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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첫 성탄 찬송 (눅 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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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성탄 찬송 (눅 2:8-14)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기다리던 2011년도의 성탄절을 맞이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해마다 맞이하는 절기니까 대수롭지 않을 수 있으나, 좀더 깊이 살펴보면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사가 넘치는 절기인지 모릅니다.

지금 온 세계는 두 차례의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세계 경제를 선도하던 나라들, 특히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경제적인 위기 앞에서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미국은 초강대국 지위를 더 이상 지킬 수 없게 되었고, 중국과 러시아 세력의 부상으로 세계의 힘의 균형이 출렁거리고 있습니다.  

휴전선 이북에 국제적 불량자였던 김정일이 죽고 이제 겨우 20대 후반의 젊은 아들 김정은이 후계자로 자리매김 하느라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세력 균형이 매우 불안정한 시점입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이 필요한 때이고 한국교회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가 절실히 요청되는 때입니다.

국내적으로는 좌우 갈등이 치유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증폭되어 있고 청장년과 중노년 세대간에 가치관의 간격이 점점 벌어지고 있습니다. 부정과 부패, 양극화, 청년실업문제, 공교육의 파탄, 청소년 중독 문제 등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점점 쌓여가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도 이렇게 안정되게 주님 앞에 성탄절을 맞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지 모릅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깊은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또 성탄절을 맞는 성도 여러분 가정 위에 주님의 크신 축복을 축원합니다.

오늘 전세계의 교회는 지역에 따라 또는 교파에 따라 성탄 축하의 의식이나 내용에서 약간의 차이점을 보이고 있지만, 모든 교회를 관통하는 성탄절의 근본 정신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에는 성탄의 첫 찬송이 나옵니다. 하늘의 천군천사가 부르는 엄청난 찬미 속에 성탄의 기본 정신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첫 성탄 찬송의 연주자, 청중, 그리고 그 내용을 살펴보며 성탄절을 더욱 뜻깊게 맞이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첫 성탄 찬송을 부른 자들

13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본문에는 구주가 탄생하신 크고 놀라운 소식을 선포하기 위해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 ‘천군’ 은 ‘하늘에 사는 만군’을 뜻하며 히브리어 ‘체바 핫샤마임’ 이란 표현과 같은 의미입니다(왕상 22:19, 대하 18:18). 누가복음은 이방인을 위해 기록된 것이지만, 본절에서는 이렇게 구약적 용어를 사용하여서 셀 수 없이 많은 천사들이 목자들 주위에 내려와 탄생하신 아기 예수 구세주를 찬양하는 너무나 장엄한 광경을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순간은 예수님 개인의 입장으로 볼 때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이 되심으로 고통이 시작된 시점입니다(빌 2:6,7). 그런데 바로 그 시점에 하나님과 하늘의 천사들, 그리고 구원받은 인간들은 놀라운 기쁨을 향유하는 것입니다.

본절은 천사들의 모습을 ‘찬송하여 이르되’ 라고 했는데, 이것은 찬송하면서 말하는 천사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즉 첫 성탄 찬송은 수많은 천사들에 의하여 곡조 있는 아름다운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늘의 천군 천사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신 성육신(Incarnation)의 사건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올렸습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철저히 낮아지신 성자 예수님은 천사들에게 찬송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위대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천사들만 찬송했겠습니까? 눅 19장에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손에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를 부르며 환영했습니다. 이때 바리새인들이 이를 시기하여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라고 하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눅 19:40). 

‘돌들이 소리지른다’ 는 것은 산이나 바다나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소리지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 진리를 좀더 살펴봅시다.
 
로마서 8장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고 영적으로 벌써 구원을 받아 있지만, 우리의 육체는 아직도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배고파지고 세상의 여러 가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의 육체가 변화하여 영화로운 몸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때 변화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 뿐 아니라 자연 만물이 함께 영화(榮華)를 받는다고 했습니다(롬 8:21). 지금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 있지만(롬 8:22), 장차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다시 오실 때 자연만물도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영광의 찬미를 올릴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 역사는 성탄을 통하여 위대한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이날은 천군천사들이 찬양하고, 하늘의 별이 동방의 박사들을 인도하며 빛을 밝히고, 모든 피조물이 이제 곧 열리게 될 자유와 해방의 날을 기다리며 희망에 찬 찬미를 부르는 날입니다. 할렐루야!


2. 첫 성탄 찬송을 들은 사람들 

8-9절=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들의 장엄한 찬송을 누가 들었습니까? 뜻밖에도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었습니다. 천사들이 처음으로 나타나 구주의 탄생을 찬양하였을 때 목자들은 밤에 밖에서 양 떼를 돌보며 지키고 있었습니다.

성탄 기사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와 있는데, 마태복음의 기록에 의하면 동방의 박사들이 먼 곳에서부터 예수님을 찾아와서 경배하고 예물을 바쳤습니다. 그런데 동방의 박사들과 목자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대조가 됩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돈과 지위가 있는 상류층 사람들이지만 목자들은 소외되고 천하게 여겨졌던 계층의 사람들입니다. 박사들은 멀리서 찾아와서 값진 예물을 바쳤지만 목자들은 그런 예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예수님을 만나 본 후 헤롯의 간계(奸計)에 속지 않고 꿈에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몰래 다른 길로 고국에 갔지만, 목자들은 예수님을 만나 뵙고 나가서 큰 소리로 그리스도의 나심을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박사들이 돌아간 후에 베들레헴엔 큰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헤롯이 2살 이하의 아기들을 학살함으로써 그 지경에 큰 곡성이 일어났습니다. 

목자들과 동방 박사들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대조가 됩니다. 그리고 그 모든 대조는 박사들에게가 아니라 목자들에게 우위(優位)를 주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로 천민 취급을 받던 계층인 목자들에게 성탄의 첫소식을 알려주셨을까요? 예루살렘에는 소위 메시아를 기다린다는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있었는데, 하나님은 왜 그들에게는 알리지 않으시고 전혀 생각지 못한 목자들에게 놀라운 특권을 주셨을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자기가 맡은 일에 열심을 지니고 행했습니다. 남들이 다 깊은 잠을 자는 밤중에도 양떼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일에 열심인 사람을 불러 귀하게 쓰십니다. 

목동 다윗도 들에서 저녁도 거른 채 양떼를 돌보다 선지자 사무엘에 의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다가, 기드온은 밀 타작을 하다가, 엘리사는 밭을 갈다가,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비록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직분일지라도 열심히 행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더 귀한 직분으로 부르실 것입니다.

둘째, 목자들은 정직했습니다. 양들은 베들레헴 부자들의 소유였는데, 목자들은 주인이 보든 안 보든 밤에도 깨어 양떼를 지켰습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시 11:7)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일이든 직장의 일이든 정직하게 행하십시오. 반드시 주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열심과 정직으로 행하는 것이 곧 성실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첫 성탄 찬송은 이런 사람들에게 들려졌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이웃과 하나님 앞에 성실하게 행하는 성도에게 크고 놀라운 일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 하나님의 영광이 목자들을 두루 비추었습니다. 그런데 영광이 비추었다고 해서 목자들이 부자로 변하고 귀족으로 변했습니까? 아닙니다. 오직 주의 영광만 비췰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주기 원하시는 영광은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영광으로 여기는 것은 이 땅에 속한 부나 명예나 권세이지만, 하나님이 주고 싶어 하시는 영광은 하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믿음과 성령과 영생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천국 상속권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땅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하늘의 영광의 상급을 잃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첫 성탄 찬송을 시청하는 영광은 열심과 정직으로 자신의 일에 충성하는 목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2011년도 천군천사의 성탄 찬송은 성실하게 자신의 직분에 충성해 오신 여러분에게 들려지게 될 것입니다. 


3. 첫 성탄 찬송의 내용 

14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라고 했습니다. 9절에서 말하는 ‘영광(독사)’ 이 하나님의 임재를 말하는 영광스러운 빛의 비췸이었다면, 본절에서 ‘영광’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존귀를 나타냅니다. 즉 이곳에서의 찬양은 은혜로움과 장엄함과 영광이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들이 성육신 하신 것, 곧 구주께서 육체로 오신 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계획이 구체화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그 모든 주권을 지니신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천사들의 찬송이 계속됩니다.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나님의 아들이 구세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그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평화를 가져다 줍니다. 

그 당시 로마 제국의 세계 제패로 인간이 이룩한 ‘로마의 평화(Pax Romana)' 를 통하여 외적 평화는 가져왔지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시려는 진정한 평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죄와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인간과 하나님과의 화평의 구원입니다(롬 5:1, 10). 이 평화는 서로간에 반목과 질시로 벽을 쌓고 살아가는 인간들 관계 속에서의 평화입니다(롬 12:19). 그리고 이 평화는 염려와 혼돈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인간 자신에게 이루어지는 평안입니다(롬 8: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절 전체는 전반부와 후반부가 완벽한 대구(對句)를 이루는 매우 아름다운 찬양입니다. 앞부분은 하늘, 뒷부분은 땅과 관련한 찬양을 하고 있는데,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지극히 높은 곳 과 땅’,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영광과 평화’ 가 각각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천사들이 부르는 그리스도의 탄생 축가는 그 핵심이 ‘하나님께 영광’ 입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찬송했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천상 천하의 영광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출 15:11은 “여호와여 신(神)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새삼스럽게 그리스도의 탄생이 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그 누구의 찬양 여부와 관계없이 창조주로서 또 우주의 통치자로서 본래 모든 영광을 지니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영광에 지울 수 없는 흠집을 낸 존재들이 바로 인간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서 최고, 최선의 존재요 삼라만상을 다스리도록 위임받은 첫사람이 사탄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 후손들조차 계속적으로 불신으로 행하니 하나님의 영광에 얼마나 큰 수욕(羞辱)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는 독생자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배신한 인류의 마음을 다시 찾으려 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회개하고 하나님께 다시 돌아올 때마다 하나님은 기쁘게 영광 받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 15:7).

성도 여러분! 천군 천사들의 찬송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이 두 가지의 조화였습니다. 

WM소요리문답 1문에도 “사람의 제일가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개혁신학의 거두 칼빈이 그토록 강조한 “오직 하나님께 영광” 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의 또 다른 생의 목표는 이 땅에서의 평화롭고 행복한 삶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동시에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면 땅의 평화를 희생해야 하고 땅에서 평화롭게 사는 것을 앞세운다면 우리의 신앙을 희생해야 한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 둘 사이에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방황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스러운 것, 그리고 진정으로 사람에게 평화로운 것은 서로 일치가 됩니다.

우리나라 옛 격언 가운데 “충신은 효자의 문에서 구한다” 는 말이 있습니다. 나라에 충성하는 것과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모순되는 것이 아니고 일치된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생활과 우리의 현세에 받는 모든 축복의 삶은 일치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첫 성탄 찬송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둘 사이의 조화가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은혜가 우리의 마음 가운데 충만할 때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되고 우리의 삶에 참된 평안이 찾아옵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첫 성탄 찬송은 하늘에 있는 천군 천사와 온 우주만물이 소리를 높인 대합창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주와 인류와 자연만물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이 장엄하고 거룩한 찬송을 처음 들은 사람들은 자기의 천직에 성실하게 임하던 목자들이었습니다. 
그 찬송의 내용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인간세계에 참된 평화를 가져오는 조화였습니다.

이 거룩한 찬송이 오늘 성탄절을 맞는 우리 모든 분들의 찬송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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