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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그리스도와 다윗 (마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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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다윗 (마 1:1-6)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매력이 있습니다. 

소망교회의 권사님들은 교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기도의 어머니들입니다. 권사님들은 권사실에서 24시간 릴레이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번 함께 모이는 권사회에서 사랑과 섬김의 귀한 하나님의 따님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분들인가를 늘 확인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권사회 때마다 아가서 6장 10절을 함께 읽으면서 스스로의 존재를 되묻고 있습니다.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아가서 6:10)

이 성경 구절은 권사님들에게만 적용되는 성경구절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부에 대한 아가서의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서 주신 축복을 누리는 사람들, 그리고 주님을 닮아가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멋지고 매력적인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멋진 사람, 매력적인 사람, 그리고 축복받은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렇게 매력적인 인물이 될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매력적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습은 돋는 해의 빛 같이 찬란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모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은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품성과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분이신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출애굽기 24:10) 

하나님을 보았는데 하나님을 본 것이 아니라 그의 발아래를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청옥을 편 듯이 멋지게 펴져있습니다. 그리고 하늘 같이 청명하게 열려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메시아를 보내주시고 그리스도를 보내주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구약에 나타나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들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앞으로 오실 분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 다윗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왕국을 연속시켜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네게서 날 메시아가 어떤 존재인지를 영적인 충만함으로 다윗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사무엘하 23:4)

오실 메시아의 모습입니다. 아침 해, 돋는 해의 빛과 같이 찬란합니다. 구름 없는 아침 같이 해맑습니다. 비가 내린 후에 땅에서 움이 돋는 새순 같이 신선한 모습으로 메시아가 등장할 것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그리스도가 오실 때 그의 영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함을 이사야 11장 2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이사야 11:2) 

이 말씀은 지식의 영, 지혜의 영, 총명의 영,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가득한 영,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의 인물이 이 땅에 메시아로 올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부족하고 암울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매력적인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어려움과 위기 속에서 이 땅에 오신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의 잉태 자체가 성령을 통한 잉태였기에 누구도 받아드리기가 어려웠습니다. 그 일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도 고통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에게도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출생 장소 또한 사람이 태어날 곳이 아니었습니다. 동물의 오줌, 똥 냄새가 풍기는 마구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였던 요셉과 마리아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마구간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출생하실 때 그를 만난 사람들은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 이었습니다. 별 볼일 없던 환경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다만 하나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달과 별을 탐구하던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보고 메시아인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했던 일입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수님에게 선물하면서 예수님이 장차 어떤 분이 되실 것인가를 예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습니다. 동방박사가 헤롯 대왕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권력자인 헤롯은 그 주변에 있는 수많은 어린아이들의 죽음을 만들어냈습니다. 슬픈 사건, 암울한 사건과 함께 있었던 것이 예수님의 탄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혁명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혁명이었습니다. 어둡고 허무했던 당시의 시대를 뒤집는 새로운 사건이었습니다. 어둠 속에 빛을 집어넣는 탄생이었습니다. 춥고 시린 것 속에 따뜻함을 보여주었습니다. 허무 속에 생명과 진리를 넘치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왕의 출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이 땅 위에 인간이 만든 왕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겠다고 하는 가치관의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였습니다. 그것은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 무언가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 내 것이 많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위험이었고 위기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정치 권력가인 헤롯과 빌라도는 예수님의 적대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의 종교적 기득권자들인 제사장과 바리새인들, 서기관들도 예수님을 싫어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만 하시면 무언가 흠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박수치며 환호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버려진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죄인으로 취급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우대받지 못했던 인물들이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열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환호하면서 예수님의 뒤를 따라나섰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합니다. 

신약의 시작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태복음 1:1) 

마태복음은 이스라엘 전체 역사를 세 인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다윗, 그리고 예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을 보면서 너는 복이다, 너의 자손을 통해서 온 인류가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그 때 그 약속의 성취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유대인에게만 갇혀 있었던 하나님이 전 세계에 알려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 구원의 역사가 온 인류를 향해서 열려집니다. 기독교는 자기 자신에게 갇혀진 섹트(sect)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온 세계를 향해, 온 백성을 향해, 온 우주를 향해서 열려진 축복의 종교입니다. 그리고 다윗을 통하여 선포된,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나라가 바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이 하나님의 나라를 믿으라”고 선포하신 말씀을 통하여 말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억눌린 자를 향한 ‘해방의 탄생’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공의와 정의의 왕국입니다. 사랑과 용서의 왕국입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 전체를 아울러서 이렇게 요약합니다.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시작의 계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족보에 여러 이름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족보는 여자들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20C 말과 21C에 들어서면서 여자들의 이름을 족보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가부장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족보에는 남자들의 이름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1~6절까지의 짧은 구절 속에 여성의 이름이 4명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3절에 다말, 5절에 라합과 룻, 6절에 우리아의 아내입니다. 그 번듯한 남자들의 이름 속에 여자들의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남자들만의 세계 속에서 여성들의 세계까지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여자들은 다 이방인들이었습니다. 다말은 아랍여인이었고, 라합은 가나안의 여리고 여인이었고, 룻은 모합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아의 아내도 아마도 헷사람, 즉 이방인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역사 속에 여성들을 향한 새로운 역사가 열려지고, 하나님의 역사 속에 이방인들을 향한 새로운 역사가 열려졌다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좁아지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움츠러드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세계를 향해서 온 인류를 향해서, 온 우주를 향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확대되는 축복의 종교입니다. 

여인들은 또 어떤 여인들입니까? 죄인들이었습니다. 성경은 놀랍게도 여인의 이름, 이방인의 이름, 그것도 죄 많은 모습의 이름들을 집어넣고 있습니다. 다말이 누굽니까? 자신의 시아버지와 불륜관계를 맺은 여인입니다. 라합이 누구입니까? 여리고의 창녀였습니다. 룻이 누구입니까? 이방 우상을 섬겼던 여인이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누구입니까? 남편이 아닌 다윗과 간음한 여인이었습니다. 이렇게 인생에서 손가락질 받는 여인, 부끄러워서 머리를 들 수 없는 여인들을 이스라엘의 족보 가운데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죄인들로부터 자유한 의인의 모습으로 그들을 높여 세워주셨습니다. 

이것은 혁명입니다. 인간이 만들었던 모든 장벽들과 인간이 쌓아놓았던 담들, 인간이 닫아놓았던 문들을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오시면서 모두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거대했던 장애물들을 다 파괴시키셨습니다. 인류가 만들어놓았던 여성에 대한 억압과 학대를 예수님이 때려 부순 것입니다. 아직도 여성들의 차별이 이 지구촌 곳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벌써 2000년 전에 여성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존중히 여겼습니다.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시키셨습니다. 얼굴의 색과 인종에 의해서 사람을 끊임없이 차별하던 것을 예수님께서는 2000년 전에 다 부숴버리셨습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고통 받으면서 우그러들고 탄식하고 절망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은혜의 기쁨을 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처럼 매력적인 분이 이 땅에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처럼 멋진 분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처럼 새로운 역사를 만드신 분이 인류 역사상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딸인 것을 선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전 인류를 품는 “화해의 탄생”입니다.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라디아서 3:2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종의 차별은 물론이요 많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는 족쇄들을 끊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가 되는 새로운 역사를 보여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개인의 역사를 바꾸셨을 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 그리고 모든 인류가 만들었던 역사의 어두운 것들을 다 뜯어고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빛과, 하늘의 계시와, 하늘의 따뜻함과, 하늘의 사랑과, 하늘의 용서와, 하늘의 의와, 하나님의 정의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아는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되신 것이 내게는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께 “사랑해요! 예수님 좋아해요!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세요!”라고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한 축복의 역사를 마음껏 누리면서 움츠렸던 가슴을 펴고 주님과 함께 세상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영광스런 예수님의 탄생을 선포하며 나아가는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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