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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목자들의 크리스마스 (눅 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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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들의 크리스마스 (눅 2:8-20) 

예수님은 버림받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 가장 누추한 곳에 누우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영광을, 이 땅에는 평화를 가져오는 데 앞장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신화가 아니라 역사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인류의 역사를 BC와 AD로 구분하게 된 역사적 사건입니다. 여러분, 실제가 아닌 것은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단순한 사상이나 신화는 결코 믿음의 대상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신앙의 대상은 역사적 실제여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분이 과거에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의 대상인 것입니다.

준비된 예수님의 탄생

누가복음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실제로 일어난 사건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전 로마 통치 지역은 호적 등록을 하게 됐습니다. 이것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 실시된 첫 번째 호적 등록이었습니다”(눅 1:1~2).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다’라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우리가 추적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아우구스투스가 황제였을 때,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이었을 때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이것은 역사를 되짚어보면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아우구스투스와 구레뇨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사건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로마 제국에서 세금을 더 걷기 위해 실시한 인구 조사입니다. 이 사건들은 모두 예수님의 탄생과 관계가 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호적을 등록하라는 명령에 따라 나사렛에 살던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요셉의 고향이 베들레헴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호적 등록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는 강력한 법 집행력을 갖고 있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법에 따라야 했습니다. 만삭의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가는 모습이 이를 웅변합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가는 길은 멀고 언덕으로 되어 있어 매우 힘겨운 여정이었습니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법에 순종해 베들레헴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국민들에게 호적 등록을 하라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명령과 당시 로마의 법 집행력이 없었다면 예수님은 베들레헴이 아니라 나사렛에서 출생하셨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미가서 5장 2절에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한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로마 황제가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 호적 등록을 명령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메시아의 출생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로마의 역사는 메시아의 출생을 위해 준비된 것입니다.

메시아를 고대하던 사람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에 대한 갈망이 뜨거웠습니다. 구약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되어서 헬라어를 아는 사람들이 구약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해 두셨습니다. 로마 제국 전체가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한 것입니다. 천하를 통일한 로마 황제도 하나님의 하인에 불과했습니다.

“존경하는 데오빌로님, 제 자신도 그 모든 사건을 처음부터 면밀히 조사해 당신을 위해 순서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눅 1:3).

예수님의 부모였던 요셉과 마리아는 평범한 시민이었습니다. 그들은 국가가 정한 법에 순종했습니다. 요셉은 출산을 앞둔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가서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베들레헴까지 가는 여정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집을 구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호적 등록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베들레헴으로 왔기 때문에 숙소가 동나 버렸기 때문입니다. 온누리교회도 늘 장소가 부족합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더 장소를 잡기가 힘듭니다. 방은 예수님이 오실 때부터 없었습니다. 교회에 방이 없다고 너무 불편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회자되는 랄프라는 정신지체 아동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랄프는 정신지체였기 때문에 대사를 외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연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랄프는 적극적으로 연극에 참여하기를 원했습니다. 사람들은 랄프의 배역을 놓고 고민하다 그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발견했습니다. 랄프가 맡은 배역은 대사가 하나밖에 없는 여관집 주인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여관집 문을 두드리면 “방 없습니다”라고만 하면 되는 역할이었습니다. 랄프는 열심히 연습을 했고 실제 연극이 시작되었습니다. 랄프는 역할을 잘 소화했습니다.

“방 없습니다!”

그런데 요셉 역할을 맡은 아동이 연기를 잘했나 봅니다.

“제 아내가 임신 중인데 어떻게… 방을 얻을 수 없을까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그랬더니 랄프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방이 있습니다. 제 방을 쓰세요.”

구주 탄생 소식 먼저 들은 목자들

예수님은 방이 없어서 구유에 누우셔야 했습니다. 구유에 누우신 예수님을 보면서 목자들은 친근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아마도 메시아가 좋은 침대에 누워 계셨다면 목자들은 문화적으로 거리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버림받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 가장 누추한 곳에 누우셨습니다. 누구보다 힘든 형편에 놓인 사람이라도 예수님만큼은 아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이 누구일까요. 출생부터 버림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도 위로하실 수 있는 자격이 있는 분입니다.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이 세상이 준 최초의 선물은 구유였고 마지막 선물은 십자가였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세상의 무관심 속에 지나갔지만 하나님은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하늘과 땅을 바꿔 놓을 만한 중대한 사건이었기에 그 소식을 천사를 통해 세상에 전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천사는 실제로 존재하는 영적 실제입니다. 악의 영이 존재하는 것처럼 천사도 존재합니다. 천사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천사를 부인하지 마십시오. 마음이 눈에 보입니까. 외과 수술로 마음을 고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하지만 마음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인정합니다. 영의 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두 번 정도 ‘아, 이것은 정말 천사의 도움이구나’ 하는 체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강남대로를 빠르게 달리고 있는데 옆에서 차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급제동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속도와 차간 거리를 보면 분명히 부딪혔어야 했는데 신비스러운 힘이 저를 막아 주고 차가 공중으로 뜨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일이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을 또 한 번 겪은 이후 저는 천사의 존재를 확실히 믿습니다.

하나님의 숨겨진 섭리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천사로부터 전해 들은 목자들은 가장 먼저 예수님을 경배하러 왔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이들이 다녀간 후에 왔습니다.

목자들이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것이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당시 목자들은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고 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목자들은 바로 그 지역 들판에서 살며 밤에 양 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8절).

목자들은 베들레헴 성읍 밖에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버림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성읍 안에서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밤에 잠을 자지도 않고 양 떼를 지켰습니다. 날마다 양과 함께 뒹구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그들과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메시아의 출생을 가장 먼저 들은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목자들이었습니다. 정보는 힘입니다. 중요한 소식이 누구에게 먼저 전해지느냐가 중요합니다. 국가를 움직이는 것도 정보입니다. 자신의 권한에 따라 취급할 수 있는 정보의 중요도도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소식은 가장 중요한 사람에게 전해집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목자들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가장 나중에 들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주가 태어난 가장 중요한 소식이 목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습니다.

순진하고 단순한 믿음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가장 먼저 전해진 사건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에게 버림받은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타락한 사람일지라도, 사회에서 버림을 받은 사람일지라도, 사람들은 그 사람을 버릴지 몰라도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당시 목자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던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목자라고 했을 때,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이 자리에 사람들이 꺼려하는 직업을 가진 분이 계십니까. 예수님이 자신을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소개하십니다. 이 세상 누구도 하나님 안에서 버림받은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진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이야말로 가장 먼저 달려가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경배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자 목자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이 일이 정말 일어났는지 보자.’ 그래서 그들은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습니다. 과연 아기는 구유에 누워 있었습니다”(15~16절).

여기서는 ‘서둘러 가서’라는 단어를 주목해 보십시오. 개역개정 성경에는 ‘빨리 가서’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아마 목자 중에 한국인의 피가 섞여 있는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목자들은 자신들이 치던 양을 버려두고 서둘러 예수님에게로 갔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의 탄생 소식을 단순하게 믿었습니다. 천사가 전해 준 세상의 구주가 베들레헴에 태어났다는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반응한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인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은 메시아의 탄생이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진 이유에 대해 “만약 바리새인들에게 알렸다면 그들은 주석을 펴 놓고 세미나를 시작하느라 시간을 허비했을 것이고, 정치가들에게 먼저 알려 주었다면 그들은 주변에 누가 본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느라 시간을 허비했을 것이며, 기업가에게 먼저 알려 주었다면 자신의 일정을 살펴보느라 시간을 허비할 것이기 때문에 목자들에게 먼저 알려줬다”고 재미있게 표현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순수하게 믿고 단순하게 반응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 세상은 메시지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플래카드를 걸어도 놀라는 사람이 없습니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은 온 세상을 위한 놀라운 소식이전해진 날입니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이 소식을 듣고 큰 기쁨으로 주님을 경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목자들의 마음이 우리 안에서도 회복되어야 합니다.

영이 맑은 목자들처럼

여러분,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당시 목자들만 들었을까요. 노트르담 대학에 몰튼 케세이-확인요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목자들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 소식을 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저도 이 주장에 공감합니다. 왜냐하면 동방박사들에게도 소식을 전해 주셨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도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전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 모든 사람, 모든 계층에게 보여 주셨을 것입니다. 케세이 교수에 따르면 “베들레헴에서 편안하게 잠을 자던 사람들에게도, 사업가에게도, 바리새인들에게도, 여관 주인에게도, 정치가들에게도, 헤롯 궁에도, 로마 황제에게도 독특한 메시지를 통해 소식이 전달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할 일이 많았거나 이상한 꿈을 꾼 것으로만 생각했을 듯합니다.

여러분, 세상의 지식과 문화에 길들여져서 때로는 꿈으로, 사람으로, 말씀과 날씨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영이 목자들처럼 맑아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메시지를 주시면 그 음성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광 받아 마땅한 하나님

“천사가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아라. 내가 모든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알려 준다. 오늘 구주이신 주 그리스도가 다윗의 동네에서 태어나셨다. 너희가 천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볼 것인데 그것이 너희에게 표적이 될 것이다.’ 갑자기 그 천사와 함께 하늘의 군대가 큰 무리를 이루며 나타나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10~14절).

핵심구절은 14절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과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 대조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이 땅의 평화는 예수님의 탄생과 이어져 있습니다. 진정한 땅의 평화는 최고로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하나님께만 영광이 드려질 때 누릴 수 있습니다. 이 땅의 평화가 깨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광을 받아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분이 마땅히 영광을 받아야 이 땅에 평화가 옵니다. 교회의 평화는 왜 깨질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들이 대신 받으려고 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영광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렸기 때문에 참된 평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에는 평화가 있었습니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여러분, 크리스마스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고 이 땅에서 평화를 누리는 날입니다.

성탄의 축복을 경험한 우리가 하나님께는 영광을, 이 땅에는 평화를 가져오는 데 앞장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영광과 평화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땅의 평화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때 옵니다. 사람이 영광을 받으려고 하면 평화는 깨집니다. 사람을 계속해서 칭찬해 보십시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일지라도 지나치게 칭찬을 들으면 듣기 싫어합니다. 그렇게 칭찬할 만한 사람도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칭찬해 보십시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려 보십시오. 밤새도록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린다고 해도 싫어할 사람 한 명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마땅히 영광을 받으셔야 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을 올려 드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평화가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이 어지러운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서로의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영광을 추구하지 않아도 지도자가 될 수 있는데 자신을 나타내려고 하기 때문에 평화가 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고 이 땅에 평화가 임하는 아름다운 성탄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재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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