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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마음의 무기를 내려놓고 (눅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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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무기를 내려놓고 (눅 2:1-7)


[그 때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온 세계가 호적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시행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고향으로 갔다. 요셉은 다윗 가문의 자손이므로,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에 있는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동네로, 자기의 약혼자인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올라갔다. 그 때에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는데, 그들이 거기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되었다.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서,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 주님은 지금 외롭다

주님의 탄생을 기리는 이날, 그의 오심을 기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넘치시기를 빕니다. 몸이 불편하거나 군대 혹은 출타 중에 있어 이 복된 자리에 동참하지 못한 교우들께도 주님의 도우시는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더 나아가 아직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이들의 마음에도 성탄의 신비한 빛이 스며들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은 어둠과 죽음의 그늘 아래 살고 있는 이들에게 은총의 빛을 비추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시려고 지금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하늘 군대가 부른 찬송이 우리 마음에도 넘칩니다.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눅2:14)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여전히 평화롭지 못하지만,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은 별처럼 영롱하게 우리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에덴 이후의 인류는 갈등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욕망은 늘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도록 만듭니다. 역사는 저마다 다른 사람들의 욕망이 뒤섞이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하기에 늘 위태롭습니다.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무엇 때문이라고 적시할 수는 없지만 산다는 게 참 슬프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 염세주의자여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행복을 앞에 두고도 누릴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기자의 말이 폐부를 찌릅니다. 그는 하늘 아래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을 살펴서 알아내려고 지혜를 짜며 심혈을 기울였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괴로웠다. 하나님은 왜 사람을 이런 수고로운 일에다 얽어매어 꼼짝도 못하게 하시는 것인가?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을 보니 그 모두가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전1:13b-14)

소중한 인생을 바람을 잡으려는 것 같은 허망한 몸짓으로 허비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날마다 왜 사는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주님은 하루하루를 영원에 잇대어 사는 것이 참 삶임을 가르치시고 또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주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것은 우리 또한 예수를 길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옛날,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 오셨던 예수님은 외로우셨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 오시는 주님도 외롭습니다. 당신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는 많고 많지만 주님은 지금도 바깥 어둠 가운데서 떨고 계십니다. 해산할 날이 임박한 한 여인을 위해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것은 베들레헴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오늘의 소비사회는 누추하고 남루한 사람들을 자꾸만 시선 밖으로 몰아내려 합니다. 그들의 존재는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이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추위를 피해 몰려든 서울역의 노숙인들을 거리로 몰아냅니다. 달동네를 철거한 자리에 고층 아파트를 세웁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는 루저라는 딱지를 붙이고, 행복의 권리․노동의 권리를 찾기 위해 거리에 나선 이들에게는 불온의 딱지를 붙입니다.

• 교회의 상징은?

교회조차 이들의 존재를 짐짓 외면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만삭의 마리아는 해산할 곳을 찾아 저 추운 거리를 떠돌고 있습니다. 성당 입구와 교회 마당에 구유를 마련해놓는 교회들이 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구유 안에 눕혀진 아기 예수 인형을 보며 경건한 표정을 짓습니다. 하지만 그 인형이 구체적인 사람으로 바뀐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어떤 분은 기독교의 상징은 화려한 성찬기가 아니라 대야와 수건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성찬기가 제도로서의 교회를 상징한다면 대야와 수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을 상기시킵니다. 여기에 저는 두 가지를 더 보태고 싶습니다. 구유와 포대기가 그것입니다. 

구유는 가장 낮은 자리를 가리킵니다. 포대기는 연약한 생명을 상징합니다. 오늘의 교회는 자꾸 높은 자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주님은 낮은 곳을 향해 가고 계십니다. 교회는 큰 것과 강한 것을 추구하지만 주님은 세상의 연약한 것들에게 자꾸 눈길을 던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세상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교회가 세상을 닮지 못해 안달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주님은 외로우십니다. 정의는 이익에게 자리를 내주고, 진실은 효율로 대체되는 교회와 세상에서 주님은 울고 계십니다. 이제는 모두 가슴에 품은 날카로운 것들을 내려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약함을 보듬어 안고, 사랑으로 허물을 덮어주고, 서로의 무거운 짐을 나눠지고,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할 때 주님은 우리 가운데 태어나십니다. 

성탄절은 주님이 오신 날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마땅히 서야 할 자리를 재확인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대야를 가져오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구유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과 포대기에 싸인 생명을 소중하게 보듬어 안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교회 성장입니다. 

지난 14일 종로구 중학동 일본 대사관 앞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소녀들을 기억하기 위해 소녀 형상의 위안부 평화비가 세워졌습니다. 한복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10대의 소녀상입니다. 고무신도 신지 않은 맨발입니다. 찬바람이 불던 그날 누군가가 소녀상의 시린 발목에 목도리를 둘러놓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털모자를 씌워주었고 무릎에는 담요를 덮어주었습니다. 소녀들이 겪었을 아픔과 절망을 자기의 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 광경은 우리 시대 구유와 포대기의 완벽한 상징입니다. 평화비 옆에 놓인 빈 의자는 시민들이 그 자리를 채워 위로해달라는 일종의 초대입니다. 

• 순하신 예수 앞에서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없습니다. 정일근 시인의 <오, 母性!>이라는 시를 읽으며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눈이 내리는 성탄절 아침, 시인은 집에서 기르는 개가 혼자서 새끼들을 낳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어미가 있어 가르친 것도 아니고, 사람이 도운 것도 아닌데, 어미는 새끼를 낳고 태를 끊고 젖을 물립니다. 찬 바람 드는 곳을 제 몸으로 막고 오직 제 몸의 온기로 따뜻한 요람을 만들었습니다. 새끼들의 몸 구석구석을 핥아주고 배내똥도 핥아주는 어미개의 모성에 시인은 전율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핥고 또 핥아서 제 생명의 등불 밝히는 저 모성을 동방박사가 찾아와 축복할 것이라 말합니다. 생명은 이렇게 거룩합니다. 

아기에게 다가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 제 마음이 다 따뜻해집니다. 그 신비한 존재 앞에 사람들은 모두 말랑말랑한 표정과 말로 다가갑니다. 하늘 호수처럼 맑은 아기의 눈을 바라보노라면 마음이 절로 고요해지고 밝아집니다. 오늘은 우리 모두 그 순하신 아기 예수 앞에 하염없이 앉아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의 날카로운 것들만 내려놓아도 우리는 꽤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주님이 주신 사랑과 평화를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지금 거리를 떠도는 사람들, 부모의 따뜻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 친구들에게 왕따 당하는 청소년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 외로움 속에 방치된 노인들, 병상에 있는 이들, 이주 노동자들, 북녘의 동포들, 기아에 직면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바로 지금 우리들의 손길을 부르고 있습니다. 작지만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십시오. 이 아름다운 성탄절기에 인류가 조금 더 따뜻한 곳으로 바뀔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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