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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네게 영원한 빛 (사 60: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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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영원한 빛 (사 60:19-20)    

(사60:19-20)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1. 2012년 새 해, 첫 날입니다. 삶의 지혜를 깨우치는 전도서 1:9-10에,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지난 해(last year)의 해(sun)와 새 해(new year)의 해는 다 같은 해로 그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다, 새 것이라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죄악된 세상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해가 바뀔지라도 여전히 죄 아래에 산다면 무의미한 것, 허무한 삶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해 아래서는 과거나 현재 혹은 미래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입니다. 

‘죄’는 ‘어두움’입니다. ‘죄악된 세상’은 ‘어두움’입니다. 죄의 삯은 죽음입니다. ‘죄’가 ‘어두움’이기에 죄의 결과인 ‘죽음’ 역시 ‘어두움’입니다. 그러므로 해가 바뀌었어도 여전히 죄 아래 산다면 어두움 가운데 있어 새 해의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명’(영원한 생명)은 ‘빛’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죽음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어느 인생인들 죽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야말로 그 누구든지 사망권세 아래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죽음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가운데 살게 됩니다. 달리 표현하면 어두움 아래 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 ‘영원한 빛’ 가운데 살게 됩니다. 요한복음1:4을 보겠습니다.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죄’ 아래에서는 낮의 해와 밤의 달이 ‘빛’, ‘생명’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믿고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더 이상 낮의 해와 밤의 달 아래 살지 아니하고’,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빛 아래 영광스러운 삶, 영원한 삶’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빛 아래 살아야 영원히 기억되는 영광스러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낮의 해와 밤의 달 아래 사는 인생은’ 하나님 앞에 기억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17:13에, “이스라엘의 희망이신 여호와여, 주를 버리는 자는 모두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여호와를 떠나는 자들이 흙에 기록된 이름처럼 사라질 것은 그들이 생수의 샘이신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인생은 그 이름이 흙에 기록된 이름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영원히 기억되지 아니합니다. 참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기억되지 아니하는 인생은 여전히 어두움이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오실 자”(계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알파와 오메가’는 시작과 마지막이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 천지만물의 시작과 마지막이 되신다, 다시 말해 그것들을 시작하시고 마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세상 역사의 시작과 마지막, 인생의 시작과 마지막을 주관하시는 분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생사화복이 하나님 손에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역사의 처음과 나중이 되십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역사의 시작인 동시에 마지막이 되십니다. 한 국가의 흥망성쇠와 온 세계의 종말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그 섭리 아래 진행되고 있음을 말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우연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아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류 구원의 알파, 시작이요 오메가, 나중이 되십니다.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게 된 것은 구원의 ‘알파’, 즉 구원의 ‘시작’이 되시는 하나님의 뜻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앞에 기억되지 아니하는 역사와 인생은 헛되고 허무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2012년의 삶이 하나님 앞에 영원히 기억되는 복된 삶이 되도록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시작하시고 그 믿음으로 마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8:12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2012년 한 해를 살아갈 때, 항상 어떠한 경우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삶이 되어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이 충만한 복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곧 진리,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말합니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시편 19:7-11을 보겠습니다.

(시19:7-11)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로 경계를 받고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본문의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증거”, “여호와의 교훈”, “여호와의 계명”,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 “여호와의 규례” 등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 가지 이름으로 표현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게 될 때, 
1)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되고”, 
2)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3)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4)“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고”, 
5)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6)“확실하여 다 의로우니라.”는 축복들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2012년 한 해를 살아갈 때 “하나님 말씀”으로 얻게 되는 이러한 축복들을 누리도록 “많은 정금”, 곧 세상 모든 재물보다 “하나님 말씀”을 더 사모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 시편 말씀을 기록한 다윗은 이같은 하나님의 축복들을 모두 경험하고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고 고백했습니다. “송이 꿀”은 벌집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덩어리 꿀로 꿀 중에 최고의 꿀을 뜻합니다. 이 “꿀”은 인생 최고의 즐거움과 행복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야말로 세상 그 어떤 부귀영화와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축복과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모하는 신앙생활로 최고의 축복과 행복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이 주는 첫 번째 축복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한다.”는 것입니다. 

디모데 후서 3:16에 보면, ‘하나님 말씀’으로서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이란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 넣으셨다.’는 것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숨결, 곧 하나님의 인격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담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인격을 경험할 수 있으며, 자신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모든 인류가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예수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인격과 ‘하나님의 말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삶 속에 모든 인생이 가야할 ‘길’이 있으며, 예수의 삶 속에 모든 인류가 따라야 할 ‘진리’가 있으며, 예수의 삶 속에 모든 인류의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생명의 빛’을 얻어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하나님의 인격이 숨쉬는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올 때만 사람과 교회, 사회와 나라가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사람과 교회, 그리고 나라 백성이 구원받는 길, 소성케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영적 생활의 활력은 날마다 성경을 읽느냐 안 읽느냐 하는 문제와 정비례합니다. 성경읽기를 일상 일과로 할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은혜는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 말씀’은 완전하여 사람의 영혼을 소성케 하며 그를 통해 가정과 사회를 소성케 만드는 것입니다. 

B.C. 586년 바벨론의 침공으로 나라를 빼앗긴 이스라엘은 절망적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무참하게 학살당했습니다.(대하36:17) 왕은 쇠사슬에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수많은 백성 역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역 만리 바벨론에서 고통스런 포로생활을 보내는 유다 백성들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이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에스겔은 성령에 이끌려 나라 민족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골짜기에 “아주 마른 뼈들”로 가득한 모습을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뼈들이 아주 말랐다.”는 표현은 완전한 절망, 회복 불가능의 상태를 말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지(死地)에서 죽은 자와 같은 생활을 했다는 뜻입니다. 소성할 가능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골짜기에 굴러다니는 “마른 뼈들”같은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외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쉽게 표현하면 “마른 뼈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저기 굴러다니던 “마른 뼈들”에게, 도무지 들어먹을 것 같지 않을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자 이 뼈들이 서로 연결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겔37장) 이는 절대 절망의 이스라엘이, 회복 불가능했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소성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과연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분”이십니다.(롬4:17) 이처럼 하나님 말씀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죽은 자를 살려내며, 절망을 희망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 영혼이 소성하는 것도, 나라 민족이 소성하는 하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천지만물이 모두 하나님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켜 나라 민족을 살리는 길은 하나님 말씀인 오직 복음 전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복음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마른 뼈들”이 굴러다니는 골짜기같은 우리 가정과 사회를 소성케 하기 위해 생명의 말씀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영접하고 그 말씀대로 살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이 주는 두 번째 축복은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확실하여”라는 말은 ‘믿을 만하다.’(trustworthy),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고린도 후서1:18-20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은 '예' 하면서, 동시에 '아니오'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여러분에게 선포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이시며 동시에 '아니오'도 되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예'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멘'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든지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 말씀에 대해서도 ‘아멘’ 즉 ‘예’하고 순종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119:83) 내가 연기 중의 가죽병 같이 되었으나 오히려 주의 율례를 잊지 아니하나이다.”고 고백했습니다. 

“연기 중의 가죽병”은 팔레스틴 유목민들이 거주하는 천막 안에 걸려 있는 가죽병을 말합니다. 천막 안에 음료로 마시는 포도주를 담은 가죽병을 걸어 놓기 마련인데 천막 안에 불을 지필 경우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공중에 달려있는 가죽병을 까맣게 그을려 놓게 됩니다. 또 포도주를 익히기 위해서도 가죽병에 포도주를 담아 연기에 그을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여러 차례 연기에 그을려 새까맣게 된 가죽병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겪게 되는 슬픔과 아픔, 수많은 역경과 고통 등으로 연단받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리고 그 지긋지긋한 도망자의 고달픈 생활을 깨끗이 청산하고 왕으로 등극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사울을 처리하실 때까지, “(대상16:22)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에 끝까지 철저히 순종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엄청난 고난과 재앙, 그리고 환난을 겹으로 당한 욥은 자신의 그같은 삶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욥30:30-31) 내 가죽, 살갗은 검게 타서 벗겨지고, 뼈는 열을 받아서 타 버렸다. 한때는 수금과 피리 소리를 듣던 내가 이제는 탄식과 통곡의 소리만 듣게 되었구나. 

“살갗은 검게 타서 벗겨지고, 뼈는 열을 받아서 타 버렸을지라도” 욥은 그 입술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자신의 삶을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다시 말해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이 “연기 중의 가죽병”같이 될지라도 끝까지 그리고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에 항상 ‘아멘’하는 신앙생활로 다윗과 요셉, 그리고 욥같은 축복을 경험하시고 하나님의 지혜를 증거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에덴 동산은 네 개의 강이 흘러 모든 생물이 풍성한 동산이었습니다.

(창2:10-14)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세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여기 네 개의 강은 모두 풍성한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네 강의 이름의 뜻이 모두 풍성한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째 강의 이름은 ‘비손’입니다. ‘비손’이라는 이름은 ‘부유’ 또는 ‘풍부’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강은 흘러넘치는 풍부의 강, 부요함이 넘치는 강입니다.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입니다. ‘기혼’이라는 이름은 ‘은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강은 은혜가 넘치는 강입니다. 예수 믿는 누구든지 구원하시는 은혜가 넘치는 강을 말합니다.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입니다. ‘힛데겔’은 ‘결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기한 전에 열매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축복이 임합니다. 

넷째 강의 이름은 ‘유브라데’입니다. ‘유브라데’는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축복하시는 강은 능력의 강입니다. 에덴 동산을 중심으로 흘러내린 네 강의 이름 속에는 우리가 풍성한 삶을 누리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풍성한 삶의 축복은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경우에만 누릴 수 있었습니다. 

(창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이는”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지혜롭게 되기는커녕 하나님이 두려워 동산 숲에 숨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창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에덴동산’에서의 풍요로운 삶이 하나님 말씀에 끝까지 ‘아멘’하지 아니하므로 “가시덤불과 엉겅퀴”로 뒤덮인 땅을 땀 흘려 갈아 먹고 살다 죽어야 하는 고달픈 인생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 풍요의 강들이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 젖과 꿀이 흐르고 있습니다. “영혼을 소성케 하고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모하며 송이 꿀보다 더 달게 체험되는” 신앙생활로 성도 여러분의 삶에 풍요의 강물이 흘러 넘치게 되시기 바랍니다. 

2012년 한 해를 살아갈 때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영원한 빛’, ‘생명의 빛’, ‘축복의 빛’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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