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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식일의 주인 - 자비를 원하시는 하나님 (마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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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의 주인 - 자비를 원하시는 하나님 (마 12:1-8)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서 먹은 것을 추수와 탈곡의 행위로 보고, 안식일의 노동 금지의 율법을 어겼으므로 정죄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의 대답은 하나님이 제사보다 자비를 원하십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즉, 성전의 외식적인 율법과 제사법보다 백성들의 생존이 더 중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일을 하지만 그것을 죄로 규정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다윗보다도 성전보다도 크시며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안식일 율법의 조항들을 바리새인들이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고 그분과 함께 함으로 참된 안식을 누려야 함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속박이 아닌 예배와 휴식의 날입니다. 안식일 율법의 본래의 목적을 성취하신 예수님 안에서 오늘도 참된 안식과 기쁨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1절 그 때에...안식일에 - 이삭이 익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일년 전 4월의 유월절과 밀추수를 기념하는 칠칠절의 중간 어느 한 안식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본문의 사건은 바리새인들이 규정하고 있는 안식일에 여행할 수 있는 거리(약 1.8km) 내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당시 팔레스틴에 있는 경작지들은 대부분 길고 좁다란 이랑으로 되어 있었고, 그 이랑 사이의 땅이 사람이 지나다니는 통로로 활용되었음을 볼때 본문의 사건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1절 제자들이 시장하여 - 안식일의 금지 조항을 어길 만큼 몹시 배가 고파 있었습니다. 얼마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전념하였음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삭을 잘라 먹으니 - 율법에 의하면 이 행위는 추수하는 것과 동일한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눅 6:1에 보면 '손으로 비비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타작에 해당되며 만약 그 이삭 껍데기를 입으로 불어 털어 버렸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미하는 행위로 간주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주석서 미쉬나에 따르면 '안식일에 어린 양이 한 입에 넣을 만큼의 이삭을 잘라 취하는 것도 죄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2절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 - ‘합당치 못한 일’을 의미합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될 일에 대한 규정은 모세의 율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조상의 유전에 의한 것으로 39개의 항목이나 있었습니다. 일을 하지 못하는 것, 탈곡과 정미와 추수를 금지하며, 1.8키로 이상을 이동할 수 없도록 하며, 취사행위도 금지되었습니다. 

3절 다윗이 시장할 때에 한 일 - 이 말씀을 하신 예수님의 의도는 다윗이 시장할 때 모세의 율법을 어겼으므로, 시장한 그의 제자들이 조상의 유전을 어긴 행위도 용납될 수 있는 것이며, 어떤 예외들을 허용해야 한다고 하는 사실들을 주장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다만 구약 자체는 다윗의 그러한 행위를 정죄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나치게 그리고, 무리하게 해석하는 것은 성경의 근본정신에 어긋난다고 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관점은 '안식일이 너희에게 주어진 것이지, 너희가 안식일에 주어진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예로 5절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 다윗의 안식일 예외 조항에 이은 두 번째 예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도록 규정한 안식일 규례에도 불구하고 성전 안에서 매 안식일마다 하나님께 경배드리는 의식을 행할 때 몇 가지의 일들, 예를 들어 진설병을 대체시키는 것(레24:8), 수양을 희생제물로 드리는 것(민8:9-10) 등의 직무를 행하게 됩니다. 이러한 율법의 규정은 안식일에 관한 법보다는 성전에 관한 법을 지키는 것이 더욱 상위법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상위법을 지키기 위해 하위법을 범해도 된다고 하는 사실을 구약성경 자체가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전법이 희생드리는 일과 모든 외적 제사에 관련된 제사장들이 안식일 범법행위를 거룩한 것으로 인정한다고 한다면,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한 행위는 예수의 대속사업의 지속과 복음 전파를 돕는 것, 즉 제사드리는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때에 이는 결코 과오로써 인정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실로 제사장들이 안식일에도 불구하고 성전 제사를 집례하기 위해 일을 하여도 율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면, 그 성전과 제사의 궁극적 존재이신 예수와 그의 사역을 위해 안식일을 범한 제자들의 행동도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7절 말씀을 보면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기에 제사 '뒤시아'는 연기로 제사를 올리는 희생 제물이나 제사의 행위를 말합니다. 물론 여기서는 단순히 형식적이고 습관적이며 무의미한 종교 행위라는 의미를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7절의 말씀은 예배의 행위를 부인하거나 중단해 버리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곧 사랑의 계명을 온전히 실천하는 자비의 행위를 율법의 의무보다 우선시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자비와 제사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피치 못한 경우가 생겼을 때에는 제사보다는 오히려 자비가 먼저 베풀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8절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 칼빈(Calvin)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는 말씀은 바로 안식일에 얽매여야 하는 의무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권세를 예수께서 받으셨다고 하는 것이며,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당할 수 없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율법의 멍에에서 벗어나서, 멍에를 대신 져 주시는 주님에게로 와서 쉼을 얻으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먹은 행치 못할 일을 하는 것을 정죄하며, 자기들처럼 율법에 매여 분명한 안식일의 계명을 지킬 것을 말하였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안식일의 율법과 전통적 규례의 참된 목적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고, 안식의 참된 목적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비를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행위에 주일에 돈을 쓰면 안되고, 예배 외에 일을 하면 안되고, 거룩한 옷을 입고 와야 하며 등등의 외적인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된 예배를 위한 내적인 모습이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무렇게나 대충대충 잘 안지켜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 복음을 전파하고 자비를 베푸는 일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참된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 안에 쉼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39개의 조항을 다 지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바로 깨닫고, 예수님 안에 영혼의 즐거움과 참된 안식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자비를 원하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을 보면 참으로 문제가 되는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바리새인입니다. 이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하는 일들이 가장 바르고 가장 의롭다고 착각하며 사는 사람들로 항상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올바른 판단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는 권한은 오직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심판주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그런데 감히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 자리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누가 가장 잘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지 아십니까? 사실은 죄가 가장 많아서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지옥불에 들어가 영원히 멸망할 마귀들입니다. 마귀는 본래 악하고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은 영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루터가 서재에 앉아있을 때 마귀가 나타나 그에게 종이 한 장을 들이밀었습니다. 그 종이를 한 참 들여다 본 루터는 그만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습니다. 그 종이에는 자신이 아주 오래 전에 지은 기억도 나지 않는 죄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앞이 깜깜했습니다. 맥이 탁 풀렸습니다. 마귀는 또 뒷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곳에는 최근에 지은 죄가 다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루터에게 마귀는 비웃는 얼굴로, 이 기록이 모두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루터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마귀는 루터를 향하여 손가락질하며 소리쳤습니다. “이렇게 더러운 녀석이 무슨 종교개혁을 한다고, 너나 바르게 살아라. 너 이 죄값을 어떻게 할래?” 루터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머리를 푹 숙이고 낙심하여 힘없이 앉아있는 루터의 등 뒤에서 분명히 들리는 부드러운 음성이 있었습니다. 

“루터야, 네 모든 죄를 내 피로 다 씻었다. 너를 정죄할 자는 아무도 없다.”이 음성을 듣는 순간 루터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는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루터는 새 힘을 얻고 큰 소리로 외치며 잉크병을 들어 벽을 향해 힘껏 던지며, 외쳤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느니라 누가 나를 정죄할 것이냐?” 그때 마귀는 슬그머니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마귀의 성품을 닮은 사람이 있습니까? 이는 가장 먼저 지옥에 갈 존재이면서도 다른 사람의 죄를 정죄하고 그 죄를 들추어내는 일에 앞장서는 마귀가 그 사람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에서 바리새인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만이 의인이며, 자신들이 하는 일은 모두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기를 좋아하여 조금이라도 잘못이 드러나면 가차없이 그것을 문제삼아 비판하고 정죄하므로서 이를 통해 자신들이 가장 의롭다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아주 악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더구나 이들은 언제나 겉과 속이 매우 다른 이중인격자들로 사람들 앞에서는 거룩한척하고 뒤로는 나쁜 짓을 도맡아 하는 아주 부도덕한 위선자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악하고 거짓된 성품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독사의 자식들아(마 12:24,34), 소경들아(마 15:12-14), 외식하는 자들아(마 23:13-19), 뱀들아(마 23:33), 마귀의 자식들아(요 8:13, 44)라는 온갖 책망을 다 들어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바리새인들은 마귀를 닮은 죄인들입니다. 

신명기 10:13을 보면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셨고, 신명기 6:24에서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복을 받고 잘 살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율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우리를 위해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만드시고 지키라 명하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 따먹는 일을 했다고 무조건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예수님은 두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다윗 일행이 사울에게 쫓겨 몹시 배가 고플 때 제사장에게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에 제사장은 자신들만이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그들에게 내어주어 허기를 면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들은 법을 어겨 죽어 마땅하나 죽지 않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더구나 제사장들은 안식일이라고 해서 보통사람들처럼 일하지 않고 쉬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 제사지내는 일로 누구보다도 가장 바쁘고 피곤하게 일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죄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안식일에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결코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실 목회자들처럼 주일에 바쁜 사람들이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가 은혜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도 예배안내와 차량 봉사, 그리고 기계실과 방송실, 성가대, 헌금위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있는지 모릅니다. 

그 당시에도 제사를 지내려면 제물로 쓰이는 양을 잡고 털을 뽑고 부산물을 치우고 하느라고 제사장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있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항의에 성경의 예를 드시면서 안식일에 일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안식일을 만드신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정확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만들어주신 것은 우리를 위해 주신 제도이므로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안식일 하루만이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여 은혜를 받고 영혼이 새로워지면, 그 믿음 가지고 엿새동안 세상에 나아가 살 때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므로 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세상일을 하지 않고 쉬므로 해서 육신이 건강해지고 일의 능률도 올릴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여러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지나간 수천 년 역사 가운데 서양과 동양을 비교해보면 서양 사람들은 기독교의 문명을 따라 한 주일에 하루씩 쉬었습니다. 이에 반하여 동양 사람들은 다른 종교를 따라 쉼 없이 일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하루 더 일한 동양이 서양보다 1/7을 앞서 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결과는 서양사람 보다 동양사람이 잘 살지 못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처음부터 일주일 중 하루를 쉬어야만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을 때 그곳에 손이 마른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트집잡기 위해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냐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런 예를 드셨습니다. 마침 양 한 마리가 구덩이에 빠졌는데 그것을 보고도 안식일을 핑계로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반문하시면서,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다고 하시며,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일에 선한 일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배고픈 사람은 먹여주고, 병든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 위로해주며, 열심히 전도하고 봉사하십시오. 

우리 인간은 모두 다 죄인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가 아니면 구원받을 자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죽어 마땅한 죄인이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처럼 자비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잘 드리는 것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며 살면 더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50억이라는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을 하나님으로부터 탕감받았다고 하면, 우리에게 500만원, 50만원, 5만원 빚진 사람에게 그 빚을 탕감해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도리어 우리 자신은 나에게 진 빚을 갚으라고 다른 사람을 재촉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엄청난 죄악의 빚을 진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자비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그 빚을 모두 다 탕감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손해를 보이고 섭섭하게 하는 사람이 있을 지라도 그 사람을 용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신 마음으로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라과디아는 뉴욕 역대 시장 중에 가장 유명한 시장으로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가 뉴욕시의 즉결재판부의 판사로 있을 때, 하루는 빵 가게에서 빵을 훔친 죄로 잡혀 들어온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노인에게 왜 빵을 훔쳤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노인은 너무 배가 고파서 그만 빵에 손을 댔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라과디아 판사는 “당신의 행위는 10불의 벌금형에 해당됩니다.”라고 선고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지갑에서 10불을 꺼낸 후 “그 10불을 내가 내겠습니다. 이토록 배고픈 사람이 뉴욕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동안 저는 너무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배불리 먹은 벌금으로 10불을 냅니다.” 그리고 라과디아 판사는 자신의 넓은 중절모자를 벗어 재판부 서기에게 내어주며 “이 재판정에 계신 분들도 나처럼 너무 잘 먹은데 대한 벌금을 내고 싶으시다면 이 모자에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노인에게 그 돈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돈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노인은 그 자리에서 모아진 47불을 손에 쥐고 눈물을 흘리며 재판정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이와같이 자비를 베풀기를 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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