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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눅 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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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눅 2:8-14)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여러분의 심령 속에, 그리고 온 세상에 성탄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2천년전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태어난 아기였습니다. 여관방 한 칸도 얻지 못해 마구간에서 태어났습니다. 요때기 하나 없어 누더기 강보에 싸여 말구유에 뉘어졌습니다. 누가 이 아기를 보고 위대한 인물이라 여길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 아기는 바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의 탄생은 인류 역사 상 가장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인류 역사는 그를 중심으로 B.C.와 A.D.로 양분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탄생을 거룩한 탄생 ‘성탄’(聖誕, Nativity)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쁜 소식을 누가 가장 먼저 들었습니까? 8절에 ‘목자들’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사람들은 당시 예루살렘이나 도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광야나 산지, 벌판 같은 곳에서 양이나 치며 야영생활을 하고 살던 그런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진행되는 각종 예배 모임에는 참석조차도 할 수도 없었고 심지어 법정에서 증인 노릇할 권리마저도 박탈당할 만큼, 사람들은 이들의 존재에 대해서 철저하게 무시하고 경멸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모든 사람이 무시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택하셔서 당신의 아들의 탄생을 알리는데 사용했겠습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세상 법정에서 조차 증인의 자격을 박탈당한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 크신 사역을 나타내도록 하셨겠습니까? 이것이 성탄 비밀인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별로 대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했던 이들 목자들에게 첫 번째 크리스마스 소식이 들려졌다는 것과 그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신 그 하나님을 맞이했다는 사실은 실로 우리에게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목자들에게 성탄의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11절에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여기 보세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은 좋은 소식인데 메가톤 급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자녀가 명문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 남편이 승진했다는 소식, 로또 복권이 당첨됐다는 소식, 세상의 그 어떤 좋은 소식도 예수님이 탄생 소식보다 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될 수 없습니다. 죄인인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나와 함께 이 땅에 거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내 곁에 찾아오신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예수의 나심이 왜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됩니까? 

1. 예수의 나심이 왜 우리에게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냐면 죄 사함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보시고 구원 받아야 될 존재로 선언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는 말씀에 의하면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거침없이 이 사실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9장 27절에 있는 말씀대로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우리 모두 다 죽습니다. 육신이 죽고 난 다음에 죄의 결과로 따라 오는 것이 있습니다. 심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신다면 그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아십니까?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심판을 면하려면 구원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받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마 1:2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여러분들이 아마도 TV 뉴스나 혹은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밀엽꾼들의 잔혹한 행위에 대해서 보았을 것입니다. 야생동물을 잡기 위하여 산 속에 불법으로 수십 개의 덧을 놓아서 밀엽을 하는 내용을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밀엽꾼들이 설치한 덧에 걸려서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발이 짤려져 나가면서 몸부림치고 있는 동물의 모습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언젠가 새끼를 벤 어미 산돼지가 밀엽꾼들이 설치한 덧에 걸려서 발버둥 치면서 피투성이가 되어 점점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비참한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사탄이 설치한 죄와 사망의 덧에 걸려서 신음하며, 발버둥 치면서 피투성이가 되어 그렇게 점점 죽어 가는 것이 바로 우리 인생들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렇게 죽음의 덧에 걸려서, 죄악의 덧에 걸려서 발버둥 치면서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고 있던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분을 보내셨습니다. 그 죽음의 덧에 걸린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그 죽음의 덧인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고, 마침내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에 있었던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를 안겨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죄악의 덧에 걸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참 평화를 주시려고 그 분이 오신 이것이 바로 성탄절의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바로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것처럼 큰 기쁨의 소식이 어디 있습니까? 

2. 어찌 그 뿐입니까? 우리를 구원의 자녀로 삼으신 그분은 우리의 임마누엘이 되십니다. 마 1:2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성탄 사건은 한 마디로 임마누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게 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파격적인 은혜입니다. 

여기에 대해 사도 요한은 요1:18절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시고, 우리의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좀 더 하나님을 잘 알 수 있게 하시기 위하여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자녀들에게 임마누엘로 함께 하신다는 말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있고, 우리 귀로 들을 수 있으며, 우리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하나님으로 오셨습니다. 곧 우리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님께서 우리 곁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임마누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임마누엘이라는 의미 속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히13:5의 말씀에 보면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여기 과연이라는 말은 영어로는 ‘never’입니다. '결코'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한번 택함을 받은 자녀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언제나 우리를 도우시겠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에게 기쁜 소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죄로 인해 소망을 잃은 우리들에게 다가오신 이 성탄의 사건을 목자들은 어떻게 반응을 합니까? 늘상 일상에 양떼를 치던 이 보잘 것 없는 목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적막한 한밤에 이 소식을 들은 것도 엄청난데 곧 이어 13절에 보면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 장면을 생각해 보세요. 이 때 하늘의 천군 천사의 대 합창이 울려 퍼졌습니다. 

여기 ‘허다한 천군 천사’라고 했는데, 그 수가 수천 수만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밤하늘의 뿌려놓은 듯한 은하수처럼 지금 온 땅에 천군 천사들이 모두가 잠든 깊은 밤중에 캐롤을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가대가 오늘 칸타타를 하지만, 천사가 합창한 그 노래는 정말 장엄하기 이를 데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기 탄생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할렐루야!!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막혔는데 예수의 탄생으로 이제 우리 그 예수로 말미암아 당당하게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관계가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기뻐하심을 입었다는 말은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신 예수를 영접한 자를 말합니다. 예수님 다시 오실 때까지 전쟁과 기근과 괴로움은 계속 될 것입니다. 눈물과 탄식도 계속 될 것입니다. 그러나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 앞에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는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요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세상은 이 평화를 알지 못합니다. 성도는 고통과 환란을 당하지 않아서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어려움을 당하고 원치 않는 질병 속에서 힘들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도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요16:33절에 보면 “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14:27절에도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비록 지금 내 안에 어려움이 있고, 내 삶 속에 파고드는 힘듬이 있을찌라도 성도는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알고 그분 앞에 무릎을 꿇는 날, 이 땅에 진정한 평화는 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깊은 한 밤중에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이 하늘의 놀라운 광경은 그들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 신비스러움 앞에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여기 10-12절에 보시면 두려워하는 목자들이 천사로부터 전달받은 증거의 내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환한 빛이 비취면서 등장한 천사들로 인해서 두려워 떠는 목자들을 안심시키고 전한 소식 본질이 무엇입니까?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의 핵심은 베들레헴에 태어난 그 아기가 구원자라는데 있습니다. 이는 사실 수용하기가 힘든 이야기 아닙니까? 

당시 세상을 통치하던 로마 황제 가이사의 장자로 태어난 아이가 새 시대를 열어갈 인물이라고 했다면 모두가 동의했을 것입니다. 하다못해 헤롯의 왕궁에서 태어난 한 왕자에게 내일 소망을 걸라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구주라고 하는 아기 부모를 보십시오. 아버지는 목수입니다. 어머니는 결혼식조차 아직 올리지 못한 처녀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여관방 하나 확보할 능력조차 없었어요. 그러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기가 세상의 희망이라고 말하는 것을 어떻게 세상이 믿고 감동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목동들은 한밤에 자신에게 들려온 이 성탄의 소식을 가지고 베들레헴으로 달려갑니다. 15-16절입니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하고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빨리라는 단어를 주목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저들은 밤에 잠도 제대로 못자고 양을 지키며 치는 천한 사람들이 아닙니까? 사실 목자들은 피곤합니다. 한밤중입니다. 양들을 지켜야 하는 막중한 일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목자가 없으면 양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위험합니다. 맹수들은 목자들이 졸거나 한눈팔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제 맹수들에게 양들이 밥이 될는지 모르는 그런 상황에서 움직인다는 것 쉬운 일 아닙니다. 더구나 자기들이 하던 중요한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하던 일을 중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에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그에게 찾아가 경배하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빨리 달려간 것입니다. 그리고 ‘찾아서’라는 단어는 원어 상으로 ‘끊임없이(부지런히) 탐색하여 찾다’라는 뜻입니다.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한 밤중에 계속해서 찾아다녔으며, 그 노력 끝에 찾아간 곳이 마구간이었습니다. 바로 거기에 탄생하신 예수를 맞는 저들의 경배하는 모습을 보세요. 세상은 다 고요하죠, 별들만 반짝이는 그 깊은 밤에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이 구유에서 초라한 목동들이 이 광경을 보고 이들이 한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자, 20절을 보세요.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 가니라” 바로 찬양입니다. 그들은 동방박사처럼 준비한 예물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은 세상이 자기를 무시하고 멸시해도, 이 구유에 오신 분이 바로 우리 인생을 죄에서부터 건져내실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천사들이 전하여 준 소식을 듣고 빨리 베들레헴으로 달려갔고 이 엄청난 축복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은혜, 이 사랑 앞에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린 것입니다. 지금은 원로 목사님으로 계시지만, 제자 훈련에 남다른 열정을 쏟았던 옥한흠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뭐, 여러분도 한 번 귀담아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찬양을 통해서 그 사람의 상태를 알 수 있다고 까지 했습니다. “찬양을 드릴 때, 아무 감정 없이 입으로만 찬양을 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이든지, 신앙이 병들어 있는 사람으로 생각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진단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의 입술에서 무엇이 나옵니까? 찬양이 나옵니까? 아니면 원망이 나옵니까? 입만 열면 주님을 송축합니까? 아니면 입만 열면 돈을 송축합니까? 저와 여러분들의 입술에서 찬양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환경과 상관없이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묻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자들이 아닙니까? 이번 성탄을 어떻게 준비하고 계십니까? 정말 성탄을 기다리는 마음을 갖고 계십니까? 묻습니다. 목자들이 그 밤에 들은 큰 감격 좋은 소식을 여러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고 있습니까? 

묻습니다. 왜 이것을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삶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능가하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주님만이 이 기울어지는 시대, 모든 것이 오염되고 파괴되어가는 이 시대의 만물을 회복시키고 평화를 이루십니다. 이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더 이상 이 땅에 것에 매여 살지 않았습니다. 나 하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탄생하신 주님의 사랑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며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성탄의 소식은 모든 사람을 위한 기쁜 소식입니다. 세상은 기쁜 소식에 목이 말라 있습니다. 정말 자고 일어나도 기쁜 소식이 없습니다. 요즘 같은 때는 더더구나 기쁜 소식이 없습니다. 구약 잠언에 “먼 곳에서 오는 좋은 소식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잠언 25:25)”고 했습니다. 성탄의 기쁜 소식이 좋은 소식에 목말라 있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냉수와 같은 기쁘고 시원한 소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그 기쁜 소식의 전달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간! 여기 모인 우리 모두, 누구하나 예외 없이 어느 해인가 인생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될 것입니다.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그리스도에 관한 멧세지를 들으면서도 진정으로 그 분을 만나지 못한 채 주님 앞에서야 한다면, 그리고 주님을 영접했으면서도 참으로 그 분을 경배하는 살자 못하고 부끄러움과 후회 속에서 그 분을 만나야 한다면, 그때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했다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성탄절이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 앞에 경건한 헌신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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