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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의 확신 (요일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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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확신 (요일 1:5-10) 

얼마 전 간암 말기로 투병중인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간을 70%나 이식한 한 군인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중년의 아버지가 간암 말기로 이식을 받지 않으면 얼마 살지 못한다는 사실에 군복무 가운데 기꺼이 아버지를 위해 이식을 결정한 것입니다.

조직검사와 모든 순서를 마치고 이제 이식을 위해 두 사람이 함께 수술실로 들어갈 때에 아버지는 할 말을 잃습니다.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해서 고개를 돌리고 눈물만 흘릴 뿐 뭐라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부모로 자식에게 도움을 주고 보탬이 되어야 할 자신이 오히려 나 살자고 자식을 수술실에 보내는 심정이야 이루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방법 밖에는 회복하고 살아날 다른 길이 없기에 아버지는 그저 유구무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장기기증에 대한 의식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낮은 편인데 실제로 이식이 필요로 해서 환자의 가족이나 친척들이 큰 마음을 먹고 장기를 제공하겠다고 병원까지 왔다가 두려운 마음에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사실 아픈 사람이야 병을 치료하고 회복되기 위해서 수술이나 뒤따르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겠지만 멀쩡한 사람이 배를 가르고 자신의 장기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감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아무리 부자지간이라 하더라도 그 아들이 참 대견하지 않습니까? 

근래에 의술은 눈부시게 발전하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도저히 살릴 수 없어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환자들도 생존률이 대단히 높아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의술이 뛰어나고 발달했다 하더라도 지금도 병원에는 여전히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 앞에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하고 두려움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신장이나 간, 골수, 각막 등을 이식하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정상적인 삶을 회복할 수 있다면 무엇을 망설이겠습니까?

죽어 가는 사람에게 살 길이 있다고만 한다면 무엇인들 사양하겠습니까?
돈이 아깝겠습니까? 수술의 고통이 무섭다고 하겠습니까? 
이식만 받고 살 수 있고, 장기만 구할 수 있다면 경제적인 문제가 걸릴 뿐이지 세계 어디라도 가고자 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쩌면 이 이야기가 나는 지금 건강한 편이니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지금 암에 걸린 것도 아니고 심각한 질병이 발견된 것도 없으니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을까요?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근거로요?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도 같은 처지에 있으며 모든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한 것은 살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당장 속이 조금만 좋지 않아도 병원을 찾고 몸무게가 조금만 늘어도 걱정하면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난리치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목숨을 죽음에서 구할 방법에 대해서는 무관심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성경은 사람이 왜 죽게 되는지를 정확하게 진단합니다. 그리고 진단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찾아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인간이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게 되었지만 죽지 않고 살길을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지 않고 살 길이 있다고 한다면 눈과 귀가 번쩍 뜨여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말씀을 농담처럼 듣거나 무시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도 홍수가 일어날 것이라고 노아를 통해 알리셨지만 사람들은 무시했습니다. 결국 노아의 가족 외에 모두 물로 심판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소돔 고모라 성 역시 하나님의 사자들이 분명히 그 성의 멸망을 경고하였지만 그곳 사람들은 비웃다가 하늘에서 불이 내려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복음은 복된 소식,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복음은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그로 인해 모두 죽는다고 단언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면 복음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복음인 이유는 사망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것을 해결해서 영원히 살길을 예비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바로 이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제가 묻습니다. 
복음을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자녀 됨과 천국의 백성으로의 확신이 있습니까?

아직도 불분명하거나 좀 어중간하게 느껴진다면 오늘 이 시간에 분명한 확신을 갖게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사람은 모두가 죽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위고하와 신분의 격차를 불문하고 모두 죽습니다. 
제가 가장 분명한 예언을 한다면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아닌데요?” 라고 하실분 계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사람이 왜 죽어야만 하는지 그 원인을 밝혀야 합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롬6:23 ‘죄의 삯이 사망’ 이라고 그 원인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이 질병이나 사고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일평생 사고 한 번 당하지 않는 사람도, 감기 한 번 안 걸려 본 사람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고, 그 죽음의 원인이 죄 때문이라면 결국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도 증명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그래도 나는 누구보다는 착하게 살았으니 그래도 나는 죄인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시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만일 큰 돌과 작은 돌은 물에 던지면 어떻게 됩니까?
무거운 돌은 조금 빨리 가라앉고 작은 돌은 그보다 조금 천천히 가라 앉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둘다 가라 앉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도 이와 같아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상대적으로 죄에 대한 크기를 논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죄는 모두 같은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세상의 법을 어긴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있는 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죄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나 사이가 막혀 있어도 죄이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도 죄이며,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 역시 죄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보다 더 큰 죄의 원천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시어 우리가 은혜를 받아 우리의 영혼이 일깨워지면 가장 먼저 회개하게 되는 것이 다름 아닌 내가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 왔다는 것에 대해 통회하며 자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생명의 기원은 하나님으로부터입니다. 
그래서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죄는 무엇입니까? 
사람 스스로 하나님과의 연결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없는 무지를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독가스가 가득한 곳에서 귀찮다며 방독면을 벗어 던져버리고 개운하다고 하는 사람이 나 촛불을 켜 놓으면 괜찮다고 하거나 코를 막고 입으로 숨을 쉬면 좋다는 식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똑똑한 척 하지만 사실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입니까? 

인간이 죽음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가도 그 다다르는 곳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큰 성공도 거기서 끝입니다.
아무리 큰 업적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죄를 해결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 길로 가게 됩니다.
그 정점에서 돌아 보면 돈도, 명예도, 권세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하기는 이 시간 나에게 처해진 현실을 정확하게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제 사람을 죽음으로 끌고 가는 모든 불행의 씨앗이 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죄가 내 속에도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나아가 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도 알았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이 문제를 도와 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 역시 자신이 처한 상황과 다를바가 없이 죽음을 향해서 줄서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뿐더러 다른 어떤 누구도 이 문제를 도와주지 못한다고 할 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한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바로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그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사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물론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모르며 그 음성도 잘 듣지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빛이시라’ 고 하였으며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면 죄는 어두움이며 죄의 영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빛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가지는 반응이 바로 그 사람 속에 있는 죄로 인한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며, 하나님을 부인하고 있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죄인 됨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도움을 거절하고 하나님이 필요 없다며 제 갈 길로 갔던 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믿음은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싫다고 집을 뛰쳐나가 버린 자식을 기다리듯이 가출한 자녀를 향해 ‘모든 것을 용서할 터이니 조건 없이 돌아오라’ 고 부르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사55: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요4:13-14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누구라도 하나님께로 오기만 한다면 용서함을 받고, 영생의 양식과 목마르지 않을 물을 공급받을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사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하시며 마치 하나님께서 가장 아쉬운 분이신 것처럼 그렇게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하시겠습니까? 바로 사람의 생명이 걸려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그 부르심에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 영생을 얻는 길을 매우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면 어떠할까요?
‘돈 없이는 안 된다. 최소한 1억 원씩은 가져와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면회할 순번을 받을 수 있다.’ 그랬다면 어떠했을까요? 

혹은 ‘최소한의 자격은 갖추어야 한다. 최소한 직장에서도 간부급은 되어야 하고 석박사 이상 되는 사람만 와라’ 고 하셨다면 어떠했을까요?

‘이도 저도 필요 없이 무조건 선착순이다’ 이렇게 하셨다면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과연 몇분이나 가능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생명이 걸린 문제를 그렇게 하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오라. 아무 조건 없이 오라. 값없이 돈 없이 와도 좋다’

여러분 이 얼마나 엄청난 은혜입니까?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오히려 아무런 조건과 자격을 묻지 않는다고 그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기꾼들이 사람들을 속일 때에도 이것을 얼마나 잘 이용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가짜도 아주 비싸게 말하면 진짜인 것처럼 사람들이 그렇게 잘 속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라고 하셨습니다. 원하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 자리에 서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여러분 영생에 이르시기를 원하십니까?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냥 끝이지 뭐가 있나’ 라면서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심지어 영생이 있다고 해도 거부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얼마나 놀라우며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큰 값을 기꺼이 치루셨습니까? 

원리적으로는 인체의 대부분의 조직과 장기는 이식 수술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장기 손상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이식해서 되살리는 비용은 얼마나 들어갈까요? 
간 하나를 이식하는 것만도 수술 비용만 5000만원이 넘으며 진료비를 포함한 전체 비용이 1억이 넘는다고 합니다. 
간 하나만 이식받는데 그 정도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몸 전체를 새롭게 바꿔서 영생이 이르게 하는 데에는 얼마의 비용이 필요할지 생각해 보실 수 있겠습니까?
간이나 심장은 그래도 내 것을 주고 살 수 있지만 심장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이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는 불가능한입니다. 값으로 계산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그렇습니다.

시편을 보면 인생이 강건해야 70-80이며 아주 특별해야 100년 정도 지탱하는 생명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죄가 바로 우리의 생명을 그렇게 좀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생명을 새로운 생명으로 교체하지 않고는 아무에게도 살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모두가 자기 죄로 죽을 사람들이기 때문에 누구를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생하는 존재로 살리시기 위해 이 땅에 아무도 죄악의 사망을 대신할 사람이 없기에 하나님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바로 그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십자가가 우리에게 영생을 이식한 현장이 되는 것이며 우리를 병들어 죽게 하는 모든 죄를 제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이식시키는 하나님의 수술이었던 것입니다.

7절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할렐루야! 바로 그 하나님의 구원을 설명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어떤 누구도 예수님처럼 우리의 죄를 대신해 줄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도 예수님처럼 우리 대신 죽어서 우리를 살려낼 사람도 없습니다.

석가모니나, 공자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이들이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죽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자신들은 죄와 욕심을 버리는 삶을 노력하였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기처럼 살아보라고 가르친 것뿐입니다.

아직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상숭배에 열심입니까? 
물론 우리가 앞선 조상들의 은덕을 기리는 일은 좋은 전통이라 할 수 있겠지만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조상들은 자신들의 삶을 살고 가신 것 뿐이지 그들이 후손들의 삶을 대신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부모도 자녀를 대신 못하는 일이 많은데 하물며 죽은 조상이 어떻게 돕겠습니까? 
누구든지 살아 있는 동안 자기의 분복을 누릴 뿐, 죽어서 다른 이에게 복을 준다는 것은 대단한 어리석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마땅히 죽을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공급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뿐이십니다. 
그 피만이 우리의 더러운 죄를 씻어낼 수 있으며 오직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자만 하나님이 구원하십니다.  

여러분 구원은 결코 값싸지 않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진 갑부라 하더라도 사지 못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졌다 해도 그 권력으로 바꾸지 못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그 구원으로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십니다.

이제 결정은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구원의 귀한 은혜를 끝까지 거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앞에서는 심판과 형벌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제껏 하나님을 몰랐던 죄를 회개합니다. 나도 예수님을 믿어 구원에 이르고자 합니다.’ 라며 고백하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그 분의 넓은 품에 안아주시며 모든 좋은 것으로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원하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을 얻게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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