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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로운 관계, 새로운 삶 (롬 7:1-6)

첨부 1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에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어머님 좋은 데 가셨겠지요?” “우리 아버님 일생에 남과 다투거나 나쁜 일을 한 적이 별로 없으시고 좋은 일을 많이 하셨으니 좋은 데 가셨겠지요?” 그런 말을 들을 때에 목사로서 대답하기가 좀 곤란하다. 여러분은 무어라고 대답하겠는가?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어라고 대답하겠는가? 여러분도 여러분의 아버님이나 어머님이 좋은 일을 많이 하셨으니 좋은 데 가셨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가?

이런 생각은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 아니 동양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유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곳”이 어디인가? 천국 또는 극락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그러면 과연 천국은 좋은 일과 착한 일을 하면 갈 수 있는 곳인가? 사람이 나쁜 일을 적게 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죄가 씻어져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나쁜 일을 하지 않거나 또는 착한 일과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죽어서 좋은 데 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또는 나쁜 일, 악한 일보다 착한 일, 좋은 일을 더 많이 하면 죽어서 좋은 곳에 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면 그 착한 일과 좋은 일이 무엇인가? 무엇으로, 어떤 기준으로 착한 일과 좋은 일을 정의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을 더 많이 하면 좋은 데 간다는 생각이 맞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착한 일을 나쁜 일보다 더 많이 할 수 있는가?

이것은 믿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구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그리고 또한 천국이 어떤 곳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이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구원은 무엇인가? 구원은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천국은 어떤 곳인가?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이 계신 나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이다. 이 천국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죄인인 인간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천국은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나쁜 일을 적게 한다고 해서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리고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착한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죄를 지은 것이 없어지고 상쇄되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고 그 어떤 것으로도 그 죄를 없애거나 씻을 수 없다. 오직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를 삼아 주신 것은 천국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의 인격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져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대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을 위해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을 믿기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다. 그래서 6:1이하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연합해서 옛 사람이 죽고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해서 새 사람으로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다고 했다. 또 14절에서는 우리가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죄가 우리를 주관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15절 이하에서는 “은혜 아래 있는 우리가 죄를 지을 수 없다”고 하면서 우리는 이미 의의 종이 되고 은혜의 종이 되었으므로 죄의 종이 되어 죄를 지으며 살 수 없다고 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를 믿어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은 우리가 죄를 지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를 말씀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관계가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새 사람이 된 것을 결혼의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1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2천 년 전의 이스라엘은 철저히 남성중심의 결혼이었다. 인구조사를 해도 남자만 세었고, 여자는 다만 그 가정의 일원이었다. 여자는 결혼을 하면 한 남자에게 매이는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살아 있는데 그 아내가 딴 남자에게 가면 간음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남편이 죽었을 때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죄가 아니다. 똑같이 다른 남자에게 가는 행위지만 하나는 간음죄가 되고 하나는 아니다. 

이처럼 전에 우리를 얽매고 있던 전남편이 죽었고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새 남편에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우리의 전남편은 죽고 새 남편을 맞았기 때문에 이제는 새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전남편은 누구인가? 

첫째 남편은 죄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죄에 매여 죄를 섬기며 살았으니 죄가 우리의 남편이다. 우리는 죄를 섬길 뿐만 아니라 죄와 결혼해서 죄의 씨를 받아 또 죄를 낳았다. 즉 계속해서 죄의 열매를 맺으며 살았다. 그런데 이제 이 남편이, 죄가 죽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죄의 대가를 치르심으로 내 죄를 용서받았고 그 죄가 내게 대해서 죽었다. 이제 우리는 자유인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죽은 옛 남편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둘째 남편은 율법이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과 계명을 말한다. 이것은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죄인이 율법에 매이고 율법이 죄인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죄를 짓고 나면 율법은 나를 다스린다. 그래서 그 법에 의해서 “너는 죄인이다”라는 가책과 형벌과 저주의식에 매이게 된다. 이렇게 죄인은 율법에 매이고 법에 매이게 된다. 그래서 누구든지 죄를 짓고 나면 어디 있든지 불편하고 불안하고 살아가기가 힘이 든다. 죄를 짓는 사람마다 법아래 매이고 법은 그 사람을 다스리게 되기 때문에 죄를 지은 사람은 율법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대신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채우셨기 때문에 율법에서 해방되었다. 즉 율법이 죄를 지으면 죽어야 한다고 요구하는데 예수님께서 죄를 지은 나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나대신 그 벌을 받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율법은 죽었고, 나도 율법에 대해서는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율법이 나를 괴롭히지 못한다. 이제 나는 율법에 매인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매여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셋째 남편은 죄인 된 사람이다. 즉 죄를 지은 나 자신이다. 죄를 짓고 살던 나의 옛 사람을 가리킨다. 지난날에 죄를 지은 나 자신의 모습과 존재가, 신실하고 믿음 안에 있는 나를 얽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율법이 나를 재판하고 형벌을 내리려 하고 괴롭히려 하고 왕 노릇하려 하더라도 내가 죽으면 그만이다. 천하에 없는 극악무도한 죄인이라도, 그가 죽으면 고소나 재판을 할 수 없고 형벌을 주거나 감옥에 가둘 수가 없다. 감옥에 갇힌 사람이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당장 풀려나올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그것은 죽으면 된다. 죽으면 즉시 감옥에서 나오게 된다. 산 죄인을 감옥에 가두는 것이지 죽은 죄인을 가두어 두는 법은 없다. 그러므로 어떤 죄인이라도 죽으면 법으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를 믿을 때에 옛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죄에 묶이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의 전남편인 죄와 율법과 옛 사람이 죽었고 그래서 우리는 자유를 얻었다. 나도 또한 죄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 옛 사람에 대해서 죽었다. 이제 전남편과의 관계는 끝났다. 전남편인 죄와 율법과 옛 사람과 지금의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새로운 관계가 생겼다. 즉 새 남편이 생겼다.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이다. 나를 위해 내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내게 구원과 영생과 승리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새로운 남편이시다. 4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성경에서 그리스도와 우리들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설명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로 비유해서 설명했다. 이사야 54:5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특히 호세아서는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을 섬기는 이스라엘을 남편을 떠나 다른 남자에게로 간 부정한 여인이라고 비유한다. 

신약에서도 에베소서 5장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설명한다. 또 고린도후서 11:2에서는 바울이 우리를 그리스도께 중매한다고도 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우리가 우리의 남편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오실 주님을 과 영광의 나라로 들어가서 살기 위해서 거룩하게 살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리의 전남편인 죄와 율법과 옛 사람이 나에 대해서 죽었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새남편이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죄에 매여서 죄를 짓고 살던 옛 생활을 계속할 수 없다. 그러면 이렇게 예수님과 새로운 관계를 가지게 된 우리는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있다.

첫째, 우리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의 목적을 알아야 한다.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예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하신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열매를 맺게 하시려는 것이 목적이다. 

로마서 11장에서 바울은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은 돌 감람나무 가지가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된 것이라고 했다.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 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돌 감람나무 가지가 참 감람나무에 접붙여져서 참 감람나무의 진액을 받게 된 것은 돌 감람나무의 열매가 아닌 참 감람나무의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죄와 율법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 새 사람이 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열매를 맺게 하시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15:5에서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시면서 “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하셨다. 또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다. 우리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려고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나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풍성히 맺기 위해서 애쓰는 삶이 되어야 한다.

둘째, 우리의 옛 생활이 어떠했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우리가 육신으로 있을 때는 죄의 정욕의 씨가 내 몸에 들어와 사망을 위해 열매를 맺게 했다는 것이다. 새번역 “5 이전에 우리가 육신을 따라 살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죄의 욕정이 우리 몸의 지체 안에서 작용해서,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즉 우리가 죄와 결혼해서 육체에 있는 동안에는 죄로부터 정욕의 씨를 받아서 사망이라는 자식을 낳았다는 것이다. 결혼하면 당연히 자식을 낳는 것인데 죄와 함께 있는 동안에는 사망을 낳았을 뿐이다. 나도 모르게 죄의 열매가, 사망의 열매가 맺혀지고 있다면 언제인가 나도 모르게 죄의 씨, 정욕의 씨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에서 나무는 그 열매를 보고 알 수 있다고 하셨다.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그 사람이 그의 삶에서 어떤 열매를 맺는가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말로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고 강력하게 주장을 해도 그의 삶에서 선한 열매가 맺혀지지 않으면 그는 선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새 사람이 되기 전에는 아무리 바르게 살려고 해도 나쁜 열매만을 맺었고, 내가 살기 위해 애를 써도 오히려 죽음과 멸망에 이르는 결과만을 가져왔었다. 이것이 우리의 옛 사람의 옛 생활이었다. 그러므로 다시는 이런 죄 된 열매, 악한 열매, 죽음의 열매를 맺으며 살았던 옛 생활로 돌아가지 말고 이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라.

셋째, 이제부터는 전과는 다른 새로운 방법으로 살아가야 한다.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우리의 전남편이었던 죄와 율법과 옛 사람은 죽었고 우리는 새로운 남편인 그리스도의 아내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새 남편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죄의 자녀가 아닌 의의 자녀를 낳아야 한다. 전에 죄를 짓고 죽음의 열매를 맺던 생활에서 벗어나 의를 행하고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이다.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의의 열매를 맺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이제는 사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6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의문의 묵은 것’이란 율법과 계명에 문자적으로 매여 사는 방식을 말한다. 그리고 ‘영의 새로운 것’이란 성령을 따라 사는 방식을 말한다. 새번역 “6 그러나 지금은, 우리를 옭아맸던 것에 대하여 죽어서, 율법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자에 얽매인 낡은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의문의 묵은 것’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과 계명의 뜻과 정신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문자적으로만 지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는 철저한 믿음과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율법과 계명에서 하라는 것을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으로 믿음을 지켰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리킨다. 마치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주인이 맡긴 돈을 가지고 장사하다가 손해를 보면 주인에게 혼날까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 돈을 땅에 묻어 두었다가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 준 것과 같다. 이런 생각과 자세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영의 새로운 것’으로 산다는 것은 새 마음과 새 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 은혜에 감사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일을 하기를 힘쓰며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삶이다. 한 마디로 성령 충만해서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다. 그렇게 살 때 죄를 짓지 않고 의의 열매를 맺으며 살 수 있다. 갈라디아서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유명한 사상가인 존 러스킨은 미술에도 재주가 많았다. 어느 날 한 파티에 갔는데 한 귀부인이 값진 손수건을 내보이며 속상해했다. “이 손수건은 다시 구할 수 없는 귀한 것인데 잉크를 쏟아버렸지 뭐에요.” 러스킨은 그 부인에게 그 손수건을 며칠 빌려달라고 했다. 러스킨은 며칠 후 그 손수건을 가지고 다시 그 부인을 찾아왔는데 손수건을 받아 든 부인은 깜짝 놀랐다. 잉크 자국을 시작으로 해서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전보다 더 멋진 손수건이 되었다. 나를 성령님께 맡기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가면 얼마든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고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면 죄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하나가 되면 어떻게 죄의 열매를 맺겠는가? 율법에서 자유하고 죄로부터 자유하게 된 사람은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이미 나의 전남편인 죄와 율법에 대해서 죽었고 새 남편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나서 새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안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열매, 의의 열매를 맺는 삶이 되라.

오엠(OEM) 선교회 총재인 조지 보어는 젊은 나이에 구원받고 나서 예수 앞에 자기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친구들이 “구원받은 소감이 어떠냐?”고 묻자 이런 대답을 했다. “나는 오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No Turning Back). 나는 이제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그렇다.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그러므로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 앞으로만 나가야 한다. 왜인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나의 전남편인 죄와 율법과 옛 사람은 죽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나는 죄에 대해서 죽고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살아났다. 예수님이 나의 새 남편이 되어서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 전남편이 죽고 새 남편과 함께 살면 새 남편의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전남편은 이미 죽었는데 전남편의 아이를 낳을 수는 없다. 이제 전남편과의 관계를 깨끗이 청산하고 옛 생활을 청산하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새 결혼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와 율법이 죽은 것처럼 나 자신도 죽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새 남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 질서, 새 주인, 새 마음, 새 세계관, 새 인생관, 새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전처럼 죄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 수 없다. 이제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새 마음과 새 영을 가지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하나님을 위해 선한 열매, 의의 열매를 맺는 새로운 삶을 사는 믿음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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