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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인생이 아름답게 될 때 (마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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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아름답게 될 때 (마 2:1-12)  

< 우리처럼 되신 예수님 >   

어느 날, 한 사람이 화재 중에 부모를 구하려다가 부모는 죽었고 자신도 화상으로 얼굴이 흉측하게 변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얼굴뿐 아니라 마음도 화상을 입어서 자신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여기고 아무도 만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성형수술을 하면 거의 원래 얼굴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해도 그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오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리 설득해도 되지 않자 얼마 후에 아내가 담당 의사 선생님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 얼굴도 남편처럼 망가뜨려 주세요. 남편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남편도 원래대로 돌아올 겁니다.” 그 말을 의사 선생님이 전해주자 비로소 남편이 방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하나 되려고 자신의 위치를 잠깐 망가뜨리고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셔서 고통과 절망 중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시고 넘치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을 맞이할 때마다 그 동안 잊어버렸던 낮은 데로 임하는 성육신의 정신을 회복하고 넘치는 희망을 가지고 새롭게 일어서야 합니다.

  
< 3종류의 사람 >   

본문을 보면 좋은 역할과 나쁜 역할을 하는 여러 사람의 표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3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1. 헤롯과 같은 사람  

예수님은 헤롯왕 때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1절). 헤롯은 에돔 사람으로 로마 황제에 아부해 주전 47년에 유대 총독이 되었고, 주전 40년에 유대지역 분봉 왕으로 임명되어 주후 4년까지 44년을 통치했습니다. 그는 4가지에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첫째, 힘 지상주의에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헤롯 대왕이란 명성을 유지하려고 경제가 어려울 때는 면세제도도 실시했고 주전 25년의 대 흉년 때는 자신의 금 접시를 녹여 백성들을 구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힘으로 강요된 평화를 정착시켰고 강력한 왕권으로 정적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회유했습니다.  

둘째, 그는 물질주의에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피폐한 경제를 일으켜 ‘요단강의 기적’이란 경제적 성과를 이뤘습니다. 특히 대규모 건축 사업을 벌여 궁전 7개와 9500석의 극장 7개를 세웠고, 예루살렘을 예술성과 편의성을 갖춰 재건축했고, 스포츠 경기장도 여러 개 세웠는데 그 중에서 가장 큰 경기장은 30만 명까지 수용했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헤롯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셋째, 그는 특권의식에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무대를 좋아했고, 남들로부터 찬양받고 예술로 남을 감동시키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부드러운 언어로 반대자를 설득하는 언변도 뛰어났습니다. 그는 10번 결혼했는데 많은 결혼이 정략결혼으로서 권력 강화를 위해 정적의 딸과도 결혼했습니다.   

넷째, 그는 편집증에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친의 독살 후 편집증에 시달려 먹는 것을 철저히 체크했습니다. 또한 수만 명의 노예를 동원해 10개의 중무장된 요새를 건축했고, 곳곳에 스파이를 심어 철저히 감시하고 반역 혐의자를 철저히 제거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부인 미리암과 장모 알렉산드라, 그리고 장남 안티파터와 손자들까지 죽였습니다.  

또한 나이 70이 되어 임종이 가까워지자 예루살렘의 존경받는 시민 70명을 체포해서 자신이 죽을 때 그들도 함께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자신이 죽을 때 누구도 슬퍼하지 않을 것을 알고 백성들이 눈물 흘리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그를 ‘무자비한 미치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 편집증 때문에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태어난 소식을 듣고 군대를 동원해 베들레헴 경내의 두 살 이하의 남자아이들을 다 학살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어두운 시대에 태어나 빛을 비추며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시대가 어둡다고 탓하지 말고 “내가 왜 이런 환경에서 태어났나?” 하고 원망하지도 마십시오. 거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있고, 이 시대에 우리와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무엇인가 특별한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그 뜻을 발견하고 어려운 때라고 느낄수록 ‘탓하기’보다 ‘참여하기’에 더욱 힘쓰십시오.  

에스더 4장 14절 말씀을 보면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말합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그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지금 이 시대에 분당샛별교회로 보내신 목적이 있고, 현재의 배우자와 자녀와 교우를 주신 목적이 있음을 깨닫고 어떤 경우에도 환경을 탓하지 말고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드십시오.
  

2. 제사장과 서기관과 같은 사람  

헤롯은 말년에 중병으로 가슴과 피부가 썩으면서 거의 이성을 잃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는다고 했습니다(2절). 그 말을 듣고 헤롯이 메시야의 태어날 장소를 묻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금방 그곳이 유대 땅 베들레헴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처럼 그들은 메시아에 대한 성경 지식은 있었지만 실제로는 기득권을 빼앗길까봐 구원의 메시아가 오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처럼 요즘도 오래 믿은 사실과 형식적인 신앙을 내세워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할까요? 자신의 신앙과 영성을 자랑하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요새처럼 분별력이 필요한 때에 꼭 알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커지고 영성이 깊어질수록 자랑은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입으로 어떤 능력을 자랑하는 사람은 일단 따르지 마십시오. 그것이 정말 신상이 좋습니다.  

목사로 지내며 수많은 목회자를 보다 보니까 그 중에는 기본 인격이 안 된 목사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목사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목회 성공과 교회성장을 위해서라면 어떤 거짓말도 할 사람입니다. 그래서 학력도 속이고, 치유도 속이고, 사진도 속이고, ‘40일 아침 한 끼 금식’을 하고서 ‘40일 금식’을 했다고 속입니다.  

그런 현실에서 자기 입으로 신앙과 영성과 능력을 자랑하는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그럴 바에야 차라리 자기 몸에 신나를 붓고 불을 지르는 것이 낫습니다. 물론 정말로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자기 영혼을 자신이 사려 깊게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군중심리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은 점잖은 말입니다. 믿음 문제에서는 ‘군중 속의 지옥’입니다. 병들었을 때 병을 낫고 싶은 다급한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죽더라도 ‘예수님’을 찾아야지 왜 ‘사람’을 찾습니까?   

일본에서 사린 독가스 테러 사건을 일으킨 옴 진리교가 왜 엄청난 교세를 자랑하게 되었습니까? 교주가 공중부양을 한다는 소문 때문입니다. 그의 공중부양을 본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옴 진리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외부 사람들은 그의 공중부양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가 제시한 공중부양 사진만 있을 뿐입니다.  

요새는 초등학생도 사진합성을 하지만 20여 년 전에는 얼마나 그 사진이 신기했겠습니까? 그 사진을 보고 옴 진리교를 따르는 순간 그 다음부터는 지옥 인생이 펼쳐진 것입니다. 지금 교주인 아사하라는 감옥에서 공중부양은 커녕 기저귀를 차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교주를 따르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미혹됩니다. 그러나 그 단계가 지나면 스스로를 미혹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보는 것으로 믿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요 20:29). 신비와 능력에 대한 유아적인 호기심과 욕심만 조금만 버려도 자기 영혼을 지킬 수 있는데 왜 그것을 못합니까? 결국 보면 그 미혹되는 사람에게도 신앙과 영성에 대한 자랑과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새 관상기도 훈련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읽는 투심 능력이 생겼다고 자랑하는 교인들을 봅니다. 사람이 되지 않았는데 투심능력만 있으면 뭐합니까?   

중세 어느 날, 한 수도사가 마카리오스 수도원장에게 말했습니다. “원장님! 원장님은 제가 신비주의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관상기도를 통해서 다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관상기도를 통해서 보니까 지금 아무개 수도사가 아무개 수녀와 은밀하게 관계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큰일 낼 사람입니다. 그 수도사를 조심하십시오.”  

그때 수도원장이 말했습니다. “누가 자네를 신비주의자라고 생각한다고 그랬나? 나는 자네를 신비주의자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 자네는 신비주의자가 아니라 인격파탄자네. 동료 수도사가 여자관계가 있다는 100% 물증이 있어도 그에 대한 언급을 조심해야 하거늘 자네는 관상기도 중에 보았다고 그렇게 가볍게 입을 놀리니 자네야말로 정말 큰일 낼 사람이네. 자네는 예수님의 성육신에 담긴 진짜 신비를 알았으면 좋겠네.”  

신비주의자와 영성주의자는 바리새인을 비판하며 그들이 성령의 체험은 없고 성경 지식과 형식만 내세운다고 욕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주장만 다를 뿐 신비주의자들의 태도와 성품도 남을 비판하고 자신을 드러내려고 한다는 점에서 바리새인과 별 차이가 없고 오히려 더 나쁜 영향을 끼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사실을 깨닫고 이제는 알아도 모르는 척, 능력이 있어도 없는 척 하면서 소리 없이 음지에서 헌신하는 음지의 고수를 꿈꾸십시오. 
  

3. 동방박사와 같은 사람  

헤롯은 동방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아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자기에게 알려서 자기도 경배하게 하라고 했습니다(8절). 그래서 박사들이 떠나자 다시 그들을 인도했던 별이 나타나서 아기 있는 곳에 머물러 섰습니다(9절).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이 있는 집에 들어가서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값비싼 예물을 드렸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 예배와 관련된 중요한 자세를 몇 가지 배웁니다.   

1) 외모를 보지 마십시오  

동방박사가 열심히 왕의 태생을 알리는 별을 쫓아왔더니 그곳은 왕궁이 아니라 초라한 집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처음에는 약간 실망도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이런 초라한 곳에 오려고 그토록 먼 길을 달려왔던가? 분명히 왕이 나실 별이었는데...” 그러나 그들은 곧 마음을 가다듬고 집에 들어가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준비한 예물을 정성스럽게 드렸습니다. 요새 사람들은 외적인 화려함에 이끌려 웅장한 예배처소를 찾지만 때로는 초라한 오두막으로 인도받아도 감사와 찬송과 헌신이 퇴색되지 말아야 합니다. 

2) 예배에 생명을 거십시오 

동방박사들은 왜 그토록 먼 길을 달려왔습니까? 무엇을 얻으려는 목적도 없이 그저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처럼 예배란 종교 의식이 아닌 생명을 바쳐 하나님을 만나는 결단이고 헌신입니다. 결국 예배에서 ‘깨달음을 주는 말씀’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예배에 임하는 태도’입니다. 예배하러 오면서 예수님을 만나고 말씀을 듣는다는 기쁨과 설렘을 가지고 와서 예배하고, 교회를 애틋하게 사랑하면서 예배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하면 그 예배는 은혜와 성공을 가져다주는 최대의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3) 예물을 정성껏 준비하십시오  

그때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11절). 동방박사가 세 명이란 것은 그 예물 숫자로 추정한 것입니다. 이 장면은 물질적 헌신도 예배의 중요한 요소임을 잘 말해줍니다. 사실상 예배는 ‘복 받으려고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드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이 언제 주어집니까? 받을 때보다 오히려 줄 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항상 ‘드리고 나누고 베푸는 드나베의 삶’을 최대한 실천하십시오. 가끔 비전을 향해 나가다 보면 아주 힘든 상황에 처해 해결책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도 하나님의 선한 섭리와 도우심을 굳게 믿고 어려울수록 더욱 오병이어의 헌신을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그 ‘헌신의 눈물’이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결국 ‘은혜의 빗물’로 변화될 것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를 키울 때 제일 바라는 것은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얘야! 친구를 가려 사귀어라!” 그것이 사랑이 없는 행위이고 사람을 차별하는 행위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에 대한 차별과 편견은 없어야 하지만 사귈 때는 가려서 사귀어야 합니다. 즉 ‘멀리서 사랑해야 할 사람’과 ‘가까이에서 사랑해야 할 사람’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멀리서 사랑해야 할 사람’을 ‘가까이에서 사랑해야 할 사람’으로 잘못 알았다가 상처 받고 피 본 인생이 얼마나 많습니까?   

누가 ‘멀리서 사랑해야 할 사람’입니까? 살다 보면 여러 경험을 통해서 어떤 기준이 생기겠지만 거의 틀림없는 기준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관계를 하면서 식사비 문제나 회비 문제와 같은 작은 책임을 요하는 문제에서 ‘낼 줄 모르는 사람’은 ‘가까이에서 사랑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가급적 리더로 세워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도와주고 세워줘도 대개 등을 찌르고 배신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항변할 수 있습니다. “아니! 돈이 없으면 내지 못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물론 돈이 없으면 식사비나 회비를 내기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저도 목회 초기에는 내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 때로는 굶어서라도 돈을 아껴서 한 턱 쐈습니다. 아무리 재정적으로 힘들어도 식사비 한번 낼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사람은 없습니다. 마음 문제이고, 각오 문제이고, 책임 문제이고, 인간성 문제입니다.   

며칠 전에 한 성도가 1년 동안 선교사님들의 수고에 대신 감사한다고 선교헌금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그 성도가 얼마나 어렵게 살고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마음속에 깊은 감동이 왔습니다. 그러니까 그를 위한 기도도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그런 성도가 축복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분에게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소서!”  

결국 드릴 줄 알고 낼 줄 아는 사람이 좋은 친구도 오래 사귀고 거룩한 커넥션도 얻습니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인간관계와 교회생활을 기쁘게 잘하기를 원하면 받는 삶만 좋아하지 말고 드리는 삶을 더욱 훈련하고 체질화시키십시오. 이 세상에서 드리는 삶처럼 영혼을 기쁘고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드림’을 아는 사람이 ‘드림(dream)’을 이루고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이 그를 축복의 땅으로 들일(받아들일) 것입니다.

4) 삶으로 예배를 드리십시오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드릴 때 최고로 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 우상화의 본능이 있어서 조금만 방심해도 영성 자랑과 신비주의에 빠지며 예수님이 문이 아니라 자기가 문인 줄 압니다. ‘문’이란 말은 거꾸로 하면 ‘곰’이 됩니다. 자기만 ‘문’인 줄 아는 사람은 ‘곰’같은 사람입니다. 영어의 ‘star(별)’란 단어를 거꾸로 배열하면 ‘rats(쥐들)’이 됩니다. 스스로 ‘스타’인 줄 아는 사람은 ‘쥐’처럼 못난 사람입니다.  

자신을 스스로 높일수록 인격은 저하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감추고 낮추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성공적인 예배자가 되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본문 12절 말씀을 보면 동방박사는 예수님을 경배하고 돌아가면서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서 다른 길로 자기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처럼 주일에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교회에서 떠나는 순간부터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려는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성도는 힘든 상황에서도 순종하고 일하면서 상처를 입어도 순종합니다. 그러면 감동이 됩니다. “어떻게 저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말씀대로 기쁘게 순종하며 살까?” 왜 그렇게 순종할까요? 세상 물정을 몰라 순진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접받으려는 마음이 아예 없고 자존심보다 주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기에 자기 생각과 감정을 극복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순종하면 어떻게 축복의 문이 열리지 않겠습니까? 결국 축복은 “순종적인 성품이 있느냐? 없느냐?”에 의해 좌우됩니다.
  

< 인생이 아름답게 될 때 >   

당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오래 메시아를 기다려왔으면서 왜 예수님을 외면했습니까? 순종의 영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실제로 기다리기보다는 메시아사상을 이용해서 자기들의 종파 유지에 급급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종교로 먹고사는 사람들이었고 진리가 아닌 종교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말도 많고 정죄를 잘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이 눈앞에 있으면 예수님까지도 정죄할 것입니다.  

러시아 문호 도스토예프스키가 지은 <카라마조프의 형제>란 작품에 묘사된 글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세빌레에 오셔서 전도하다가 곧 체포되셨습니다. 그날 밤에 세빌레의 유명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면회하고 꾸짖듯이 말했습니다. "예수님! 왜 이 땅에 또 오셨습니까? 이미 당신이 원하는 일을 교회에 맡기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그 일을 위해 계획도 세우고 법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당신보다 교회를 더 잘 다스릴 것입니다.  

요새도 그런 안타까운 모습이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마다 온갖 조직과 전도계획, 그리고 교육 방법론 등이 산더미처럼 많습니다. 물론 그런 조직과 계획과 방법들도 필요합니다. 그런 것들이 전혀 필요 없다고 하면 그것도 일종의 교만입니다. 그처럼 그런 것들도 필요하지만 그것들을 너무 앞세우면 안 됩니다. 교회를 기쁨으로 섬기는 일은 이성적인 머리나 제도에서 나오지 않고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뜨거운 가슴에서 나옵니다.  

왜 예루살렘 성전의 직업적인 종교인들은 성전 의식과 율법토론에만 몰두하며 정죄하는 선수가 되었습니까? 결국 형식주의와 물질주의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의 재산은 이스라엘 국가 재산보다도 많았습니다. 그런 호화판 종교의식 속에서 정작 아기 예수님은 말구유로 쫓겨난 것입니다. 그처럼 예수님을 골방으로 밀어낸 모습이 한국 교회와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은 아닌지 항상 진지하게 성찰해보아야 합니다.  

이제 이번 성탄절을 맞아 힘을 내세우는 헤롯의 삶을 제거하고 가식적인 대제사장의 삶을 떠나십시오. 그리고 진실한 예배에 목마르고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동방박사들의 삶을 선택하십시오. 또한 복음 전파와 선교와 구제에도 최선을 다하십시오. 본문에 나오는 이방인인 동방박사의 경배는 복음이 이방 지역으로 번져갈 조짐이었고, 또한 잘 믿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진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처음 된 자가 나중 된 자가 되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된 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씀했습니다. 그처럼 예수님과 가까운 것 같은 사람이 멀 수 있고, 먼 것 같은 사람이 가까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오래 한 것을 자랑하지 말고 항상 현재의 시간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려고 하십시오. 무엇보다 이번 성탄절을 ‘받으려는 자신’을 ‘주려는 자신’으로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으십시오. 

일전에 미국의 한 우체국 직원이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말을 완전히 잃고 묵묵히 자기 일만 했습니다. 그러자 가정 공기가 시베리아 공기보다도 더 쌀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태가 계속되다가 성탄 며칠 전에 그는 수신되지 못하는 우편물을 분리하다가 편지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알고 보니까 그 편지는 자기 딸이 산타클로스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 금년은 아주 슬픈 한해였어요. 봄에 동생이 천국에 갔어요. 저는 아무 것도 선물을 원치 않아요. 대신에 동생의 인형들을 천국으로 가져다주세요. 그 인형들을 부엌에 둘게요. 그 인형들이 없으면 천국에서 동생이 많이 외로울 거예요. 그리고 저의 선물은 신경 쓰지 마세요. 대신에 아빠가 예전의 아빠로 돌아오게 해주세요. 얼마 전 아빠는 엄마에게 오직 영원(Eternity)만이 자신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아빠에게 영원의 조각을 일부만이라도 주세요. 그러면 저도 착한 소녀가 될게요.”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입니까?  

사람이 받으려고만 하면 마음이 점점 추해지지만 남을 생각해주고 남에게 무엇인가를 주려고 하면 마음이 점점 아름다워집니다. 마음이 아름답게 되면 인생도 아름답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가 구제에 인색하다고 비판하면서 정작 본인은 전혀 나눌 줄 모릅니다. 그런 비판은 정당성이 약합니다. 정의감도 드림을 바탕으로 해야 빛을 발합니다. 이제 성육신에 담긴 주님의 뜻과 사랑을 새롭게 깨닫고 ‘받으려는 자신’을 ‘주려는 자신’으로 변화시킴으로 더욱 큰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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