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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다시 오실 주님 (행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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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실 주님 (행 1:6-11)

이 땅에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리며, 성탄을 맞이하여 성탄의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특별히 2011년 성탄절을 맞이하여 이제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며 소망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위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책입니다. 성경 안에는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약속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의 약속이며, 신약은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중에서도 장차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재림의 약속이 인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최대의 약속입니다. 

구약 성경에 1,845절이 재림에 관한 예언이며, 신약성경에도 318절이 재림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신약 27권 중에 무려 23권에 재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예수님의 재림이 중요한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재림에 대해 ‘무관심’내지는 ‘설마’하고 불신합니다. 흔히 위험을 대비하지 않고 무방비 상태로 지내다 큰 사고를 당하는 경우를 말할 때 우리는 ‘안전 불감증’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안전 불감증보다 더 심각한 것이 ‘종말 불감증’입니다. 설마하며 예수님의 재림을 불신하거나, 종말을 무시하며 살다가 영원히 멸망을 당한다면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다른 것은 만회할 기회가 있지만 종말을 무시하면 만회할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시는 것처럼 2차 대전 당시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할 때 항공기로 여러 차례 전단지를 뿌리며 경고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설마하며 무시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실제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될 때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24만 명의 시민 중 무려 14만 명이 희생되고 남은 사람들도 방사능 후유증으로 고생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그 경고를 순순히 받아들였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6절에 보시면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으니 이스라엘을 해방할 날이 언제이냐는 말입니다. 

이것을 보면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정치적인 왕으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되 정치적인 메시아로 오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세상에서 권세와 권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예수님에게 높은 자리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왕은 고사하고 십자가에서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제자들의 꿈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살아나시니까 다시 기대를 갖게 된 겁니다. 그들은 언제 이스라엘 왕국이 건설될 것인지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때가 언제인지를 질문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자들의 착각이요, 오해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왕이 아닙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낮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고, 하나님의 사명을 다 이루시고 이제 다시 하나님의 우편으로 올라가십니다. 예수님이 이루실 나라는 지상 천국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다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시면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있는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증거합니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은 이제 승천하시지만 올라간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임을 약속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직접 재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요 14:2-3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먼 나라에 간 남편이 귀국할 때가 되었는데도 기다리는 마음도 없고, 사모하는 마음도 없다면 부부관계는 잘못된 것이며, 더욱이 남편이 잘못돼서 안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부부관계는 이미 끊어졌거나 깨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신부된 성도들이 신랑 되신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지도 않고 재림을 믿지 않는다면 그 성도는 거듭나지 못했거나, 영적신부의 자격을 상실한 성도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기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다려지는 것이 있습니까? 군에 입대한 병사는 오직 군대에서는 제대하는 날만 기다려집니다. 약혼 한 연인들은 아마도 결혼식 날을 손꼽아 기다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다시 오시는 예수님이 기다려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모든 구속사업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을 믿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구속도, 부활도, 천국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분명한 사실이며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언제 다시 오시는 것입니까? 재림의 시기는 언제입니까?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궁금한 사항 중 하나는 과연 예수님이 언제 재림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이 재림의 시기에 대해 기독교 역사 이래 수많은 이단들이 출현했고, 지금도 여전히 교회를 혼란케 하는 이단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재림을 강조하고 날짜를 공포하여 사람들을 혼미케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단을 가리켜 시한부 종말론자라고 부릅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 때와 시기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알 수 없음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7절에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 24:36절에도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하나님 아버지의 고유권한으로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우리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천사들과 예수님도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림의 시기에 대해서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분명한 사실은 정확한 재림의 날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려고 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한부 종말론자들의 소리에 미혹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만 우리는 주님이 분명히 다시 오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시더라도 기쁨으로 맞이하도록 늘 준비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 24:44절에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하셨고, 막 13:33절에서도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고 하시면서 재림을 준비하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살전 5:6절에서 말하기를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고 하면서 재림을 준비하라고 권면합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시험 날짜를 미리 알려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시험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즉 열심히 시험공부를 하라는 것입니다. 시험 날짜를 알고 미리 미리 공부한 학생은 분명히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준비하지 않고 놀기만 한 학생은 틀림없이 시험을 망치게 되고 나중에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혼이 날 것입니다. 

바다를 항해하던 배가 파선이 되어서 선원 한 사람이 파도에 밀려 어느 섬에 닫게 되었습니다. 그 섬의 원주민들이 그를 발견하고는 추장 앞으로 데려 갔습니다. 선원은 "나는 이제 죽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추장은 자기를 그 섬의 추장으로 추대하는 것입니다. 

추장이 된 선원은 모든 것을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전의 추장이 마을에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지난번 추장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그들이 하는 말이 이 섬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추장을 세웠다가 1년이 지나면 그 추장을 무인도로 보내서 그곳에서 굶어 죽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선원은 놀라서 "어떻게 하면 무인도에서 죽지 않고 살 수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하던 중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주민들에게 명령하기를 무인도에 곡식과 과일 나무를 싣고 가서 심으라고 했습니다. 추장의 명령이므로 그들은 모두 순종 했습니다. 드디어 1년이 지나자 그들은 추장을 무인도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추장으로 있을 때에 살길을 준비했던 까닭에 여생을 안전하게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이 오실 때 까지 주님을 맞이할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8절 말씀에 보시면 우리가 주님 오실 때까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한 마디로 증인의 삶을 살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일, 예수님을 세상에 전하고, 전도하는 일이 우리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까지 힘써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증인은 본래 법률 용어로 ‘내가 듣고 본 내용을 증거 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증인의 삶이란 예수님에 관해 듣고 본 내용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증인’이란 단어가 헬라어로 마르투스(μαρτυς)인데 이 단어에서 영어의 ‘순교자’라는 마터(martyr)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앞으로 세상에 나가서 증거 하되 순교자적 자세를 가지고 들은 것과 본 것을 전하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사도들은 물론이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신앙 때문에, 그리고 복음을 증거 하다가 수없이 순교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세계 각처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신앙을 지키다가, 복음을 증거 하다가 모진 핍박을 당하고, 순교를 당하는 일이 많습니다. 

히 9:27절 말씀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 16:27절 말씀에 보시면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했고, 계 22:12절에서도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자신의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이 여러분들에게는 기쁨이 되겠습니까? 아니며 두렵고 슬픈 날이 되겠습니까? 

계 1:7절에 보면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다 울게 된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충성하고 헌신한 사람들은 너무 좋고 기뻐서 울고, 예수님을 핍박하고 불신앙으로 살던 사람은 두려움과 후회하는 맘으로 울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어떤 눈물을 흘리게 되겠습니까? 우리 모두 두려움과 탄식의 울음이 아니라,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믿음으로 잘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 오시는 날이 기쁜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기다리고 기다렸던 축복의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첫 번째 오심과 두 번째 오심 사이의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오신 주님으로 확신을 갖고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신 주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복음과 구원처럼 오실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온전한 구원과 영생을 주실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실 주님을 기다릴 뿐만 아니라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어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 요한처럼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마라나타의 신앙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시면서 소망가운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마라나타의 신앙은 그냥 모든 것을 기다리면서 미래로만 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라나타의 신앙은 미래와 과거 사이인 지금, 이상과 현실사이인 지금, 이론과 실제사이인 지금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미래만 향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천국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론에서만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참된 신앙은 지금, 여기, 이 순간이 중요합니다. 마라나타의 참된 신앙은 오늘 이 순간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깨달음 앞에 얼마나 결단과 헌신으로 다짐하고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2011년 성탄절을 맞이하여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신 재림의 주님을 사모하시며,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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