본문 35절 전반절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라고 하시며, 39절에서는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세상의 어떤 힘과 세력과 환경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성도를 떼어낼 수 없음을 말씀합니다. 말세에는 수많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사들이 사탄의 세력으로 나타나서 할 수만 있다면 그리스도인들까지도 미혹하려할 것입니다. 

마가복음 13:22절에서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때에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의 확신이 없으면 유혹에 빠져 신앙의 길을 떠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 우리 주변에 수없이 볼 수 있습니다. 신천지, 다미 선교회, 안상홍 증인회,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풀이하는 사람들 등.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그들의 주장에 설득 당하게 됩니다. 

마가복음 13:5,6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고 하십니다. 

본문 37-39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확신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앞쪽의 8:1-2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과거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유대인들이 애굽에서 종노릇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어 ‘모세’를 보내어 언약의 후손들을 광야로 불러 내셨습니다. 그리고 광야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과 율법으로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26:12절에서,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통치자가 되시는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었고, 약속의 땅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신약 시대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이 정하는 짐승 대신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죄를 씻기 위한 속죄 제물로 택하셨습니다. 이는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 일평생 죄에 매여 종노릇하는 인생을 풀어서 자유롭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5: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셨고, 13절에서는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이 자유는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이며 능력입니다. 

갈라디아서 5:6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자유가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읽은 8:2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법’은 곧 ‘생명’입니다.  이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꿰뚫고 계셔서, 우리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결국 성령께서는 성도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도록 하십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지배를 받는 그리스도인은 무슨 일이든 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물론 해도 됩니다. 그러나 반드시 욕망을 따르는 육신의 일과 성령을 따르는 영의 일을 분별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도록 요청하게 됩니다. 그러나 육신의 일은 세상의 환경과 자신의 욕망을 따르도록 요구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싸움이며, 이 싸움에서 육신의 욕망에 지게 되면 그 결과는 죽음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로마서 8:12,13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깨우쳐 주시며, 그 법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십니다. 

본문 37절에서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하셨고,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방법 또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8:26-27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이렇게 성령의 법의 지배를 받으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머물게 될 때, 성도의 삶은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와 감격이 있는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삶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연결되는 생명의 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행복입니다.

저나 여러분에게 이렇게 큰 행복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사용할 줄 모르고 누릴 줄을 모르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주변의 환경이나 삶의 상황에 매여서 마음껏 누리도록 주신 이 큰 행복을 그냥 쌓아두고만 있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혹시 용기가 없고 자신이 없습니까? 환경과 상황을 다스리시고 섭리하시는 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도 말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사랑과 행복을 누리며 전합시다.

센프란시스코의 ‘버클리대학’ 연구팀이 우리를 따로 한 세 그룹의 흰쥐에게 먹이로 실험을 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우리에 한 마리만 넣었고, 홀로 먹이를 먹게 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은 우리에 다섯 마리가 어울려 먹이를 먹게 했습니다. 세 번째 그룹은 우리에 한 마리만 넣었지만 먹이를 줄 때마다 사람이 애정을 쏟으며 직접 먹이를 주었습니다. 

그 결과 첫 번째 그룹의 홀로 살던 쥐는 세포활동이 둔화된 작은 뇌를 지닌 채 6백일을 살았습니다. 두 번째 그룹은 약간 무거운 뇌로 7백일 살았으며, 세 번째 그룹은 활발한 세포활동을 보이는 무거운 뇌를 지니고 9백50일을 살았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어떤 무기보다 강하고, 어떤 약보다도 치료효과가 뛰어납니다. 본문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가장 강력한 힘이 되고 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이며, 동시에 자신의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결코 세상의 환경과 권력과 힘에 무너지도록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넉넉하게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합시다. 그리고 우리만 누릴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나누면서 행복한 성탄절을 맞이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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