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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주 앞에 큰 자 (눅 1:13-17)

첨부 1


주 앞에 큰 자 (눅 1:13-17)


미국에서 결혼식을 할 때에 신랑 신부에게 꼭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베스트맨'(best man)과 '메이드오브아너'(maid of honor)입니다.
대부분의 미국 청년들은 결혼식 준비를 부모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 하기 마련인데, 그 대신에 신랑은 '베스트맨'을, 신부는 '메이드오브아너'를 자기 친구 가운데 가장 가까운 사람을 골라서 뽑아 놓고 그들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이 두 사람들은 식장을 예약하는 것이나 피로연의 순서를 짜는 것에서부터 신부의 드레스를 고르는 것 등등 결혼에 관한 거의 모든 준비들을 도와줍니다.
그리고 나중에 결혼식을 할 때에도 '베스트맨'은 남자 들러리들 중에서도 신랑 가장 가까운 쪽에 서 있다가 식순이 되면 결혼반지를 신랑에게 건네주는 역할을 하며, '메이드오브아너' 역시 신부에게 가장 가까운 쪽에 서는 여자 들러리가 됩니다.
  
그러니 이 일은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고 문자 그대로 '베스트맨'(best man) 즉 '최적임자'라야 하며, 또한 그런 일을 맡게 된다는 것은 '메이드오브아너'(maid of honor) 즉 옛날에 '왕비나 공주를 바로 곁에서 모시던 시녀'에게 붙여졌던 이름 그대로 '영예로운 처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셨을 때에도 그와 비슷한 역할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마 3:3) 즉 예수님의 초림을 위하여 마지막 준비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스스로를 가리켜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요 3:29)고 말하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예수님의 '베스트맨'이나 다름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즉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초림을 맞이함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친히 임명하시고 사용하신 '최적임자'였던 셈인데, 이 사실은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예언된 사실로서 바로 오늘의 본문이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부모인 사가랴 제사장과 엘리사벳은 늙도록 자식이 없었는데 바로 7절에서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고 기록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이들 부부에게 평생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그대로 반영해 주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결혼한 부부에게는 이보다 더 큰 고민이 없으며, 특히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그저 고민할 일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저주받은 일로 통하고 있던 형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이미 늙었기 때문에 완전히 포기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천사가 사가랴 제사장에게 나타나서 그들에게 아들이 생길 것이라고 예언해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13절과 14절 말씀에 기록하기를 "13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4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라고 했습니다.
그 천사는 그냥 '수태 고지'를 해 준 정도가 아니라 분명히 "아들"이 될 것이라고 미리 성별감지까지 해 주었고 더 나아가서 아예 작명까지 해 주었습니다.
그 이름은 "요한"이었는데 그 뜻은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라는 것입니다.
천사가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라"고 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이것이 사가랴 제사장 부부에게 얼마나 기쁜 소식이 되었을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가랴의 기쁨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5절 상반절에서 천사는 그 태어날 요한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라고 했습니다.
사가랴 부부에게는 그야말로 금상첨화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저 인사치레로 "이 아이는 나중에 뭔가 크게 될 인물인데요."라고 말해 주어도 부모에게는 참 기분 좋은 일인데, 하물며 천사의 입을 통해서 자기 아들이 장차 '하나님 앞에서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되었으니 그 기쁨이야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천사의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라 참된 예언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예수님께서도 친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확증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을 제일 앞장서서 맞이하며 준비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무에게나 맡길 수 있으셨겠습니까?
그것은 실로 '하나님 앞에서 큰 인물', 그야말로 그 일에 '최적임자'가 될 만한 사람이라야만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세례 요한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하는 큰 자'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를 이 시간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경건한 신앙인'으로 사는 것이 곧 '주 앞에 큰 자'가 될 수 있는 기본 자질입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위대한 인물'이 되기 위하여 그의 성장 과정부터가 성별되었습니다.
15절에 기록하기를 "15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라고 했습니다.

"포도주나 소주(독주)를 마시지 아니하며"라는 금주(禁酒)의 서약은 바로 '나실인의 서약'에 포함된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나실인의 대표적인 서약 중에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는다'라는 것도 있는데 세례 요한도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에 아무 기록이 없기 때문에 과연 그가 '나실인'으로 자랐는지는 확실히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어떤 술도 입에 대지 않도록 교육을 받고 자랐다는 이것 하나만 보아도 세례 요한은 분명히 다른 아이들과 구별된 특별한 경건생활의 훈련을 받았던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이 그처럼 경건한 신앙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것 말고도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15절 하반절에 "(저가)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사실입니다.
즉 요한은 단지 그 부모가 그를 성별되이 키우고자 애썼기 때문에 그처럼 '주 앞에서 큰 자'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모태에서부터 거룩한 사람으로 택정하시고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가 하나님께서 자기의 자녀를 그 출생 전부터 '언약의 자녀'로 구별하여 선택해 주셨음을 믿고 그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써 양육할 때에 바로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하나님 앞에서 큰 인물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주 앞에 큰 자'가 될 신앙의 인물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원칙입니다.
불신자들은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는 아이, 예쁜 아이,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을 잘 추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중에 뭔가 크게 될 사람이라고들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의 부모들은 그런 유치한 세속적 눈이 아니라 영적 안목을 가지고 자녀들을 바라봄으로써 사가랴 부부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자녀들이 모태에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언약의 자녀로 태어났으며 또한 교회를 중심으로 '경건한 신앙인'의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정말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늘의 세례 요한'과 같은 아이에게만 베풀어 주시는 특권 중의 특권인 것입니다.

신앙의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은 그 모태에서부터 자기 엄마 아빠의 기도 소리를 들으면서, 또한 그 귀한 생명을 위하여 함께 기도드리는 성도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됩니다.
이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목사의 축복을 받습니다.
이 아이들이 자기 엄마 품에 안겨서 집 밖으로 나온 첫 외출은 바로 주일의 교회 출석이 됩니다.
어릴 때부터 찬송이 그 귀에 가장 익숙한 곡조가 되고,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아멘'을 배우고, 읽을 줄 알게 될 때부터 성경 말씀을 대하면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포도주나 독주'를 멀리하는 이 시대의 '나실인'입니다.
음란한 대중가요나 영화가 이들의 귀와 눈을 침범하기 전에 일찍부터 신자의 자녀들은 이처럼 경건생활이 무엇인지부터 먼저 배우게 됩니다.
얼마나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는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두고 경쟁하기 이전에 이들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먼저 '하나님 앞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하여 꼭 있어야 할 기본부터 갖추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적어도 신앙의 부모라면 이것을 두고 진정으로 기뻐하고 감사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이런 축복은 어릴 때부터 '유아 세례'를 받고 신앙의 가정에서 자란 '세례 요한' 같은 사람만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어른이 된 후에 신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실히 믿고 신앙고백하는 사람은 분명히 '성령 충만'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만드는 것이 바로 성령이 하시는 '가장 큰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신앙인'이란 다른 말로는 곧 '천당 구원 신앙이 확실한 신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세례 요한)보다 크니라"(마 11:11)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진짜로 '큰 자'는 '천당 구원을 받게 된 신자'라는 뜻입니다.
제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하고 인간사회에서 인정받는 소위 '위인'이라 할지라도 구원을 받지 못하면 실상은 '천국에서 제일 작은 자'보다도 더 못한 사람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큰 자'가 되는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 무엇인지는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 충만'을 받아서 '예수 신앙'을 분명히 고백하는 사람, '교회 중심'으로 세상과 구별된 '경건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진실한 신앙인'이 되는 것, 바로 세례 요한처럼 '주의 길을 예비하는 위대한 인물'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이 자질을 갖춤으로써 진정 예수님의 탄생을 온전히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많은 사람을 예수님을 믿게 만드는 전도자'로 사는 것이 '주 앞에 큰 자'가 되는 성취 조건입니다.

세례 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16절과 17절에 "16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17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고 기록했습니다. 

사가랴 제사장에게 나타났던 천사는 그 세례 요한이 앞으로 하게 될 일을 두고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고 예언해 주었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이후 세례 요한이 태어나기 이전까지 약 400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은 '참된 선지자'를 전혀 보지 못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참된 말씀을 전하는 자가 끊어지고 오직 형식적인 예배만을 인도하는 제사장들과 신행일치의 삶은 전혀 없이 그저 율법적인 외식만 자랑하는 바리새인들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상 하나님께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가운데 세례 요한은 그들을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는 사명을 준행하면서 '주의 길을 예비'했습니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악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그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자기 죄를 회개하며 돌아오는 길만이 진정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인 것을 깨닫게 해 준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형식적 전통과 비성경적인 유전의 굴레로써 백성들의 영혼을 묶어 놓았던 종교 지도자들만 400년이 넘도록 보아 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로 오랜 만에 자기네들을 제대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진정 선지자다운 선지자'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처럼 귀한 그의 사역을 가리켜 본문 17절에서 천사는 말하기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구약 성경 제일 마지막에 기록된 말라기를 통하여 예언되었던 '메시야 도래의 전조'가 바로 세례 요한을 통하여 성취될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엘리야 역시 북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세벨의 바알 숭배 우상에 빠져 완전히 하나님 앞에서 떠나 있을 때, 갈멜산의 제단 등을 통하여 '그 마음을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이끈 선지자였습니다.
세례 요한 역시 그와 똑같은 사명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도록" 즉 예수님 탄생 이전에 보냄을 받았던 것이었습니다.

그의 사명은 '아비와 자식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즉 단절되었던 하나님과 그 백성의 사이를 다시 '하늘 아버지와 그 양자'로서 가깝게 만들어 놓는 사역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또한 "거스리는 자" 즉 하나님께 반역하고 멀어지려는 자들을 "의인의 슬기"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을 깨닫는 자로 회복시키는 사역이기도 했습니다.
그처럼 파괴되어 있던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는 사명, 즉 사람들로 하여금 오실 메시야를 맞을 준비하도록 만드는 이 중차대한 사명이 바로 세례 요한에게 주어졌으며 그는 바로 그것을 완수해 냄으로써 실로 대선지자 엘리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 앞에 큰 자'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앞에 큰 사람'을 정의하시는 방법은 세상 사회에서 '위인'을 정의하는 방법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성령충만'을 입고 '경건한 신앙인'이 된 사람은 바로 이처럼 '많은 사람을 주께로 돌아오게 만드는'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완수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 앞에 큰 자'로 완성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낙심한 인생 - 바로 이런 자들을 단 한 명이라도 더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진짜 큰 인물'인 것입니다.

이것은 '선지자'라야만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꼭 목사나 전도사가 되어야만 다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신앙에 파선하고 있는 약한 교우 한 명을 위로하고 권면하여 다시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되면, 그 사람은 이미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오랫동안 장결자로 있던 교인을 찾아서 심방하고 다시 교회 예배에 출석하도록 이끄는 구역장은 문자 그대로 '이 시대의 세례 요한과 같이 큰 인물'입니다.
바쁜 직장 생활하면서도 토요일이 되면 학교 앞 전도를 나가서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전도해서 그 다음 주일에 SFC로 인도하는 교사, 주말마다 '어린이 새소식반'에서 '전도의 열쇠'를 찾아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다니고 놀이터를 지날 때마다 주일학교로 인도할 어린이를 찾아내려고 항상 전도지와 전도물품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심방장이야말로 역사상의 그 어떤 영웅, 호걸, 가인, 재사보다도 더 훌륭한 진짜 '위대한 인물'인 것입니다. 

이처럼 전도와 선교에 '가든지 보내든지' 쓰임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로 '큰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뻐기고 월급 많이 받는 직장에 다닌다고 어깨에 힘을 주고 멋진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고 해서 자기는 '남 부러워할 성공적인 인생'을 성취했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정말 가소로울 뿐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다른 것은 다 잘한다 하더라도 만일 자신의 평생을 통하여 단 한 명의 사람도 전도하지 못한다면 하나님 앞에서는 그야말로 '지극히 작은 소자 인생'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직 죄인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까지 친히 비하된 모습으로 찾아오신 이 예수님을 전파함으로써 어찌하든지 '많은 사람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별과 같은 사람', 진정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영광스럽게 빛나는 '큰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위인'이라는 말을 영어로 할 때에는 'great man' 즉 '큰 사람'이라고 합니다.
즉 '크다'는 말이 사람을 가리켜 쓰일 때에는 이처럼 '위대하다, 훌륭하다'는 뜻에서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기왕에 사람으로 살게 되었다면 그저 평범한 사람이나 혹 평균 이하의 사람이 아니라, 남들보다 어떤 면에서든지 뛰어나고 훌륭한 '큰 인물'로 살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신자들은 '세상이 알아주는 위인'이 아니라 '주 앞에 큰 자'가 되고자 하는 소망을 자기 자신과 또한 자기 자녀들을 두고 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례 요한은 이처럼 '주 앞에 앞서 가면서' 또한 '주 앞에 큰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하면서' 또한 '그 구세주 앞에서 큰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인들의 70퍼센트가 'Merry Christmas'(기쁜 성탄을 맞이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것을 더 선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신에 'Happy Holidays'(즐거운 휴일이 되세요)라고 인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청교도 조상들의 신앙의 전통 가운데 세워졌던 미국이 이제는 동성연애자들은 공개적으로 군복무를 할 수 있는 반면에, 학생들은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기도도 할 수 없고 성탄절조차 축하할 수 없는 나라가 되어 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예수님 탄생일'이 그냥 '공휴일'로 전락되고 만 것이며, 오바마 대통령은 그처럼 '위대한 미국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스스로 '가장 작은 자'로 내려앉고 만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 탄생을 가장 잘 맞이하는 큰 자'는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그것은 성탄 카드를 예쁘게 잘 만드는 사람은 아닙니다.
좋은 선물을 준비해서 가족이나 친구를 기쁘게 해 주는 사람이 성탄절의 의미를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구세군의 냄비에 1억, 2억씩이나 되는 큰 돈을 무명으로 기부하는 것은 물론 훌륭하고 칭찬 받아 마땅한 선행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성탄절을 제일 잘 맞이하는 가장 큰 인물'이 되는 것은 역시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성탄 맞이'는 바로 그 성탄절에 탄생하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 맞이'는 곧 '성령충만을 입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신앙고백'에서만 시작될 수 있으며 '바로 그 예수님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전도와 선교'를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빠지면 '성탄절'(Christmas)은 그냥 '휴일'(Holiday)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왜 이 세상에까지 인간의 몸을 입고 탄생하셨는지를 깨닫고 믿고 고백하는 '신앙인'이 되고 바로 그 구세주 그리스도를 내 집 근처부터 시작하여 땅끝까지 전파하는 '전도인'이 됨으로써, '초림하신 아기 예수님'과 또한 '재림하실 심판주 그리스도' 앞에서 진정 '큰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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