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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말씀과 함께 새 역사를 향하여 (딤전 3:14-16, 딤후 3: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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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함께 새 역사를 향하여 (딤전 3:14-16, 딤후 3:14-17)

요즘 케이블 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볼 수 있는 채널이 수백 개로 늘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종합편성채널이 등장하면서 방송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졌습니다. 아마 많은 가정에서 서로 보고 싶은 것을 보려고 전쟁 중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요즘 너무 많은 정보가 오히려 겁이 납니다. 와전된 정보, 유언비어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 9월에 우리나라에 온 일본 여대생이 실종되었습니다. 일본 언론에서는 한국에서 납치되었거나, 살해되었을 것이라고 보도했고, 일본 사람들은 그대로 믿고 분노했습니다. 일본 당국에서는 우리나라에 수사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1월이 되었을 때, 여대생은 자신이 애인과 함께 비밀 여행 중임을 어머니에게 알렸다고 합니다. 보도된 내용과 진실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여러분, 이게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뉴스에 나오고 신문에 보도되어도 사실과 다른 게 많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진위를 확인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분노하고 기뻐하면서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다보니 날마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 정보들이 우리에게 쏟아져 들어옵니다. 헷갈리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바른 삶을 정립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이 혼돈의 시대를 살아갈 지혜가 필요합니다. 흔들리는 우리를 붙잡아줄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 기준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최고의 기준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셔서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을 주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부터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십계명을 비롯한 여러 가지 말씀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왜 가나안 땅을 주시기 전에 먼저 말씀부터 주셨을까요? 그 이유는 가나안 땅이 행복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만이 백성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10장 12-13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라고 하셨습니다. 행복은 말씀으로부터 나옵니다.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에게 참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땅을 넓게 차지하고 좋은 포도원을 가지고, 많은 소떼와 양떼를 소유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었습니다.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떠났을 때, 그들은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당했습니다. 가나안 땅도, 많은 소유도 그들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세우기>, <자기 지키기>에 성공하는 사람이 참으로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흔들리지 않게 든든히 세우길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우리를 세워야 합니다. 참된 행복과 바른 삶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위에 서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터전으로 교회를 정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공급하는 대리점과 같습니다. 

먼저 읽은 본문 디모데전서 3장 15절을 보십시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인데, 교회의 첫 번째 기능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첫째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정확하게, 그리고 능력 있게, 효과적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3세기의 교부인 <키프리아누스>는 말하기를 교회는 성도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어머니와 같고, 성도는 아기와 같습니다. 아기는 엄마의 젖을 먹지 못하면 살 수 없는 것처럼, 성도들은 교회가 공급하는 말씀의 젖을 먹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들에게 풍성한 말씀을 공급해야 합니다. 여러분, 땅끝교회가 이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강단으로부터 풍성한 말씀의 젖이 공급되길 기원합니다. 땅끝교회 성도 모두가 풍성한 말씀의 은혜를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저는 이런 마음으로 2012년도 우리 교회 표어를 <말씀과 함께 새 역사를 향하여!>로 정했습니다. 이 혼란의 시대에 땅끝교회 교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혼란하게 될 것을 이미 다 경고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을 펴 보십시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고통하는 때가 온다고 예고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도 그 고통 아래 눌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구체적으로 어떤 고통이 우리에게 옵니까? 디모데후서 3장 2절부터 그 고통의 내용이 다양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펴서 보시면서 생각해 봅시다. 

우선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할 것입니다. 사랑이 있기는 있지만, 그 사랑은 이기적 사랑이 될 것입니다. 남녀가 사랑하는 것도 결국 자신을 위해서요, 친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은 조건부 사랑이며 부패한 사랑입니다. 그나마 이런 사랑은 수명이 짧습니다. 
또 사람들은 <돈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사랑도, 의리도 버리고, 인격과 영혼도 팔아버립니다. 

또 사람들은 <자랑>하기에 바쁩니다. 모두 자기자랑에 여념이 없습니다. 자신을 알리기 위한 내용 없는 책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자신을 조금이라도 폄하하는 사람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달려듭니다. 이런 자기 사랑의 원인은 <교만>입니다. 또 교만은 타인을 <비방>하는 데에 이릅니다. 자신은 높이고 남은 깎아내리고 싶은 게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비방하는 것은 부모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다반사로 <부모를 거역>합니다. 부모님의 말씀 한 마디를 천금처럼 여기던 시대는 이미 끝났습니다. 부모를 짐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할 것이라고 하셨지만,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이미 버린 것 같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늘 불만이 가득합니다. 우리 사회는 특히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비판부터 합니다. 앞으로는 누가 지도자가 되든지 존경받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비방하기 좋아하는 우리 성정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가 <거룩>할 수는 더더욱 없는 일입니다. 거룩하려면 이런 세상의 풍조와 구별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세속의 탁류에 속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들의 정서가 망가졌습니다. <무정>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아도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원통함을 풀지 않습니다.> 사랑하고 품어주고 긍휼히 여기는 아름다운 감정은 다 죽고, 이기적인 원한의 감정만 살아남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이익이 충돌할 때 상대방을 <모함>하길 좋아합니다. 수단과 방법에 관계없이 상대방을 밟고 일어서려고 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그 성격이 <사납기 이를 데 없으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배신>을 해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익만 된다면 어제의 적도 오늘의 친구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기도 합니다. 

또 사람들이 배신하게 되는 이유는 끝까지 참고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꾸준히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결과를 주실 텐데도 사람들은 <조급>하여 기다리지 못합니다. 한국 사람이 특히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대신에 자기 방법을 택하여 살아가는데,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나 되는 것처럼 <자만>합니다. 이런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는 관심이 없고, 오직 세상의 부패한 말초적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경건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 안에도 이런 풍조가 흘러들어서 <경건의 모양만 있을 뿐,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모두가 형식화되었습니다. 
경건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의 욕망을 위해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합니다. 여자는 <어리석은 남자를 유인>합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스스로 쾌락을 위해 그 그물에 걸려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요즘처럼 많이 배우는 시대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진리에서 마음이 떠났고, 배움조차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다보니 <항상 배우나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진리를 배우기는커녕 오히려 <진리를 대적>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현상은 궁극적으로는 <마음이 부패>했기 때문이며, <믿음에 관해 버림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바울 사도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런 악함과 혼란을 말씀한 후에 디모데에게 정말 중요한 것을 디모데후서 3장 14절에서 말합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 <그러나>란 단어는 그 앞부분의 내용과 관련하여 강력한 도전을 담고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혼란스럽고, 사람들이 거기 취해서 비틀거린다고 하더라도 디모데 너만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만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 악한 무질서에 동참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세상과 다르게 사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효용성이 무엇입니까? 디모데후서 3장 15절 이하를 다함께 읽겠습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아멘!  

여러분, 이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가지게 합니다. 듣기 좋은 말로 아부하길 좋아하는 이 세상이지만, 말씀은 우리를 바르게 교훈하고 신랄하게 책망해 줍니다. 우리를 의롭게 교육하는 데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뛰어난 교재는 없습니다. 말씀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게 해 줍니다. 

더구나 말씀은 우리에게 복을 가져다줍니다. 신명기 28장은 유명한 복이 말씀된 곳입니다. 3절 이하를 보면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할렐루야! 2012년에 이 복이 우리의 것이 되길 기원합니다. 

그런데 이런 복을 받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신명기 28장 1-2절을 화면을 보면서 함께 읽겠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아멘.  결국 복의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모두가 말씀에 약속된 복을 받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2012년에 온 교우가 말씀과 함께 출발하길 제안합니다. 주보 사이에 나누어 드린 자료를 꺼내 보십시오. 매일 읽어야 할 성경이 정해져 있습니다. 적게는 하루에 두 장에서 많게는 다섯 장 정도 읽습니다. 장년과 청년, 중고생과 초등학생이 다 같이 읽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 보면 <묵상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세 번 이상 정독하고, 질문에 답을 합니다. 그리고 그 아래 나오는 <적용 질문>에 답을 씁니다. 자신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는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두세 줄의 짧은 기도문을 적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작업을 모든 교우들이 다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흩어져 어디에 있든지 전 교우가 동일한 말씀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제 전도회와 구역에서 만나면 <오늘의 말씀, 다 읽으셨죠?>라고 인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묵상한 그 말씀은 그 다음날 새벽기도회에서 나누게 될 것입니다. 오늘 <창세기 1장-5장>을 읽게 되고, <창세기 1장 1절과 26-31절>을 묵상하게 됩니다. 내일 새벽에는 바로 이 말씀을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주일오전예배와 오후찬양예배, 수요예배에서도 읽은 말씀과 연관된 설교를 하게 될 것입니다. 집에서 묵상하시고, 교회에서 함께 나누면 말씀 이해가 훨씬 풍성해질 것입니다. 한 분도 낙오하지 말고, 다함께 12월 31일까지 갈 수 있길 기원합니다. 나누어 드린 자료를 바인더를 구하셔서 차곡차곡 모아 나가시길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으십시오. 말씀에서 위로를 받고, 약속된 복을 얻으십시오. 말씀의 검으로 마귀를 이기십시오. 우리 교회 성도들이 <말씀과 함께 새 역사를 향하여> 나아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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