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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교회 (행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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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교회 (행 13:22)


캐나다 더 피플스 교회의 오스왈드 스미스(Oswald J. Smith) 목사가 생일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여, 나를 당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소서.” 기도를 드리는데 눈앞에 잡다한 일들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전에 중요하게 느껴지던 것들이 이차적인 순위로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여 나를 당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주여, 진실하고 깨끗한 마음을 원합니다. 

구름 한 점 끼지 않은 햇빛 비췬 마음을. 당신의 마음과 같은 마음, 거룩한 마음, 눈같이 흰 마음을 주여 나에게 이와 같은 마음을 내려 주옵소서.” 그 후 놀라운 변화를 맛보았습니다. ‘나의 일이나 소유물보다 내가 하나님께 더 귀중한 존재이다. 하나님은 나를 원하시는 것이지 단지 나의 봉사만을 원하신 것이 아니다’ 라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는 두 손을 드리기 원했습니다. 두 발을 드리기 원했습니다. 두 눈을 드리기 원했습니다. 두 귀를 드리기 원했습니다. 입을 드리기 원했습니다. 그의 삶을 드리기 원했습니다. 스미스 목사야말로 진실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은 사도바울의 전도설교 내용입니다. 그는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목표를 알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전심전력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윗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께 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눈길이 머물고 하나님의 생각이 가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찾아 이루려고 애썼습니다. 이런 모습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22절의 ‘하나님의 마음에 맞다” 에서 ’맞다‘는 말은 동사가 아니라 ’카타‘ (κατα)라는 전치사입니다. 뒤에 나오는 명사가 그대로 이루어지거나, 또는 그것이 참되다는 것, 판단이 내려지는 척도 혹은 기준을 나타냅니다. 즉 ‘카타’가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목적격 명사와 합해서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하다’, 또는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기준에 적합하다’라는 뜻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내 뜻을 다 이루리라’ 와 연결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에 충분한 사람’ 이라는 뜻도 가지게 됩니다. 

아무리 어려운 순간에 처하더라도 여전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 음성이 힘이 됩니다. 그 음성이 능력이 됩니다. 그 음성이 영혼을 소생시키고 존귀한 자가 되게 합니다. 그리하여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자들이 모인 공동체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교회입니다. 새해에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교회를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교회가 되려면,
 
첫째로 돌봄이 있는 교회되게 하소서

여류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이 세상에 남긴 감동적인 말입니다. “매력적인 입술을 가지려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러운 눈을 가지려면 사람들 속에서 좋은 것을 발견하라. 날씬한 몸매를 원하면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어라. 나이를 먹어가며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당신이 두 개의 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손은 당신 자신을 돕기 위해서 손이 있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당신은 깨달아야 한다.” 오드리 헵번은 2차대전 당시에 태어나 굶주림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느 날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병들어 치료받지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몸을 불사르기 시작합니다. 

아프리카에 건너가서 살았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먹이고 입히고 치료해주는 일들을 감당하였습니다. 죽을 때까지 암으로 고통을 당하였으나 그 고통을 안고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유니세프의 친선대사로 일생을 바칩니다. 미국민은 그녀를 무척 존경합니다. 미국영화 100년 역사 속에 가장 뛰어난 배우 100명을 선정했는데 그 중에 오드리헵번이 세 번째를 차지했습니다. 그녀는 외모보다 내면이 더 아름다운 돌보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속사람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돌보는 마음을 가진 교인들의 공동체가 가장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불우한 이웃에게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주변의 불우한 이웃과 친족 그리고 어려운 성도들을 외면한 무리들은 경건한 척 위장하나 실제는 사랑이 없는 외식주의자들입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나팔을 부는 자들입니다.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가까운 이웃부터 돌보아야 합니다. 불우 이웃을 돌보며 돕기에 힘쓰는 경건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돌보는 마음을 가진 성도들이 존재하는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교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섬김이 있는 교회되게 하소서

부라더 로렌스(Brother Lawrence)가 싸움 잘하기로 소문난 수도원 원장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그가 문제 많은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자 젊은 수도사들이 몰려 나왔습니다. 그들은 백발이 성성한 노수도사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말합니다, “노수도사가 왔구려! 어서 식당에 가서 접시나 닦으시오.” 처음 부임한 수도사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전통이 된 모양입니다. 노수도사는 수도원의 문제가 여기에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노수도사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답하고 곧장 식당으로 갔습니다. 한 달, 두 달, 석 달, 접시만 닦았습니다. 멸시와 천대와 구박이 대단했습니다. 

석 달이 지나자 감독이 수도원을 방문하였습니다. 젊은 수도사들이 그 앞에서 쩔쩔매었습니다. 그런데 원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감독이 물었습니다. “원장은 어디 가셨는가?” 수도사들이 대답합니다. “원장은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다.” 감독이 깜짝 놀라며 말합니다. “아니 무슨 소린가? 내가 로렌스 수도사를 3개월 전에 임명하고 파송하였는데?” 감독의 말에 젊은 수도사들이 아연실색했습니다. 즉시 식당으로 달려가 노수도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후부터 그 수도원은 가장 모범적인 수도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직분은 높은 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위한 자리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섬김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어린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섬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섬김을 받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고방식들이 공동체를 메마르게 만듭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섬겨야 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섬겨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를 섬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부모가 자녀를 섬기는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는 섬겨야 하고 아기는 섬김을 받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자식을 섬기는 겁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연조가 깊어질수록 섬김이 많아져야 합니다. 직분을 받을수록 더욱 섬겨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전보다 섬김이 많아졌다면 그만큼 성장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섬김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예배 없는 교인이 성도가 아니듯 섬김이 없는 교인은 온전한 성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섬기도록 부르셨습니다. 섬기는 마음을 가진 성도들이 존재하는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교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세움이 있는 교회되게 하소서

프랑스의 작가 장 지오노 (Jean Giono)의 단편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 의 내용입니다. 한 젊은이가 알프스 여행길에 물을 찾아 폐허가 된 마을을 헤매입니다. 불모의 땅을 걸어가다 양치기를 만나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받았습니다. 다음날 양치기를 따라 도토리 파종하는 것을 보러 갑니다. 양치기는 55세 된 엘제아르 부피에로서, 아내와 아들을 잃고 외떨어진 산에 들어와 홀로 도토리 파종을 시작한 지 3년이 흘렀습니다. 그는 나무가 부족하여 땅이 죽어가고 주민들이 포악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땅은 아니지만 산 곳곳에 너도밤나무뿐 아니라 떡갈나무 씨를 뿌리고 가꾸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1차 세계대전 후 젊은이는 부피에가 살던 곳에 다시 찾아와 그동안 파종한 나무들이 10년생의 우람한 나무로 성장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울창한 숲을 바라보며 사람의 노력으로 삶의 터전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메말랐던 마을 계곡에 물이 흐르고 주민들이 하나 둘씩 돌아옵니다. 조금씩 자연이 되살아나기 시작하였습니다. 1935년 부피에의 '나무심기'는 정부정책으로 자리 잡게 되고, 부피에는 1947년 89세의 나이로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죽게 됩니다. 

황량한 땅에 한 그루 한 그루 정성을 다해 나무를 심었던 농부처럼 사랑으로 인재를 키워야 합니다. 마침내 시간이 흘러 황무지가 나무로 우거지고, 새가 깃들이는 생명의 숲으로 바뀌었듯이 우리들이 흘린 수고가 머지않아 열매로 나타날 것을 믿고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나무를 심게 될 때 후에 거목이 되듯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인물이 나올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음 세대를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의 미래를 바라보며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소망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거기에 교회의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으로 세우는 마음을 가진 성도들이 존재하는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교회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아시시의 성자 프랜시스(Francis of Assisi) 에게 한 사람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의 기적을 나타내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고, 당신만 만나면 사람들이 모두 변하는데 그 놀라운 능력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프랜시스가 대답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느 날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 구석에 가장 연약하고 가장 무지하며 가장 미련한 한 사람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그래 저 사람이다. 저를 통해서 나의 강함과 나의 지혜로움과 나의 능력을 나타내리라’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신 이유의 전부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맞는 자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펼쳐 가신다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성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동안 내 마음에 맞는 교회를 찾으신 것은 아닙니까? 혹여 내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신앙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성도들이 많아지는 교회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교회이며 새해에 우리가 꿈꾸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부디 믿음으로 돌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소망으로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됨을 깨닫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교회를 이루어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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