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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사 5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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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사 52:7-10)


기쁜 성탄절입니다. 그런데 그 어느 때보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또 북의 김정일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대내외적으로 매우 어수선합니다. 그래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성탄절의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서 한 번 묻고 싶습니다. 이 성탄절의 주인은 과연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성탄절의 진짜 주인이시냐고 재차 물을 것 같으면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좀 어렵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이 되면 무척 즐거워합니다. 사람들은 모여서 술잔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대목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성탄절의 주인인 예수님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붉은 옷에 흰 수염을 날리는 산타클로스만 보이지 않습니까? 유치원에도, 쇼핑몰에도, 심지어 교회에도 어김없이 산타클로스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인터넷에서 정말 낯뜨거운 기사도 볼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대학가는 모텔 구하기 전쟁 중'이라는 제목의 기사 일부를 소개합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대학가에 모텔 방을 잡기 위한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연인들의 기념일로 인식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크리스마스 이브 날 묵을 숙박업소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최근 모대학 교내 커뮤니티에는 연일 모텔, 호텔 등을 비롯한 숙박업소에 관한 질문과 답변이 올라오고 있다.”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지 않습니까?

오늘 선지자는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탄절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없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있어서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사건이 시작된 날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일찍이 히브리서 기자도 강조한 바 있지 않습니까?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히 1:8~9)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요한복음 기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또한 뭐라고 말했습니까?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 1:11) 자기 땅에 오셨다고 한 것은 땅에 사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것이 그분의 것이라는 말로 이해해도 좋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예수님을 오늘 우리는 어떻게 맞이해야 합니까?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시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선지자가 선포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이 땅 위에 평화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때문에 평화의 왕이 다스리시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은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첫 성탄의 밤에 천군과 천사들이 뭐라고 노래했습니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오늘 그 노래가 새삼스럽게 우리의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참 평화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성탄절에 무엇보다 먼저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그 주님을 반갑게 영접하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성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승리를 가장 먼저 맛보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파수꾼입니다. 때문에 파수꾼은 전령과 적군을 제대로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파수꾼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 한국 교회는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승리의 소식을 알리는 전령인지 우리의 적군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세상 문화가 판을 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성탄절에 오직 승리의 주님을 반갑게 영접할 수 있도록 파수꾼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또한 충성스러운 파수꾼으로서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진심으로 기뻐해야 합니다. 승리의 전령을 보고서도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가 어찌 제대로 된 파수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선지자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사 52:9 상반절) 파수꾼은 먼저 기뻐합니다. 그 후 성을 향해서 기뻐하라고 외치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파수꾼의 궁극적인 사명은 기쁜 소식을 성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파수꾼이 전할 소식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사 52:10) 온 세상 만민을 향해서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통치가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차례입니다. 온 세상 만민을 향해서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오심과 다스리심을 선포해야 합니다. 말로만 아니고 삶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널리 전해야 합니다. 선지자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 52:7 하반절) 아마도 그는 하나님의 승리를 가장 먼저 목격하고 그 기쁨을 전하기 위해서 한달음에 달려왔을 것입니다. 그는 승리의 순간에 부르심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달려왔을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는 우리의 모습도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복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빨리 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이사야서 42장은 종의 노래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삶으로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종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사 42:1~4)

조대현이란 분이 그린 신앙 만평 가운데 “자존심이냐 주존심이냐”라는 제목의 아주 재미있는 작품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고 있는 중에 그 파티장에 들어가려는 허름한 차림의 예수님을 경비원이 막고 있는 그림인데 작가는 그 그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연이 빠진 조연들의 파티, 예수님이 거절당하는 크리스마스 파티장... 세속화된 성탄절엔 예수라는 이름이 오히려 어색할 수 있습니다. 그저 즐기는 축제이고 해마다 맞이하는 대형 이벤트니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주인이 되셔야 마땅합니다.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순박한 착각도 깨워 줘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탄절을 과연 어떻게 맞이하고 있습니까? 그 옛날 선지자가 선포했던 그 한 마디가 오늘 우리에게도 이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 평화의 왕으로 이 땅 위에 오셨다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며 널리 전하는 복되고 충성스러운 주님의 백성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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