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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예수님을 위한 방이 없었다 (눅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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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위한 방이 없었다 (눅 2:7) 

세상을 구원하러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탄생하실 때, 그를 위해 방 하나 내드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 7절에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이 높고 높은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종의 형상을 입고 세상에 오시는데, 죄악 된 세상은 그분이 탄생할 방 하나도 내드리지 않았으니, 얼마나 죄스럽고 민망한 일입니까?

1. 불쌍한 마리아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동정녀 마리아의 나이는 겨우 18~19세 정도밖에 안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나라 여자들은 일찍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 신부가 해산할 때가 되면, 환경에 더 신경을 썼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집을 멀리 떠나 해산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걱정이 많고 두려웠겠습니까? 가이사 아구스도(Augustus caesar)가 로마황제로 있을 때, 명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므로, 요셉과 마리아도 자기 고향 작은 마을 나사렛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가면서, 다윗왕의 후손이란 자부심을 가지고 적은 액수의 세금을 내고 마리아는 성경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미가서 5장 2절의 예언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거기 보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라고 한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한 분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을, 주전 700년에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로 다 호적하라고 명을 내리면서도, 왜 그 명을 내렸는지 자신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로마제국의 수백만 명이 다 고향으로 내려가서 호적 하게 된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도 알지 못한 체, 베들레헴으로 가서 해산하게 된 것입니다.

여자들은 아기를 해산하게 되면 남모르는 불안과 두려움을 갖게 되는데, 마리아는 친정어머니도 함께 있지 않고, 의사나 산파도 없고, 사촌인 엘리사벳이라도 옆에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 여자도 세례요한을 낳은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서 곁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요셉은 투박하고 가난한 목수여서 넉넉한 돈도 없으므로,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정성껏 친절하게 돌보았습니다. 사실 아직은 동정녀 마리아가 자신의 아내도 아니었습니다. 

호텔이나 여인숙이 아니더라도 조용한 방이 꼭 필요했으나, 그 성읍 여관마다 손님이 꽉 차서 방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한 마구간을 얻어서 지푸라기밖에 없는 말구유에 아기 예수님을 낳아 뉘었습니다.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음 이러라”


2. 불쌍한 요셉

요셉은 가난하고 불쌍한 남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충성 되고 믿음 있는 사람이었고,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도 그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극진한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요셉은 동침도 하지 않았는데, 마리아가 임신했을 때 얼마나 충격을 받고 상심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았고, 신중하게 기도하는 중에 “조용히 마리아를 내보내려고” 했습니다. 처녀가 아기를 가지면 돌탕에 맞아 죽게 되므로, 요셉은 마리아가 죽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이일로 깊이 고민하고 있을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0~21)라고, 천사가 일러 주었습니다. 이것은 이사야 7장 14절의 말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한 예언을 성취하기 위함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마태복음 1장 24~25절에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 이후에는 사람의 비방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고, 마리아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큰 은총을 입은 여자이며, 약속된 메시아(Messiah)를 잉태했음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는 의롭고 절제심이 강한 남자라 맏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베들레헴에서 이집 저집 다니며, 방을 얻으려고 다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당나귀 등에 마리아를 태우고 여기저기 다녔으나 집집마다 문빗장을 굳게 잠그고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짐승들이 자는 마구간을 얻어 아기 예수님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습니다. 요셉은 가족을 위한 충분한 돈을 준비하지 못해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아마도 요셉은 여러 차례 미안하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천사가 둘러 지켜주는 것을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준비하셨을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했을 것입니다. 결국, 여관에 그들을 위한 방이 없어서 마구간에서 구세주를 낳아 말구유에 뉘었습니다.


3. 온 세상에 그들을 위한 방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방 하나 준비하지 못한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리아와 요셉과의 문제만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문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마구간 말구유에 탄생하신 것이 우연한 일이거나, 무의미한 일이 아닙니다. 

로마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호적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도, 예수님을 성경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탄생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으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태초부터 하나님은 그의 아들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보내실 섬세한 계획을 세우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동정녀 여자의 아들로 태어나게 하실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세상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결혼관계를 통하여 즉, 남자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예수님은 죄 없는 피를 갖고 태어나 피 흘려 구속의 사업을 완성하실 것을 창세기 3장에 나타내셨습니다. 그 누구도 이런 사실을 알지도 못했고, 따라서 예수님을 위해 방 하나도 내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사악한 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 예수님을 위한 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탄생부터 십자가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은 미움을 받았고, 멸시를 받았고, 거절을 당했고, 배신을 당했습니다. 또 가시관을 쓰셨고, 침 뱉음을 당했고, 조롱을 받고, 강도들 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옆구리에 창으로 찔려서 피와 물까지 다 쏟으셨습니다. 피를 많이 흘리면 몹시 목이 마른 법인데, 예수님께서 “내가 목마르다”라고 하실 때, 시원한 물이 아니라 쓸개탄 초(포도주)를 마시게 했습니다. 이것도 조롱과 괴롭힘의 한 장면입니다. 예수님을 위한 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형체를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다 헤아릴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육신을 입은 인간이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마치 태양을 가까이서 보면 눈이 멀거나 타죽고 마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의 영광을 다 벗어 놓으시고, 제한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것은, 마치 4성 장군이 일등병 계급장을 달고 말단소대에서 근무하다가, 때가 되어 별 넷을 달고 차에 별 판을 부치고, 본 위치로 돌아간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구속의 사업을 다 완성하시고, 부활하셔서 영광의 구름을 타고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눈을 떴을 때, 마구간의 컴컴한데서 희미한 환경을 둘러보셨을 것이고, 예수님의 부드러운 피부가 느낀 것은, 찢어진 강보와 말구유의 지푸라기가 몸에 찔리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작은 아기의 귀는 소나 나귀의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과 세상의 구주이심을 언제쯤 인식하셨을지 우리는 궁금하게 생각됩니다. 이 사실을 아신 다음에는 세상이 자기를 미워하고 대적한다는 것을 아셨을 
것이고, 대속의 제물로 돌아가실 것도 아셨을 것입니다. 따라서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과 동등 되심과 선재성(pre-existence)도 아셨을 것입니다.

언제쯤 서기관과 대 제사장들에게 배반당하실 것과 동방 박사들이 찾아오실 것을 아셨을까? 또 온 세상의 창조주 되심과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과 장차 올 만왕의 왕 되심을 알고 놀라셨을까?


4. 예수님은 인간이 자기를 미워할 것을 아셨으나, 사랑하셨기 때문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이실 것을 아셨지만, 그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는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2절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예언한 말씀
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음 3절에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라고 예언한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시편 22편도 메시아에 관한 예언 시입니다. 시편 22편 6~8절에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이 예언의 말씀대로, 멸시를 받고 비방거리 조롱거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5. 세상 어디에도 방이 없었습니다

사실 베들레헴에만 방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온 세상 어디에도 예수님을 위한 방이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8장 20절에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셨고, 요한복음 7장 53절과 8장 1절에도, 모든 사람이 다 집으로 돌아갔으나, 예수님은 쉴 집이 없어서, 감람산으로 가셔서 쓸쓸히 주무셨습니다. 어느 날 길가시다가 예수님과 제자들이 시장하셔서, 길가의 밀 이삭을 잘라 잡수시기도 했습니다. 누가복음 4장 28~29절에 회장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쫓아내고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트려 죽이려 하기도 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도 방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돌로 치려했습니다.(요 8:59) 예수님의 형제들도 믿지 않았다고 했습니다.(요 7:5, 막 3:31~35)


6. 악한 자들이 예수님을 비난하고 괴롭혔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하나님의 아들에게 방 하나 내주지 않고 박대했을 뿐 아니라, “유대인의 왕”이란 명칭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헤롯(Herodes)왕은 자기 외에 다른 왕이 나타났다고 예수님을 찾아 죽이려고 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고 죽이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땀방울을 핏방울같이 떨어뜨리며 기도하실 때, 대제사장과 로마 군인들은 배신자 가룟 유다를 데리고 와서, 배신의 입맞춤을 하게 하여, 검과 몽치를 가지고 와서 포박하여 끌고 가서 죽이려 했습니다. 구세주 예수님을 처참하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실 때, “목마르다” 하시는 예수님께 냉수 대신 쓸개 탄 포도주(초)를 마시우게 하고,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피와 물까지 다 흘리게 하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조롱하며 괴롭혔습니다.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신 뒤에도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라고 비방하고 조롱했습니다. 오늘날도 동정녀 탄생과 부활을 비웃고 조롱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많습니다.(마 28:12~15)

여러분의 마음에는 예수님이 들어오실 자리가 있습니까? 세상의 욕심과 명예욕과 쾌락으로 꽉 차서, 예수님을 모셔 드리지 못하고, 생명의 구주를 배척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분께 예배드릴 시간도 내어 드리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 읽을 시간도 못 내지는 않습니까? 

불쌍하고 가련한 죄인들이여 예수님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고 고집부리다가 영원한 지옥불의 고통을 받을 사람은 없습니까? 죄악 된 쾌락과 자존심 때문에 영원한 시간을 지옥의 고통을 받으며 보내려 하지는 않습니까? 교회는 그럭저럭 다니지만, 예수님을 참으로 믿고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은 채 아까운 시간을 허송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 외에 참 평안도 없고 구원의 길도 없습니다. 온 세상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방을 내어 드리지 않아,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계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천국백성이 되면, 가난해도 행복하고 핍박을 받아도 감사하고, 죽음이 와도 두렵지 않습니다. 예수님께 반항하지 말고, 당신의 구세주로 모셔 들이십시오. 어떤 죄인도 다 죄 사함 받고 천국 백성이 됩니다. 따라하십시오. “예수님,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합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김홍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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