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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성탄에 받은 옷 선물 (마 1: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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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에 받은 옷 선물 (마 1:18-21)


하나님은 이 땅에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그곳에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으신 아담을 그곳에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에덴을 지킬 수 있도록 인간과 한 계약을 제정(制定)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의 대표격인 원시 아담과 선악과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는 계약을 체결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행위언약입니다. 
그러나 아담 편에서 계약을 파기했습니다. 이것이 원시아담의 한계였습니다. 
호세아 6장 7절에 『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기억할 것은 행위언약은 불신자들에게는 아직도 유효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제 2아담) 안에 있는 성도에게는 행위언약은 더 이상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에 『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고 했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 아담 안에서 태어난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 된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살던 아담은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아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을 영벌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구원의 손길을 펴셨는데 그 구원의 방편이 역시 언약으로 나타났습니다. 
삼위일체의 대표이신 성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이신 성자 사이에 한 언약을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구속언약입니다. 

성자 하나님이 이 세상에 사람의 모양으로 오셔서 인간대신 형벌을 받아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입니다(갈 4:4-5; 히 4:15; 빌 2:5-8).
마침내 성자 하나님은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산 채로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우편에 계시다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심판의 주로 오실 것입니다. 
구속언약이 성부와 성자 간에 맺어진 언약이라면 성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과 맺은 언약을 은혜언약이라고 합니다(엡 1:4). 

은혜언약은 구속언약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맺은 구속언약은 성부와 택자들과의 맺은 은혜언약에서 그 언약의 가치와 완성도를 볼 수 있습니다. 언약의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15절에 『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언약의 성취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언약의 충족성과 완전성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따라서 성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음을 전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죄에서 자유하는 선물이자 구원 얻는 선물입니다. 
에덴동산에 살던 원시 아담(제 1아담)은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아담이지만 예수 그리스도, 즉 제 2아담 안에서는 죄를 지을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시 아담 안에 있는 인간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한 단계 높은 인간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성탄은 인간에게 있어서 최대 최고의 선물입니다. 성경은 성탄의 선물을 옷으로 비유했습니다. 

Ⅰ. 성탄은 가죽옷을 선물로 받은 날입니다. 

창세기 3장 21절에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 『 가죽옷을 지어 입혔다 』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입혔다는 말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누구를 시켜서 만들었느냐에 관해서는 논쟁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이것은 먼저 인간의 죄를 속하기 위한 첫 번째 희생인 동시에 구약제사의 원형입니다(레 4:13-21). 그 다음은 인간의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예표하는 첫 번째 사건입니다.

장차 구원받을 인간들은 그리스도를 옷 입듯 하게 될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그 옷을 볼 때마다 일찍이 범죄한 것을 생각케 하여 회개케 하려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했습니다(창 3:7). 무화과나무 잎으로는 이들의 수치를 가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부끄러운 죄의 수치는 인간의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도 가릴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로 말미암아 죄의 수치를 가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수치를 가려 주시기 위해 자원하여 자신을 벗으시고 우리에게 친히 가죽옷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허물을 대신하여 찔렸습니다. 그는 우리의 죄악을 대신하여 상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낫게 하시려고 대신 채찍에 맞으셨습니다(사 53:4-5).

Ⅱ. 성탄은 아름다운 옷을 선물로 받은 날입니다. 

이사야 52장 1절에 『 시온이여 깰찌어다 깰찌어다 네 힘을 입을찌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찌어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 『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 』는 말은 포로민의 고통과 이방민족에 의한 강점기와는 대조를 이루는 해방과 기쁨과 환희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포로의 슬픈 옷을 벗고 자유인의 옷을 입으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는 것은 진리입니다(요 8:32).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요 17:17; 고후 6:7).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입니다(요 14:6; 엡 4:21; 요 5:33).
스가랴 3장 3-4절에 『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라고 했습니다. 

여기 여호수아가 천사 앞에 섰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여호수아가 대표된)은 아무리 죄와 허물이 많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더러워도 하나님 자기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옷은 범죄한 인간을 말합니다. 아무리 죄가 크고 많아도 깨끗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천사는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문맥상으로 볼 때 여호와도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4절에 나오는 천사는 일반 천사를 가리킵니다. 
천사들을 향해 여호수아(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의 더러운 옷을 벗기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성화시킨다는 말입니다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는 말은 마침내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신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아름다운 옷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옷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 2위 되신 하나님이십니다(요 1:1-3).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요 1:14). 이것이 바로 성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아름다운 옷을 우리에게 입히시기 위하여 육신을 가지시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어두웠던 우리가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왕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된 것입니다.
아가서 1장 5절에 『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찌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라고 했습니다. 

Ⅲ. 성탄은 구원의 옷을 선물로 받은 날입니다. 

이사야 61장 10절에 『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고 했습니다. 
본문은 장차 나타나실 메시야의 도래를 이미 그 예언이 성취된 것처럼 과거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메시야의 도래를 확증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옷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옷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그 귀한 구원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0장 20절에 『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 『 의의 겉옷 』은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망토(겉옷)처럼 우리에게 덧입혀 졌다는 말입니다. 
겉옷은 옷 위에 입는 망토로 이해하면 됩니다. 길게 늘어뜨린 망토는 멋의 수단보다 보호의 수단이 먼저입니다. 외부로부터 오는 모든 악조건을 방어하는 것이 겉옷입니다.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했습니다(엡 6:13). 따라서 그리스도의 의는 자격요건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덧입혀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사탄의 집요한 공격을 방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죄와 이스라엘의 연약이 이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자신의 독생자 메시야를 사람의 몸으로 보내시고 그리스도가 스스로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여기 『 의의 겉옷 』은 그 사역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교회(성도)가 마땅히 그를 높여 찬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Ⅳ. 성탄은 어린 양의 피에 씻은 흰 옷을 선물로 받은 날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4-5절에 『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고 했습니다. 

여기 『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라는 말은 도덕적 순결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구원의 의로 말미암는 기독교적 성결을 가리키는 말입니다(고후 7:1). 
여기 『 흰 옷 』은 성도들이 천국에서 받는 하나님의 영광과 완전한 영화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흰 옷은 천국에서 즉시 받는 옷입니다. 그렇다면 흰 옷은 참된 신앙노선에 있는 자들이 사후에 천국에서 받는 천국 백성으로서의 자격의 옷입니다.
흰 옷은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아 희게 된 성도들의 긍극적 승리를 상징하는 옷입니다(계 7:14). 

그래서 이 옷은 어린 양의 피에 씻은 옷이라고 했습니다(계 3:18). 
흰 옷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칭의입니다. 이 사실을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했습니다(계 3:18). 
곧 성령의 은혜로 값없이 산 영적 매수의 의미를 깨달아 알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사야 55장 1절에 『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고 했습니다. 

Ⅴ. 성탄은 그리스도로 옷 입은 날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 『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무죄, 성결하신 거룩한 의의 옷이 나에게 입혀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옷이 나에게 입혀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의 옷이 나에게 입혀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의 옷이 나에게 입혀진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옷 입는다는 말은 세례를 통하여 그의 사활에 참여한다는 말입니다. 

Ⅵ. 성탄은 채색옷을 입은 날입니다. 

창세기 37장 3절에 『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태어날 때 야곱의 나이는 91세였습니다. 그는 요셉을 깊이 사랑(아하브, )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선택적 사랑을 말합니다. 
말라기 1장 2절에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라고 했습니다. 
채색옷은 손이나 발까지 내려오는 제사장의 옷과 같은 긴 겉옷을 의미합니다. 
야곱은 여러 아들 중에 특별히 사랑하는 요셉에게 채색옷이 낡아질 때마다 지어서 입혀 주었습니다. 이를테면 요셉의 채색옷은 여러 아들 중에 아버지의 사랑의 증표였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요 3:16). 그 사랑은 선수적 사랑입니다(요일 4:10). 유일한 사랑입니다(요 3:16). 
그 사랑은 불가불(不可不-하지 않으면 안 되는)의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 『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Ⅶ. 성탄은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 되게 하는 날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 『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 하나입니다. 인종이나 지역을 초월하고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초월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골 3:11).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밖에서 하나 되기를 원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합당한 명분, 즉 교리적, 신학적, 신앙적 명분에 따라 교파가 나누어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입니다. 

하나 되는 운동은 진리입니다(엡 4:4-6, 13). 그러나 우리는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지 비본질적인 것과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신앙적 차원에서 무엇을 믿든지 어떻게 믿든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성경은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엄히 경계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고후 11:4).

Ⅷ. 성탄은 자기 십자가를 지기로 작정하는 날입니다. 

로마서 13장 14절에 『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사활에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곧 그리스도의 비하(낮아지는 것)와 승귀(높아지는 것)에 참여한다는 말입니다(요일 3:16).
자기 십자가는 보은의 십자가입니다. 자기 십자가는 사명의 십자가입니다. 자기 십자가는 불가항력적인 십자가입니다(고전 9: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고 한 본문의 처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과정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 다음 본문 1장 21절에 『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목적과 의의와 가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탄은 자기 백성들을 찾아오신 날입니다. 성탄은 자기 백성들에게 그리스도로 옷 입혀 주시기 위해서 오신 날입니다.

이 날은 가죽옷을 선물로 받은 날입니다. 이 날은 아름다운 옷을 선물로 받은 날입니다. 이 날은 구원의 옷을 선물로 받은 날입니다. 이 날은 어린 양의 피로 씻은 흰 옷을 선물로 받은 날입니다. 이 날은 그리스도로 옷 입은 날입니다. 이 날은 하나 되는 날입니다. 이 날은 자기 십자가를 지기로 작정하는 날입니다.
집을 떠나 있는 가족들과 우리의 골육들과 병약한 자들과 곤고한 자들과 이 세상에 있는 유형무형의 여러 가지 사연들로 눌린 자들과 모든 피조세계에 이르기까지 성탄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눅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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