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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감사주일]에스겔 골짜기의 부흥? (겔 3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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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골짜기의 부흥? (겔 37:1-10)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새해의 첫 주일을 맞았습니다. 우리 모두 새로운 마음으로 오늘을 시작합니다. 금년 우리교회의 표어는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바로 그 교회” 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제자 훈련을 받은 사도들이 성령 충만하여 시작한 초대교회의 모습이 바로 우리교회가 닮아가고자 하는 그 모습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새해가 되었다고 실제로 달라지는 것이 얼마나 됩니까? 해가 바뀌었다고 우리의 마음이 한 순간에 새롭게 바뀌어 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제까지 고민하고 가슴 아파하며 끌어안고 있던 문제가 새해가 되었다고 순식간에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한 해가 끝나고 새로운 해가 시작한다는 것에 상당한 의미를 새겨 넣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이 잘라놓은 시간의 토막일 뿐이지, 어제에서 오늘로 또 오늘에서 내일로 이어지는 현실의 시간의 연속성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인 사람에게 새해가 되었다는 그 하나의 변화로 삶을 바꾸어 놓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으면서도 우리는 어제의 어두움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저런 문제를 끌어안은 가슴앓이로 또 한해를 맞이한 것에 불과합니다.

신년이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천지를 지으시고 시간을 지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만이 우리에게 다가온 2012년을 의미 있고 복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에스겔서 33장 이하에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을 회복하신다는 영광된 미래에 대한 다양한 예언들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른 뼈들이 소생하는 환상’ 이야말로 선민 회복을 확증하는 가장 극적이고 감격스러운 예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바벨론 땅으로 포로되어 끌려간 이스라엘의 형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쟁에 패하여 포로로 먼 이방 땅에 잡혀간 사람들의 삶이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모든 권리와 자유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희망 없이 구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하나님의 영이 함께 잡혀간 에스겔 선지자를 데리고 가시더니 어느 골짜기 한 가운데 두셨습니다. 그 골짜기에는 아주 말라비틀어진 뼈들이 가득 차 있었는데, 아마도 예전에 큰 전쟁이 있어서 많은 전사자를 내었던 전투지였던 것 같습니다.

너무도 참담하고 비참한 광경을 보며 에스겔은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런 메마른 골짜기로 인도하셨을까’ 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입니까? 바로 그 마른 뼈다귀들은 지금 포로로 잡혀 와 있는 이스라엘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뼈들이 심히(히, 메오드) 많았고, 아주(히, 메오드) 말랐더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절망적인 상황을 부각시키는 표현입니다. 그들이 입은 재난과 상심의 폭이 너무 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회복에 대한 약속과 소망을 받아들일 수조차도 없는 상태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그 참담한 광경에 휩싸인 에스겔에게 말씀하십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3절).

이성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질문입니다. 언제 죽었는지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라비틀어지고, 썩다 못해 비바람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뼈다귀들이 어떻게 살아난다는 말입니까? 

이 엄청난 질문에 에스겔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오직 한 마디였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3절下). 무슨 뜻입니까? 

마른 뼈와 같은 이스라엘은 결코 회복을 기대할 수 없고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로 들어가는 것은 더더욱 바라볼 수 없는 상태에 있는데,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선지자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능히 살리실 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다음과 같이 대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4~6절입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에스겔이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강하고 담대하게 뼈들을 향하여 대언 했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죽어 흩어졌던 이 뼈 저 뼈들이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자기 뼈끼리 들어맞아 서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 위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이더니 죽기 전의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복원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기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대언 명령을 따라 에스겔이 다시 명령합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9절下).

이 대언 명령을 듣고 죽은 뼈들이 살아서 일어섰습니다. 에스겔 앞에서 대단히 크고 용맹한 군대가 된 것입니다.

이제 희망을 잃고 포로지에서 생활하던 에스겔과 이스라엘에게 남아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른 뼈들로도 군대를 일으키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소망과 능력으로 우리 자신까지도 이길 수 있는 대 승리뿐인 것입니다. 마른 뼈들로도 군대가 되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 앞에 불가능한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새해 아침에 우리는 영의 눈을 떠서 우리 자신의 본 모습을 바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골짜기에서 에스겔이 보았던 마른 뼈들은 비참한 포로 생활 속에 묶여 있는 이스라엘만의 모습은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온 지 오랜 세월이 되었음에도 우리의 모습이 메말라 있지는 않은지 속속들이 살펴보고, 골짜기의 군대처럼 힘 있게 우리 자신을 일으켜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 주님 주시는 환상이 필요합니다. 

1절=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환상’은 ‘하나님이 주시는 꿈’ 입니다. 꿈은 누구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배운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위의 높고 낮음도 따지지를 않습니다. 뒷배경이 있어야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에스겔의 환상입니다. 새해 첫 시간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마른 뼈와 같은 우리 자신의 실존을 철저히 자각하는 일이고, 그러한 철저한 자기 인식 속에 살아가는 일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구원과 참된 소망을 얻으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세상에서 희망과 가능성을 찾기 전에 먼저 절망과 좌절과 비극을 발견해야 합니다. 마치 누구도 도저히 희망을 가져볼 수 없는 마른 해골 골짜기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절대적 절망과 비극을 발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 절망의 골짜기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소망하게 되고 하나님을 통한 구원과 희망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2년의 첫 아침에 꿈을 꾸십시오. 환상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환상을 보는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꿈꾸는 사람을 통하여 역사 하십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환상을 받았지만, 성경이 완성된 지금 우리의 환상과 꿈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 말씀으로부터 옵니다. 말씀을 들으며, 말씀을 읽으며, 말씀을 새기며, 환상을 보고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쇄국정책으로 기억되는 ‘흥선 대원군’ 은 원래 술과 여자를 좋아하던 사람입니다. 섭정관이 되기 전에 기생집 출입이 잦았는데,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해 기생을 품에 안으려 달려들자 그 기생이 이렇게 말을 하더랍니다. “당신이 품에 안을 것은 내가 아니라 삼천리 반도요.”

이 한 마디에 대원군은 자기의 꿈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대원군의 가슴에 비전이 폭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기생의 말 한 마디도 한 사람의 가슴에 불을 당기어 비전이 보이게 하고 나라 전체에 큰 영향력을 던져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비전은 사람의 말이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대원군은 잘한 정책도 많았지만, 나라의 경계를 뛰어넘어 세계를 향한 눈을 열지는 못했던 인물입니다.

성도 여러분!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것은 신앙 승리의 제1무기입니다. 자나깨나 신앙인의 머리는 환상과 꿈으로 이글거려야합니다. 그런데 이 환상과 꿈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옵니다. 사람에게서 찾으려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로 꿈을 꾸게 하고 환상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끌어안고 기도에 깊이 빠져 보십시오. 몇 날이 못 되어 하나님 주시는 환상과 꿈속으로 빠져들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용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4절=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

7절=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10절=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마른 뼈들이 다시 생명력을 얻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 살아 일어났고 마침내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이 뼈들을 살게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권능을 나타내시기 전에 에스겔에게 해야 할 일을 명하셨고, 선지자가 그 명령대로 행하자 하나님은 마른 뼈를 살리는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말씀을 대언하는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에스겔 선지자는 뼈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그대로 대언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흩어져 있던 뼈들이 결합하고 그 위에 힘줄과 살과 가죽이 붙어 사람의 형태를 갖춘 것입니다. 

그리고 선지자가 생기를 향하여 말씀을 대언하자 사방에서부터 생기가 찾아와서 죽음을 당한 자들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곳은 그곳이 설혹 죽음의 땅이라고 할지라도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이 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또한 이 말씀으로 만물을 지탱하고 계십니다. 실로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의 능력이 있습니다(요 1:1-4).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대언하는 신실한 종들을 통하여 생명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의 주재의 말씀이기에 믿음으로 대언하면 그대로 됩니다. 마른 뼈들도 그 대언을 듣습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믿음의 사람의 입술은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십니다.
 
막 16:15-16=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설교가로 이름을 남긴 찰스 스펄전(1834∼1872). 그는 복음을 깊이 받아들인 후 17세의 나이에 목사가 되었고, 영국의 뉴파크 스트릿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가 있는 날은 인근의 교통이 마비될 정도였고, 좌석이 없어 교회 밖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급기야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교인 수를 따라잡지 못해 교회 건물을 두 번이나 더 옮겨야 했을 정도로 그의 설교는 인기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지방을 여행 하던 중 주일을 맞았습니다. 그는 인근에 있는 작은 시골 교회에 찾아가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얼마나 은혜롭던지 스펄전 목사님은 눈물을 흘리며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그는 설교를 맡았던 목사님을 찾아가 큰 은혜를 받았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중에 그 교회 목사님은 스펄전 목사님에게 무엇을 하는 분이시냐고 물었습니다. 스펄전은 '런던 뉴파크 교회의 담임 목사 스펄전' 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스펄전 목사라는 소리에 깜짝 놀란 시골 교회 목사님은 머리를 조아리며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날 그 은혜로운 설교는 스펄전의 설교집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스펄전 목사님은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시골 교회 목사님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제가 만든 빵을 오늘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내게 다시 먹여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자신에게도, 자신의 영혼에게까지도 믿음으로 대언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힘입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대언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굉장한 능력으로 우리에게 역사합니다.

말씀이 떨어지면 복음의 능력을 붙잡는 힘줄이 생깁니다. 성도로서의 영적 건강을 유지하는 살이 오릅니다. 그리고 맡은 직분의 책임을 감당하는 외형적인 가죽이 덮이게 됩니다.

지난 해 우리 사회에 여러 번에 걸쳐 치부를 드러내어 우리를 슬프게 했던 한국교회를 돌아보면 한국 사회가 교회를 보는 시각이 바로 ‘마른 뼈’ 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복음의 능력을 붙잡는 굳센 힘줄도 없고, 교회 내적 건강을 유지하는 살도 없고,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외형적인 가죽도 없고, 거기에 영성의 생기도 찾아볼 수 없는 그 마른 뼈 말입니다. 

새해에는 그 마른 뼈가 다시 살아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강단마다 에스겔 선지자의 입에서 터져 나온 생명의 말씀이 울려퍼져야 합니다.

구약의 고라 자손들을 보십시오. 시편을 보면 그들은 자신의 영혼을 향하여 믿음의 권위로 명령합니다.

시 42: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자신에게 대언하여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큰 능력을 체험하는 올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서로 연합해야 합니다.

에스겔 골짜기에서 선지자의 대언의 말씀을 듣고 뼈들이 서로 연결되는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7절= “···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10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서로 떨어져 있으면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크게 보면 우리는 모두가 머리 되신 예수님과 연결된 하나 하나의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지체인 우리는 서로 연합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서로 서로 연결되어 큰 군대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 예수님이 기대하시는 교회는 큰 군대와 같은 면모를 갖춘 당당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오늘의 교회들은 의의 싸움을 싸우는 큰 군대이기보다는 항상 죄를 짓고 죄 문제 해결에 바쁜 부상 병동과 같이 되어버리지 않았습니까? 

또한 세상에서 믿음의 싸움을 싸우기는 하지만 금새 지치고 낙담하여 휴식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의 은신처가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유감스럽게도 이 시대 교회들은 의의 싸움을 싸우는 믿음의 용사들의 함성과 승리와 개선의 노래가 점점 사라져가고, 위로와 치유를 바라며 회복과 안식을 구하는 이들로 인하여 잠잠하고 평온한 노래만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는 상처받고 지친 자들에게 위로도, 안식도, 치유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병원이나 요양소의 역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의와 진리를 위해 싸우는 믿음의 용사들을 훈련하며 세우는 군대와 같은 역할도 감당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 되어야 합니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들은 V자형의 편대를 이루어 하늘을 납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맨 앞의 지도자를 정기적으로 바꾸어가며 V자 형태를 지킨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보기에 좋아서 그렇게 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앞장 선 기러기가 바람을 갈라주면 그 뒤를 따르는 기러기들이 그만큼 힘을 덜며 비행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적으로 조사한 결과 질서 없이 비행하는 것보다 V자 편대를 이루어 비행을 할 때 무려 75%나 더 멀리 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연합하면 더 쉽게, 더 빠르게, 더 멀리, 더 성공적으로 날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에스겔의 대언 명령에 마른 뼈들이 살아나며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7절). 하나님의 능력이 공동체 안에 역사 하려면 우리는 연합해야 합니다. 연합해야 너도 살고 나도 살고 모두가 사는 큰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 첫날 우리 모두는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함께 모였습니다. 지난 해를 통해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정말 감사치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모습 속에는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와도 같은 메마른 모습들이 자리를 잡고 있음을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생명 없는 메마른 우리의 믿음을 고백합시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환상과 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내 삶에 믿음으로 대언하며 서로 연합하고 하나되어, 새로운 해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채우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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