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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딤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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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딤전 4:15)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수도 없이 많은 부족들로 구성되어 있을 1800년대 초 영국의 어느 한 선교사가 그곳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 가운데 어떤 부족은 식인종 부락이었습니다. 이 선교사가 목숨을 내놓고 그곳에서 복음을 증언해 식인종 마을이었던 사람들이 돌아와 예수를 믿는 귀한 마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영국의 어떤 고고학 인류학자가 연구 차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식인 마을이었던 이 마을에 가 연구를 하던 중 추장을 만났습니다. 
이 불신자인 인류 고고학자가 추장을 보고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추장님, 이곳을 보니 너무너무 아름다운 유산이 많은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네요. 그것은 기독교가 이곳에 들어와 여러분 고유의 모든 문화를 다 말살시켜 버린 것 같아요. 여러분이 기독교인이 된 것이 참으로 애석하군요."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추장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저기 저 높은 산에 있는 바위가 보이십니까? 
 저 바위가 무슨 바위인지 아십니까? 저 바위는 적과 싸울 때, 사람들을 잡아서 그 뼈를 갈아서 우리들의 신에게 바쳤던 제단이고 그 옆에 있는 커다란 나무가 보이십니까? 그 나무는 우리가 잡았던 사람들의 살을 우리의 신에게 바치고 나머지를 우리가 음식으로 먹었던 장소입니다." 라고 하면서, 
"만약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면 오늘 저녁 밥상에 당신의 시체가 올라왔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사람의 전도가 한 부족을 변화시켰습니다. 사람을 잡아먹던 부족을 사람을 살리는 부족으로 변화시키고 성숙시켰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생각해보아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한 해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시점에서 그러하기에 우리는 무엇보다 지금까지 베풀어주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고 또 새로운 한 해에 하나님이 얼마나 더 크고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실 지에 대한 기대감이 필요할줄로 압니다. 그리고 한 해동안 다 이루지 못한 여러 부족한 모습속에서도 새로운 소망을 품고 더 성숙되고 변화될 내년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과 짐승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시간이 갈수록 발전하느냐? 발전할 수 없느냐하는 점입니다. 
짐승은 한 살 때나 두 살 때나 늙어 죽을 때나 큰 발전이 없습니다. 큰 진보가 없습니다. 그냥 그 날이 그날 인 것처럼 본능적으로 살아가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 사람은 짐승과는 다릅니다. 
한 해가 다르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더 많이 발전하느냐? 덜 발전하느냐의 차이점은 가지고 있겠지만 사람은 분명 진보하면서 발전하면서 성숙해 가면서 인생을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발전하는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람다운 사람의 모습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처럼 성장하고 발전하고 진보하는 삶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큰 유익이요 기쁨일뿐만 아니라 그 발전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큰 보람이요 영광이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 나이를 20살, 30살 먹어도 여전히 발전되지 못하고 성장되지 못한 채 갓난아이처럼 행동한다면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깝고 쓰라리겠습니까? 기저귀는 차야 할 나이에 차고 있을 때 예쁘고 귀여운 것이지만 차야 하지 않을 나이에 차고 있는 한 안타깝고 슬픈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것처럼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저에게 있어 보람 있는 일중의 하나가 있다면 우리 작은 딸 영은이에게 심부름을 시켜보는 재미입니다. 

욕실에 목욕하러 들어갔을 때 엄마가 아빠 수건 가져다 드려라.. 그러면 뭐가 그렇게 좋은 지 막 뛰어서 가져다줍니다. 그럼 그 순간 아버지로서 얼마나 큰 보람과 뿌듯함을 느끼게 되는지... 아마 경험해보지 않은 분들은 잘 모르실 것입니다. 
사실 수건 하나 가져다주는 것은 뭐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딸이 안 가져다주면 내가 가지러 가도 됩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수건 하나에 그토록 뿌듯함을 느끼는 이유는 내가 핏덩이로 낳은 딸내미가 이제는 어느덧 자라서 부모의 말을 알아듣고 그리고 그 부모를 생각하면서 그 부모가 원하는 것을 아주 작은 일이지만 들어주었다는 그것이 대단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보람이 있고 뿌듯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향하여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거듭난 이후에 갑작스레 하나님을 위하여 대단한 것, 엄청나게 큰 것을 잘 감당해 내기를 원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으실 뿐만 아니라 사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갈 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하루가 지나고 일 년이 지날수록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인격이 우리의 삶이 아주 조금씩이라도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음을 보는 그것으로 충분히 우리를 대견해하시고 뿌듯해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하기에 오늘 본문 딤전4:15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영적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 다른 모든 것보다 진보를 강조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조금씩이라도 진보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하나님 앞에, 사람들 앞에 보여주라고 나타내 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처럼 진보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스승인 바울에게 또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가장 보람이요, 기쁨이 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즈음에 우리 모든 성도들은 올해보다 내년에 어제보다는 오늘 지난주보다는 이번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모든 일에 더욱 진보하고 발전하고 성숙 할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면에서 진보해야 하며 어떻게 진보할 수 있을까요? 
오늘 딤전4:15절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딤전4:15절 말씀을 먼저 다함께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이 모든 일에 
바울은 자신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를 향하여 먼저 이 모든 일에 진보를 나타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이 모든 일이란 무슨 일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 앞 부분에서 말씀하신 모든 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4:11-14절까지를 읽어보겠습니다. 
결국 이 모든 일이란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는 것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는 것 그리고 은사 곧 안수 받을 때에 받았던 것을 조심하라는 것으로 요약해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결국 여기서 바울이 성숙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 그 모든 것을 우리가 깊이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결국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성숙이요 둘째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성숙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성숙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결국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의 진보요 그것은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에 있어서의 진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해가 엊그제 시작한 거 같은데 벌써 12월입니다. 
2011년 한 해를 마무리 해야 할 시간들이 다가오는 이 시간 올 한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여러분은 얼마만큼의 진보가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얼마만큼의 성숙을 이루셨습니까? 
새해가 시작되면 누구나 올해는 꼭 성경을 일독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큰 맘을 먹습니다. 그러나 12월 송구 영신예배가 되면 또 마태복음까지 밖에 읽지 못한 성경을 들고 하나님 올해도 마태복음입니다라고 부끄럽게 고백하지는 않으십니까? 
웃으시는 분들은 조금 수상한 분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에서는 어떻습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더욱 뜨거워져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그렇습니까? 아니면 점점 냉냉해지고 돌덩이처럼 굳어져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께 봉사하고 맡겨주신 직분을 감당하는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속에서 나의 모습은 과연 어떻습니까? 
올 한해 얼마나 많은 성숙함이 있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우리 모두는 누구나 세 가지 중 한 가지에 해당될 것입니다. 
첫째, 조금이라도 진보가 되었다. 둘째, 정체 되어 있었다. 셋째, 퇴보되었다. 
올 한해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조금이라도 진보가 되었다면 감사한 일이지만 정체되었거나 퇴보되었다면 그것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실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처참한 십자가에 달리신 그 그리스도의 가슴에 또 다시 큰 못을 하나 박는 안타깝고 슬픈 일이 될 것입니다. 

이 시간 올 한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나는 과연 진보를 이루었는가? 정체 되어 있었는가? 퇴보했었는가?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만약 정체되어 있었고 퇴보했다면 우리는 그대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계2:5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정체되어 있었음을 알고도 신앙이 퇴보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돌이키지 않으면 다시 회복하기 위하여 몸부림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다시 회복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계2:5절의 회개치 아니하면 촛대를 옮기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에베소 교회에서 실제로 촛대를 옮기시고 싶어서 이 말씀을 하시고 계실까요? 아닙니다. 촛대를 옮기시기 원했다면 예수님은 지금 이 말씀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세우신 귀한 교회 에베소 교회의 촛대가 옮겨지는 것을 정말 볼 수 없어 어떻게든 다시 한번 돌이키고 새롭게 출발하기를 원하셔서 정말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말씀을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 모두는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때로 우리 자녀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너 그딴식으로 하려면 당장 때려치워... 어떤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가 정말 때려 치기를 원해서 그렇게 말하겠습니까?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우니까 다시 잘 해주길 바라니까, 정말로 때려 치지 않기를 바라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 언제까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래? 너 언제까지 그렇게 자꾸 퇴보하는 실망스러운 모습 보여줄래? 이제 다시 시작해야지, 이제 다시 출발해야지 이제 다시 진보의 걸음을 내딛어야지. 라고 우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씀하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정체되어 있었고 퇴보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어디서부터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다시 진보를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히10:39절에 보니 하나님은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체되어 있었고 퇴보하였기 때문에 침륜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큰 믿음을 가져야 하고 더욱 큰 담대함과 용기를 가지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농구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리바운드입니다. 농구에서는 한번 슛을 던진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번 슛을 던져서 실패하면 그것으로 슛이 끝나지 않습니다. 실패하고 튀어나오는 공을 향해 다시 재빠르게 움직여 그것을 포기하고 않고 잡아 내어 다시 슛을 던져야 합니다. 한번 던져서 안 들어갔다고 끝이라고 리바운드 하려고 생각지 않으면 상대편이 다 시 리바운드해서 공격의 주도권을 넘겨 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에 있어 진보를 이루지 못했다는 그것으로 우리의 신앙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신앙의 리바운드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계속하여 포기하지 않고 신앙의 리바운드를 통해 다시 신앙의 진보를 위한 슛을 쏘기 시작한다면 결국 신앙의 슛은 성공하게 되고 결국 신앙의 점수가 올라가는 신앙의 진보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위대한 사람들은 대부분 위대한 일을 했던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그 일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포기를 포기했던 사람들이 위대한 사람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올 한해 큰 진보가 없었으니까 지금까지 큰 성숙이 없었으니까 나는 안 되겠다고 포기하지 말고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포기하는 것을 포기하기만 하면 다시 말해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바울의 고백대로 다시 전심전력하여 노력한다면 반드시 우리의 신앙에도 진보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안디옥 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 올 한해 못 이룬 신앙의 진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의 성숙함을 오늘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심으로 끝내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앞에서 여러분의 신앙의 성숙함을 보여줄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진보를 나타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딤전 4:12절입니다.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의 본이 되라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가르쳐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진보란 결국 인격의 성숙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격이 드러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말과 행실일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그러하기에 오늘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이 말과 행실에 있어 본을 보이는 사람이 되라고 다시 말하여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인격에 있어 진보하는 사람, 성숙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절 말씀에 보니 비록 실제 나이는 어리지만 어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업신여기지 못하도록 오히려 더욱 본을 보여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나이로는 어른이 되지 못할지라도 말과 행실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의 차이일 것입니다. 어린이는 늘 모든 일에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어른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면에서 차이점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른으로 대우 받는 데는 익숙해하지만 어른스럽게 말하고 행동 하는데는 더 익숙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 줄때가 많습니다. 영어로 we don󰡑t get older, just get better 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우리는 늙어지지 말고 좋아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어른이 되는 것, 어른으로 대우받는 데 익숙해 지는 것이 아니라 어른스럽게 말하고 행동하는데 익숙해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닙니다. 엡4:13-15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바울사도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자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수준과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어른으로 대우받으라고 말하고 있지 않고 어른스럽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진보를 보여준다고 하는 것은 결국 나만을 생각하는 말과 행동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말과 행동으로 변화되어 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해 여러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얼마나 많은 진보가 있었습니까? 얼마나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까? 얼마나 나만을 생각하는 말과 행동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말과 행동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까? 여러분의 가족들 가운데서 여러분의 직장 동료들 가운데서 여러분의 친구들과 친척들 동네 이웃들 가운데서 또 우리 안디옥 교회 공동체 식구들 성도들 가운데서 말과 행동을 통해 얼마나 많은 성숙함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살아오셨나요?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과 행동을 통해 잘 대접받기를 원하지만 잘 대접하는 일에는 인색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마7:12절에서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우리는 이 마7:12절을 황금률이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우리의 신앙과 인격에 있어 중요한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대접하는 만큼 우리도 남에게 대접을 받게 되어 있는 원칙을 결코 잊지 말기 바랍니다. 내가 왕으로 대접받으려면 내 아내를 왕비로 대접하면 됩니다. 아내를 왕비로 대접하지 않으면서 왕으로 대접받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입니다. 
내가 왕비처럼 대접 받고 싶으시다면 내 남편을 왕으로 대접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 사랑받는 성도가 되고 싶으시다면 내 주위의 성도들을 먼저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먼저 사랑하기 시작하면 또 다른 사람이 사랑하게 되고 사랑이 전염되어 모두가 사랑하게 되는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정말 인정받는 리더가 되길 원하신다면 먼저 사람들을 인정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을 인정해 주지 않는 목사나 장로가 어떻게 성도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인정받고 싶은 만큼 먼저 인정해주고 내가 사랑받고 싶은 만큼 먼저 사랑해주고 내가 존경받고 싶은 만큼 내가 먼저 존경해주어야 그렇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주님이 말씀하신 황금의 법칙입니다. 

옛날에 박상길이라는 나이 지긋한 백정이 장터에 푸줏간을 내었습니다. 하루는 양반 두 사람이 고기를 사러 왔습니다. 그 중 한 양반이 그 백정에게 반말로 주문을 하였습니다. " 얘, 상길아. 고기 한 근 다오." 
" 그러지요." 
박상길은 솜씨 좋게 칼로 고기를 베어서 주었습니다. 
함께 온 양반은 상대가 비록 천한 신분이긴 하지만 나이든 사람에게 말을 함부로 하기가 거북했습니다. 
" 박서방, 여기 고기 한 근 주시게." 
" 예, 고맙습니다." 
기분 좋게 대답한 박상길은 선뜻 고기를 잘라 주었습니다. 
처음에 산 양반이 보니 두 번째 받은 사람이 자기가 받은 것보다 갑절은 되어 보였습니다. 그 양반은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 
"이 놈아, 같은 한 근인데 어째서 이 사람 것은 크고 내 것은 작으냐?" 
그러자 박상길이 대답했습니다. 
" 손님 고기는 상길이가 자른 것이고, 이 어른 고기는 박서방이 잘랐으니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예수님께 한 것이라고 주님은 우리에게 늘 강조하여 말씀해주십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지극히 작아 보이고 연약해 보이는 그 한 사람에게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그것이 곧 예수님에게 한 것이요, 내가 하는 그대로 나도 받게 되어 있음을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을 대하는 말과 행동에 있어 진보와 성숙이 있도록 기도하며 또 다시 전심전력하여 노력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우리는 두 가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신앙의 진보를 위하여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인격의 성숙을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노력하게 될 때 돌아오는 결과는 무엇일까요?
요3서2절입니다.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진보되고 우리의 인격이 진보되기 시작할 때 우리의 범사에 진보가 발전이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왜 우리가 그토록 우리의 신앙과 인격에 있어 진보를 위하여 전심전력하여 노력해야 할까요? 신앙과 인격의 진보 즉 영적으로 잘 되어 가는 것이 결국 우리의 모든 범사가 잘 되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다사다난했던 2011년 한 해도 아쉽게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imf보다 더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들 말씀하십니다. 정치, 경제,사회 문화 어느 분야에서도 참 마음을 놓고 편하게 지낼 수 없는 긴박감과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우리가 지나고 있어도 우리의 신앙이 진보하고 우리의 인격이 성숙하게 되면 하나님이 이 어려운 시기에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사 우리의 모든 범사에도 큰 진보가 있도록, 큰 발전이 있도록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잘 되기를 원하시는 성도들이 계십니까? 
남은 한해 그리고 새해에 신앙의 진보와 인격의 성숙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전심 전력하여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사업과 가정과 자녀들 모든 범사 위에 진보의 은혜, 성숙의 은혜 발전의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다라는 감사의 고백이 나오도록 축복하시고 인도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해 그리고 내년 2012년에는 여러분의 신앙과 인격이 성숙하고 진보함으로 모든 범사에 진보와 축복이 함께 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이런 모든 진보는 결코 가만히 앉아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이러한 진보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딤전4:15절을 보니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보는 성숙함이란 결코 가만히 앉아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전심전력하라는 것은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아시죠? 토끼는 빠른 동물이고 거북이는 느린 동물입니다. 게임은 해보나 마다 토끼가 이기게 되어 있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거북이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토끼가 계속하여 그대로 경주에 임하였다면 토끼는 결코 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토끼는 그대로 경주에 임하지 않고 여유를 부리고 거북이를 무시한 채 낮잠을 잤습니다. 
그 결과 조금씩 조금씩 진보한 거북이가 경주에서 이기게 된 것입니다. 
거북이는 느렸지만 전심전력하였고 토끼는 빨랐지만 전심전력하지 않았습니다. 
최후의 승리는 앞서고 있던 토끼의 몫이 아니라 늦었지만 전심전력하였던 거북이의몫이었던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께서는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지금 얼마나 많이 와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얼마나 많이 갈 것인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목사이고 장로이고 권사이고 지금까지 몇 십년 신앙생활 해온 것이 물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임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젊은이가 오랜 수행 끝에 이제 드디어 검은 띠를 받기 위해 스승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그 제자는 수년간의 혹독한 훈련을 마치고 마침내 무술 단련의 정점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런데 스승이 '검은 띠를 수여하기 전에 한 가지 시험이 남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자는 스승과 자기가 직접 대련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스승은 이런 질문으로 시험을 치릅니다.
"너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검은 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냐?"
"제 수련 과정의 끝이며, 제가 오랫동안 노력한 결과로 주어지는 보상입니다."
만족스런 대답을 얻지 못한 스승은 고개를 저으며 "너는 아직 검은 띠를 받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 1년 후에 다시 오너라."
1년 후 제자는 다시 스승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스승은 또 묻습니다. "검은 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냐?"
"뛰어남의 상징이며, 우리 무술에 있어서 최고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라고 제자가 대답합니다. 이번에도 만족스런 대답을 얻지 못한 스승은 또 다시 고개를 저으며, "너는 아직도 검은 띠를 받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 1년 후에 다시 오너라."
1년 후 제자는 다시 스승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번에도 스승은 또 한번 묻습니다."검은 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냐?"
이 때 제자는 스승이 원하는 바른 대답을 합니다.
『검은 띠는 시작을 의미합니다. 자기 극복, 꾸준한 노력, 보다 높은 수준의 추구라는 영원한 여행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스승은 아주 만족스럽게 이렇게 제자를 격려하며 검은 띠를 메어줍니다.
「그래 맞다. 이제 너는 검은 띠를 받고 너의 노력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의 검은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 이루었다는 완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기고 더 많이 낮아지기 위하여 더 겸손히 배우고 초심을 잃지 않고 하루 하루 더욱 전심전력하여 진보할 것을 시작하는 시작의 의미입니다.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먼저 된 우리가 나중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에 있어 이제는 되었지라고 안일에 빠지고 먼저 된 자라고 교만해지게 되는 순간 나중 된 자가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직도 많이 나중이다. 나중이기 때문에 더 많이 진보되어야 하고 더 많이 뛰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전심전력하여 부지런히 노력할 때 결국 먼저 된 자가 나중 되지 않고 계속하여 먼저 된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안디옥 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신앙의 진보와 인격의 성숙을 위하여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지 않기 위하여 이 모든 일에 더욱 전심전력하시는 믿음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유명한 화가 라파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의 가장 훌륭한 그림은 어느 그림입니까?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라파엘은 네 다음 작품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여러분의 신앙이, 여러분의 인격이 여러분의 범사가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가 아니라 지금부터임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합니다. 
아까 라파엘의 말처럼 우리의 내일에 조각되고 그려질 신앙과 인격의 작품이 우리 생애에 있어 가장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오늘 주어진 나의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하여 전심전력할 때 바로 언젠가 모든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진보가 이루어지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비록 엄청나게 크고 위대한 일들을 이루지 못하고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랄 만큼의 진보를 지금 당장 이루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저 주어진 오늘이 어제보다는 1% 더 신앙과 인격의 진보가 나타나는 삶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심전력하여 살아가신다면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매일 매일 어제 보다 1% 더 진보되는 삶을 위하여 노력하다보면 우리는 1년이 지나면 365% 더 성장하고 발전하고 진보된 결코 작지 않은 진보와 성장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2011년도 새해에 이루지 못한 신앙과 인격과 범사에 진보를 위하여 올 한해 남은 시간동안 그리고 내년 2012년에 아니 여러분의 평생에 걸쳐 전심전력하여 노력하심으로 끝내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 앞에서 신앙과 인격과 범사의 진보를 나타내며 보여줄 수 있는 복된 믿음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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